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며칠 째 폭염이 지속되면서 올해도 여름휴가가 관심이 되고 있다. 지난 5월 30일 모집을 마감한 정부의 근로자 휴가비 지원 신청이 국민의 큰 관심 속에 성공리에 마감되었다고 한다. 근로자 휴가비 지원 신청은 지난해 시행된 1차 시범사업 시 2만 명 모집에 10만 명 넘게 지원해 올해는 예산이 대폭 증액되었던 사업이다. 촛불 혁명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정책 중에서 문재인 케어나 치매국가책임제 등과 더불어 가장 인기 있는 정책의 하나로 손꼽힌다. 문재인 정부에 비판적이던 보수 언론조차 칭찬할 정도로 반응이 좋다.
근로자 휴가 지원 제도의 도입 배경
정부가 직접 나서 노동자의 휴가를 장려하고 지원하게 된 배경에는 관광 활성화뿐만 아니라 노동 정책의 요구와 경제 정책적 필요성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은 너무 일만 하고 쉬지 않으니, 정부가 적극적으로 휴가를 장려하게 됐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노동자가 일을 가장 많이 하는 국가다. 연간 노동일수가 2069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위와 압도적 차이가 나는 2위다. 일과 생활의 균형(워라벨)은 OECD 국가 중 24위이고, 국민 삶의 질의 만족도는 26위로 매우 낮은 편이다(OECD Data 2016, Better Life Index).
관련 조사 결과, 우리나라 노동자가 휴가를 가지 못하는 장애요인 1위는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였다. 휴가를 가고 싶어도 내놓고 다녀올 직장 분위기가 되지 않는 것이 휴가 사용 장애요인 1위이기 때문에 이런 정책을 통해 휴가 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필요했다. 휴가 장애요인 2위는 경제적 여유의 부족이었다. 그래서 근로자 휴가 지원 제도를 통해 휴가를 갈 수 있는 직장 분위기를 만들고 휴가비도 지원하는 제도를 도입하게 됐다.
국가별 평균 휴가일수를 살펴보면, 프랑스는 30일이고, 독일 28일, 일본은 10일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법정 휴가 일수가 15일이지만, 노동자는 평균 7.9일 정도 휴가를 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업체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연차휴가 기준으로 평균 12.2일의 휴가를 받고 있으나, 실제로 사용한 휴가는 평균 5.6일가량으로 주어진 휴가 중 평균 7일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근로자 휴가 실태 시범 조사, 2018). 이렇게 실제 휴가 일수가 적다 보니 관련 산업도 활성화되지 못한다. 각 국가의 관광산업 매출에서 내국인이 차지하는 비율을 살펴보면, 일본은 89.5%이고, 미국 77.2%, 프랑스 71.1%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54.1%에 불과하다.
근로자 휴가비 지원 제도의 시행 방안
이 사업에 필요한 재원은 관광진흥개발기금에서 나온다. 지원 대상은 중소기업 기본법 상의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다. 대기업 노동자나 공무원과 공공기관 종사자는 제외된다. 관광진흥개발기금은 카지노 사업자 총 매출액의 100분의 10 범위의 금액과 출국납부금, 보세 판매장 특허수수료의 100분의 50 등으로 조성되어 관광 활성화 사업에 투입하는 기금으로 근로자 휴가 지원 제도의 목적에 잘 부합한다.
2018년 시범사업을 통해 약 25억 원의 예산으로 중소기업 노동자 중 2만 명이 혜택을 보았다. 호응이 매우 좋았고 신청자가 쇄도했다. 그래서 올해는 예산을 100억 원으로 늘리고 대상자를 10만 명으로 확대했다. 이 정책으로 혜택을 보는 노동자는 2차 신청자들만 8만 명인데, 동반인원까지 고려하면 8300여 기업의 약 27만 명이 수혜자가 된다.
<표 1> 근로자 휴가 지원 제도의 사업 대상과 참여 인원
자료 : 한국관광공사의 근로자 휴가 지원 제도 홈페이지(http://vacation.visitkorea.or.kr)
근로자 휴가 지원 사업은 신청 절차도 간단하다. 인터넷 한국관광공사 홈페이지(http://vacation.visitkorea.or.kr)에서 '근로자 휴가 지원 사업' 온라인 참여 신청을 하면, 참여 대상 기업인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참여 기업 노동자는 관련 정보를 입력하고 가상계좌로 분담금을 입금하면 된다. 어차피 기업에서 휴가비를 지원하기 때문에 보통은 노동자 분담금을 포함한 금액을 기업에서 일괄적으로 납부하면 정부 지원금으로 1인당 10만 원이 추가로 적립된다. 이렇게 적립된 포인트 40만 원을 이용해 전용 온라인 몰에서 숙박을 예약하거나 입장료를 내는 등으로 국내 여행 관련 상품을 구입하면 된다.
근로자 휴가 지원 제도를 통해 얻은 포인트는 인터넷 전용 몰에서 사용한다. 정부의 세밀한 준비와 홍보 덕분에 인터넷 전용 사이트에서 고를 수 있는 상품이 매우 다양하고 풍부하다. 구매할 수 있는 숙박 시설도 대형 콘도나 호텔뿐만 아니라 소규모 팬션 등이 총 망라돼 있다. 떠나요 닷컴이나 인터파크, 야놀자 같이 국민이 익숙한 숙박 포탈에서 상품을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 종류별·지역별로 전국의 숙박 시설도 모두 이용이 가능하다. 그래서 이번 정책은 인기가 좋다. 렌터카나 기차, 항공권도 온라인 몰에서 구매가 가능하고, 관광지와 테마파크 입장권 등도 구매 가능하다. 모두투어나 롯데관광, 여행공방 등에서 패키지나 체험 여행상품을 구매하는 것도 가능하므로 이용자에게 편리하다.
근로자 휴가비 지원 제도의 주요 성과
노동자를 휴가 보내는 데 공적 방식으로 돈을 100억 원이나 쓰는 것은 사업의 효과와 성과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우선, 국내 관광의 활성화 효과를 들 수 있다. 지난해의 1차 년도 시범사업을 분석한 결과, 근로자 휴가 지원 제도를 통해 약 54.0%에 해당하는 국내 관광의 신규 수요가 창출됐다. 즉 근로자 휴가 지원 사업을 계기로 계획에 없던 국내 관광을 향유한 계층의 비중이 커진 것이다. 또 해외로 가는 여행 수요의 국내 여행 전환율이 39.5%에 달했다. 이 사업을 통해 해외 대신 국내 여행을 선택한 이가 늘어난 것이다.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국내 관광에 대한 관심이 제고되는 등의 순기능적 요소가 다방면에서 파악되고 있다.
두 번째 효과는 직장에서 휴가 갈 수 있는 상황을 정부가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시범사업 결과를 분석해 보았더니, 시범사업으로 여행을 다녀온 노동자 중에서 기존 계획 외에 추가로 여행을 다녀온 비율이 52.9%나 됐다. 이 사업은 휴가를 장려하는 기능이 매우 탁월한 것이다. 정부가 나서 휴가 지원 사업을 추진하므로 여름휴가 등을 보장하기 어려운 중소기업 노동자에게 휴가를 장려하고 국내 여행을 촉진시키는 효과가 있다. 그야말로 노동자의 ‘쉼표가 있는 삶’을 위해 휴가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분위기의 조성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 효과는 이 사업의 경제성이다. 이 사업은 지방 경제 활성화 및 내수 경기 진작 효과가 매우 컸다. 정부 재정 투입 대비 약 9.3배의 관광 지출 효과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됐다. 관광 소비 촉진 측면에서 노동자 1인 당 약 92만6000원을 사용하여 정부 지원금 10만 원 투입으로 약 9.2배에 달하는 소비를 창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올해의 사업 효과를 예측해 보면, 100억 원을 투입해 관광 지출 증가로 930억 원 정도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근로자 휴가 지원 사업 발전 방안, 한국관광공사, 2014).
제도 설계 과정에서 고려하지 않았던 효과도 나타났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협력업체 노동자의 여행 경비를 지원하는 동반성장 모델이 발굴되면서 여행 경비 부담 주체의 다각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계량적 효과 외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문화적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개인 휴가의 질이 향상되었고, 노동 의욕이 커졌고, 노사관계가 개선되며, 자유로운 휴가 사용에 관한 만족도가 큰 폭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표 2> 근로자 휴가 지원 사업의 주요 성과
자료: 근로자 휴가 지원 사업의 정책 성과와 과제(김현주, 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19)
근로자 휴가 지원 제도,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근로자 휴가 지원 제도의 시작은 프랑스였다. 1982년 프랑스에서 자국민의 국내 여행 활성화와 함께 모든 국민이 휴가를 떠날 수 있도록 장려하기 위해 시행된 복지 제도로 처음 시작된 체크 바캉스 제도가 바로 그 모델이다. 프랑스에서는 ANCV(Agence Nationale pour les Cheques-Vacances)가 이 사업을 전담한다. ANCV는 관광부와 경제산업재정부의 공동 지원으로 설립되어 체크바캉스 수표의 발행 및 상환 기능을 수행한다. 국가는 현금 부담을 하지 않는다. 기업과 노동자가 국내 여행 경비를 공동으로 부담하고 체크바캉스기금(ANCV)이라는 프랑스 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이 가입 노동자에게 여행에 필요한 교통, 숙박, 관광지 등에 대한 폭넓은 할인 혜택 및 우선 이용 권한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노동자는 기업과 함께 여행 경비를 1:1 비율로 공동 분담하고, ANCV가 발행한 수표 형태의 체크바캉스를 구입해 휴가 때 사용하며 유효기간 2년의 수표로 10, 20, 25, 50유로의 4가지가 발행되며, 2015년부터 온라인에서 사용 가능한 60유로짜리 e-체크바캉스도 출시됐다. 프랑스의 체크바캉스 가입 노동자는 2013년 기준으로 약 400만 명에 달하고, 할인 폭은 호텔‧캠핑 등 숙박시설에서 31%, 식당 29%, 철도‧항공‧선박 등 교통수단 24% 등에 이른다. ANCV의 2016년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체크바캉스 발행 물량은 15억9000만 유로(약 2조518억 원)이며, 수혜자는 428만3635명(프랑스 인구의 약 6.5%)다. 노동자 가족 등을 포함하면 수혜자 규모가 1000만 명에 이른다.
우리나라도 기존의 연간 100억 원 정도가 아니라 이보다 10~100배 이상의 규모로 이 사업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뿐만 아니라 노동부와 기재부에서도 관련 기금을 출연할 수 있을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지방정부들의 참여를 통해 이 정책으로 몰려오는 국내 관광객을 자신의 지방자치단체로 유치하는 경쟁을 벌일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휴가 대상 관광지는 여름 기간 약 2주에 관광객의 85% 이상이 집중된다. 따라서 관광객이 비수기에 분산되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인구가 줄고 경제가 침체되어 있지만 많은 관광 자원을 가지고 있는 강원, 경북, 그리고 전남과 전북 등에서는 근로자 휴가 지원 제도를 통해 자신의 지역을 관광하려는 예약자들에게 추가로 5~10만 원을 더 지원하는 방식을 사용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성남시의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성남시는 아동수당을 소득계층에 상관없이 100% 지원한다. 그러자 지역 매장들이 아동수당 카드를 사용하는 부모들을 위해 10% 할인 우대를 하는 경향이 생겼다. 시가 생각지 않은 지역 소비 활성화 효과를 얻은 경험이 있다. 프랑스에서 시행하는 체크바캉스 제도도 이 수표에 대해 24~30%를 할인해 주는 방식이다. 이런 방법을 우리나라의 근로자 휴가 지원 제도에 도입해 지역의 관광 숙박업소가 근로자 휴가 지원 제도를 통해 관광객들에게 할인 혜택을 제공하고, 그런 증빙을 근거로 해당 업소에 할인 금액을 환급해주는 방식도 가능할 것이다.
또 외국인 관광객에게 부가가치세를 환급해주는 방식을 활용하여 자신의 지역에서 근로자 휴가 지원 제도를 통해 소비하는 관광객에게 약 10~20%의 관광 지원 기금으로 현금을 환급해주는 방식 등으로 12개월 연중 관광을 활성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노동자가 휴가를 가지 못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일을 더하면 돈을 더 주는 제도 때문이다. 고용노동부의 2016년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 노동자가 휴가를 가지 않는 이유 중 38.2%가 추가 수입을 원해서였다. 법정 휴가 부분을 임금으로 보상해주는 현재의 임금 구조 때문에 휴일근무나 야간근무, 잔업 등으로 얻는 추가 수당이 노동자 수입의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휴가를 가지 않는 것이 장려되는 임금 구조인 셈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휴가 저축 제도'를 전면적으로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초과근무나 사용하지 않은 연월차 휴가를 노동 시간으로 환산해 저축한 뒤에 노동자가 휴가를 가고 싶을 때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고, 내년이나 후년에도 같이 저축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면서 현금 보상을 줄이도록 하는 제도를 노사합의로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기업에 추가 부담이 가지 않는다. 휴가 저축 제도를 시행할 경우 휴가 문화, 여가 문화의 증진뿐만 아니라 노동 시간 단축과 일자리 창출도 가능해진다.
휴가를 돈으로 보상하지 않고 휴가로만 사용하도록 하면 5인 이상 사업체 노동자의 경우 1년에 67.2시간 정도의 노동 시간이 줄어든다. 줄어든 노동시간의 3분의 1 정도만 고용으로 전환해도 20만 개의 일자리, 6분의 1이 전환되면 10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된다(2017년, 노동연구원). 이미 영국이나 네덜란드, 호주 등 여러 나라에서는 일자리 나누기(work share) 제도를 법제화해 시행하고 있다.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이 2.9% 미만에서 합의되면서 노동계가 반발하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 정책이 후퇴한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소득주도 성장 정책에는 최저임금 인상만 있는 게 아니다. 보편적 복지를 확대해 국민의 사회 임금을 높여 보편적으로 소득을 보장하는 방안도 있다. 또 근로자 휴가 지원 제도와 같이 관광, 체육, 문화, 교육, 보건과 복지 등 적극적 복지 정책을 통해 가처분 소득을 높여주는 방법도 병행돼야 한다. 이제 우리나라도 진짜 복지국가로 가기 위해 노동자의 휴가비도 국가가 지원하는 정책을 전면적으로 확대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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