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날 15일 경기도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개막된 서울에어쇼의 열기가 뜨겁다. 에어쇼의 핵심은 한국 공군이 추진하는 차세대전투기(FX) 사업에 도전한 4대 기종이다.
4개 기종 중에서 3개 기종은 서울에어쇼에 실물 전투기를 보내 각종 기동을 시연(試演)해 보이고 있다. 유러파이터(타이푼)만은 실물 전투기가 아닌 모형을 보내, 전시만 할뿐 실제 기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전시와 함께 서울에어쇼 장에서는 4개사를 중심으로 한 기자 회견이 돌아가면서 열리고 있어 FX 열기는 날로 뜨거워지고 있다. “FX 기종이 결정되고 난 후에도 과연 서울에어쇼가 또 열리면 이러한 열기가 유지될 것인가”란 농담이 나올 정도다.
***조종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기종은 라팔, F-15K는 3위에 불과**
FX 사업 진행 상황부터 점검해보자. 먼저 가장 먼저 시작되었고 공군 조종사들 사이에서 큰 관심을 끌었던 '시험평가' 부분이다. 시험평가는 한국 공군이 조종사 팀이 직접 4개국에 날아가 4개 기종을 몰아 본 후에 내린 평가다.
이 평가에서 1등은 프랑스의 라팔, 2등은 유럽의 타이푼, 3등은 미국의 F-15K, 그리고 마지막이 러시아의 수호이-35였다. 한국 공군이 원하는 FX 기종은 적 공군기와 싸워 이기는 공대공 전투 능력은 물론이고 지상에 있는 적이 레이더 기지와 지휘부 등을 때리는 지대공 기능도 함께 갖춘 기종이다.
타이푼은 공대공 능력 면에서는 아주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 전투기는 아직 공대지 기능을 개발하지 못했기 때문에 2위로 밀려났다. 반면 라팔은 공대공과 공대지 겸용으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고르게 좋은 점수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미국의 F-15K는 공대공과 공대지 겸용으로 개발한 F-15E를 개량한 것이다. 애초 한국 공군이 FX사업을 시작할 때 모델로 삼았던 것이 바로 이 전투기다. 한국 공군은 F-15E가 갖고 있는 각종 성능을 기준으로 한국 공군이 원하는 FX 차기 전투기는 ‘이러이러한 성능을 가져야 한다’며 작전요구성능(ROC)를 발표했었다.
F-15E와 F-15K의 차이점은 레이더에 있다. F-15E에는 APG-70 레이더가 장착됐으나 F-15K에는 APG-63(v1) 레이더가 장착된다. 일부에는 F-15K에 들어가는 레이더가 F-15E 레이더보다 성능이 떨어진다고 주장하나, 보잉측은 F-15K에 들어가는 레이더가 신모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때문에 한동안 레이더 논쟁이 벌어졌으나 두 레이더 모두 한국 공군이 요구한 작전요구 성능을 만족시키면서 시들해졌다.
때문에 F-15E는 시험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것으로 예상됐으나 뜻밖에도 라팔과 타이푼에 밀렸다. 이를 계기로 라팔과 타이푼 측은 “F-15E는 구식”이라며 맹공세를 펼쳤다.
수호이-35는 수평 비행을 하다 갑자기 기수를 하늘도 향해 들고 선 채(사실은 천천히 가고 있다)로 있다가 다시 기수를 수평으로 내려 기동하는 ‘코브라 기동’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기종이다. 코브라 기동은 뒤쫒아 오는 적기를 내 앞으로 보내, 거꾸로 적기를 공격할 수 있게끔 해주는 고난도 기동이다.
이러한 기동은 두 전투기가 ‘개싸움(dog fighting)’이라고 하는 공중전에 들어갔을 때 특히 유용하다. 전투기들은 상대 기의 엔진에서 나오는 열을 향해 들어가는 열(熱)추적 미사일을 발사해 공격하기 때문에, 상대기의 꼬리를 물고 들어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렇게 상대기의 꼬리를 물고 들어가는 것이 개들이 싸울 때 앞발이나 이빨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상대의 꼬리 쪽부터 공격하기 때문에 전투기끼리의 공중전은 ‘개 싸움’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개 싸움에서는 최고라는 평가를 받아 왔음에도 수호이-35는 최하위를 기록했다.
90년대말까지 20년간 세계 전투기계를 주름잡아 왔던 F-15E와 수호이-35가 한국 공군의 시험평가에서 뒤로 밀린 것은 상당한 충격이었다. 이는 첨단전투기는 이미 두 기종의 벽을 넘어 앞으로 전진했음을 보여주는 결과였다. F-15는 지금의 거의 사라진 A/B계열, 주로 공대공으로 쓰이는 C/D계열, 그리고 공대공 공대지 겸용으로 쓰이는 E계열이 있다. 미국은 이미 "F-15 시리즈가 구식이 됐다"는 판단아래 공대공으로 쓰이는 F-15C/D를 잇기 위한 후속기로 F-22 랩터를 개발중이다.
***가격은 서로 엇비슷**
라팔과 타이푼이 시험평가에서 FX 사업의 모델이 된 F-15E를 재꼈다는 것은 FX사업 최대의 하이라이트였다. 그러나 시험평가가 FX 사업의 모든 것은 아니었다. 가격도 있고 기술이전을 포함한 절충교역(offset)도 있으며, 정비와 기름 값, 부속품 값 등 이 전투기를 운용하는 30년동안 들어갈 총 비용 비교도 있다. 또 공대지 전투에서 장착하는 각종 무기 성능을 비교함으로써 어느 것이 우리가 원하는 전투기인가도 판가름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가격 부분부터 알아보자. 현재 4사가 제시한 가격은 최종 가격이 아니다. 최종협상이라고 하는 마지막 관문이 남아 있다. 이러한 것을 염두에 두고 가격을 살피면 수호이-35가 가장 싸고, 다름이 F-15K, 라팔, 타이푼 순이다. 여기서 유감스럽게도 수호이-35는 사실상 FX 경쟁에서 탈락한 것으로 보인다. 수호이-35는 다른 경쟁기보다 3분의 2 이하의 싼 가격을 제시했으나, 운용 방식이 한국 공군이 기대한 것에 미치지 못해 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큰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시험평가에서 뒤졌던 F-15E가 가격에서는 앞설 수 있었던 것은 이 전투기에 장착하는 엔진을 둘러싸고 두 제작사간에 경쟁이 벌어진 것이 큰 역할을 했다. F-15E에는 프랫 앤드 휘트니(PW)사 F-100엔진과 제너럴 일렉트릭(GE)사의 F-110엔진을 장착할 수 있는데, 보잉사는 두 회사를 경쟁시킴으로써 엔진 가격을 하락시켰다. 이 경쟁에 적극적인 쪽은 GE였다. GE는 미국 정부로부터 F-15E에 F-110엔진을 달아도 좋다는 허가를 받았으나, 오래 전부터 F-15E는 PW의 F-100엔진만 달아왔다. 따라서 GE는 엔진을 개발해놓고도 이를 팔지 못해왔다.
때문에 GE는 총력을 다해 한국의 FX시장을 뚫는다는 계획을 세우고 ‘저가(低價) 입찰’을 시도했다. 이에 따라 기득권자인 PW도 F-100엔진의 가격을 내림으로써 F-15K의 전체가격이 낮아졌다.
반면 타이푼과 라팔은 이제 막 개발된 신기종이라 가격을 내리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3개 기종간 가격 편차는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F-15K는 대당 5천7백50만달러 수준이고, 타이푼은 5천8백만달러 정도이며 라팔은 그 중간에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라팔때문에 유리해진 한국협상 위치**
전투기의 공격력 비교도 큰 관심을 끌었다. FX사업은 "한반도 주변 1천㎞까지를 날아가 공격할 수 있는 전투기를 도입한다"는 것이 주목적이므로 얼마나 날아갈 수 있는가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이 점에서는 단연 F-15E가 앞섰다. 라팔과 타이푼은 기체가 작아 많은 연료를 탑재하지 못하므로 그만큼 멀리 날지 못한다는 약점이 있다. 라팔과 타이푼도 한국 공군이 요구하는 것만큼은 날아갈 수 있으나 F-15E 보다는 작전반경이 훨씬 짧았다.
각 전투기가 싣고 갈 수 있는 무장능력 역시 덩치가 큰 F-15E가 압도적으로 좋은 점수를 얻었다. 이렇게 되자 불리해진 라팔과 타이푼 측은 스캘푸(타이푼에서는 ‘스톰 새도’라고 한다) 크루즈 미사일을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이 미사일은 영국과 프랑스 합작사인 마트라 BAE 다이나믹스(MBD)에서 개발한 것으로, 최대 사거리는 6백㎞다. 영국과 프랑스가 합작한 회사에서 만들었기에 프랑스에는 스칼푸, 영국에서는 스톰 새도로 불리게 되었다.
이 미사일을 장착하면 라팔과 타이푼의 공격 거리는 현저히 늘어난다.
그러나 한국과 영국, 프랑스는 "사정거리 3백㎞ 이상의 미사일은 판매하지 않는다"고 규정한 미사일 기술통제체제(MTCR) 가입국가이기 때문에 이 미사일은 최대 사정거리를 2백90㎞ 정도로 줄여 공급된다.
이러한 영국과 프랑스 측의 제의는 미국측을 상당히 곤욕스럽게 만들었다. 미국이 보유한 토마호크 크루즈 미사일은 최대 사정거리가 무려 1천6백km이나 미국은 영국이외 국가에는 이 미사일을 제공한 적이 없다.
고민을 하던 미국은 최대 사정거리 2백50㎞인 SLAM 미사일을 제의했다. SLAM 제의는 애초 예상치 못한 것이었는데, 라팔과 타이푼의 적극적인 공세 때문에 한국은 뜻밖의 성과를 거두게 된 셈이다.
FX 사업의 절충교역은 사상 유례가 없는 70%로 정해졌다. 절충교역 70%라는 것은 총 FX 사업비 40억달러 중에 70%에 해당하는 28억달러어치 만큼은 한국에 FX 기종을 공급하는 나라가 물건을 사줘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이 40억 달러의 물건을 사주니 그에 대한 보답으로 그 나라는 FX 사업과 관련된 분야에서 한국산 물건을 28억 달러어치 사줘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28억 달러 중에는 한국은 약 40%인 11억달러어치는 물건으로 한국에서 가져가고, 또 35%인 10억 달러 어치는 그 금액에 해당하는 기술을 한국에 제공할 것이며, 나머지 25%는 FX 기종을 운용하는데 필요한 정비 기술과 부속품을 공급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 까다로운 요구 때문에 4개국은 골머리를 앓았는데, 4개국 모두 이 조건을 충족시키겠다며 구체적인 계획서를 제출했다.
이로써 4개국 4개 기종은 한국 정부가 요구를 거의 다 충족시키게 되었다. 때문에 FX 사업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고, 4개 기종은 물러 설 수 없는 한판으로 몰리게 되었다. 이제 4개 기종이 한국에 제의한 조건과 가격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조건과 가격이 된다. 인플레율만 덧붙일 수 있을 뿐 이 조건과 가격을 변경시킨다면, 이 전투기는 어느 나라의 FX사업에 도전하든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러니 4개 사로서는 이왕 출혈을 했으니 반드시 한국 시장을 따내겠다는 ‘배수의 진’을 치게 되었다.
***F-15K를 사들이면 한국공군은 전투기박물관이 될 판**
이러한 열기는 예상치 못한 것이었는데, 이로써 한국은 매우 유리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동시에 한국 정부에게 큰 부담이 되고 있다. 한국은 FX 사업에서 탈락한 나라를 달래기 위해 다른 무엇인가를 사줘야 하는 처지로 몰릴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이 식으면 원한이 되는 법이다’ FX 사업에서 실패하는 나라는 두고두고 한국을 공격할 것이니 FX 기종을 결정하기에 앞서 한국은 이들을 달랠 방안부터 마련하여야 한다.
또 하나의 부담은 다가오는 한국의 16대 대통령 선거다. 4개 기종은 최종 입찰을 앞두고 유력 정치인들에게 ‘승부수’를 던질 가능성이 놓다. 지금까지 사생결단으로 달려왔으니 이들은 마지막 기회를 이용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결코 정치인들도 바보는 아니다. 이들은 FX 기종으로 선정될 것이 가장 확실한 회사로부터 뇌물을 받아 자신의 정치자금을 확보하는 ‘꾀’를 쓰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도전하는 회사들은 좀 더 많은 돈을 써서라도 막판 역전을 시키겠다는 계산을 할 것이므로 뇌물 수수에 의해 갑자기 FX 사업은 시끄러워질 수가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F-15를 둘러싼 논쟁이다. F-15는 미국 의회에서조차 “너무 낡았다. 빨리 F-22로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보잉사는 “미 의회가 말하는 F-15는 공대공으로만 쓰이는 F-15C/D다. F-22는 바로 F-15C/D를 잇는 기종이다. F-22가 생산 배치돼도 미 공군은 공대지 기능을 강화한 F-15E를 계속 보유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우리를 크게 헛갈리게 만들고 있다.
미 공군은 F-15E를 공대지 공격으로 쓰지만, 미 공군의 주력 공대지 공격기는 F-16이다. 그런데 미 공군은 F-16 후속기종으로 JSF라는 전투기를 개발하고 있다.그러니까 미 공군은 공대공은 F-22, 공대지는 JSF로 공군기를 구성하는데, JSF가 본격 생산되기 완전 배치될 때까지 F-15E를 쓴다는 것이 미국 공군의 의지인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된다면 우리가 F-15K를 도입할 때쯤 미 공군은 JSF를 도입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다시 말해 F-15K는 한국에만 공급된 후 사라질 가능성이 높은 전투기인 것이다.
2007년 FX사업이 끝나면 한국 공군은 다시 40대에서 최고 1백20대까지의 전투기를 도입하는 2차 FX 사업에 들어가게 된다. 이때는 미국에서는 JSF가 도전할 것이다(F-22는 한국에 제공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제공하겠다고 해도 너무 비싸서 살 수가 없을 것이다). 만약 한국이 지금의 FX 사업에서 F-15K를 선정했는데, 2차 FX에서는 이와 다른 JSF나 라팔 혹은 타이푼을 선정한다면, 한국 공군은 전투기 박물관이 되고 만다.
전투기 종류가 많으면 기종별로 조종사와 정비사 무장사를 유지해야 하므로 그만큼 인건비가 많이 들게 된다. 따라서 이번 FX 사업에서 F-15K를 선정한다면 2차 FX 사업에서도 F-15K를 선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때쯤 미국이 F-15를 생산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국방부와 공군의 시각차**
이러한 문제 때문에 일각에서는 FX 사업을 다음 정권으로 연기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레임덕 현상이 극심한 현정권에서 결정하면 다음 정권에서 청문회가 벌어지는 등 정치문제가 될 수 있으니 차리리 다음 정권에 넘기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주장인 것이다. 의외로 이러한 주장은 힘을 얻고 있다.
현재 원-달러 환율은 1300원 대인데, 처음 FX 사업을 구상할 당시의 환율은 1100원대였다. 이러한 환율 상승으로 인해 FX 사업은 도전 기종들의 가격이 내려갔음에도 불구하고 돈이 모자라 숨이 찰 지경이다. 따라서 환율이 좀더 내려간 시점에서 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 국방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문제는 공군이다. 공군은 FX 사업이 연기될 경우 이 사업을 위해 준비한 예산을 다른 군에 빼앗긴다고 염려한다. 이러한 사정을 아는 전문가들은 “공군은 FX용 예산을 차기 방공미사일 사업(SAM-X)으로 돌려라. 그리고 이 사업이 끝날 때쯤 SAM-X 예산을 FX예산으로 돌리는 조삼모사(朝三暮四)의 아이디어를 활용하라. 또 FX 사업을 하더라도 KF-16은 더 필요하므로 먼저 KF-16의 추가 생산부터 결정하자. 추가 생산된 KF-16으로 노후 기종을 대체하고 이어 FX 사업을 한다면 한국의 국익은 극대화되는 것 아니냐”란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의견에 대해 국방부와 국가안보회의(NSC)쪽에서는 타당성이 있다며 내심 반기는 분위기다. FX사업 과연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결정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까? 전력증강만큼이나 정치적으로 많은 것을 생각케 하는 것이 FX사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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