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21일(현지시간) 유엔 총회에서 상임이사국 진출 의사를 공식 표명하며 유엔 헌장에서의 ‘적국’ 조항 삭제도 요구했다. 미국은 일본의 진출에 대해 강력한 지지입장을 보인 반면, 중국은 "유엔은 기업체 임원회의가 아니다"라며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우리나라는 'NCND' 입장을 밝혔다.
***日 고이즈미,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의사 공식표명**
고이즈미 총리는 21일(현지시간) 뉴욕에서 열린 제59차 유엔 총회 연설에서 처음으로 “일본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을 희망한다”고 공식 표명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날 연설에서 “일본이 해왔던 역할은 상임이사국 진출을 위한 조건에 굳건한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고 믿는다”며, 일본 자위대의 동티모르 및 이라크전 파병을 '전세계 평화를 위한 일본의 기여'의 한 예로 들었다. 그는 또 “평화는 혼자서 달성될 수 없다고 확신한다”며 “이에 따라 일본은 적극적이고 활발한 역할을 해왔다”고 강조, 안보리 진출 의사를 재차 분명히 했다.
그는 이어 “오늘날의 세계 질서를 더 잘 반영하기 위해 유엔 헌장에서 ‘적국’ 조항을 삭제할 필요가 있다”며 “유엔 총회에서도 이 조항이 삭제돼야 한다고 인정한 바 있다”고 적극적인 입장을 표명했다.‘적국’ 조항이란 유엔 헌장 1백7조 내용을 일컫는 것으로 ‘2차 세계대전 시기 유엔헌장 서명국의 적이었던 나라’로 표현돼 있으며 일본과 독일 등을 가리킨다.
그는 또 유엔 개혁과 관련,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과 비상임이사국 수도 유엔이 새로운 위협에 보다 잘 대처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확장돼야 한다”며, 새로운 위협으로 대량파괴무기 확산과 테러리즘 및 빈곤 문제 등을 제시했다.
일본은 그동안 국제분쟁에서 무력 사용을 금한 평화헌법에 따라 상임이사국 진출에 비교적 조심스런 태도를 보였지만, 미국의 강력한 지지에 힘입어 상임이사국 진출을 공식표명하기에 이르른 것이다. 미국은 그동안 일본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을 계기로, '평화헌법' 개정을 전제조건으로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강력 독려해 왔다. 이는 미국이 이라크 침공과정에 독일-프랑스-러시아 등 유럽의 강한 견제를 받은 데 따른 반작용이다.
현재 상임이사국 동반 진출을 희망하고 있는 국가들은 일본 이외에 독일, 인도, 브라질 등으로, 이들 국가들은 이날 상임이사국 진출을 위해 서로 지원하겠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들 국가들의 상임이사국 진출 여부는 2005년 유엔 창설 60주년을 앞두고 오는 12월 제출될 예정인 유엔 개혁 보고서를 통해 최종 결정될 전망이다.
***中, “유엔, 기업체 임원회의 아냐”**
이같은 고이즈미 발언에 대해 중국이 즉각 반격을 가했다.
중국 외교부의 쿵취안(孔泉) 대변인은 21일 정례 브리핑에서 개발도상국들의 이익을 수용하기 위한 유엔 개혁에 대해 지지의사를 표명하면서도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해서는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쿵취안 대변인은 “일본이 유엔에 재정적 지원을 많이 한다는 이유 만으로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 상임이사국 지위를 차지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유엔은 (기업체) 임원회의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며 “회원국들의 재정적 기여에 따라 유엔 구성이 결정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일본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유엔 분담금을 내는 국가로, 2004년에는 유엔 예산의 19.5%를 담당했다.
그는 그러나 상임이사국 진출을 희망한 인도, 브라질 등 개발도상국들에 대해서는 “유엔에서는 이들 국가들의 대표성을 고려하는데 우선권을 두어야 한다”고 말해 일본과는 다른 방향의 유엔 개혁을 주장했다. 유엔 1백90개 이상의 회원국 가운데 대부분은 개발도상국이지만 이들의 대표성은 상당히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쿵 대변인은 이어 “우리는 일본의 책임있는 자세를 보고 싶다”며 “일본은 역사문제를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고 말해,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과 일본의 과거사 반성을 연계할 생각임을 드러냈다.
***한국, "특정국가 상임이사국 진출관련은 'NCND'"**
우리 정부는 중국과는 대조적으로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 공식 표명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외교통상부 한 관계자는 22일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이와 관련, "특정국가의 의사 표명에 찬반을 밝힐 입장이 아니며 NCND(확인도 부인도 안하는 상태)다"고 밝히면서도 "우리는 유엔 개혁에 대해 대표성과 민주성이라는 원칙에 따라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과거 일본과 독일이 먼저 상임이사국 진출을 의도했을 때 우리나라는 파키스탄, 아르헨티나 등의 '중견 국가'들과 함께 '커피클럽'을 만들어 이들 국가들의 진출을 막은 경험이 있다.
그는 "졸속으로 상임이사국이 개편되는 것을 막았다"며 "안보리가 개편되기 위해서는 회원국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도록 해 '넘기 힘든 벽'을 만들었고 이후에 우리는 중견 국가들과 함께 우리들의 이익을 보장할 수 있는 안보리 개편을 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여, 유사시 중국과 마찬가지로 과거사 반성 문제 등을 연계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러나 미국이 워낙 일본의 상임이사국 가입을 강력희망하고 있어 과연 우리가 어떤 입장을 취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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