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機種 결정 늦춰라

시간은 우리편, 기술이전. 가격 갈수록 유리

단일무기 발주규모로는 단군이래 최대인 4조3천억원어치의 차세대전투기(FX) 40대 판매를 둘러싼 서방 군수업체들의 막판 로비전이 시작된 ‘서울에어쇼 2001’ 개막 다음날인 16일 눈길을 끄는 사건이 발생했다.

F-15K를 내세운 미국 보잉사와 맞서 라팔기를 앞세워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던 프랑스 다쏘사가 경찰에 도청사건을 신고한 것이다. 다쏘사의 국제담당 부사장인 이브 로뱅은 “우리 전화선과 연결된 사무실 건물 전화교환대에서 도청장치가 발견됐음을 확인해줄 수 있다”며 “나는 이 장치가 발견될 때 현장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이 사건을 조사중이라고 밝혔다.
냉전시절 첩보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사건이었다.

***부시대통령도 원래는 에어쇼 참관 예정**

이 사건은 차세대전투기 선정을 둘러싼 서방 군수업체들의 신경전과 로비, 홍보전이 얼마나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자그마한 예에 불과하다.
서울에어쇼 개막식에 프랑스의 알랭 리샤르 국방장관이 참석했다. 그는 이날 김동신 국방장관과 별도로 만나 자국의 라팔기 구입을 간곡히 부탁하기도 했다. 아울러 회담후 “협상이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는 김장관의 말을 외교상 결례를 무릅쓰고 언론에 흘리기도 했다. 협상이 지연될 경우 라팔이 유리해질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반면에 미국은 테러사건으로 한창 경황이 없는지라 거물급이 참석 못했다. 정부 관계자는 그러나 “만약 미국에서 테러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미국측에서는 프랑스처럼 국방장관 차원이 아니라 조지 W.부시대통령이 직접 서울에어쇼에 참석했을 뻔 했다”고 전했다. 당초 부시대통령의 방한 일정이 서울에어쇼 기간 중에 잡혀있었고, 이에 보잉사측은 부시대통령의 에어쇼 참관을 적극 추진했었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이 관계자는 “민항기 테러 발발 얼마 뒤 부시대통령이 모두의 예상을 깨고 김대중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예정대로 한국방문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가, 며칠 뒤 미국내 상황이 악화되면서 이를 취소했던 대목 역시 차세대전투기 선정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고 해석된다. 그는 며칠뒤 중국 상하이 아시아태평양정상회담(APEC)에서 열릴 예정인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이 문제가 거론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쳤다.

이같은 일련의 사건은 차세대전투기 선정이 단순히 제품을 사고파는 상거래 차원을 넘어서 각국의 최고정치권력까지 관여하는 정치게임적 성격이 강함을 보여주고 있다. 차세대전투기 선정이 어떤 형태로 결론나든, 상당한 후유증이 불가피하리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미국의 오만이 다국적 입찰경쟁 초래**

차세대전투기 선정은 이처럼 임기말 김대중정부의 최대 골칫거리중 하나가 되고 있다.
과거 정권에는 무기구입이 단지 ‘리베이트’ 차원에서 문제가 됐었다. 과거 율곡사건 비리나 린다 김 사건 등이 그런 예에 속한다. 외교,군사적 고려까지 굳이 할 필요가 없었다. 과거에는 입찰업체가 모두 미국의 군수산업체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180도 달라졌다. 제품의 단순 기능 비교외에 외교,군사적 측면까지 고려해야 하는 어려운 사안이 됐다. 과거와는 달리 이번 차세대전투기 선정에는 미국외에 프랑스, 유럽연합(영국,독일,스페인,이탈리아), 러시아 등이 대거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컬한 대목은 이처럼 미국외 국가들이 대거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빌미를 미국 자신이 제공했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지난 72년에 개발된 구형 F15-K를 갖고서, 그것도 당초 턱없이 높은 가격과 인색한 기술이전 조건으로 입찰에 참여한다는 사실이 경쟁국의 군수산업체들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의 가장 강력한 경합자인 프랑스 다쏘사의 관계자는 “솔직히 과거에는 워낙 미국의 영향력이 지대한 나라인만큼 감히 한국의 무기구입에 참여할 생각조차 못했다”며 “그러나 한국이 선정하고자 하는 기종이 명목상 그래도 앞으로 30년간 한국방위를 책임지을 차세대전투기인데 미국이 30년전에 개발한 제품을 들고 나온 것을 보고 이번에는 한번 해볼만하다는 판단이 서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과거 50년간 한국시장을 독점해온 미국 방위산업체들의 오만이 이번 다국적 입찰경쟁의 빌미를 제공한 셈”이라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이미 F-15K는 2년전부터 추가생산이 중단됐으며 이스라엘과 싱가포르도 더 이상 사들이기를 거절한 퇴물”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보잉사는 공식적으로는 F-15K의 낙후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보잉사 관계자는 “F-15가 지난 72년에 처음 비행한 것은 사실이나 그후 업그레이드(성능향상)작업을 꾸준히 해온 결과 지금은 기체 등 전체 가운데 60%정도가 첨단 디지털화된 상태”라며 절대로 낡은 기종이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다. 또한 “한국 판매를 마지막으로 생산이 중단돼 부품조달조차 쉽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오는 2030년까지 미국이 F15를 계속 사용할 것인만큼 부품 공급이 안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은 그러면서도 내심으론 전술상 실책을 부분적으로 자인하는 분위기다. 때문에 최근 들어 미국 보잉사는 가격조건과 기술이전에서 당초의 고압적 안에서 상당 부분 후퇴했다는 게 정부관계자의 전언이다. 가격의 경우 당초 가장 낮은 액수를 써낸 프랑스 라팔보다도 낮아졌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올 정도다.

***미사일 기술이전까지 제안한 다쏘사의 공격적 마케팅**

국방부와 공군은 전례없는 정치.외교적 압박감에도 불구하고 이번 다국적 입찰경쟁을 최대한 활용, 국익을 극대화하는 전향적 협상자세를 보이고 있다.
한 예로 국방부는 절충교역(구매시 반대급부로 받는 기술이전.하도급 생산 등)이 전체 사업물량의 30%에 불과하던 종전의 관행을 깨고 이를 70%로 끌어올렸다. 참가업체들은 당연히 크게 반발했으나 지난 12일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미국 보잉사의 수락을 끝으로 4개 참가업체 모두가 이를 수락했다. 국방부의 ‘보이지 않는 큰 승리’였다.

이같은 정부의 전향적 협상은 미국 보잉사의 최대경합자인 프랑스 다쏘사의 공격적 마케팅이 있기에 가능했다. 다쏘사는 처음부터 4개 입찰업체 가운데 기술이전, 가격 등에서 가장 적극적 접근을 해왔다.
다쏘사가 내놓은 조건중 한국측을 가장 매혹시킨 것은 스칼푸 미사일 기술이전 및 공동생산 제안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미국계 무기판매 대행업자의 전언이다.

“다쏘사는 한국이 라팔을 사들일 경우 프랑스 독자기술로 개발한 스칼푸 미사일의 기술이전은 물론, 공동생산까지 제안한 것으로 알고 있다.
스칼푸 미사일은 굉장한 미사일이다. 현재 한국은 미국과의 MCTR(미사일 협약) 때문에 최대 사정거리가 3백km인 미사일밖에 보유 못하게 돼 있다. 그런데 문제의 스칼푸 미사일은 비행기가 공중에 떠서 정지한 채 발사할 수 있는 미사일이다. 따라서 이 미사일의 사정거리가 3백km라는 점을 고려하면 비행기가 휴전선 근처에서 쏘면 신의주, 동해안에서 쏘면 러시아, 서해안에서 쏘면 중국, 남해안에서 쏘면 일본까지 사정권에 들어온다는 얘기가 된다. 한국이 이 기술과 미사일을 보유하게 되면 한국군 사상최초로 ‘방어형’에서 ‘공격형’으로의 전략 전환이 가능해진다.”

“다쏘사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한국측에 스칼푸 미사일의 공동생산까지 제안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에 기술이전을 해주는 것은 물론, 스칼푸 미사일의 공동생산, 판매하자는 제안을 한 것이다. 70년대말 박정희 대통령의 독자적 미사일 개발 시도이래 미사일 기술이전은 물론, 판매까지도 극구 기피해온 미국과는 확연히 대조적인 태도다. 한국측이 프랑스 제안에 매력을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다쏘사가 사활을 걸다시피 하는 이유**

다쏘사 내부사정에 정통한 유럽계 무기판매 대행업자는 다쏘사가 적극적인 내막을 이렇게 전했다.

“다쏘사가 현재 프랑스 공군과 해군 등으로부터 3백여대의 라팔 생산주문을 받았다고 말하나 실제로 주문받은 것은 내가 알기로 48대에 불과하다.
라팔은 이번 협상에서 지면 존폐기로에 서게 된다. 한국의 고속전철 수주전에서 독일의 이체(ICE)가 프랑스의 떼제브(TGV)에게 패한 결과 지금 매각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 몰린 것처럼, 다쏘사 역시 이번 한국에서의 라팔 판매 성사여부에 따라 대만, 이스라엘, 사우디, 싱가포르 등 다른 잠재시장에서의 판로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한국은 일종의 ‘쇼윈도우’인 셈이다.”

“그 결과 다쏘사는 이번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미사일 기술이전은 물론, 이번에 40대를 최저가로 공급하고 필요할 경우 4~5대를 덤으로 끼워준다는 가격파괴 전략까지 세워놓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안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프랑스 정부도 다쏘사에 직접 자금지원까지 하면서 총력전을 펴고 있다.”

“사정이 절박하기는 미국 보잉사도 마찬가지다. 보잉사는 미국의 차세대전투기 생산을 위해 기존의 협력업체들이 계속 일을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반드시 한국이 이번에 F-15K를 사줘야 한다. 그럴 때에만 미국의 차세대전투기가 양산될 때까지 협력업체들이 계속 가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잉사는 특히 최근의 민항기 테러로 민항기 수요가 격감하면서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보잉사나 다쏘사나 기업의 사활을 걸고 덤벼들기는 마찬가지다.”

***선택의 마지막 변수, 한반도 정치.군사공학**

외환.금융위기후 우리나라는 유감스럽게도 경제관련 국제협상에서 백전백패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일은행 매각을 비롯해 삼성자동차와 대우자동차 매각, I타워를 비롯한 대형 상업용부동산 매각에 이르기까지 크고작은 외국과의 협상에서 우리나라는 승자가 못됐다. 협상시한에 쫓기고, 자금사정에 쫓겼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현재 진행중인 차세대전투기 선정협상은 모처럼 우리나라가 고지에서 유리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위치에 서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국방부 등 협상주체들도 이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싶다.

다행스럽게도 이처럼 지금까지의 협상은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남은 가장 큰 과제는 어떤 최종선택을 하는가이다. 과정이 아무리 좋아도 최종선택을 잘못하면 도루묵이 되는 법이기 때문이다.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할 시점이 도래했다.

대다수 시민단체와 상당수 국내전문가들은 미국의 F-15K 선정에 비판적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미국이 생산중단 직전의 낙후기종을 내놓았다는 점, 협상과정에 제품의 가격.기술 경쟁력보다는 정치적 압력을 통해 문제를 풀려는 고압적 태도를 여러 차례 드러냈다는 점, 미국이 한국과의 군사관계에서 여전히 군사독점적 우위를 유지하려 한다는 점, 이제는 최소한 향후 10년이후를 내다보며 독자적 방위시스템 구축을 고려해야 할 때라는 점 등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군사공학’적 측면에서 볼 때 미국을 배제하기가 그렇게 말처럼 쉽겠냐는 현실주의적 반론도 만만치 않다. 군사부문에 관한한 한반도에서 절대적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미국과의 반목은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미국은 그동안 공식.비공식적으로 여러 차례 F-15K 매각결렬시 벌어질 정치.군사적 상황을 경고했었다.

***“시간은 우리편”**

유럽계 에이전시는 최근 국방부와 군수업자들 사이에 흐르고 있는 묘한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한국의 차세대전투기 선정이 지난 7월에서 오는 11월로 미뤄지더니 일각에서‘이제 연내에는 힘들지 않겠냐’는 전망이 흘러나오고 있다. 또한 한국에서는 자체생산 대공미사일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미사일체제를 갖추는 것이 더 시급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한미 정책 갈등으로 인한 반미,독립요구 여론에 한국정부가 부담을 느껴 F-15가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는 보도를 하기도 했다.”

그는 이와 함께 또하나 간과해서는 안될 내용을 전하고 있었다.
“보잉사가 판매가격을 낮추기 위해 F-15 엔진을 플랫 앤드 휘트니(P&W)사의 F-100 대신에 제너럴 일렉트릭(GE) 것을 장착하겠다고 한 제안도 위험한 발상이다. 왜냐하면 실제전투에서 사용해 검증된 적이 없는 제품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F-15에는 이 엔진을 절대로 쓰지 않고 있다.”

이는 간단치 않은 대목이다. 보잉사가 가격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 장차 우리나라 차세대전투기의 안전을 위협할지도 모를 위험한 편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현재 차세대전투기 선정 협상은 아직 드러난 것보다 알려지지 않은 것이 더 많은 빙산과 같다.
김경민 한양대(군사정치학)교수 등 많은 전문가들이 “한국 못지않게 미국에의 군사종속성이 심한 일본이 과거에 그러했듯 정치적으로 부담스런 차세대전투기 선정을 정부가 아닌 민간위원들에게 이관하라”고 조언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국내외적으로 비상한 관심이 쏠려있는 이번 사안을 정치공학적으로 처리할 경우 두고두고 문제가 야기될 가능성이 농후한 때문이다.

이들은 또한 한결같이 “시간은 우리편”이라 말한다. 선정기간을 늦출수록 보다 유리한 기술이전 및 가격조건을 얻어낼 수 있으며, F-15K 등 낙후기종은 말 그대로 차세대전투기에 걸맞는 새 기종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이유에서다. 국회도 정부에 대해 협상시한을 최대한 늦출 것을 주문하고 있다. 여지껏 노력해온 정부당국이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서라도 진지하게 곱씹어보아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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