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오는 6월 유엔에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안을 제출, 오는 9월 상임이사국이 되기 위해 외교력을 총집결하기로 했다. '반성하지 않는 전범국' 일본이 패전 60년만에 마침내 정치대국화-군사대국화의 길에 본격 접어든 것이다.
***일본 "오는 9월 반드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된다"**
일본 정부는 21일 '유엔 개혁의 최종시한'을 유엔 창립 60주년이 되는 오는 9월 유엔총회로 정한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의 '권고'를 대환영하며,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확대를 골자로 하는 '결의안'을 오는 6월까지 유엔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마치무라 노부다카 일본 외상은 이날 아난 사무총장의 '권고'와 관련한 담화를 통해 "(그의 권고는) 우리나라의 입장에 기초한 개혁의 실현에 힘을 실어주는 것으로, 환영하고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에 일본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희망하는 자국외 독일, 인도, 브라질 등 4개국(G4)과 함께 안보리 상임이사국 확대를 골자로 하는 결의안을 작성해 오는 6월 유엔에 제출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일본은 미국의 지지로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 상임이사국 진출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 이탈리아 파키스탄 등 반대파를 압도적으로 누를 수 있는 절대다수의 결의안 찬성이 불가결하다고 판단해 외교력을 총동원해 지지표를 모으기로 했다.
일본이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기 위해선 기존 상임이사국 5개국의 만장일치 찬성과 1백91개 유엔 회원국 가운데 3분의 2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일본 진출, 한국-러시아-중국만 반대**
그러나 일본은 이미 지난해 9월 유엔총회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상임이사국 진출 의사를 천명한 이래 외교력을 총동원해 표 모으기에 총력을 기울여왔으며, 경제원조 등을 약속하며 상임이사국 진출에 필요한 표를 상당부분 확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로 영국의 BBC 방송은 여론조사기관인 글로블스캔과 미국 메릴랜드대의 '국제정책태도 프로그램(PIPA)'이 공동으로 지난해 11월 15일부터 올해 1월 5일까지 전세계 23개국 2만3천5백1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과반수 이상이 일본 등의 상임이사국 진출에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69%가 상임이사국 확대를 포함한 유엔 안보리 확대에 찬성했다. 기존 5개 상임이사국의 경우 미국(70%), 영국(74%), 프랑스(67%), 중국(54%)로 조사됐으며 러시아에서만 44%의 낮은 찬성률이 나왔다.
또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후보로 가장 많은 지지를 얻은 나라는 독일과 일본으로, 전체 응답자의 각각 56%과 54%가 이들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찬성했다.
독일의 경우 조사대상 23개국 가운데 21개국이 찬성했다. 특히 영국(79%), 프랑스(86%), 이탈리아(79%) 등 독일 주변국들이 압도적 다수로 독일의 상임위 진출을 찬성했다.
일본의 경우는 독일 다음으로 높은 지지를 받았으나, 독일과 대조적으로 중국, 한국, 러시아 등 주변국에서 반대가 높게 나타났다. 특히 중국은 76%가, 한국은 54%가 반대했다. 그러나 일본은 내심 상임이사국 진출의 여건이 성숙됐다고 만족해하는 분위기다.
이번 여론조사 참가국은 한국을 비롯해 아르헨티나와 호주, 브라질, 캐나다, 칠레, 중국, 프랑스, 독일, 인도, 인도네시아, 이탈리아, 일본, 레바논, 멕시코, 필리핀, 폴란드, 러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스페인, 터키, 영국, 미국이며, 여론조사의 국가별 오차범위는 ±2.5~4%이다.
***아시아, 중국-일본-인도 3개국 체제로 가나**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21일 '권고'를 통해 오는 9월 유엔 총회에서 안보리 이사국을 현재의 15개국에서 24개국으로 확대하고, 상임이사국을 확대하는 유엔 개혁을 매듭지을 것을 촉구했다. 아난 총장은 이와 함께 2차세계대전때 연합군의 적이었던 나라를 '적국'으로 규정한 유엔헌장 제53조와 107조를 "시대착오"라며 삭제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일본 등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길을 터주기 위한 조처다.
이에 앞서 지난해 12월 고위급 자문위원회는 아난 총장에게 상임이사국을 11개국으로 늘리는 방안과 별도의 준상임이사국 8개국을 두는 2가지 방안을 제시했었다.
자문위원회가 유엔에 제출한 <보다 안전한 세계: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책임>으로 명명된 안보리 개혁안의 두 방안은 모두 현재 15개인 안보리 이사국수를 24개로 늘리는 것은 동일하나, '뜨거운 감자'인 상임이사국수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있어서는 방법을 달리한다.
첫번째 안은 현재 5개국으로 구성된 상임이사국을 11개 국가로 늘리는 대신, 새로 늘어난 6개국에는 거부권을 주지않는 방식이다. 또한 2년 임기의 비상임이사국은 현재 10개국에서 13개국으로 늘리도록 하고 있다. 6개의 새로운 상임이사국은 아시아 2개국, 아프리카 2개국, 유럽 1개국, 미주대륙 1개국 등으로 배분될 예정이다. 현재 아시아에서는 일본과 인도, 유럽에서는 독일, 미주에서는 브라질, 아프리카에서는 남아공 등이 사실상의 연합전선을 구축한 상태다.
두번째 안은 상임이사국은 기존 그대로 유지하고 상임이사국과 비상임이사국 사이에 8개국으로 구성된 4년 임기에 연임이 가능한 준상임이사국을 신설하도록 돼 있다. 준상임이사국은 거부권을 갖지 못하며 아울러 비상임이사국은 1개국이 늘어난 11개국으로 하도록 하고 있다.
이같은 안이 발표된 당시, 일본 정부는 그동안 거부권이 부여되지 않는 준상임이사국 등에 대해 "거부권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빅5'에 비해 차별대우를 받는 셈"이라며 "상임이사국과 동등한 자격을 가져야 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며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일본은 그러나 차선책을 택하라면, 상임이사국 숫자를 6개국 늘리는 첫번째 안을 선호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국제전문가들은 일본의 의도대로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될 경우 향후 아시아 역학관계는 중국-일본-인도 3개국 체제로 구축될 가능성이 농후한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국, 일본을 아시아의 중심추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을 꿈꾸는 일본의 최대 스폰서는 다름아닌 미국이다.
지난해 9월 고이즈미 일총리가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천명하자, 조지 W. 부시 미대통령은 즉각 이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최근 아시아 순방과정에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무장관은 일본의 진출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재천명했다. 아들의 비리 혐의로 미국에 발목잡힌 아난 유엔 사무총장도 21일 기자회견을 통해 "(상임이사국이 6개국 늘어날 경우) 아시아 지역에 할당되는 2개국 가운데 하나는 당연히 일본이 될 것"이라고 지원사격을 때렸다.
미-일의 의도는 분명하다. 2년전 이라크 침공당시 유엔 안보리의 반대에 직면했던 미국은 일본 등 친미국가들을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대거진출시켜 유엔에 대한 미국 장악력을 높인다는 방침이며, 일본은 이같은 미국의 구상에 편승해 오랜 숙원인 정치대국화를 실현한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미국과 일본의 연대가 향후 아시아 역학판도에도 커다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이와 관련, 21일 도쿄발 기사에서 "조지 W. 부시 정부가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일본과의 전략적 군사적 동맹관계를 부활시키려 하고 있다"면서 "동맹관계가 느슨해지고 불분명해지고 있는 아시아에서 일본을 명백한 '중심추(anchor)'로 만들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요컨대 한국 대신 일본을 대아시아의 전략거점으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이 신문은 "미국이 북한이 조만간 핵보유국이 될 수 있는 시점에 자국의 대(對)아시아 비전의 핵심에 일본을 두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며, 미 국방부 소식통들을 인용해 "미국와 일본 관리들은 향후 몇 달내로 미군의 지휘권 강화와 미사일 방어, 주한미군의 추가감축을 포함한 미군 병력 재배치 문제 등을 논의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 대신 미국은 일본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을 명백히 지지하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일각에서 러일전쟁직후 1905년 미국과 일본 사이에 한국과 필리핀을 각각 침탈하기로 극비리에 맺어졌던 '카쓰라-테프트 조약' 2탄이 체결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북핵문제-독도문제 등 긴장고조 가능성**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일본의 오는 9월 상임이사국 진출 이후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우선 미-일이 연대해 북핵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상정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라이스 미국무장관은 아시아 순방과정에 일본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한 데 이어, 올 여름이후 북핵문제의 유엔 안보리 상정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해 이같은 관측에 힘을 실어주었다.
국내전문가들은 또 일본이 장차 독도문제도 국제적 압력을 조직해 국제사법재판소로 끌고가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어린 시선을 던지고 있다.
장성민 세계와동북아평화포럼 대표는 이와 관련, 지난 19일 "아직 우리 정부와 언론 그리고 국민은 일본이 독도란 섬을 한일간 영토분쟁대상으로 몰고가는 깊은 의도와 숨은 전략을 꿰뚫지 못하고 있다"며, "일본의 독도분쟁화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이후까지를 생각한 치밀한 각본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그는 "일본은 지난 10년동안 UN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진출하기 위해 UN 분담금을 미국을 제외한 현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보다도 더 많이 내왔고, 미국 또한 자국의 유엔 지원 분담금액을 줄이기 위해 일본이란 동맹국을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진출시키려 노력하고 있다"며 "만일 일본이 유엔 안보리 상임 이사국에 진출할 경우에는 일본은 독도를 영토분쟁화시켜 이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집중시킨 후 독도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로 끌고 들어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란 힘을 이용해 독도를 국제여론으로 일본영토화시키려는 음모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본은 현재 이미 국제사법재판소에 1명의 일본인 재판관을 확보해 놓은 상태다.
***일본 주변 4개국 연합 과연 가능한가**
BBC방송의 여론조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일본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시도에 대한 한국, 중국, 러시아, 그리고 북한의 시선은 곱지않다. 과거의 침략행위를 반성하기는커녕 도리어 이를 정당화-합리화하는 동시에, 주변국에 대해 끊임없는 영토분쟁을 야기하고 있는 일본이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될 경우 더욱더 군국주의화로 회귀할 것이 불을 보듯 훤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이미 9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에 이어, 오는 11월 '군국주의 헌법'으로의 개헌 등 일련의 군사대국화 프로그램을 마련해놓은 상태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지난 13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사죄·배상 촉구 및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반대'에 뜻을 함께 하는 20만명의 서명을 받아 이를 국제노동기구(ILO)에 전달하기로 했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이 문제에 관해 분명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아왔다. 이에 외교가에서는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눈감아줄 경우 다음에 아시아쪽으로 돌아올 유엔 사무총장 자리를 한국이 차지할 수 있다는 계산도 작용한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도 최근 독도분쟁-역사교과서 왜곡 등을 거치면서 국민감정이 폭발하면서, '반대'쪽으로 입장을 정리해가는 분위기다.
박길연 유엔주재 북한 대사도 지난 8일 아난 유엔 사무총장에게 서한을 보내 "일본에 상임이사국 지위를 주는 것은 용인할 수 없다"며, 그 이유로 "일본이 저지른 반인륜적인 범죄, 군국주의 부활 정책, 주변국들에의 위협"을 꼽았다. 그는 "일본은 아직도 어떠한 배상도 하지 않고 있다"면서 "일본은 유엔 예산에의 공헌으로 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를 구하고 있으나 유엔은 돈을 낸 만큼 발언권을 얻는 금융기관이 아니라 평등한 주권에 기초해서 평화와 안전을 수호하는 정치조직인 만큼 상임이사국 자리를 돈으로 사고팔도록 허용해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현재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다. 유엔 규정상 이들이 반대하면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은 불가능하다. 이들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일본의 최근 군국주의 부활 움직임에 강한 경계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시베리아 개발 등에서 일본의 자금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으며, 중국 또한 일본의 진출을 막을 경우 예상되는 미국과의 갈등 등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처럼 각국의 이해관계가 미묘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만큼, 과연 이들 일본 주변 4개국이 일본의 상임위 진출을 막기 위한 연대전선을 짤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더욱이 북핵문제로 4개국간 연대가 쉽지 않은 상황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일본이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될 경우 일본이 비록 당장 '거부권'을 보유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향후 국제무대에서 일본의 정치-군사적 발언권이 급속히 높아질 게 불을 보듯 훤하며 북핵위기를 비롯해 한반도 통일 등에도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게 확실하다. 우리가 '세계경제 11위의 대국' 운운하며 급속히 격변하는 주변정세를 간과해선 안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독도-왜곡교과서를 둘러싼 한일 전쟁의 승패는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저지할 수 있을지 여부에 달려있다는 분석을 하고 있기도 하다. '반성하지 않는 전범국' 일본의 정치-군사대국화를 저지하기 위한 국제적 연대전선 구축에 총력을 집중할 때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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