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인 지난 11일 하루 내내 전두환은 역설적 의미에서 언론으로부터 '화려한 각광'을 받았다. 그는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기 위해 아침부터 아내 이순자와 함께 고급 승용차를 타고 서울 연희동 집 앞을 떠났다.
그때부터 취재진의 차량들이 전두환의 차 뒤에 바짝 붙어 광주지방법원까지 달려갔다. 낮 12시 33분께 법정에 들어가려는 전두환을 향해 기자들이 질문을 퍼부었다. "5·18 당시 발포 명령을 내렸습니까?", "광주 시민들에게 사과하겠습니까?" 굳게 입을 다물고 있던 그는 한 기자가 경호원들의 제지선을 뚫고 마이크를 대며 "5·18 항쟁 때 발포명령을 했습니까"라고 묻자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거 왜 이래."
외마디 소리처럼 들려온 "이거 왜 이래"라는 말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었을까?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라는 뜻일까, 아니면 '되지도 않는 소리 하지 말아'라는 뜻일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은 법정에서 나왔다. 전두환은 1980년 광주 5월항쟁 당시 시민들에 대해 발포하라고 명령을 내렸다는 혐의를 완전히 부정했다. 전두환은 2017년 4월에 낸 회고록에서, 5월항쟁 당시 군대 헬리콥터가 기총 사격을 가했다는 조비오 신부의 증언에 대해 '가면을 쓴 사탄 또는 성직자가 하는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주장한 바 있었다.
전두환을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조영대 신부(고 조비오 신부의 조카)는 그가 11일 법정에서 한 진술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거짓말이었는지를 CBS <김현정의 뉴스쇼>(12일 아침)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광주의 80년 5월의 그 엄청난 고통과 아픔을 안겨준 학살 주범이었던 전두환 씨가 드디어 광주 법정에 섰습니다. (···) 저도 물론 사제인지라 또 인간인지라 정말 손이 부르르 떨려오더라고요. (···) 헬기 기총 소사에 대한 증거가 명확하게 없지 않으냐 그러면서 또 아직도 논쟁 중인 것을 가지고서 (···) 거짓말쟁이라고 했다고 해서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이렇게 거는 것은 무리하다, 이런 식으로 논리를 폈는데요, (···) 국과수의 조사나 광주의 조사나 많은 이들의 증언을 놓고 볼 때 반드시 헬기 기총 소사가 있었던 것인데 헬기의 엔진 소리를 기관총 소리로 착각한 것 아니냐, 조비오 신부가 괜히 악의를 가지고서 모함한 것 아니냐, 이런 식으로 논리를 펴오더라고요."
전두환은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그 누구보다도 끔찍한 전과 기록을 갖고 있다. 그는 김영삼 정권 시기인 1996년 1월 14일 노태우와 함께 '내란 및 반란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되어 같은 해 8월 26일 서울지방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12월 26일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이듬해 4월 17일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었다.
유죄 판결의 사유는 어마어마했다. '반란수괴, 반란모의 참여, 반란 중요 임무 종사, 불법 진퇴, 지휘관 계엄수소 이탈, 상관 살해 미수, 초병 살해, 내란 수괴, 내란모의 참여, 내란 목적 살인,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등. 김영삼이 대통령 임기가 끝나기 직전에 전두환을 사면하지 않았다면 그는 지금 박근혜와 이명박(잠시 보석 중)처럼 옥살이를 하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전두환은 1997년,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으로 대법원에서 2205억 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았다(3월 12일 현재 환수금은 1174억여 원, 미수금은 1030억여 원). 그가 대통령 재임 기간 7년에 형성한 '비자금'은 9500억여 원으로 추정되었다. 그는 2003년 재판 과정에서 "재산이 얼마나 되느냐"라는 판사의 질문에 "지금 통장에 29만 원밖에 없다"고 대답함으로써 만인의 실소를 산 바 있다.
전두환의 아내 이순자는 올해 첫 날 한 극우매체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남편이)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단임제를 이뤄서 지금 대통령들은 5년만 되면 더 있으려고 생각을 못하지 않느냐?",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아버지가 누구인가? 나는 우리 남편이라고 생각한다."
이순자는 남편이 어떻게 대통령이 되었는지를 까맣게 잊었는가? 1979년 10월 26일 밤, 대통령 박정희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탄에 맞아 사망하자 전두환은 12월 12일 노태우 등과 함께 군사반란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고는 이듬해 8월 27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통일주체국민회의 대통령선거에 단독 후보로 나서 총 투표자 2525명 가운데 찬성 2524표, 무효 1표로 '당선'되었다. '민주주의의 아버지'가 아니라 가장 추악한 독재자의 '표본'이다. 그런데도 군사반란의 주범으로 1980년 5월에 '최고 권력자'였던 전두환은 왜 '광주 발포 명령'을 시인하고 사죄하라는 기자들에게 '이거 왜 이래'라고 표독하게 소리치는가? '이거 왜 이래'는 전두환 자신이 받아야 할 질책인데 말이다.
전두환은 오는 4월 8일 다시 광주지방법원에 가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 5·18 광주민주항쟁 39주년을 딱 40일 앞둔 시점이다. 전두환은 그날 법정에서 '광주 민중 학살의 주범'임을 인정하고 국민과 역사 앞에 석고대죄 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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