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세' 등 최근 쏟아지는 복지 정책의 원조이면서도 최근 복지 논쟁에서 신중한 태도를 취하는 이유가 있었다. 이정희 대표는 "종합부동산세가 무너지는 과정을 보면서 증세가 얼마나 어려운지 뼈저리게 느꼈다"고 했다. 이 대표는 "그런 실패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복지 모델을 놓고도 이 대표는 "권리로서의 복지는 당연히 보편적일 수밖에 없지만 모든 분야의 복지가 다 보편적이어야 한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약자에게 더 많은 혜택이 주어져야 한다는 얘기였다. 당연히 세금도 "조세 감면 철회 등 역누진이 되는 문제부터 풀지 않고 당신이 더 내라고 하는 건 정의의 관념에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길' 연쇄 인터뷰, 마지막 손님으로 이정희 대표를 지난 24일 만났다. 편집자.
▲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프레시안(최형락) |
김윤태 : 지난해 7월부터 당 대표를 맡았다. 40대의 젊은 정치인이 당 대표를 맡아 언론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동안의 활동을 평가해 본다면?
이정희 : 2012년에 굉장히 큰 변화가 예고된다. 꿈도 중요하지만 실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느리지만 변화를 준비해 왔다. 눈에 보이는 뚜렷한 성과를 말하기는 어렵지만 진보정치 통합의 걸림돌을 제거하는 중이라고 판단한다. 당이 확고히 방향을 잡았다. 진보정치의 통합이 더 이상 늦춰지거나 돌이킬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 2012년의 야권연대 역시 좀 더 길고 단단하게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에 모두가 동의하게 됐다. 준비는 거의 마무리 되었고 이제 발동을 걸 때가 왔다. 민노당 스스로도 어떤 정책으로 총선과 대선을 치를 것인지를 준비해 왔다.
김윤태 : 어찌 보면 민주노동당은 복지 정책의 원조다. 최근 민주당 뿐 아니라 한나라당까지 복지를 얘기하고 있는데 이런 현상을 보면서 소회가 남다를 것 같다.
이정희 : 복지 논쟁이 시작되고 이미 하나의 방향을 잡아가고 있는 것은 매우 긍정적이다. 그러나 궁금한 점이 있다. 그래서 어떻게 만들 건데? 정권 잡으면 한다지만 그 전에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데? 여러 정책을 얘기하고 얼마를 쓰겠다고 말하는 것으로 실현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복지 정책은 하나하나가 굉장히 어려운 현실의 싸움이다.
무상급식만 봐도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지방선거 전부터 1년 넘게 싸웠다.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그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확인됐기 때문에 현실화된 것이다. 내가, 우리 정당이 얼마 쓰겠다는 말 한 마디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내놓은 정책을 어떻게 실현시킬 수 있는지에 관심이 더 많다. 지금 무엇을 할 것인지의 문제다. 그러나 이 부분은 아직 정치권에서 분명하게 논의되고 있지는 못하다고 평가한다.
김윤태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이 부유세를 얘기하는 등 논쟁에 적극적인 데 반해 민주노동당은 현재의 복지 논쟁을 주도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이정희 : 복지 문제를 오랫동안 얘기해 온 정당으로 '사실 우리가 다 고민 해 봤는데'라는 느낌이 좀 있다. '문제는 현실로 만드는 거야'라는. 민노당은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 여러 가지 증세 노력을 해 왔다. 때로는 부유세라는 세목으로 얘기해 본 적도 있고 조세 징수기반 확충을 통해 지하경제 세원을 드러내자는 얘기도 해 봤다. 지난해에는 정부가 임시투자세액 공제를 폐지하겠다고 하는데 민주당이 말려서 못 했다. 그런 과정을 보면서 조세 감면 폐지 등 증세가 어느 정도의 사회적 합의와 힘이 결집되어야 가능한 것인지 깊이 생각하게 됐다.
민노당은 10년 동안 복지를 얘기해 왔다. 그 가운데 '암부터 무상의료'로 표현되는 암 환자의 본인 부담율을 낮추는 것은 확실히 실현시켰다. 그리고 또 한 가지가 무상급식이다. 그 외에는 실현되지 못하거나 오히려 후퇴하기도 했다. 하나의 복지 정책을 만들고 법을 만들고 예산을 확보해 밀어붙이는 데 까지는 대단히 넓은 국민적 지지와 확실한 힘이 있어야 한다. 반대하는 세력을 제압하고 설득할 수 있는 집중성이 필요하다. 또 국민들의 갈망과 분출도 있어야 한다. 신중한 계획도 필요하고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고 그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단단한 힘까지, 이 모든 것이 함께 모여야 가능하다.
그런 배경을 만들기 위해 민노당이 신중한 고민을 해 왔다고 보면 된다. 올해는 무엇보다 최저임금 인상 싸움에 집중할 생각이다. 최저임금이 현실화되지 않고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복지를 자리 잡게 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최저임금 투쟁을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직화와 노동운동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생겨날 것이다. 또 진보정당의 주도성도 만들어낼 수 있다.
"'종부세 실패' 되풀이하지 않도록 증세는 치말하게 준비해야"
ⓒ프레시안(최형락) |
이정희 : 부유세는 원래 '부자에게 세금을'이라는 민노당의 큰 정책 방향을 표현한 말이다. 그것이 어떤 세목으로 어떻게 나타나는지는 다양했다. 아주 초기에는 부동산 등기부에 얼마에 팔았는지를 적도록 하는 것부터 부유세 정신 구현을 위한 기반을 닦은 셈이다. 부유세라는 세목으로 제시된 것도 일종의 정책 아이디어였다.
18대 국회에서는 조세 담당을 내가 맡고 있는데 증세가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 뼈저리게 많이 느낀다. 우리나라의 환경에서 모든 증세관련 법은 헌법재판소를 안 거칠 수 없다. 헌법재판소에서 담당하는 사건 중에 가장 많은 것이 조세 관련 사건이다. 그만큼 이해관계가 첨예하다. 최근에 헌재가 점점 더 일종의 '정치적 사법기관'이 되어가고 있어서 헌재를 통과할 수 있는, 논리적 약점이 없는 세금을 만들어야 안정적이다.
종합부동산세라는 노무현 정부가 만들어낸 정의로운 세금이 무너지는 과정을 보면서 더 느꼈다. 종부세는 사실 부유세 정신을 실현시킨 단초였다. 그러나 한 번 무너진 세금을 다시 살리는 것은 정말 어렵다. 헌재 결정을 통해 줄어든 종부세 세원은 절반이지만 국민의 인식 속에 종부세는 이미 뼈대만 남았다.
그런 실패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 대단히 치밀하게 증세 법안을 준비해 왔다. 소득세 최고구간 신설도 그 중 하나다. 적용 계층이 굉장히 좁다. 대한민국 근로소득자의 0.5%다. 법인세도 역시 200개 법인 정도에 해당된다. 최고구간에 부과하는 세금 외에 빈 구석을 찾아내는 것도 고민하고 있다. 상장주식연대차익이 그것이다. 물론 개미 투자자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방향으로 설계하고 있다.
"모든 복지가 다 보편적일 필요는 없다"
김윤태 : 그렇다면 복지의 혜택은 어떻게 가야한다고 보나? 선별적 복지인가 보편적 복지인가? 최근 무상급식 논쟁 과정에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손자에게도 공짜 밥을 줘야 하냐'는 반박도 있다.
이정희 : 복지는 권리다. 권리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으므로 당연히 보편적일 수밖에 없다. 보편적이라는 의미는 그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 것이 행사하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 권리 행사에서 사각지대가 생겨서는 안 된다는 것도 내포돼 있다.
그러나 모든 분야의 복지가 다 보편적이어야 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권리로서의 성격은 특히 교육과 의료에서 강하다. 이 두 분야는 수혜 대상을 일일이 가려내는 것보다 모두에게 인정해 주는 것이 낫다. 그러나 다른 분야는 좀 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김윤태 : 복지의 확대가 기업에 너무 큰 부담을 주고 결국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이정희 : 이명박 대통령조차 기업이 너무 고용을 하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있는 것 아닌가? 우리나라 GDP 대비 복지 지출이 경제협력개발국(OECD) 국가 가운데 밑에서 두 번째다. 경제 규모는 전체의 11~13위 수준이다. 이 정도 경제 수준에서 복지 지출을 늘리는 것은 결코 무리하지 않다. 국민부담율이 48%인 스웨덴 수준으로 당장 가자는 것도 아니지 않나. OECD 평균까지 가야 한다는 것조차 과다하다고 한다면 그 주장이 오히려 무리한 것 아닌가.
김윤태 : 스웨덴을 언급했는데 재원 말고도 어떤 복지국가로 갈 것인지도 논쟁 지점이다.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모델이 있나?
이정희 : 어느 방향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쉽지 않다. 한 가지, 노인장기요양보험 같은 식은 되지 않아야 한다고 본다. 의욕적으로 만들었지만 모두 민간에게 맡겨 버렸다. 결국 공급은 과잉이 되고 복지의 질은 떨어졌다. 그 복지를 담당하는 사람의 삶의 질도 떨어졌다. 복지 공급은 일정 정도까지는 공공부문이 주도성을 가져야 한다. 민간이 복지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해도, 일정한 자격기준이 필요하다. 최소한 최저임금보다는 높은 임금을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복지 모델에 대한 논쟁이 되려면 일단 복지 재정의 규모가 많이 늘어야 한다. 그래야 어디서 빼서 어디에 넣을까를 고민할 수 있다. 지금은 한 곳에서 빼면 그 부분이 확 무너지는 상황이다. 모델 논쟁은 상당한 시간이 흘러야 가능하지 않을까.
김윤태 : 외국 사례도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조건이 복지국가로 가기에 쉽지 않다는 말도 있다. 노동조합 조직율도 10% 수준으로 매우 낮다. 산별노조도 약하다. 진보정당도 약하다. 복지국가라는 이상이 관념적인 주장으로는 가능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이정희 : 가능하냐, 가능하지 않냐의 문제로 보지는 않는다. 다만 분명한 것은 복지를 확대하는 데 있어 가장 힘이 될 수 있는 사람은 복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고 그렇게 나설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노동조합이다.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만 해도 그렇다. 지금 최저임금은 4인 가구 최저생계비 수준도 안 된다. 복지제도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니 이들이 바로 당사자다. 이들이 복지 확대나 증세 등에 대해 자기 목소리를 내고 강력한 지지 여론을 퍼뜨릴 수 있기를 바란다.
"'부자감세' 철회가 먼저, 적극적 증세는 그 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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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 단계가 있다. 2013년이 되면 하루 아침에 우리 사회의 틀이 복지국가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조세 감면을 확실히 개편하는 것부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나서 적극적인 증세가 시작될 테다. 사실 현재 30% 수준인 비정규직의 사회보험 가입률부터 끌어올려야 한다. 국가가 가입 초기 보험료 감면 등을 통해 일정 정도 지원해주면서 끌어들여야 한다. 그런 것들이 일정 정도 자리가 잡으면 그때는 사회보험료를 올릴 수 있다. 건강보험을 봐도 소득의 5.08%를 내는데 상한선이 있어서 맨 위로 올라가면 역누진이 된다. 전체 소득의 0.1%도 안 낸다. 그런 문제부터 풀지 않고 당신이 더 내라고 하는 건 정의의 관념에 맞지 않는다.
김윤태 : 최근 벌어지고 있는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의 경우 국민들이 일정액을 더 부담할 테니 보장율을 높이자는 얘기다. 지금 얘기는 그런 주장에는 반대한다는 것인가?
이정희 : 아니다. 그런 접근도 가능하다. 다만 복지국가로 가는 데 있어서 약간 에둘러 갈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길만이 절대적이라고 제한을 두지 말았으면 한다. 충분한 토론을 통해 조정이 가능한데, 단기간에 성과를 내야한다거나 꼭 이 길로만 가야한다고 주장하면 얘기가 복잡해진다.
다음 정권을 잡는다고 해도 5년 안에 이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다고 국민에게 약속할 수 없다. 욕심 부리지도 말아야 한다. 복지 지출을 OECD 평균까지 끌어올리는 건 가장 짧게 잡아도 10년이 걸린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노무현 정부 때처럼 일부 진전이 분명함에도 여러 문제점이 나타난다고 우리끼리 갈라서서야 되겠나. 어떻게 길게 같이 갈 것인지가 중요하다. 종부세가 공격 대상이 될 때 같이 싸워 확실히 지켜줬어야 하지 않나 돌아보는 이유기도 하다. 연대의 선이 확고해지는 것이 가장 우선이지, 각각의 정책 가운데 무엇이 정확한지를 놓고 논쟁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는 않다.
김윤태 : 민주당 정부 10년의 복지 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이정희 : 김대중 정부의 가장 큰 성과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도입이다. 4인 가구 기준 노동자 평균 가구소득의 40% 수준에서 출발했으니 나쁘지 않았다. 시의적절하기도 했다. 그런데 10년 후인 지금은 30% 수준까지 떨어졌다. 노무현 정부에서도 연평균 10% 이상씩 사회복지 지출이 늘어났는데도 따라잡지 못했다. 사회양극화가 더 빠른 속도로 진전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정부가 필요한 제도들을 만들긴 했지만 신자유주의 물결로 인한 양극화를 상쇄할 정도는 아니었다. 또 경제 정책에서도 비정규직 문제를 확실하게 제어하지 못했다. 진보진영 입장에서는 당연히 아쉬움이 있다.
이명박 정부 3년 동안 민주당 정부 10년을 만들어 온 사람들이 스스로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새로운 10년과 20년을 준비하면서는 양극화를 확실히 돌려놓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정도의 합의는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민주당과 연대는 꼭 하지만 통합은 못한다"
김윤태 :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야권연대 얘기가 많다. 민주노동당도 야권연대가 절실한가?
이정희 : 올해 1월 1일 신년사에서 '민노당에게 2011년은 통합과 연대의 한 해'라고 말했다. 그것은 우리 당이 어떻게 성장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차원이 아니라, 지금 이 역사적 과제를 풀지 못하면 안 되겠다는 절박함이다. 우리 사회를 더 이상 후퇴하게 놔둘 수는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도를 가장 넓게 짜야 한다. 우리 사람들이 가장 크게 만들어야 한다. 당연히 민주노동당에게도 야권연대는 절실하다. 절대절명이다.
김윤태 : 구체적인 방법으로 들어가면 논의가 다양하다. 민주당, 민노당, 진보신당이 하나로 통합하는 야권단일정당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의견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이정희 : 야권단일정당을 말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심각성에는 동의한다. 연대가 참 어렵다는 것도 물론 동의한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에는 11년 동안 스스로 만들어 온 한국정치의 미래가 있다. 이제 그 꿈이 뿌리 내리기 시작했고 현실에서 국민의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이전에도 물론 구청장도 있긴 했지만 그때는 실험적 성격이 더 강했다. 우리 수준이 그렇게 높지 못했다. 그런데 6.2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실제 현실을 변화시킬 정도의 힘이 확보됐다. 그런 역사들에 비춰 보면 민주당까지 다 합쳐 하나의 정당이 되기보다는 진보 정당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한국 정치의 미래를 위해 긍정적이라고 본다.
물론 민주당이 정당 민주주의 등 그 흐름에 동참하겠다면 말릴 이유가 없다. 그러나 또 민주당과의 통합이 현실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현재 민주당의 정당 구조는 한국 정치의 미래를 담보하기 어렵다. 그 문제를 민주당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정도가 된다면 우리나라 정당 정치의 현실이 달라질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
김윤태 : 민주당의 정당 구조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 당원인가, 정책인가?
이정희 : 정책 방향은 이미 진보로 수렴되고 있다. 정당 구조는 아니다. 당원들이 공직 후보를 선출하고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얘기하고 그 의견이 공정하게 반영되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정치가 국민을 바라보기 보다는 한 사람을 따라 가게 된다. 국민의 수준에 맞지도 않고 진보정당이 참기 어려운 문제다.
우리가 말하는 통합은 진보대통합이다. 민주당은 거기에 들어가 있지 않다. 물론 민주당 내 개혁적인 분들은 차라리 들어와서 하면 속이 편하다고 하지만, 그들 역시 안에서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 아닌가. 단기간에 극복될 문제가 아니다. 민주당을 개혁할 의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먼저 넘어야 할 산이다. 야권연대라는 의무를 위해 민주당도 내부 노력이 필요하다. 고통이 있을 수 있지만 국민들은 그 고통을 굉장히 기쁘게 지켜볼 것이다. 빨리 추진하면 추진할수록 좀 더 빨리 결단할수록 우리 모두를 위해 좋다. 물론 총선에서 뿐 아니라 대선에서도 민주당과 연대는 꼭 할 것이다. 연정도 검토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수준이 될지를 지금 말하기는 어렵다.
김윤태 : 민주당과 통합을 하든 연대를 하든 당원수에서 소수 정당이 불리하기 때문에 상층의 지분 협상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는데?
이정희 : 지분 문제를 놓고 통합과 연대를 고려해 본 적은 전혀 없다. 역사의 발전과정에서 필요하다면 한다. 그리고 민노당에서 일해 온 인력들이 개인의 능력이나 헌신성, 공직자로의 적합성 측면에서 민주당에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공정한 경쟁이 된다면 인물 경쟁력을 우려해 본 적은 없다. 문제는 단일후보를 뽑다보면 인물보다는 어느 당인지가 중요하고 당으로 표 쏠림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주민들은 '사람은 좋은데 다른 당에서 나오면 안 되냐'고 우리 후보들에게 요구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민노당을 지켜온 이유가 있다. 새로운 정치를 하려면 여기밖에 없기 때문이다.
"야권연대 실패하면 민주당이 더 많은 비판 받을 것"
김윤태 : 정치적 노선은 이미 좁혀졌다고 말하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나 비정규직 문제에서 여전히 차이가 존재한다는 의견도 있다. 지난 10년간 민주당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반성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정희 : 한미 FTA는 추가 협상이 진행됐기 때문에 어차피 민주당도 못 받아들인다는 것 아닌가? 물론 기존의 한미 FTA에 대한 평가는 논쟁 지점이지만 같이 할 수 있는 것부터 연대한다는 것이 우리의 흔들림 없는 원칙이다. 언젠가는 한미 FTA 기존 협정을 어떻게 볼 것인지도 민주당과 논의할 때가 올 것이다. 물론 새로운 FTA는 어떤 기준에서 체결해야 하는지도 논의해볼 수는 있다. 이미 흘러가버린 물을 다시 파헤치지 말고 지나온 과거를 돌아보면서 앞으로 어떻게 갈 것인지를 더 많이 논의한다면 충분히 합의할 영역을 찾을 수 있다.
비정규직 문제도 지난해 지방선거에 앞서 정책연합을 하면서 많이 공감대를 이뤘다.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공공부문 비정규직부터 먼저 해결한다는 합의를 했었다. 지금도 공동정부가 된 곳이나 민노당이 맡은 지자체에서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무기계약직 혹은 정규직으로 바꿔나가고 있다. 할 수 있다는 경험이 쌓이면 더 부드럽게 갈 수 있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간이 굉장히 중요하다.
김윤태 : 한국 정치가 양당 체제보다는 삼각 분할 체제로 가야된다고 보는 것인가?
이정희 : 나는 3분의 1에 머무를 생각이 없다. 당연히 집권해야 한다. 과반수 이상이 되어야 한다. 어느 누구의 손이라도 잡지 않으면 무엇도 할 수 없는 불안정한 상태로는 안 된다. 확고하게 민주주의와 인권, 경제적 균형, 평화를 자리 잡게 하려면 진보 진영이 과반수 이상 국민의 지지를 받는 수준까지 자신의 힘을 키워야 한다.
김윤태 : 만일 진보대통합은 이뤄졌지만 민주당과의 선거연대에는 실패한다면 어떻게 될까? 진보 정당은 사표심리로 인해 손해를 볼 확률이 높다는 우려가 있다.
이정희 : 민주당이 더 평가를 많이 받을 것이다. 왜냐면 우리는 2012년 연대를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다할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눈은 날카롭다. 야권연대가 이뤄지지 못한다면 국민들은 누가 망쳤는지를 평가할 것이다.
김윤태 : 그러나 표가 분산되면 결국 이득을 보는 것은 한나라당 아닌가?
이정희 : 그 정도로 우리 힘이 약하지 않다. 1987년의 아픈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국민들에게도 있다. 경남에서는 우리가 야권의 1당이다. 광주 남구에서도 44%를 얻었다. 기초의원이나 광역의원 선거를 해 보면 민노당이 1등하는 곳이 꽤 많다. 수도권이 아직 약하긴 하지만 우리는 별로 잃을 것도 없고 야권연대라는 입장도 확고하다.
"종북주의가 통합 걸림돌? 北권력 승계 때 두 당의 논평 다르지 않았다"
ⓒ프레시안(최형락) |
이정희 : 조금 더 빨리 바람을 일으켰으면 좋겠는데 진보신당에서는 논의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그러나 최근 2011년 9월까지 통합한다는 데는 합의를 했다. 최소한 6월까지는 서로 성과를 내야한다고 보는데 시점을 당기기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해 나갈 것이다. 이 문제는 길게 논의한다고 풀릴 성격이 아니다. 앙금이 있으면 어떻게 털어버릴지를 빨리 얘기해서 털어내면 되는 것이다.
김윤태 : 가장 쉽지 않은 것이 대북관점 아닌가. 분당 당시 문제가 된 것도 종북주의 논쟁이었다.
이정희 : 세간의 인식에는 민노당에 대한 잔상이 남아 있는 것 같다. 내가 대표로 처음 주재한 최고위원회의에서 처음 한 모두발언이 북한의 해상사격에 대해 '말로도 행동으로도 긴장을 격화시키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행동한 사람에게 책임이 있다'고 북한을 비판했다. 평화 문제에 대해 우리 입장은 확고하다. 한반도의 긴장이 악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북한의 권력 승계 때문에 통합의 걸림돌 얘기가 다시 나왔었다. 2008년의 재판이 되지 않겠냐는 전망이었는데 진보신당과 민노당이 그 문제를 놓고 한 번도 직접 대화를 해 본 적이 없다. 노회찬 전 대표, 조승수 대표도 내 앞에서 전혀 그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얘기를 시작하면 문제가 될 사안이 절대 아니다. 사실 권력 승계 때 우리당의 논평과 진보신당의 논평 내용이 다르지 않다. 평화냐 전쟁이냐의 문제를 놓고 당이 갈라지는 것이지 수식어 때문에 당이 갈라질 이유가 없다.
김윤태 : 북한의 핵 보유에 대한 입장은 어떤가? 핵 개발에 대해 변화된 입장이 있나?
이정희 : 한반도 비핵화에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다. 북한도 9.19공동성명을 통해 비핵화를 천명했고 심지어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냉각탑을 폭파시켰다. 이미 북한이 행동으로 보여줬는데 그를 놓고 우리가 '다른 속셈이 있을 것'이라고 얘기할 근거는 없다. 협상용이라고 많은 국민들이 이미 인식하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개발이 진행되고 서로 포격까지 오가는 것은 굉장히 안 좋다.
다만 북한과 미국의 책임이 똑같이 50 대 50이라고 말하는 양비론은 적절하지 않다. 2.13 합의나 9.19 공동성명이 이행되지 않는 데는 미국의 책임이 분명하다. 이명박 정부도 남북관계에서는 무능력할 뿐 아니라 무책임했다. 양비론으로 접근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형평에 맞지만 상황을 악화시키는 모든 세력에게 책임이 있다.
김윤태 : 북한 인권에 대한 논란이 많다. 국제 엠네스티와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민노당의 입장은 무엇인가?
이정희 : 당이 아니라 개인 입장을 말하자면, 북한 인권 역시 국제 인권의 보편적 기준에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만 국제 인권 실현이 정치적 공세의 일환으로 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극단적으로 무력공격까지 합리화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그건 국제사회에서도 공감이 있다.
우리가 증진시킬 수 있는 인권은 평화다. 덧붙여 북한의 경제적 상황이 개선되도록 경제협력이나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한다. 지난 10년 동안 차근차근 진전돼 왔다. 인권 문제에 대해 서로 선입견을 갖지 않고 논의할 기초가 닦여진 것이다. 그런데 완전히 궤도에 오르기 전에 남북관계가 다시 전쟁으로 후퇴했다. 지금은 북한의 시민적, 정치적 인권 문제가 모든 것에 우선한다고 얘기하기 어렵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 정치 공세를 하는 것과 똑같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인권 문제가 남북 의제가 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위해서 다시 정권을 회복하고 남북관계를 진전시켜야 한다.
김윤태 : 분단현실에서 한국전쟁의 역사적 경험은 한국의 진보정당에게 커다란 구조적 제약을 가하고 있다. 한국전쟁의 발발 원인은 어떻게 평가하나?
이정희 : 북한이 공격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학계에서도 그 몇 년 전부터 내전 상태였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전쟁을 돌아볼 때 더 중요한 것은 누가 일으켰냐보다는 왜 우리 민족이 전쟁까지 갔는가이다. 남북통일을 얘기하던 사람들이 왜 힘을 가지지 못했을까를 고민한다. 그때 역사적 과제와 지금의 과제는 어떻게 다른가. 당시에는 이념보다 민족의 통일과 독립이 중요했고, 지금도 여러 차이보다는 민주주의 회복이 더 중요하다.
한편으로는 연평도 포격을 통해 한국전쟁이 남긴 상처가 다시 끄집어 내 지는 것이 안타깝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옅어지던 상흔이 다시 깊어졌다. 그런 비극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회주의' 강령 삭제, 우리 꿈은 11년 전과 다르지 않다"
김윤태 : 최근 민주노동당이 '사회주의적 원칙과 이상을 계승하여'라는 강령을 수정하려 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정희 : 이미 2년 전부터 준비해 온 것이다. 강령개정위원회가 만들어져 2011년 6월 전당대회에서 개정하기 위해 토론하고 있다. 사실 "사회주의적 원칙과 이상을 계승하여 자본주의 폐해를 극복하고"라는 구절은 평등한 사회, 소외 받지 않는 사회에 대한 우리의 꿈을 표현한 구절이다. 그것이 현실 사회주의 사회를 뜻하는 것은 아니란 얘기다. 우리의 꿈은 11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그러나 표현하는 문구는 달라질 수 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표현돼, 국민들이 단숨에 읽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강령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윤태 : 최근에 서울 관악을에 사무실을 냈다. 총선 출마 선언인 셈인데, 이후 계획은 어떻게 되나? 대선후보로 나서야 한다는 견해도 있던데, 대통령이 되면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이정희 : 관악구에서 차근차근 주민들을 만나고 있다. 급하지 않다. 진보정당의 의원으로 우리 목소리로 성과를 내는 것이 지역 주민에게 신뢰를 받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면서 오히려 야권 연대와 통합의 일에 더 집중하고 있다.
대선도 요구되는 모든 것을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계기인 만큼 반드시 이길 것이다. 진보정당이 집권한다면 가장 먼저 할 일은 국민에게 권력을 주는 것이다. 주민소환법이나 참여예산제 같은 제도의 도입이다. 정치권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국민에게 줘야 한다.
김윤태 : 긴 시간 얘기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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