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민원이라고 하더라도 (관리자나 교육청에) 도움을 요청할 수가 없어요. 그럼 내가 '무능력자'가 되는 거니까요." -강남서초교육지원청 사망교사 추모공간 <프레시안> 현장 인터뷰 중
"민원이 들어오면 학교관리자는 교사가 조용히 사과하기를 바라죠. (교사보호를 위한) 교권보호위원회를 여는 것에도 주저하는 경우가 많아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교사의견조사 기타의견 답변 중
서초구 초등교사 사망사건으로 교육활동 보호 대책에 대한 목소리가 커져가는 가운데, 학부모 민원이 생겼을 때 개인 교사는 대부분 동료교사들의 도움만을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교육청의 도움을 받았다'는 교사는 전체 1.8%에 불과했다. 학교관리자의 도움도 미미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25일 오전 서울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서이초 교사사망) 재발방지대책 교사 의견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전국 유·초·중·고·특수학교 교사 1만4450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해당 설문조사는 개인 휴대전화 및 학교 메신저 등을 통해 지난 22일부터 24일까지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교사들이 말하는 △업무상의 어려움 형태 △문제 발생 시 지원 창구 △교사 보호 대책에 대한 의견 등을 조사한 이번 설문조사에선 교육현장 내 '교원보호 시스템의 부재'가 여실히 드러났다.
특히 서이초 사태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되는 학부모 과다·악성 민원과 관련해 "학생 생활, 성적, 업무 등에 관한 학부모 민원 발생 시 지원 받은 경험"(중복답변 가능)에 대해 묻자, 교사들은 동료 교사들의 지원(65.2%)을 가장 높게 뽑았다.
'도움 준 곳이 없다'(28.6%)는 응답이 두 번째로 높았고 교장·교감 등 학교 관리자(21.4%), 교원 단체나 노조(18.2%)가 뒤를 이었다. 대다수 교사들이 동료교사에게 알음알음 도움을 요청하거나, 아예 도움 받을 창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교사들이 민원과 관련하여 '교육청의 도움을 받은 경우'는 가장 낮은 수치인 1.8%에 불과했다. 이는 가족, 친구들, 동아리, 대학선배, 상담사 등에게 개인적으로 도움을 요청한 경우인 기타응답(4.1%)보다도 낮은 수치다.
일부 교사들은 "친한 동료 교사에게 물어보거나 처리 방법에 대한 의견 및 사례를 구하는 정도일 뿐, 실질적인 도움을 지원해줄 체계가 전혀 잡혀 있지 않다", "교육청은 (지원을 요청하면) 문제 있는 학교·교사로 취급할 뿐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기타의견을 보내오기도 했다.
교사들 사이에선 학부모 민원 등 처리가 복잡하고 소송 위험이 있는 업무에 대해 "학교나 교육청이 모든 책임을 교사 개인에게만 전가하고 있다"(손지은 전교조 부위원장)는 지적이 전부터 이어져왔다. 노조는 "교사의 교육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존재하고 있는 교육청과 관리자가 제 역할을 하지 않고 있는 현실을 조사결과는 말해주고 있다"고 꼬집었다.
학교 및 교육청 등 교육계의 전반적인 지원체계가 확립돼야 하는 구체적인 항목들에 대해 '최근 1년간 어려움을 겪고 있는가' 묻자, 모든 항목에서 과반 이상의 교사들이 '그렇다'고 답했다.
'부적응 학생 생활지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답변은 95.3%로 가장 높았다. 노조는 "학교폭력 피해, 경계선 장애, 수업 방해 행동 등 다양한 요인으로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들에 대한 지원체계가 없는 현실이 조사결과로 드러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중한 업무가 87.1%로 2순위 △학교공동체의지지 및 보호체계 부재가 84.1%로 3순위 △학부모 과다 민원의 경우 81.6%로 4순위로 집계됐다. △부당한 업무부여(67.0%) △관리자의 갑질 및 무책임한 태도(62.3%)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답변도 과반을 넘었다.
특히 행정직원, 행정실무사 없이 모든 업무를 1~2인의 교사가 감당하고 있는 유치원교사의 경우 '과중한 업무'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답변이 95.5%에 달했고, '교육활동에 어려움을 겪을 때 학교공동체의 지지 및 보호체계 부재'로 인한 어려움은 특수교사들에게서 88.9%로 더 높게 나타났다.
서이초 사태에서 문제가 된 '학부모 과다 민원'의 경우, 유치원교사(88.5%)와 초등교사·특수교사(84.3%)가 중고교 교사보다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경력별로는 10년 미만 교사가 10년 이상 교사보다 일반적으로 더 많은 어려움을 호소했다. 개별 노동자가 처한 노동조건 및 계층이 교사 개개인의 어려움에 반영되고 있는 셈이다.
기타의견으로는 △학부모 민원 직접 대응에 대한 부담 △(문제상황에서) 교사의 대응방법 및 메뉴얼 인지 못함 △아동학대 신고에 대한 부담 △2차 가해, 미온 처분, 개최 거부 등으로 인한 교권보호위원회의 실효성 없음 등이 제시됐다.
이주호 교육부장관은 지난 24일 서이초 사태와 관련 '불합리한 학생인권조례'를 문제의 핵심 원인으로 꼽으며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번 조사에 참여한 교사 10명 중 9명 이상은 '교육부와 교육청의 대책은 실효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교사들에게 학부모 갑질, 악성민원 등으로부터 교사가 보호받기 위해 필요한 대책이 무엇인지 묻자 △교권침해사안 교육감 고발의무 법제화 등 가해자 처벌 강화(63.9%) △학교의 교육방침과 교사의 생활지도권한에 대한 학부모 인식 제고 교육과 서약서 등 확인 절차 마련(45.9%) △개인 교사가 아닌 관리자가 직접 민원에 대응하도록 하는 제도(45.6%) △교사 개인연락처를 통한 괴롭힘을 방지하는 제도(28.3%) 등 실질적인 교원보호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전교조는 "교사들은 그동안 교사의 고통을 외면해 교육당국의 행태를 평가한 것"이라며 "이주호 교육부장관은 학생인권조례를 문제의 원인이라 말해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교육계에선 이 장관의 발언이 전해진 24일부터 '문제를 학생인권 대 교권의 대립으로 몰고가선 안 된다'는 제언이 속출하고 있다. 서이초 사태 이후 '학생인권조례 폐지·개정'만을 강조하고 있는 정부·여당의 관점에 대대적인 전환이 요구되는 모양새다.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교육과정디자인연구소·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등 학부모·교육단체들은 24일 발표한 성명에서 "(학생인권 조례에는) 교사의 권리를 침해하는 조항은 어디에도 담겨 있지 않다. 오히려 '학생의 책무로 교사와 다른 학생 등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조례에 명시되어 있다"라며 "일부 학부모의 소위 '교사 갑질'로 볼 수 있는 형태는 학부모회 활성화 및 주체화라든지, 분쟁과 갈등을 조기에 개입하고 해결할 수 있는 학교 안팎의 지원 시스템 구축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같은 날 교사노동조합연맹과 교육부 사이 열린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간담회에서도 "학생인권과 교사인권은 서로 존중받아 마땅한 가치임에도 불구하고 양립 불가능한 것처럼 교권 침해 행위의 생기부 기록 여부로 여야가 이를 정쟁의 수단으로 삼는 것에 반대한다"(김용서 교사노조 위원장)는 의견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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