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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이 '외국자본 대항마'는 아닐 텐데…"

[이봉현의 경제스케치] 론스타의 外銀 매각

1조3800억 원을 투자해 2년 반 만에 많게는 5조 원을 벌어간다니 눈에 불꽃이 튀지 않을 수 없다. 미국계 론스타펀드의 외환은행 매각 얘기다. 그래서 그런지 정치권, 시민단체, 언론이 들고 일어나 투자의 위법성을 따지고, 매각작업을 중단시키자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능력 있는 기업의 은행 인수를 막더니 외국자본만 좋은 일 됐다"며 금융자본과 산업자본 사이의 방화벽을 허물자고 달려들기도 한다. 파장이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가고 있다.

외환은행 재매각을 막아보려는 데는 이른바 '국민정서법'이 작용하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론스타로서는 "급할 때는 매달리더니 이제 와서 다른 소리를 한다"고 불만을 품을 수 있다. 한덕수 부총리는 "우리의 정서적 입장에서 조치를 취하면 외자에 대한 기본정책을 의심받게 된다"며 "(론스타의 차익) 3조 자체가 문제가 될 수는 없고, 감당한 리스크는 리스크로 인정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론스타가 과연 떼돈 벌만한 리스크를 졌는가?**

그럼에도 국민들 사이에 "이대로 팔고 나가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정서가 폭 넓게 퍼진 것은 이들 펀드가 너무 손쉽게 돈을 벌어가는 것 같기 때문이다. 위험(리스크)에 상응해 수익(리턴)이 정해지는 게 투자의 철칙이지만, 많은 이들은 "론스타가 얻어가는 천문학적인 수익만큼 외환은행을 인수해서 감당했던 리스크가 엄청난 것이었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국내은행이 외국계 펀드에 매각되는 과정에서 리스크와 리턴의 크기가 맞지 않아 보였던 거래가 이번만은 아니다. 미국계 펀드 칼라일은 한미은행을 시티그룹에 넘기며 3년4개월 만에 7000억 원을 벌었다. 뉴브리지캐피탈은 5000억 원에 인수한 제일은행을 SCB에 넘기며 5년 만에 1조1500억 원을 남겼다. '제3탄'인 론스타의 외환은행 투자는 수익만 3조 원 이상으로 예상된다.

이런 수익은 세계에서 활동하는 주요 사모펀드(PEF)의 25% 정도만이 주식시장의 평균 수익률을 상회하는 이익을 내고 있는 실정을 생각할 때 눈부신 실적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거래들은 국제 투자업계에서 '아시아 최고의 딜' 또는 '올해의 딜' 이란 찬탄과 시샘을 받을 만큼, 자주 나오기 어려운 '대박'인 것이다.

외국계 펀드에 판판이 당하고 은행 지배권도 잇따라 외국계에 넘어가자 "무슨 수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 상한선을 4%로 묶은 금융-산업 분리 원칙을 완화하자는 주장도 그 중 하나다. 한나라당 김정훈 의원은 지난 주 "금산분리 원칙을 고수해 국내 주요 은행 대부분을 외국계 투기펀드에 내주기보다는 투명화된 기업 체제와 금융감독 체제 하에서 건전하다고 판단되는 국내 산업자본에 참여기회를 주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금산 非분리는 수험생 아버지가 시험감독하는 꼴"**

금융감독의 수장인 윤증현 금감위원장도 정부의 공식 방침과 달리 금산분리 완화를 공론화하려 해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지난주 "매물로 등장한 금융회사를 살 곳은 국내 산업자본 아니면 외국자본밖에 없다"며 "국내 산업자본이 밉다고 외국자본에 다 내줄 수는 없는 일이며 외국자본이 다 천사는 아니다"고 말했다.

사실 인수경쟁이라도 있었다면 외국계 펀드가 은행 인수로 그렇게 많은 수익을 내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외환은행이 불과 2년 만에 적자기업에서 연 1조9000억 원의 이익을 내는 은행으로 탈바꿈하리라는 판단을 외국계 펀드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국내에서도 자신 있는 기업이나 은행에서 인수하겠다고 달려들었다면 인수가격은 올라갔을 것이고 수익은 줄어들었을 것이다.

인수에 너무 많은 돈을 지불해 이익은커녕 모기업마저 어려워지는 '승자의 재앙'이 인수합병(M&A) 세계에서는 드물지 않다. 하지만 "10개가 넘은 외국계 금융회사를 접촉했으나 모두 손을 내저어 내키지는 않았지만 펀드인 론스타를 외환은행 인수자로 택했다"는 게 당국의 설명이고 보면, 내국 자본의 발을 묶어놓고 시작한 은행 매각에 '승자의 재앙'이 발생할 여지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외국계가 활개친다고 금산분리 원칙을 허물 수는 없다고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홍익대 전성인 교수(경제학)는 "금융기관은 기업의 투자행위를 감독하고 평가하고 돈을 빌려줄지를 결정하는 과정을 통해 자원배분에 영향을 끼친다"며 "금융과 산업이 분리되지 않는 것은 수험생의 아버지가 시험감독을 하는 것과 같다"고 밝혔다.

금산분리 원칙의 완화를 주장하는 이들은 "대기업이 은행돈을 쓰는 시기는 지났고, 건전성 감독을 철저히 하면 '사금고화'를 막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기업의 속성상 지배지분을 갖고 있으면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기는 스님의 '면벽수도'만큼 어려운 일인 것도 사실이다.

***외양간을 고치려면 제대로 고쳐야**

현실적으로 은행을 인수할 수 있는 산업자본은 재벌기업에 국한되는 만큼, 금산분리 완화를 공론화하는 것은 재벌의 은행소유 길을 닦아주는 것이란 우려도 뿌리 깊다. 재벌이 이미 보험, 증권 등 계열 2금융권 기업들을 통해 고객 돈으로 총수 체제를 유지하고 계열사 확장에 이용하는 상황에서 은행마저 재벌 손에 넘어가면 몇몇 가문이 국민경제를 쥐락펴락하게 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수석부대표는 브리핑에서 "금산분리 완화를 계속 주장하는 이유가 삼성에게 우리은행을 넘겨주자는 것인지 분명히 하라"고 추궁했다.

진단도 중요하지만 처방도 병에 정확히 맞아야 한다. 외국자본의 '대항마'를 키운다는 이유로 금산분리 원칙을 허물면 더 큰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외자의 역기능에 대한 대안이 총수를 정점으로 한 재벌체제의 복귀가 아니듯이, 외국계의 은행 지배에 대한 대안이 산업자본을 은행 주인 자리에 앉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여러 기업들이 포트폴리오로 투자할 수 있는 지분율을 늘리는 한편, 연기금, 토종 사모펀드를 안정적인 은행 주주로 만드는 등 '제대로 외양간을 고치기 위한' 국민적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bonghyun.lee@reuter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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