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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시장, 높은 가지에 매달린 과일 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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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시장, 높은 가지에 매달린 과일 따기

[이봉현의 경제스케치] 다시 안 올 국제유가의 호시절

4인 가족 한 집 당 109만 원. 지난해 국제유가가 올라 우리 국민이 산유국에 추가로 지불한 돈이다. 양극화 해소에 팔을 걷어 부친 정부가 세금을 더 걷을지 모른다며 증권시장이 지레 놀라 쇼크를 받았다지만, 산유국이 부과하는 '석유세'는 소리소문 없이 우리의 주머니를 털어가고 있다. 정부가 세금을 더 걷어가면 혜택을 받는 계층이라도 있지만 이 석유세는 고스란히 해외로 빠져나가는 돈이다.

급등한 유가가 우리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좀더 살펴보자. 지난해 원유 수입 평균 단가는 배럴 당 50.4달러. 1년 전의 36달러보다 40%가 올랐다. 수입물량은 2.1% 늘어나는 데 그쳤지만 수입대금은 427억2000만 달러로 128억 달러나 더 들었다. 이는 지난해 경상수지 흑자가 1년 전보다 116억2000만 달러 줄어든 까닭을 말해준다. 또 한국은행의 분석모형에 따르면 이런 유가상승은 지난해뿐 아니라 올해와 내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을 매년 0.8%포인트 정도 갉아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가가 가만히 있었으면 지난해 성장률이 4.0%가 아니라 5% 쪽에 가까웠으리란 계산이 나온다.

***IAEA의 이란 핵문제 처리 '주목'**

유가는 올해 들어서도 기세 좋게 오르고 있다. 이란 핵 문제가 불거지고 나이지리아 정국이 불안해지면서 우리가 주로 수입하는 중동산 두바이유 가격도 배럴당 60달러까지 치솟아 사상 고치를 경신했다. 무장단체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압승하자 지난 주말 한 차례 요동친 국제유가는 이번 주에 있을 석유수출국기구(OPEC) 총회(31일)와 국제원자력기구(IAEA) 특별회의 (2월 1일)를 주시하고 있다. 에드문드 다이코루 OPEC 의장이 지난주 "유가가 60달러를 넘는데 어떤 계산으로 생산량을 줄일지 모르겠다"고 말해 이번 총회는 그런대로 넘어가는 분위기이지만, IAEA 이사회는 다르다. 이란 핵 문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넘기는 결정을 내려져 OPEC 내 제2의 산유국인 이란이 반발하면 유가는 70달러를 넘어 100달러로 치닫게 될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국제유가는 2004년 초부터 오르기 시작해 3년째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과거에는 유가가 오르면 산유국의 증산이나 새로운 유전개발이 뒤따르며 다시 적정수준으로 하락하는 게 보통이었는데, 이번에는 이런 사이클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 유가가 심지어 비수기에도 오르고, 비축량이 과거보다 늘었는데도 오르는 이상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공급능력의 병목현상' 때문이란 게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지난 20여 년간의 저유가 시대를 지나며 석유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한 반면 석유산업 같은 '구경제'는 정보기술(IT)에 밀려 투자가 부진했다. 이러다 보니 과거에 유가의 완충역할을 했던 잉여 공급능력은 고갈됐다. 이 때문에 공급이나 수요에 미세한 변화만 와도 유가가 치솟고, 투기자금마저 저금리와 달러 약세를 피해 석유시장에 몰리면서 유가의 출렁거림이 한층 더 심해졌다. 이란이 250만 배럴의 수출물량 가운데 단 50만 배럴만 줄여도 유가가 100달러에 이를 것이란 예상은 이래서 나오는 것이다.

***'기름 먹는 하마' 중국의 영향**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이런 상태가 상당히 오래 가리라는 점이다. 고유가 시대는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배럴당 20~30달러, 심지어 10달러 선까지 내려가기도 했던, 석유 수입국들의 '좋았던 그 시절(Good Old Days)'은 쉽게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란 게 상당수 에너지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한국석유공사 해외조사팀의 구자권 팀장은 "지금은 1970년대 유가 급등기와 비슷한 상황이며 시장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며 "최소한 2010년까지는 공급능력이 부족한 지금과 같은 수급구도가 바뀔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늘어나는 수요를 생산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산유국이 생산시설을 사실상 풀가동하는데도 중국, 인도 등 인구대국의 자동차 및 산업용 연료 수요에 맞추는 데 힘이 부친 형편이다. 2002~2005년에 세계의 석유소비 증가율은 2.7%였는데, 이는 1990~2001년의 1.4%보다 2배 높은 것이다. 증가분 가운데 30%는 중국의 수입증가 때문이었다. <오일팩터(The Oil Factor)>라는 책의 저자인 스티븐 리브는 "현재 세계 평균의 절반 정도인 중국의 1인당 에너지 소비가 평균 수준에 도달한다면, 중국의 소비 규모는 현재의 미국과 같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계 석유 소비량의 25%, 즉 하루 2100만 배럴을 태우는 미국과 같은 '기름 먹는 하마' 하나가 아시아에서 무섭게 자라고 있는 것이다.

논란은 있지만 가용 석유의 매장량과 채굴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것도 고유가 전망을 뒷받침한다. 비교적 낙관적이라는 미국국립지질연구소(USGS)가 추정한 것을 보면 전세계적으로 입증된 석유 매장량은 1조7천억 배럴이며,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중동지역에 있다. 발견되지 않은 석유를 9000억 배럴 정도라고 추정하면 대략 2조6000억 배럴의 석유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석유소비 증가속도가 현재 수준인 연 2%를 유지한다고 가정하면 2030년을 전후해 석유생산이 한계에 도달한다는 추정이 나온다. 이에 대해 한국석유공사 구자권 팀장은 "지난 수십 년간 석유 생산이 계속 늘어나면서 매장량이 줄어들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기술발달에 따라 채굴이 가능해진 매장량과 새로 발견된 매장량의 증가가 이를 상쇄해 왔다"며 유가가 치솟을 때마다 나오는 석유고갈 위기론이 현재 고유가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라고 말했다.

***"낮은 가지에는 더 이상 과일이 없다"**

석유가 당장 고갈되지 않더라도 석유 생산비는 크게 높아지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중동 산유국의 석유 생산원가는 1.5달러 정도이지만, 멕시코만이나 시베리아에서 원유를 끌어올리는 비용은 그 10배인 15달러가 넘는다. 그런데 중동 산유국은 비OPEC 회원국의 고원가 유전에서 생산되는 석유의 가격에 맞춰 자국의 석유를 판매함으로써 초과이윤을 얻으면 되는 입장이다. 굳이 막대한 시설비를 투자해 자국의 유전을 추가로 개발할 동기가 별로 없는 것이다.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지 않는다면 세계의 석유 생산은 매년 6~10%씩 줄어들 것이란 예상도 있다. "낮은 가지에 열린 과일은 이미 다 따 가고 없다. 과일이 더 있기는 하지만 따기가 어려워졌다"는 한 에너지 애널리스트의 표현이 적절한 것이다.

유가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지만 아직은 유가상승이 세계경제에 치명타를 안기지는 않았다. 물가상승을 감안한 유가는 1979년 11월의 이란 사태 당시 실질유가(배럴당 108.1 달러)에 아직 미치지 못하고 있고, 선진국 경제의 에너지 의존도 역시 낮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가가 80달러를 넘는 상황이 되면 얘기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점진적인 유가상승은 인플레이션을 가져오지만 짧은 기간에 급격하게 오르는 유가는 경기침체를 유발한다. 한은에 따르면 2차대전 이후 미국경제는 10번의 경기침체를 경험했는데 이 중 9번은 경기침체에 앞서 유가가 급등했다. 특히 1970년대 이후 4번의 경기침체는 모두 유가급등이 빚어낸 것이다. 한은 조사국의 박양수 팀장은 "유가가 오르는 속도가 문제"라며 "천천히 오르면 흡수가 가능하지만 급격히 뛰어 한계선을 넘으면 세계경제가 위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석유는 에너지이고 에너지는 경제와 동전의 앞 뒷면이다. 원유가 더 이상 풍부한 자원이 아니게 되고 고유가 시대가 장기화되면서 원유는 정치적인 상품이 되어가고 있고, 원유를 확보하는 것이 점점 더 국가의 중요한 임무가 되어가고 있다. 중국은 주요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 및 러시아와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려고 애쓰고 있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것도 석유 때문이었다는 게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석유의 종말>이란 책을 쓴 폴 로버츠는 "미국이 이라크의 석유 생산량을 하루 700만 배럴로 끌어올려 OPEC의 카르텔을 끝장내려 했다"며 "석유시장이 수십 년에 걸친 가격조작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자연스런 가격대가 유지될 수 있을 것이며, 전문가들은 그 수준을 배럴당 14달러 혹은 그 이하라고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미국의 이런 계획은 완전히 빗나가 실현되지 않았지만, 세계가 점점 더 비싸지는 석유를 중심으로 돌아가리란 예상은 어렵지 않게 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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