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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사회적 바이러스를 어떻게 처리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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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사회적 바이러스를 어떻게 처리했나

[복지국가SOCIETY] 전염병의 시대, 민주주의 교육 강화가 정답

코로나19가 한국 사회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초기만 해도 쉽게 마무리될 것처럼 보인 바이러스가 일파만파 퍼지면서 한국 사회의 구조적 취약성이 다시 드러났다. 2009년 신종플루, 2013년 메르스 등 이제 전염병 발생은 주기적 일상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코로나19 확산에는 시민 대부분의 삶과 무관할 것처럼 생각했던 종교집단 신천지의 몫이 컸다. 신천지 교단이 전염병 확산의 중심적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이제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신천지와 사회적 바이러스

기독교 신자가 아닌 보통의 시민은 신천지가 내 삶과 사회에 이렇게 영향을 미칠 줄은 몰랐다. 베이징 나비의 날갯짓이 뉴욕에 폭풍을 몰고 올 수 있다는 ‘나비효과’를 연상케 한다. 지구화 시대에는 사람도, 오염도, 바이러스도 더 촘촘하게 연결돼 있다.

역사에 간혹 등장해 세상을 들썩이게 했던 종교집단의 해프닝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도쿄 지하철에 사린가스를 살포했던 일본의 옴진리교, 900명의 사망자를 내며 미국 사회를 뒤집어 놓았던 존스타운 집단자살 사건, 한국판 존스타운 사건으로 불렸던 80년대의 오대양 사건, 그리고 지난 세월호 참사 때 주목을 받았던 유병언의 구원파 등이 과거에도 있었다.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기보다는 민폐를 끼쳤던 종교집단이 종종 있었는데, 신천지도 세상에 폐를 끼친 또 하나의 종교집단으로 기록될 것 같다.

문제는 이런 민폐 집단들이 번성하고 성장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다. 코로나19 출현 자체를 원망하고 탓할 수 없는 것처럼, 바이러스가 세상에 출몰하고 확산하는 환경과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사건은 재현될 것이다. 전염병을 일으키는 자연계의 바이러스도 문제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는 반사회적이며, 때로는 광신적인 사회적 바이러스들이다.

중세를 대표하는 인류사의 참혹한 사건이 흑사병이라면, 근·현대를 대표적인 사건은 제2차 세계대전 시기의 나치에 의한 유대인 홀로코스트다. 전자가 자연이 만든 대학살이라면, 후자는 인간이 만든 대학살이다. 인간이 저질렀기에 더욱 잔인했고 참혹했다. 유대인 학살에는 히틀러와 나치주의자들의 책임이 크지만, 학살 범죄 행위에 별다른 생각 없이 참여했던 독일의 소시민도 비난과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아이히만과 같은 평범했던 독일의 소시민을 통해 악의 ‘일상성’과 ‘평범성’에 주목했던 한나 아렌트의 시선이 중요한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독일은 사회적 바이러스를 어떻게 처리했는가

독일에서 민주주의 교육은 이런 악의 일상성과 평범성에서 출발했다. 독일 민주주의 교육의 출발에 제2차 세계대전의 홀로코스트 경험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독일은 역사 반성을 통해 민주주의 없이는 국가의 부강 또한 어렵다는 사실을 확인하기도 했다. 영국과 이웃한 프랑스에 비해 민주주의 출발이 늦었던 독일은 1·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자 전범국이 된 원인이 민주주의 결여와 민주시민의 부재에 있었다고 평가하고 1952년 현재의 연방정치교육원(Bundeszentrale für politische Bildung)을 설립했다.

설립 70년이 되어가는 독일의 연방정치교육원은 민주주의 시민교육의 허브 역할을 수행해왔다. 연방정치교육원은 취학 전 아동들이 유년시기부터 이성주의 교육과 합리적인 규범을 습득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다. 학교 안팎에서 다양한 청소년 주체들을 교육하고, 성인을 대상으로 다양한 시민교육 실행 주체들인 정치재단, 교회, 대중대학 등과 협력적으로 민주주의 시민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연방정치교육원의 연간 예산은 5470만 유로(2018년 기준, 한화 약 724억 원)다. 이와 별개로 연방제를 선택한 독일 16주 중 15개 주가 별도 정치교육원을 설립해서 연방정치교육원에 버금가는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2017년부터 서울을 비롯한 일부 지자체에서 조례를 제정해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하고 있지만, 예산은 연방교육원의 1%도 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정치교육’이라고 하면 화들짝 놀라겠지만, 독일의 시민교육은 정치교육에 중심을 두고 있다. 70년 가까이 되는 역사에서 몇 번의 변화과정이 있었지만, 1997년 연방-주 정치교육원은 “민주주의는 정치교육을 필요로 한다”라는 이른바 뮌헨 선언을 발표하면서 시민정치교육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고, 정부의 적절하고 지속적인 재정 지원 필요성을 역설했다. 우리 사회의 보수우파들은 시민교육에 ‘민주’나 ‘민주주의’라는 단어만 들어가도 색안경을 쓰고 보지만, 독일의 우파들은 시민교육의 핵심이 ‘정치교육’이라는 데 동의했다.

연방정치교육원이 주도하는 독일시민교육의 목적은 ‘정책 이슈에 대한 기본적인 독자적 통찰을 가지고,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민주적 방식으로 실천할 수 있는 역량 있는 시민을 양성’하는 데 두고 있다. 물론 시민교육을 두고 ‘해방성’를 강조하는 좌파와 ‘합리성’을 강조하는 우파 사이에 많은 논쟁이 있었지만, 좌·우파들은 1976년에 보이텔스바흐라는 곳에서 3대 원칙에 합의함으로써 시민교육과 정치교육의 중요한 이정표를 제시했다. 보이텔스바흐의 3대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주입 또는 교화 금지 원칙이다. 사회적 쟁점 사항에 대해 학생들이 잘 모르는 상태에서 교사가 무엇이 바람직한 견해인지를 알려주거나 강요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교육의 목적은 학생 스스로 독립적인 판단을 하도록 지원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은 좌파든 우파든 가르치려고 하는 주입식 경향이 강한 탓도 크다.

둘째, 논쟁성 재현의 원칙이다. 사회적으로 논쟁적인 사안은 학교에서도 논쟁을 통해 학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원칙은 주입금지 원칙을 실천하는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견해, 특히 비판적이고 대안적인 의견을 균형 있게 제시하고, 이에 대해 토의와 토론을 하지 않으면 슬그머니 주입과 교화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정치적 행위능력 강화 원칙이다. 학생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고려하여 스스로 정치적 입장을 결정하고 행동에 옮길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의 정치 상황에서 학생은 자신의 개인적 이해관계가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를 탐색해 보고, 또한 자신들이 그런 정치 상황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다양한 수단과 방안을 탐색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 독일연방정치교육원 로고. ⓒhttps://www.bundesregierung.de/

코로나19를 통해 본 한국의 민주주의

한국 사회를 혼란 상태로 내몰고 있는 코로나 정국에서 민주주의 교육을 떠올리는 이유가 있다. 한국 사회의 보통시민이 독일처럼 어릴 적부터 보이텔스바흐 3대 원칙에 입각해 제대로 민주주의 교육을 받았다면 ‘맹신적인 신천지 교도가 되었을까? 설령 되었다고 하더라도 전염병이 확산되는 시기에 그런 반사회적이고 반시민적 행동을 했을까?’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 시민교육을 등한시했기에 신천지 같은 특이한 종교집단이 뿌리내릴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졌고, 5·18망언과 같은 여러 가지 반사회적 행위들이 거침없이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근·현대 우리 역사는 독일보다 더 참혹한 수난을 당했지만 국가공동체 차원의 성찰과 성찰에 토대한 사회적 비전을 만들어본 적이 없다. 민주주의가 부재했기 때문에 조선왕조가 멸망했고, 제국주의의 지배를 강압적으로 당해야 했고, 전쟁과 독재의 긴 터널을 지나와야 했지만, 이런 악성 바이러스에 속수무책이었던 원인에 대해 근본적인 성찰을 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실천을 만들어본 적이 없다.

독일은 역사 반성을 통해 시민이 주체가 된 민주주의 역량을 축적했기 때문에 1990년 독일 통일 과정에서 큰 문제없이 하나의 통일국가를 만들고, 오늘날 유럽과 세계를 주도하는 강대국이 되었다. 강대국이 되면 이웃국가들이 질시와 위협을 느낄 수 있지만, 언제나 물과 기름의 관계였던 이웃 프랑스와도 어느 때보다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독일과 프랑스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와 비슷했지만 현재의 상황은 너무나 다르다. 독일이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과거사에 대한 깊은 성찰과 참회를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일 시민의 축적된 민주주의 역량이 없었다면, 독일은 통일의 다리를 건너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독일처럼 한반도에서 통일이 도둑처럼 갑자기 찾아온다면 한국 사회는 다양한 갈등과 분쟁, 차별과 배제를 견뎌낼 수 있는 내적 역량을 과연 가지고 있을까? 민주주의 전문가들은 50년대부터 시작된 독일의 민주시민교육이 독일 통일 과정에서 지대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코로나 사태는 과학적인 사고와 객관적인 접근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정치인들은 정파적 이익을 목적으로 해석과 접근을 하고, 그런 정치에 치우친 이들은 다양한 가짜뉴스를 생산해 확산하고, 불필요한 사회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보이텔스바흐 3원칙이 제시했던 것처럼 스스로 사유하고, 논쟁을 통해 쟁점을 정리하고, 실천할 수 있는 시민들이 다수를 차지해야만 이런 가짜와 편향을 제대로 정화시킬 수 있다.

민주주의의 성장 혹은 붕괴는 투표장에서 일어난다

코로나 사태를 통해 더욱 우려되는 것은 양극화의 심화와 경기 침제의 장기화다. 한국은 미국과 함께 선진국 중 가장 양극화와 불평등이 가장 심한 사회의 하나며, 경제는 이미 저성장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처럼 양극화가 심하고 민주주의의 기반이 약한 곳에서는 민주주의 퇴행이 쉽게 일어난다.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2015, 들녘)에서 저자 조슈아 컬랜칙은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낮은 경제성장과 실업난에 실망한 노동계급은 더 높은 경제성장을 위해 새로운 독재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태도를 보였고, 민주화 혁명의 선도 세력인 중산층은 민주화 이후의 정치적 혼란과 부정부패에 실망하여 본인들이 성취한 민주주의에 회의감을 느꼈다. 즉 민주주의가 경제성장으로 이어지지 않고, 오히려 부패가 일상화되면서 서민층과 중산층이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를 접는다는 것이 민주주의 퇴행의 원인이다.”

연인원 1700만 명이 참여한 촛불시민들은 무혈혁명으로 권력을 바꾸고, 새로운 정부를 만들었지만 나아지지 않은 경제 상황과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정부에 이미 큰 실망감을 표시하고 있다. 20세기 초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이 좋은 민주주의의 지향을 가지고 출발했지만, 결국에는 히틀러의 나치당을 낳고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비극의 단초를 만들었던 것처럼 역사의 퇴행은 언제든지 다양한 방식으로 일어난다.

조슈아의 지적처럼, 민주주의 위기는 사회·경제의 양극화와 중산층의 붕괴에서 시작한다. 이미 심각해진 양극화 상황에서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민주주의가 이빨이라면 복지국가는 입술에 가깝다. 복지 없는 민주주의는 위험하며, 민주주의 없는 복지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둘은 순망치한의 관계이며, 새의 두 날개와 수레의 두 바퀴처럼 서로를 보완해야만 굴러가는 보완재다. 이미 두 번의 정권교체를 통해 적어도 형식적인 민주주의를 구축한 한국 사회의 핵심 과제는 역동적이고 혁신적인 복지국가를 통해 중산층을 시급히 복원하고, 보다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통해 시민과 시민사회의 역량이 축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론 쉽지 않다. 시민들은 독일처럼 국가로부터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교육을 지원받은 적은 없고, 오히려 주입식 교육과 가짜뉴스에 혼란스럽기만 하다. 지금 믿을 수 있는 것은 광장에서 온 몸으로 배운 현장 교육의 지혜와 시민의 집단지성이다. 심각한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극복할 수 있는 혁신적인 복지국가 정책을 국가와 정당에게 요구하고,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역량 있는 정치인과 정치집단을 이번 4월 총선에서 시민들의 집단지성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그것이 사회적 바이러스를 퇴치할 수 있는 유력한, 아니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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