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반올림과 연대하던 미디어뻐꾹(필명) 활동가가 2018년 미국 내 전자산업 산업재해 피해자를 만났다. 반올림이 이들의 증언을 정리해 차례로 공개한다. IBM 반도체 노동자 아트 로드리게즈의 구술을 두번째 글로 싣는다.
IBM에서 보낸 26년
저는 IBM에서 일했어요. 열아홉 살에 입사해서 26년 동안 일했죠. 1999년에 정리해고를 당했고요. 처음에는 조립 라인에서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조금씩 다른 업무를 맡게 됐죠. 그런데 저는 같은 일을 오래 하면 금방 싫증을 내는 편이라, 야간조로 옮겨서 여러 공정을 두루 배웠어요.
그래서 저는 디스크 공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아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에요. 공정에 있는 일은 거의 다 해봤어요.
처음에는 그냥 조립 일이었어요. 클린룸에서 디스크 팩을 조립하는 작업이었죠. 그때는 클린룸이 뭔지도 몰랐어요. 그냥 에어샤워를 통과하고, 방진복을 입고, 마스크 쓰고, 후드 쓰고, 작은 덧신 같은 걸 신고 들어가서 버튼만 누르는 일이었죠. 처음에는 그게 제가 하던 일의 전부였어요.
그러다가 화학약품을 혼합하는 일도 맡게 됐고, 화학약품으로 기판을 세척하는 일도 했어요. 또 재활용 공정도 있었는데, 황산(sulfuric acid)을 사용해서 기판에 묻어 있는 산화철(iron oxide)을 제거하는 작업을 했어요.
벌레에 물리지 않는 몸이 되다
화학약품을 혼합하는 일을 맡게 됐을 때, 사실 저는 그 일을 하고 싶지 않았어요. 저는 건강에 꽤 신경 쓰는 사람이었고, 화학물질이 몸에 좋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거든요. 실제로 한 번 회사를 그만두기도 했어요. 하지만 저는 젊은 가장이었고, 어린아이들도 있었기 때문에 결국 계속 일을 해야 했죠. 그래서 그 일을 맡게 됐어요.
제가 그 일을 하면서 느꼈던 것 중 하나는, 제가 원래 캠핑을 자주 다녔거든요, 그러면 모기에 많이 물리잖아요. 그런데 그 일을 시작한 뒤에는 모기에 한 번도 물리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 일을 그만둔 뒤, 한 1년 반쯤 지나서야 다시 모기에 물렸는데, 그때야 비로소 제 몸이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거의 4년 반 동안은 어떤 벌레에도 물리지 않았어요.
안전교육은 받았어요. 보호장비를 어떻게 착용해야 하는지, 어떤 장갑을 써야 하는지, 후드는 어떻게 써야 하는지 같은 교육이었죠. 그런데 제가 기억하는 건 사실 하나뿐이에요. 예를 들어 화학물질이 쏟아져서 노출되면 저쪽에 비상 샤워기가 있다는 것, 그게 다였어요. MSDS(물질안전보건자료)는… 뭐랄까, 일종의 계약서 같은 느낌이었어요. 글자는 잔뜩 적혀 있는데,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 맨 아래에 서명하고는 일을 시작하는 거죠.
제가 알기로는 세척 공정에만도 프레온(freon)을 아마 여덟 종류 정도 사용했던 것 같아요. 자일렌(xylene)도 썼고요. 아, 그리고 산화철 혼합물 이름은 지금 기억이 안 나네요. 아세톤(acetone)도 청소할 때 정말 많이 사용했고요.
(냄새는) 썩은 달걀 냄새 같았어요. 그게 가장 특징적인 냄새였죠. 그런데 둔감해지게 돼요. 한동안 그 환경에서 일하다 보면 더 이상 냄새를 맡지 못하게 돼요. 그래서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세상에, 이게 무슨 냄새예요?" 하고 놀라면, 우리는 "걱정 마. 곧 익숙해질 거야."라고 말하곤 했죠.
새미 버취의 스크랩북을 들여다보며
저는 정말 많은 친구를 잃었어요. 수많은 동료 세상을 떠났죠. 사실 저도 그 연락망에 들어가 있어요. 매달 누군가, 제가 알던 사람이나 함께 일했던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는 이메일을 받거든요. 그럴 때마다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게 돼요. '내 차례는 언제일까?'
세상에. 이건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네요.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랑 같이 일했어요. 한 사람 한 사람 다 알아요. 이 사람들은 제 가족이었다고요. 아시겠어요?
가슴이 아파요. 이 사람들과 몇 년이고, 몇 년이고, 매일같이 함께 일했는데, 이 앨범을 펼쳐보면 다 세상을 떠나고 없잖아요. 너무 끔찍해요. 저는 화가 나요. 정말 분노가 치밀어요. 지나고 나면 다 보인다고 하잖아요.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 알았더라면, 분명 목소리를 냈을 거예요. 무슨 말을 했을 거예요. 누군가에게 가서, "여기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까?" 하고 물었을 거예요.
신체 이상을 가지고 태어난 마을의 아이들
저는 IBM 바로 근처에 살았어요. 당시 제 아내는 페어차일드(Fairchild)에서 일했는데, 회사가 55갤런짜리 드럼통을 그대로 땅에 묻는 장면을 직접 봤어요. 정말 그냥 땅에 그대로 버렸던 거죠. 저 역시 관리자로부터 점검 직전에 특정 화학물질을 버리라는 지시를 받은 적이 있어요. 배수구에 버리라고 했죠. 그 배수구가 어디로 연결되는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사실 저는 IBM에서 두 블록, 페어차일드에서도 두세 블록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살았는데, 그 일대 전체가 소송에 휘말렸어요. 유산 이야기는 정말 수도 없이 들었고, 선천적 신체 이상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 많이 있었어요. 앞을 보지 못하는 아이들, 구순열(cleft palate)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 팔이 짧은 아이들, 손가락이 없거나, 손가락이 하나 더 있는 아이들…. 정말 온갖 종류의 사례가 있었어요.
당신만이 이 일을 멈출 수 있어요
결국 다 돈 때문이에요.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 독이 되는 부산물이 나오든 말든, 어떻게든 돈만 벌면 되는 거죠. 회사는 돈을 벌고, 화학물질은 갖다 버리고, 떠나버려요. 그리고 그 화학물질을 버리는 사람들은 누구냐고요? 회사가 돈을 주고 그 일을 시키는 노동자들이에요. 사람들은 그저 일해서 생계를 꾸리고 싶을 뿐이에요. 그렇게 온갖 화학물질에 노출되면 생기는 영향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죠. 저도 몰랐어요. 정말이에요. 만약 알았더라면, 그 일만은 절대 하지 않았을 거예요.
생계를 위해 일하는 모든 분께, 그리고 화학물질에 노출되면서도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그 일을 하라는 말을 듣고 있는 모든 분께 꼭 말하고 싶어요.
공부하세요. 사람들과 이야기하세요.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배우세요. 내가 다루는 화학물질이 무엇인지 배우세요. 그건 몸에 좋은 게 아니에요. 그 화학물질은 결국 당신을 망가뜨릴 거예요. 당신의 가족을 망가뜨릴 거고, 미래 세대를 망가뜨릴 거예요. 당신의 아이들, 손주들, 그 모두가 영향받게 될 거예요. 돈 때문에 당신의 삶과 당신 주변 사람들의 삶까지 바뀌게 두지 마세요. 그럴 가치가 없습니다.
당신만이 이 일을 멈출 수 있어요. 당신만이 우리 지구를 뒤덮고 있는 이 엄청난 화학물질 오염을 늦출 수 있어요.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할 수 없어요. 하지만 우리 모두가 함께라면 할 수 있습니다. 서로 힘을 모으고, 서로 가르쳐주고, 서로를 돌보세요. 그리고 거대한 돈의 논리가 당신의 삶을 지배하도록 내버려두지 마세요.
※ 아래 링크에서 영어 구술 원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sharps.or.kr/english/?bmode=view&idx=17271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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