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돗물 불소화 사업을 사실상 전국으로 확대하기로 한 구강보건법 개정안을 놓고 논쟁이 다시 불붙었다. 논쟁의 지형도는 과거 논란이 한번 크게 휩쓸고 지나갔던 1990년대 후반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찬성 진영에서는 수돗물 불소화가 충치 예방 효과가 있고 안전성이 입증된 예방의학적 조치라며 사업의 적극적인 확대를 주장하고 있고, 반대 진영에서는 충치 예방 효과나 안전성에 관해 의문을 제기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먹는 수돗물에 불소를 투입하는 것은 강제적 의료 행위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논쟁 구도는 사실상 평행선을 그리면서 합의점에 도달하기는커녕 양 진영 간의 갈등의 골은 점차 깊어지고 있다. 대체 이 난국을 어떻게 돌파해야 하는가?
필자는 이 대립 구도 속에 전문성, 과학적 불확실성, 민주주의 등에 관한 쉽게 해결할 수 없는, 하지만 그러면서도 중요한 쟁점들이 녹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만약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가 진정 수돗물 불소화 사업에 강한 애착이 있고 민주적 절차를 거쳐 이를 추진하고자 한다면 다음과 같은 점들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글을 시작하기 전에 필자는 그간 수돗물 불소화 사업에 대해 어떤 식으로건 입장을 밝힌 적이 없으며, 개인적으로 불소화된 물(수돗물 불소화 사업이 아니라)에 대해 별다른 거부감을 갖고 있지 않음을 미리 밝혀두고자 한다. 그리고 이 글은 수돗물 불소화에 대한 찬성 또는 반대 입장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과학사회학의 입장에서 이 논쟁의 합리적 전개를 위한 제언 성격으로 쓰여졌음도 밝혀둔다.
***불확실성과 논쟁에 대한 '대칭적' 접근**
수돗물 불소화 찬성 진영의 논리는 사실 매우 간단하다. 불소화는 충치 예방 효과가 있고(효능), 인체에 해가 없다(안전성), 따라서 모든 사람들이 이것의 혜택을 받을 수 있고 또 받아야 한다, 그런데 대체 이 좋은 걸 안하려고 하는 이유가 뭐냐, 라는 것이다. 이 논리의 근저에는 수돗물 불소화 논쟁에서 과학적 측면에 관한 논란은 진작 끝났다는 입장이 들어 있다. 간단히 말해 논란의 핵심 부분이 막을 내렸으니 이제 남은 건 사람들의 막연한 불안감이나 근거 없는 공포를 잠재우고 여론조사나 주민투표 같은 형식적 절차를 거치는 것뿐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이런 입장은 현실을 극히 단순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우선 주류적인 치과학계의 입장에 반기를 들고 충치 예방 효과와 안전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목소리들이 있다. 물론 그들의 입장과 치과학계의 입장을 동등한 비중으로 다룰 수 없음은 분명하다. 찬성 진영은 전문성의 측면에서 훨씬 더 많은 자원을 갖고 있는 반면 반대 진영의 전문성 자원은 상대적으로 매우 취약하며, 이는 각각의 입장을 지지하는 연구 결과의 양에도 그대로 반영돼 있다. 아울러 찬성 진영은 반대 진영의 과학자나 치과의사들의 전문적 자격을 근본적으로 문제 삼는 식의 공격을 종종 해 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반대 진영이 내세우는 과학적 근거들을 '없는 셈 치고' 논쟁이 종결되었다고 선언할 수 없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반대 진영은 상대적으로 열악한 자원(인력, 연구비, 임상에 대한 접근 가능성 등)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입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연구를 충분히 할 수 없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자원 배분의 형평성 결여). 어떤 연구 결과를 정책 결정을 위한 정당한 근거로 채택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권한도 찬성 진영이 더 많이 갖고 있기 때문에(전문성의 '독점') 설사 그런 연구 결과를 내놓아도 이것이 번번이 무시된다는 항변도 가능하다.
그리고 둘째로 ―사실 이것이 좀더 중요한 것인데― 반대 진영이 제기하는 위해 가능성이 설사 현재의 과학 지식으로는 정당화될 수 없다 하더라도 미래에 그것이 현실로 나타날 수 있는 불확실성의 차원이 있다. 사실 현존하는 최선의 과학적 증거들에 입각해 공공 정책 결정을 내렸는데도 이후에 그런 결정이 비극적으로 잘못된 것임이 밝혀진 사례는 20세기만 따지더라도 상당히 많다. (아마 가장 최근에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준 것은 영국발 광우병 파동일 것이다.)
만약 이러한 이유들에서 과학적 논쟁이 완전히 종결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불씨를 안고 있다는 점에 동의한다면(동의하지 않는다면 사실 이 아래는 더 읽을 필요가 없다), 문제는 단순한 사실 차원의 논쟁이 아니라 가치 차원의 논쟁으로 확산될 수밖에 없게 된다. 수돗물 불소화 논쟁을 분석한 과학사회학자 브라이언 마틴은 이러한 상황에서 크게 두 갈래의 사고 틀이 나타날 수 있다고 보았다. 불소화에 찬성하는 사람은 아마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불소화의 이득에 관한 증거는 상당히 견고한 반면 그것이 미칠 수 있는 해악에 관한 증거는 제한적이고 의문스럽다. 나는 나타날 수 있는 이득이 가능한 위험을 압도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모든 어린이들이 혜택을 확실히 얻게 할 수 있는 가장 값싸고 쉬운 방법인 수돗물 불소화를 지지한다."
반면 불소화 반대론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불소화의 이득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견고하긴 하지만 그에 대한 의문도 존재한다. 불소화가 좋은 치아를 위한 필수 조건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약간의 위험 가능성이 있을 경우 이득을 포기해야 한다. 일부 과학자들은 인구 집단 중 적은 비율의 사람들이 불소화합물에 의해 해를 입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나는 수돗물 불소화에 반대하며 불소 섭취를 원하는 사람들이 불소정제(불소를 함유한 알약, 유럽에서는 수돗물 불소화보다 불소정제가 더 보편적이다)를 자발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선호한다."
자, 이 둘 중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는가? 어느 쪽을 선택하는가 하는 것은 물론 개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과학적 '사실'이 이 둘 중 어느 한쪽의 선택을 강제하지 않는 것만큼은 분명하며,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비합리적'이라거나 '과학에 무지'하다거나 '감정적'이라거나 하는 비난을 들을 이유가 없음도 자명해진다. 이는 비용(경제성), 강제성(윤리), 혜택의 분배(형평성) 등을 포함하는 가치 판단의 문제이며, 이에 대한 답은 여러 갈래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선택권과 민주주의의 원칙**
이런 점들을 고려해 보면 수돗물 불소화에 관한 정책 결정에 있어 선택권의 보장과 민주주의 원칙의 관철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가 분명해진다. 그러면 이에 비추어 현재 제출된 구강보건법 개정안의 내용을 검토해 보자.
개정안은 수돗물 불소화를 전국으로 확대 시행하되, 지방자치단체의 문제제기가 있는 경우 보건복지부 장관의 책임 하에 여론조사를 실시해 명시적 반대 의사를 밝힌 사람이 과반수가 되지 않으면 그대로 시행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얼핏 보면 이는 수돗물 불소화의 시행 확대를 내세우면서도 지역 주민들의 의사를 반영하는 장치를 그 속에 갖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 이는 여러 가지 차원의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우선 이 법안은 수돗물 불소화가 기본적으로 '좋은 것'이며, 효능과 안전성을 둘러싼 과학적 논란은 종결되었음을 사실상 전제로 하고 있다. 수돗물 불소화를 확대하면서 경우에 따라 이에 '예외'를 두기로 하는 법안 자체의 내용이 이를 잘 말해 준다. 그러나 앞서 길게 설명한 바와 같이 이는 여전히 꼬리를 끌고 있는 사안이며, 따라서 이런 식의 불소화 추진은 반대 진영을 더욱 화나게 하고 이들의 결속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줄 뿐임을 알아야 한다. 이는 찬성 진영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전문성과 정치적 자원을 활용해 논쟁을 밀어붙이겠다는 의사 표현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실시와 '과반수의 명시적 반대 의사'라는 조항 역시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그간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자주 쓰여 온 여론조사, 공청회, 자문위원회 같은 의견 수렴 장치들이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온 지는 제법 되었다. 사실 수돗물 불소화와 같은 중요한 공공 정책 결정을 표본 크기나 오차한계, 문항의 자귀 같은 기술적 문제를 피해갈 수 없는 여론조사를 통해 결정한다는 발상 자체부터가 상식 밖의 일이다. (사실 이런 일을 보노라면 우리나라처럼 여론조사 좋아하고 그 결과에 목을 매는 나라도 없다는 한탄이 절로 나올 만하다. 대통령 후보까지도 여론조사로 정한 곳이 우리나라 아닌가!)
하지만 그런 점을 접어 두더라도 여론조사가 과연 사람들의 선호를 정확히 잡아낼 수 있는 수단인지는 의문이다. 최근 숙의 민주주의(심의 민주주의, Deliberative Democracy)의 연구 성과들이 잘 보여주듯, 사람들의 선호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하게 마련이며 이러한 선호의 변화에는 정보의 제공이나 다른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이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수돗물 불소화에 관한 별다른 정보제공 없이 2~3분 만에 뚝딱 끝낼 수 있는 전화 여론조사 같은 것은 '충분한 정보에 근거한 견해(informed opinion)'를 알아볼 수 있는 좋은 척도가 될 수 없다. (참고로 수돗물 불소화 문제를 놓고 지자체별로 숱하게 주민투표를 실시했던 미국의 경우, 수돗물 불소화 문제가 불거지기 전에는 과반수의 주민들이 불소화에 찬성하지만, 공개 논쟁을 거쳐 막상 주민투표를 할 때가 되면 이 중 많은 수가 반대 입장으로 돌아서는 현상을 보여 주었다.)
만약 특정 지역에서 수돗물 불소화를 앞두고 주민들의 의사를 묻고자 한다면, 일정한 시간 간격(예컨대 3개월에서 6개월 가량)을 두어 찬반 양 진영에서 작성한 자료를 배포하고 공개 토론 자리를 열어 주민들 각자가 숙의를 위한 여지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가령 국내에서도 수차례 열린 합의회의 같은 틀을 비는 것도 한 방법이다.)
***불소화 추진전략의 수정을 바란다**
만약 현재의 구강보건법 개정안에 문제가 있다면 대안은 뭐냐, 라는 얘기가 당연히 나올 법하다. 필자는 종전과 같은 방식 즉 수돗물 불소화를 원하는 지자체가 이를 신청하면 공개 논쟁과 주민투표를 거쳐 이를 확정하는 방식으로 회귀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본다. 여기에 지자체와 지역 상수도사업본부의 소극적인 태도로 아예 신청 자체가 나오지 않는 문제점을 보완하는 장치가 덧붙여져야 할 것이다.
예컨대 투표권이 있는 지역 인구 중 5% 이상의 서명을 받아 청원서를 내면 해당 지자체와 보건복지부가 의무적으로 그 지역에서 수돗물 불소화를 둘러싼 공개 논쟁을 주최하고 주민투표를 실시해 결과를 정책에 반영하도록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지자체의 적극적 태도를 유도하는 다른 방법도 없지 않겠지만, 현재와 같은 강제적 불소화를 피하면서도 수돗물 불소화를 '민의에 맞게' 확대할 수 있는 다른 기술적 수단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하나의 예로 생각해 주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수돗물 불소화에 찬성하는 진영의 전문가들에게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필자의 제언은 어찌 보면 '쉬운' 길을 애써 마다하고 '불필요'하고 '번거로운' 길을 찾아가라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미 결판난 일을 굳이 결판 안 난 일로 자꾸 생각하라니 얼마나 답답한 일이겠는가.) 또한 필자의 제언에 따르는 것은 수돗물 불소화와 같은 '좋은' 정책을 추진하는 너무나 '느린' 길이며, 상대적으로 많은 비용이 들어 저비용으로 높은 이득을 거둔다는 수돗물 불소화의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손쉬운 전략은 결과적으로 해당 사업의 성패와 전문직의 평판에 독이 될 수 있다. 오늘날의 사회에서 과학적 전문성은 분야를 막론하고 과거에 비해 점차 더 큰 도전에 직면하고 있으며, 과학 지식의 무오류성을 맹신하(는 것처럼 보이)고 지나친 자신감을 내세우는 전문가들은 점점 더 의혹의 시선을 받는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이는 일반 시민들이 지난 수십 년 동안 겪어 온 경험에 근거한 사회적 학습의 결과다. 이를 무시할 경우, 그것이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 하더라도 격렬한 반발에 직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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