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보잉사 F-15를 사들이기 위한 수순을 밟기 시작한 것인가.
국방부는 4일 오후 2시 조달본부에서 미 보잉(F-15), 프랑스 다소(라팔), 유로컨소시엄 유로파이터(타이푼), 러시아 로스보르제니에(SU-35) 등 4개 업체가 참여한 가운데 차세대전투기(FX) 사업자 선정을 위한 3차 협상을 벌였으나 가격차를 좁히지 못해 끝내 결렬됐다.
***국방부의 미묘한 '입장 번복'**
국방부는 결렬직후 “가격 협상 결과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이번주 중에 추진 여부를 결정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지난달 29일 차기 전투기 사업의 실무책임자인 최동진 획득실장이 “오는 2월 4일로 예정된 제3차 가격입찰에서도 외국 업체들이 우리의 목표가에 들어오지 않을 경우 더 이상 가격입찰은 없을 것”이라고 한 말을 뒤집은 것이다.
이번 브리핑의 의미는 사업의 연기나 재검토보다는 사업의 계속적인 추진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요컨대 미 보잉사의 F-15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한 발언이라는 것이다.
당초 지난달 29일 공개된 ‘유찰시의 국방부 대응안’에는 ▲KF-16의 추가 구입을 통한 전투력 보강 ▲도입 대수 축소 ▲조기경보기나 급유기 구입을 통한 기동성 확보 ▲계획 자체의 백지화 등의 방안이 마련돼 있었다. 그러나 국방부 결정은 이런 대안들과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오는 19일로 예정된 미국 부시 대통령의 방한을 의식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런 추정의 근거는 F-15의 차세대 전투기사업 선정을 돕기 위해 부시대통령이 작년 9월초 '서울 에어쇼'에 참가하려 했었으며, 9.11 뉴욕테러로 방한이 취소된 이후에도 미국 의회와 정부가 다양한 경로로 한국정부와 언론에 압력과 로비를 집요하게 벌여왔다는 점이다.
***미국의 집요한 F15 구매 압박**
작년에는 F-15 제조공장이 있는 미주리주 출신의 한 상원의원은 계속되는 연기에 불만을 표시하며 ‘올해 안에 기종을 결정하지 않으면 한미간의 우호에 큰 위험이 있을 것’이라는 협박성 편지를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내 물의를 빚기도 했다. 미국 관료들은 최근까지 외교관례를 무시하고 정부간 협상에까지 특정기종의 장점을 거론하는 등의 결례를 계속 범해 왔다.
F-15생산업체인 보잉사도 상대적으로 경쟁사들에 뒤졌던 대국민 홍보에도 나서 지난해 말부터 각 일간지와 시사잡지에 기업홍보와 전투기 광고를 싣기도 했고, 여의도의 한 건물 옥상에는 거대한 자사의 광고탑을 설치하는 등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에도 미 공화당 소속의원들이 주축이 된 하원의원단이 서울을 방문하여 대통령, 국회의장, 여야 의원과 기업가에게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을 만나 로비를 펼치고 돌아갔다.
19일 부시대통령 방한을 앞두고 한미 정상회담에서 ‘F-15 1백구입을 한국 측에 제안할 계획’이라는 일본 요미우리 신문의 보도가 전해진 후 당초 40대의 전투기를 구입하기로 했던 이번 F-X사업과 관련하여 국방부 주변에서는 “앞으로 10년마다 1백여대의 전투기를 계속 신기종으로 교체해 줘야 한다”는 의견이 공공연히 흘러나오고 있기도 하다.
최근 미국을 방문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에 대한 미국측의 이례적 환대나 부시 대통령의 잇따른 강경한 대북발언도 내부로는 야당의 이해와 외부로는 한반도 긴장감 조성을 통해 전투기 구입을 쉽게 하려는 사전 정지작업의 의도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하고 있다.
***19일 부시 방한이 차세대전투기 확정 시점?**
지난달 29일 사업의 전면 재검토를 강하게 주장했던 최동진 획득실장은 4일 본지와의 전화인터뷰에서 “각 업체가 낸 제안서들을 검토한 후 이번 주내에 결정 될 수도 있지만 계획을 전면 폐기하거나 연기가 될 가능성도 아직은 남아 있다”고 밝혔다.
최실장은 그러나“결정된 사항이 전혀 없다는 의미냐”는 기자의 질문에 “기종이 좋고 국력과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현재 환율하락으로 32억달러 정도 규모인 예산이 4~6억 달러정도 추가로 늘어날 수도 있고 이에 맞춰 계획을 전면수정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 달 29일 “3차 가격협상이 결렬되면 계획자체를 전면 재검토 하겠다”는 자신의 발언의미에 대해서는 “가게에서 물건을 살 때도 흥정과정에서 가끔 강하게 의사를 표시해야 하듯 워낙 큰 사업이라 밀고 당기는 과정 중 하나였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지난달 유찰 직후에 “90% 이상된 일을 자꾸 언론이 민감하게 만들고 있는데 이런 일은 결국 국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언급했던 보잉사 관계자는 이번 국방부의 결정에 대한 수차례 인터뷰 요청에는 ‘노코멘트’로 일관하고 있다.
결국 F15 구매 여부는 오는 19일로 예정된 부시 방한을 전후해 최종실체를 드러낼 것이라는 게 관련업계의 지배적 관측이다. 일각에서는 빠르면 주말께 F-15 구입결정이 내려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래저래 한국은 아직 '대미종속'상태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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