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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까지 투기펀드의 손에 내맡겨야 하나?

[이봉현의 경제스케치] 1차산품 가격 급등추세

요즘 아기 돌 잔치에 금반지를 사가는 사람이 줄었다고 한다. 한 돈에 7만5000~8만 원 하는 금반지가 부담스러워 5만 원짜리 상품권이나 현금을 선물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최근 말 그대로 '금값'이 된 금 시세가 돌 잔치 풍속도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국제 금값은 수요 증가, 달러 약세, 지정학적 불안 등을 업고 최근 몇 년간 급등했다. 2001년 온스당 260달러 선이던 국제 금값은 지난 연말 500달러를 넘었고, 올해 1월 한 달에만 10% 가까이 상승해 25년 만에 최고를 나타냈다.

***로이터 상품지수, 최근 1년간 30% 가까이 급등**

금뿐 아니다. 우리가 원자재라고 부르는 에너지 자원, 산업용 금속, 귀금속 등 상품(Commodities, 1차산품)의 가격이 최근 3년 사이에 2~3배씩 오르는 초강세를 보이고 있다. 원유는 2003년 배럴당 평균 31달러에서 올 2월 초에는 63달러로 올랐고, 제철ㆍ주물용 코크스의 원료인 점결탄은 t당 45.4달러에서 지난해에는 125달러로 상승했다.

2003년 t당 1780달러이던 구리 가격은 지난해 3975달러로 올랐고, 올 들어서는 5000달러를 넘어 사상최고치 행진을 하고 있다. 납은 2003년에 t당 515달러에서 지난해에는 974달러로, 은은 온스당 4.89달러에서 7.32달러로 상승했다. 원유, 금, 설탕 등 17개 주요 상품의 가격변동을 보여주는 로이터-CRB 선물가격지수는 지난해에만 28% 올랐고, 올 들어서도 벌써 3.7% 상승했다..

국제 상품 가격이 이렇게 뛰는 것은 무엇보다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깨졌기 때문이다. 중국, 인도 및 체제전환국의 경제개발로 원자재 수요는 급증하는 반면 1980~90년대에 투자가 부진해 상품 생산 능력은 오히려 뒷걸음쳤다. 국제 상품 가격은 대략 17년을 주기로 강세장과 약세장이 반복되는 패턴을 보였는데, 최근의 약세장은 1998년께 상품 가격이 20년만의 최저치에 접근하며 끝이 났다는 것이다. 광산을 새로 찾아내 생산이 궤도에 오르려면 몇 년이 걸리듯, 이런 수요우위 상태는 10년 정도는 더 지속되리란 예상이 나온다.

조지 소로스와 함께 퀀텀 펀드를 창업했던 미국 월가의 유명한 투자자 짐 로저스는 〈상품시장에 투자하라〉는 최근 저서에서 "우리는 상당기간 이어질 상품시장의 강세장 한가운데 서 있다"며 "상품 시장에 투자하는 것은 앞으로 10년 내지 그 이후까지 엄청난 기회를 제공해줄 것"이라고 밝혔다.

***곡물시장으로 투기자본 이동 양상**

이렇게 가격이 오를 만한 수급여건이 마련되자 상품시장은 '카지노 게임'을 즐기려는 국제유동성의 타깃이 되고 있다. 치솟은 상품가격의 10~20%는 이런 투기성 수요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모건스탠리의 앤디 시에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유동성 순환'이란 9일자 보고서에서 "부동산 거품은 가라앉고 있으나 유동성은 사라지지 않고 상품 시장과 이머징 마켓으로 이동하고 있다"며 "구리 가격 같은 것은 2000년 나스닥 증시를 보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에는 달러가 강세가 되면 상품 가격은 약세가 된다는 전통적인 관계마저 사라졌다"며 "여러 투자 옵션이 늘어나고 헤지펀드나 프라이빗뱅커 등 참여자도 몇 배 늘어난 때문"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원자재 투자 펀드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영국 스탠더드뱅크는 이달 초 "원자재 투자 펀드가 올해 50% 증가해 1200억 달러까지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리를 긴장하게 하는 것은 에너지 자원이나 금속에서 시작된 가격 상승세 및 투기자본의 유입이 곡물쪽으로 옮겨갈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다. 존클라이스트컨설팅의 존 클라이스트 사장은 최근 보도에서 "원유와 금 시장은 포화된 반면 대두(콩) 등 곡물 시장은 아직 그런 걱정이 없다"며 "곡물이 원자재 투자 품목에 편입되면서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가격이 두드러지게 오른 곡물은 원당이다. 국제 설탕가격은 2004년 파운드당 평균 8센트에서 지난해에는 11.3센트로 올랐다. 과자, 음료의 소비가 늘어나며 주 원료인 설탕에 대한 수요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중국의 1인당 연간 설탕 소비량은 1999년 6.6kg에서 지난해 9.4kg으로 50% 가까이 증가했다. 특히 올해 들어 국제 설탕가격은 한층 가파르게 올라 이달 초에는 파운드당 19.1센트까지 기록했다. 이는 석유값이 비싸짐에 따라 사탕수수에서 추출하는 에탄올이 대체연료로 각광을 받을 것이란 기대로 투기성 자본이 달라붙었기 때문이다.

곡물 역시 수요와 공급이 어긋나기는 다른 자원과 마찬가지다. 도시화, 사막화 등으로 경지면적은 줄어드는 반면 개도국의 경제발달로 수요는 급증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식량위기가 올 것이라는 경고도 무성하다. 일본 경제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는 최근 "에너지 전쟁에 이어 식량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며 "식량 수입국들은 2010년쯤 먹을 거리를 놓고 치열한 쟁탈전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쌀 자급구조 무너지면…**

특히 각각 13억 및 10억의 인구를 가진 중국과 인도의 식량 소비 증가는 국제 곡물수급에 큰 변수가 되고 있다. 이미 중국은 농수축산물 수출국에서 수입국으로 처지가 바뀌었다. 중국의 식량 및 사료 수입액은 2003년에는 250억 달러에서 2004년에는 350억 달러에 이를 만큼 빠르게 늘고 있다. 인도 역시 1만8000달러 이상의 소득을 올리는 인구가 7000만 명에 이르고, 앞으로도 빠른 속도로 늘어날 전망이다. 중산층이 늘어나면 음식 등에서 소비혁명이 일어나게 돼 있다.

지난해 연말 쌀 협상 비준안이 통과된 데 이어 최근 시작된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도 농산물 시장 개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런 농산물 수출국들의 파상공세에 잘 대처하지 못하면 30년 이상 가꿔온 쌀 자급구조는 물론 농업의 기반이 와해될 수 있다. 쌀 협상에 따라 처음으로 들어오는 의무수입 물량이 이르면 3월쯤 시장에 나올 예정이어서, 벌써 국내 쌀값은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식량 자급률이 25%에 불과한 우리나라는 특히 쌀을 자급하지 못하면 심각한 상황을 맞을 수 있다. 국내에서 주로 먹는 자포니카(단중립형) 종은 동남아시아에서 주로 나는 인디카(장립형) 종에 비해 생산량이 10분의 1에 불과하고 생산지역도 미국, 중국, 일본, 호주 등으로 한정돼 있다. 국제시장의 거래량도 부족해 수급이 꼬이면 수출국이 가격을 조작할 여지가 크다.

이런 염려가 기우만은 아니라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농산물유통공사가 의무수입 물량 중 가공용 쌀 입찰을 실시한 결과 중국이 단립종에서 t당 519 달러를 제시해 유찰됐다. 이는 중립종의 경우 미국에 낙찰된 금액(490달러)이나 태국에 낙찰된 금액(314달러)보다 상당히 높은 금액인데 중국은 2회 입찰에서도 가격을 거의 내리지 않아 또 다시 유찰됐다. 이는 단립종을 수출할 수 있는 나라가 사실상 중국뿐이어서 독점적 지위를 이용한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한 나라의 식탁이 국제 곡물시장의 90%를 장악하고 있는 5대 메이저나 상품시장 투자 펀드의 손에 좌우될 때 국가안보는 위기를 맞게 된다. 우리 농촌이 무너진 미래의 어느 날, 쌀값이 선물 펀드들의 투기로 몇 배씩 올라간다고 해서 쌀 대신 '산업의 쌀'이라는 반도체로 밥을 지어 먹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bonghyun.lee@reuter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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