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향숙 의원이 발의한 구강보건법 개정안을 놓고, 지난 수년 간 불소화 반대운동을 주도해 온 <녹색평론>의 김종철 교수와 치과계 사이에 또 다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김종철 교수의 문제 제기에 대해 박한종 치과의사는 "수돗물 불소화가 왜 위험한지 근거를 대라"고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며 전의를 불태우고 나섰는데, 그보다 먼저 우리가 짚어 보아야 할 것은 장향숙 의원이 발의한 구강보건법 개정안의 반민주적 요소와 시대착오적 발상일 것이다.
장 의원이 발의한 구강보건법 개정안의 취지는 이렇다. 충치예방사업인 수돗물 불소농도 조정사업은 현재 지방자치단체가 임의로 시행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사업 확대에 어려움이 커 지역주민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시행토록 제도를 정비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초기 수돗물 불소화 사업은 지방자치단체가 임의로 시행했던 것이 아니라, 1981년 진해와 1982년 청주의 시범사업 결과를 토대로 사업지역을 확대해 왔고, 1995년 국민건강증진법에 이어 2000년 구강보건법이 제정됨으로써 그 법적인 토대가 마련된다. 시범사업이 시행되던 1980년대 초반이 우리 현대사에서 어떤 시기였는지는 굳이 긴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시범사업을 결정한 주체는 지역 주민들과 전혀 무관할 뿐 아니라, 그 지역의 수돗물을 절대 먹을 일이 없는, 10명 남짓의 중앙 정부의 공무원들과 전문가들로 구성된 '구강보건사업협의회'였다. 게다가 반대 의견이나 불평불만을 늘어놓을 시대 분위기도 아니었고 반대 측의 주장을 보도해줄 언론도 없었을 테지만 이들은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공청회 한번 열지 않고 사업을 강행했다. 수돗물 불소화 시범사업은 결국 독재정권의 총칼이 드리우고 있는 그늘에 숨어서 가장 반민주적으로 이뤄진 공중보건사업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이 사업이 민주주의가 가져야 할 절차의 정당성을 회복한 것은, "관계 지역 주민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도록 한 구강보건법이 제정되면서부터다. 21년 동안이나 시범사업을 해 왔던 청주를 비롯해 과천이나 포항에서 수돗물 불소화 사업이 중단된 것은 지역 주민의 적극적인 반대 운동과 함께 지역 주민의 의견을 반영하도록 강제해놓은 구강보건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향숙 의원의 구강보건법 개정안은 "관계 지역 주민의 의견을 적극 수렴"토록 한 조항을 삭제해 수돗물 불소화가 전국에서 다시 강제실시 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물론 "여론조사로 반대의견이 50%가 넘으면" 사업을 중단한다는 단서조항이 있긴 하지만 이 표현은 법안의 구색을 갖추기 위한 것 이상이 아니다.
국민이 위임해준 주권을 통째로 야당에게 넘겨줄 수도 있다는 집권 여당이 정작 풀뿌리 지역 주민들의 자치권은 깡그리 무시하는 것도 모자라, 남녀노소 구분 없이 원하지 않은 사람들에게까지 불소를 강제로 먹이겠다는 이 발상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지난해 총선 이후 집권 여당은 국민 여론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이라크 파병을 강행하더니 부안 핵폐기물처리장 주민 시위에 대한 폭력 진압에다 서민의 고통에는 눈길 한번 주지 않는 부동산 정책을 펴고 있고 이제는 풀뿌리 지역 주민들의 건강자치권마저 강탈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수의 뜻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은 분명한 원칙이다. 하지만 소수에 대한 배려가 없다면 그 사회를 제대로 된 민주사회라고 할 수 없다. 수돗물 불소화가 비민주적인 이유는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결정되었다 하더라도 먹는 물인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수돗물 불소화를 원치 않았거나 불소에 특히 취약한 특정계층을 배려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치과의사들은 이런 경우에는 "생수를 사먹으면 된다"는 친절한(!) 아주 친절한(!!!) 방법을 가르쳐 주면서 수돗물 불소화 사업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업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리고 절대 안전한 사업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해 왔다. 김종철 교수의 글에 대한 박한종 치과의사의 당당하고도 도발적인 반론은 이런 자신감에 근거하고 있는 것 같다.
수돗물 불소화 사업이 미국에서 60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지난 20년 동안 아무 저항 없이 시행될 수 있었던 것은 사업의 안정성 때문이라기보다는 불소의 무색무취한 특성 때문에 주민들이 모르고 먹어 왔기 때문이다. 20년 동안 수돗물 불소화 시범사업을 해 온 청주지역에서 불소가 들었는지조차 모르고 이제까지 수돗물을 먹어 왔던 주민들이 52.2%나 되었다(<내일신문> 2002년 3월 26일자).
불소가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하더라도 냄새가 나고, 물의 색깔이 변한다면 치과의사들이 감히 먹는 물에 함부로 불소를 집어넣을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뒤늦게 주민들이 저항하고 반발하기 시작하자 치과의사들은 교묘하게 말을 바꾼다. '수돗물 불소농도 조절사업'이라고…. 박한종 치과의사는 이것이 정확한 이름이라고 자못 진지하게 대국민 계몽을 하고 있지만 '유전자 변형 식품'이라고 한다 해서 그것이 '유전자 조작 식품'임을 모르는 국민이 없듯이 전문가의 세련된 수사학에 현혹될 만큼 국민들의 수준이 그리 녹록치는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수돗물 불소화가 "생태주의적이지 않은, 그러나 반생태적이지도 않"다는 말은 무엇을 주장하기 위한 말인지 분명치 않으나 지금 수돗물 불소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생태주의나 반생태주의적인 삶을 지향해서라기보다는 단지 안전하고 맑은 물을 마실 권리를 주장할 뿐이다. 거기에 더해 '내 몸에 대한 나의 결정권'이 무시된 것에 대한 반발도 포함돼 있다. 그런데 박한종 치과의사의 글에서 이에 대한 해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 대신 박한종 치과의사는 김종철 교수가 제기한 유해성 문제에 대해서는 납득할 만한 아무런 설명도 없이 인용된 인물의 인신공격성 허물을 들춰내는 것으로 글을 끝내고 있다. 그러면서 "수돗물 불소화의 60년에서 의혹의 제기는 항상 그런 식"이었다고 하는데, 수돗물 불소화의 효능을 주장하는 치과의사들이야말로 반론에 대한 설득력 있는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늘 "미국에서, 60년 동안 수억 명이 먹어 왔다"는 '항상 그런 식'이었음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자기 결정권을 무시한 강제 의료 행위가 아니냐는 반론에 대해 수돗물 불소화는 '의료 행위'가 아닌 '공중 보건사업'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은 것도 치과의사들이다.
장향숙 의원의 구강보건법 개정안이 저지되어야 하는 것은 수돗물 불소화가 위험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인권과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조차 무시하는 악법이기 때문이다. 이 개정안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수돗물 불소사업을 강제하겠다는 것이기도 하고, 지역주민의 건강자치권을 뿌리에서부터 부정하는 것도 모자라 내 몸에 대한 나의 자기결정권까지 무시하는 반민주적인 악법으로 개악하겠다는 취지다. 당연히 저지되어야 한다.
의료인은 자신의 시술이 가진 위험성과 안정성, 그리고 효과에 대해 충분히 설명할 의무가 있을 뿐, 자신의 시술을 강제할 권한은 없다. 시술의 최종 선택은 어디까지나 환자 자신이 하는 것이다. 이를 무시하는 것은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부정하는, 반인권적인 횡포다. 게다가 시술의 안정성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는 환자에게 "왜 위험한지 근거를 대라"라고 윽박지르는 것은 의료인의 본분을 넘어서도 한참 넘어선 것이다.
의료인의 본분을 넘어서 가면서까지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법개정에 힘을 보태려 하고 있는 박한종 치과의사의 깊은 속뜻을 헤아리기는 어렵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이 속한 조직의 대의명분이나 전문가로서 알량한 자존심을 지킬 것인지, 아니면 국민의 인권과 민주주의의 원칙을 지킬 것인지를 선택해야 할 시점이다. 그 선택에 따른 평가는 자신의 몫이 아니라는 것도 분명히 기억해두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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