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신년연설에서 "한정된 국가재정으로 무차별적 시혜를 베풀고 환심을 사려는 복지 포퓰리즘은 문제의 해결책이 결코 아니다"고 선을 그으면서 논란은 한층 확산됐다. 감세, 작은 정부, 시장 만능주의의 경제정책을 신념으로 내면화시킨 보수 정부로서는 복지라는 말 자체가 달갑지 않음이다. 하지만 복지 소용돌이는 여권의 미래권력들 사이에 균열을 냈다. '복지 포퓰리즘'을 비판하는 오세훈 서울시장,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달리 박근혜 의원은 '한국형 복지'를 내걸고 이슈 선점에 속도를 붙였다.
반면 복지 담론은 야권 전반을 아우르는 우산이다. '뭉쳐야 산다'는 지상명제를 받아든 야권에선 연대·연합의 질서로 '복지동맹'을 발전시키려는 움직임이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원론적 교감만 오갈 뿐 연대·연합의 방법론에서는 동상이몽이다. '복지국가 정치동맹'은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프레시안>은 '복지국가 정치포럼'과 함께 야권의 유력 정치인들 및 학계·시민사회 인사들을 두루 만나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길'을 모색한다. 김윤태 고려대 교수가 진행하는 연쇄 인터뷰의 다섯 번째 손님은 '민란 국민의 명령'의 문성근 대표다. <편집자>
☞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길]<1> "복지국가 단일정당 못 만들면 한나라당에 필패한다" ☞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길]<2> "작은 차이 때문에 'MB후예'의 재집권을 용인할텐가?" ☞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길]<3> "증세 없는 보편적 복지는 허구다" ☞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길]<4> "장래희망이 '기초생활수급권자'라는 아이에게 우리는?" |
▲ 문성근 '100만 민란 국민의 명령' 대표ⓒ프레시안(최형락) |
"복지를 늘려주겠다는 건 '나랑 결혼해주면 이렇게 할께'라는 약속인데 '나는 너하고 결혼할 마음 자체가 없다'는 사람에게 그런 말이 통하겠냐"고 되물었다.
그래서 그는 거리에 있다.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고 위로해주려고, 한 번만 다시 믿어달라고 호소하려고, 그리하여 돌아앉은 애인을 완전히 돌려세우기 위해. 그는 '100만 민란, 국민의 명령'의 대표 문성근이다.
'100만 민란'은 국민의 힘으로 야권단일정당을 만들자는 움직임이다. 상층의 협상보다 100만 국민의 힘으로 야권 정당들을 움직이겠다는 거대한 계획이다. 목표는 "2012년 민주진보정부의 수립"이다.
'단일정당'의 현실화에는 여러 가지 난관이 있지만 크게는 두 가지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 이른바 '진보정당'이 갖고 있는 두려움과 거부감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이미 제1야당인 민주당이 적극적으로 나올 이유가 있을까?
그러나 문성근 대표는 자신 있다는 분위기다. "여론의 힘으로 넘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진보정당을 향해서는 "무상 시리즈를 내놓고 진보를 얘기하는 민주당을 단순히 '립 서비스'라고 말할 순 없고 '정파등록제'를 통해 소수정당의 두려움은 극복이 가능하다"고 달랬다. 한편으로는 "분단에 전쟁까지 치른 나라에서 진보정당의 실험이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가 됐다"고 공격하기도 했다.
인터뷰 내내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여러 차례 언급한 그는 "이 운동을 잘 되게 하는 방향으로 책임지는 일이라면 (나를) 필요로 하는 일은 뭐든 하겠다"고 말했다. "연기자에서 정치인으로 직업을 바꾸는 것은 내 자유에 속하는 부분으로 미리 내 자유를 속박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다음은 지난 20일 프레시안 사무실에서 진행된 문성근 대표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100만 민란, 국민의 마음은 이미 부글부글 끓고 있다"
김윤태 : 요즘 '100만 민란' 운동 때문에 말 그대로 '풍찬노숙'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거의 140일 가까이 됐다. 말 그대로 대장정이다. 참여자도 벌써 6만5000명 정도라고 들었다. 처음 시작할 때의 계획과 기대에 비하면 지금 어떻게 평가하나?
▲ ⓒ프레시안(최형락) |
두 번의 전환점이 있었다. 지난해 11월 우금치에서 콘서트를 했다. 말하자면 전국1차 봉기인 셈이었다. 2만 명을 넘기긴 했지만 조직화가 제대로 된 상태는 아니었다. 우리가 10~30명 단위의 최소 단위를 '들불'이라고 하고 그 들불 모임을 움직이는 사람을 '접주'라고 하는데, 지난해 11월은 이제 막 접주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던 때였다. 당연히 조직적 참여도 어려웠다. 800명 정도 올 것으로 예상했는데 2배 가까운 1500명이 왔다. 지금 상태로는 전국대회가 무리지만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온 것이다. 당시 시민사회단체와 정당 관계자들이 많이들 보러 왔는데, 그때 '이 운동이 끝까지 가겠구나'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두 번째 전환점은 12월 초였다. 사실 거리에서 한 번 냉대를 받아 보면 마음이 불편하다. 기도 죽는다. 그런데 어느 날 '파주 들불'이 심학산에서 하루 동안 500여 명의 회원을 받았다. 아, 정말 좋았다. 광주 들불이 무등산 앞에서 비슷하게 성과가 좋았고. 두 군데가 성공하는 걸 보면서 '이건 된다' 싶었다.
시민들이 그렇게 자발적으로 회원이 되고 활동가가 됐기 때문에 연말까지 5만 명이 가능했다. 5만 명을 넘겼으니 이제 내용을 좀 더 충실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정책위원회를 꾸렸고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를 정책위원장으로 모셨다. 이제 2단계에 들어간 셈이다.
김윤태 : 그동안 100만 민란 운동을 전국적으로 벌이면서 '야권 단일 정당'의 필요성을 알리고 바람을 일으켰다면 이제는 내용을 채우는 단계로 가겠다는 얘긴데, 구체적으로는 어떤 방향의 내용을 생각하고 있나?
문성근 : 이명박 정부 3년을 겪으면서 이미 합의된 내용이 있다. 자유, 정의, 생태, 복지, 평화가 그것이다. 그 말만으로도 시민들은 이해한다. 물론 전문가나 직업 정치인은 좀 더 상세한 내용을 원하겠지만 이 운동은 일단 시민을 향한 것이다.
앞으로도 '투 트랙'으로 가야한다. 하나는 연합 정당을 건설하기 위한 토론이다. 정당 득표가 의석수에 반영되는 선거제도 개편을 공동 공약 1호로 걸 수 있지 않을까? 또 하나는 연합 정당이 제시할 정책비전에 대한 토론이다. 비정규직, 최저임금, 의료, 복지에 대한 정책을 합의해 나갈 것이다.
"흡수에 대한 소수정당의 두려움, 정파등록제로 풀 수 있다"
김윤태 : '100만 민란 운동'이 목표로 하는 단일정당의 성격을 놓고 다양한 설명이 있다. 무지개 연합 정당이라고도 하고, 네트워크 정당이란 말도 한다. 단일정당의 성격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준다면?
문성근 : 그런 분류는 학자들 얘기고…(웃음). 우리의 제안은 그동안 한국 정치를 보면서 느껴 왔던 문제를 토대로 나온 것이다. 가장 우선적 특징은 당연히 민주적 운영 방식이다. 또 하나는 연합 정당이다.
모두 2012년 민주진보정부를 세우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에서 시작된 고민이다. 3가지가 필요하겠다, 하나는 지역구도 완화 흐름을 더 전진시켜야 한다. 두 번째, 20~30대의 능동적 참여를 이끌어내야 한다. 꼭 20~30대 전체가 아니라 자유주의적 진보세력이랄까, 아니면 촛불세대로 표현해도 좋다. 세 번째, 민주진보진영과 진보진영이 어떻게 같이 갈까. 이 세 가지 고민이 새로운 정당에 반영되어야 한다는 고민이 출발점이었다.
우선, 같이 가는 방안으로 연합 정당을 구성하자. 최대한 합의할 수 있는 것은 합의하되, 못 하는 부분은 정파로 경쟁하자는 얘기다. 정파 등록제도 가능하다. 합치는 것에 대한 소수당의 두려움은 '결국 흡수되어 소멸될 것'이라는 것이다. 정파 등록제는 그 두려움도 완화할 수 있다. 한 당적이되 이중 멤버십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민노회, 참여회, 진보회 등의 회원이면서 동시에 연합 정당의 당원인 것이다. 기존 정당들의 구조를 통째로 가지고 합치는 것이다. 이를테면 제 정파가 협의제 민주주의를 한다고 할까.
한 가지 또 중요한 것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결합이다. 기존 정당은 오프라인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보다는 온라인 사이트에서 회원으로 활동한 경험이 더 많다. 취미클럽도 있고 준 정치클럽도 있고 팬클럽도 있다. 얼굴, 이름, 직업 다 가리고 닉네임만으로 마치 놀이하듯이 정치 활동을 한다. 그 활동들이 그대로 정당 활동이 될 수 있도록 하자는 제안이다. 정치에는 관심이 대단히 많으면서도 정당에는 안 들어가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이중심리 때문이다. 20~30대의 오프라인 당에 대한 거부감은 더 심하다. 직접 민주주의를 원하는 성향도 강하다. 그 마음을 흡수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열린우리당의 공중분해 역사에 대한 반성이다. '노사모'의 경험을 따라한 것이 개혁당이다. 민주당은 1971년 김대중 후보를 도우려고 입당한 분들이 대를 이어 당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 분들과 2000년 이후 참여를 시작한 시민들은 상당 부분에서 확연하게 다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예전에 청중을 동원한다는 느낌의 표현을 사용한 적이 있다. 솔직하게 그 시대는 국민을 동원 대상으로 생각하는 정치였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다.
열린우리당은 서로 차이점을 가진 개혁당과 민주당이 중간 지대에서 만난 것이었다. 완전히 다른 두 그룹을 '진성 당원제'라는 제도를 통해 억지로 화학적 결합을 시도했던 점에서 문제가 있었다. 이제는 따로 또 같이 갈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안방은 온돌방이고, 건넛방은 의자가 있는 방이고, 지구당 위원장을 뽑을 때는 거실에서 하는 식이 돼야 한다.
김윤태 : 젊은 세대의 정치참여를 확대할 방안은?
문성근 : 20~30대에 대한 의무 공천도 필요하다. 지금의 20~30대는 그 전 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산업 구조 속에 놓여 있다. 정책적 요구도 완전히 다르다. 정치권에서는 매번 투표하라는 말만 하지 그들의 말을 들어준 적이 없다. 그들에게 그들 스스로 국회의원이 되어 스스로의 문제를 풀어 보라고 하는 것이다. 물론 워낙 관심이 없으니 당장은 접근조차 안 되겠지만 통로를 열어줘야 한다. 직접 관여해보면서 정치가 내 생활에 어떻게 변화를 줄 수 있는지를 체험하면 달라진다.
그렇게 해도 안 들어오는 사람도 있다. 온라인에서도 안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지지자 그룹'으로 묶어 생활정치형 자료를 제공하면서 관심을 일으켜야 한다. 예컨대 고양시 예산안 시민 공청회가 있다면, 어디 가면 자료를 다운 받아 검토해볼 수 있다는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시민 정치 영역에서 활동하다 차츰 정당까지 흡수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민주진영, 진보진영, 시민단체까지 폭 넓은 사람들을 정당의 테두리 안에 모을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전국 정당화다. 그렇게 되면 2012년 승리의 조건도 마련되는 것이다.
▲ ⓒ프레시안(최형락) |
문성근 : 이 정당의 성격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다. 세계 정치사에 이런 정당이 나온 적은 아직 없다고 한다. 그러나 또 우리니까 된다고 생각한다. 좁은 국토의 전국에 초고속 랜선이 다 깔려 있다. 10여 년 동안 직접 참여의 경험도 많다. 서구 민주 국가는 대의제도 안에서 정당이 제대로 기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 충돌이 벌어진다. 젊은 세대는 정당 구조 안으로 들어가기 싫어하고 대의제는 한계가 있으니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100만 민란'을 통해 대의제도에 직접 민주주의 요소를 더하면 세계적 모범 정당이 만들어질 수 있다.
사실 노사모도 2002년 대선이 끝나고 많이 수출되지 않았나. 참여연대 같은 단체도 2002년에 충격을 많이 받았다. 자기들은 전문 활동가가 있고 돈 내는 사람이 따로 있는데 노사모는 돈 내는 사람과 활동가가 동일했다. 참여연대 200명 활동가가 노사모 회원 2만 명하고 상대가 안 됐다. 외국 정치인 가운데는 아예 자기 보좌관을 한국에 보내 연구시키기도 했다. 미국 민주당은 무브온(MoveOn)으로 발전시켰고 우리는 팬클럽으로 끝났다는 게 다르지만.
2002년에는 대통령을 만들어 놓고 '이제 됐다'고 손을 놔버렸다. 시민사회단체는 정당 중립을 고집했다. 그러니 민주진보 전체의 세력화가 안 된 것이다. 다 부서져 나갔다. 저들의 칼질에 심장이 뚫렸다. 단칼에…. 그 바보 같은 짓을 되풀이 하지 말자는 얘기다. 처음에는 아니었지만 최근 들어 '국민의 명령'이라는 조직을 2012년 이후에도 시민정치 조직으로 존속시켜야 되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그래서다.
김윤태 : 정치학자들의 개념 정리보다 더 명쾌한 설명이다. 그런데 현재의 정당 구조나 상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시민 사회의 자발적 역동성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정치와 정당이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닌가?
문성근 : 정상화하자는 얘기다. 왕과 귀족에게 독점됐던 권력을 시민 혁명으로 뒤집은 것 아닌가. 시민이 다 와서 제각각 얘기하면 안 되니까 대의제도를 만들었다.
김윤태 : 정당 정치질서에 문제가 있다고 등을 돌리고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는 것인가?
문성근 : 바람직하지 않은 수준이 아니라 나라를 망치는 일이다.
"복지와 진보 얘기하는 민주당, 단순히 '립 서비스' 아니다"
김윤태 : 민주당, 민노당, 진보신당 등 기존 정당들이 이 변화와 개혁의 흐름에 동참할까?
문성근 : 동참할 것이다. 지금 '100만 민란'에 가입한 기성 정치인도 많다. 민주당은 박주선, 이인영, 천정배 최고위원이 회원이다. 원로급에서는 김근태, 유인태, 원혜영 의원이, 지사급에서도 김두관, 안희정, 이광재 지사가 모두 회원이다. 이인영 최고위원은 민주당 내 야권연합추진특별위원회 위원장이고, 천정배 최고위원은 당개혁특위 위원장이다. 우리가 정파 등록제 얘기했더니 이인영 최고위원은 한 단계 더 나가더라. 각 정파들이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해도 좋다고까지 말했다. 천정배 최고위원도 2월 말이나 3월 초쯤 나오는 당 개혁안에 통합 가능성을 충분히 고려해 좋은 안을 내겠다고 말했다.
진보신당은 검토해보겠다고 했고, 부정적인 입장은 국민참여당과 민주노동당인데 사실 이유는 똑같다. 민주당이 안 변할 거다, 민주적 운영도 안 될 것이라는 얘기다. '한두 번 속았어'라는 회의감. 또 정책과 이념이 다르다는 얘기도 한다. 그런데 정책과 이념의 차이가 대체 얼마나 나나? 민주당이 무상 시리즈를 내놓고 있다. 지난해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모든 후보가 진보를 얘기했다. 이 모든 것을 단순히 '립 서비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또 지금의 486, 이른바 '6월 항쟁 세대'가 40대 중후반이 되면서 독자 정치세력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동안 이런 저런 질타도 많았지만 이런 사람들의 독자 세력화가 그렇게 쉽게 되지 않는다. 세월이 가야 한다. 지금에서야 그 정도 세월이 되는 것 같다. 이들이 결성한 '진보행동'이라는 블럭이 민주당 내 상당히 견실하게 자리 잡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민주당과 합의 못할 것이 또 무엇인가.
남는 문제는 민주당의 당원 구조다. 당원이 그대로 있는데 민주당을 민주화한들 뭐할 거냐는 회의가 있다. 민주당 당원들은 나쁘게 말하면 배타적이고 어떻게 말하면 강한 결집력이 있다. 대부분 오랫동안 활동해 온 사람들이다. 특히 1970~1980년대 모두가 도망갔을 때 얻어 맞아가면서도 당을 지킨 사람들이다. 시대가 달라졌다고 나가 달라고 하는 건 당연히 절대 말이 안 된다. 그 분들을 존중하고 존경해야 한다. 그 사람들을 버리는 해결책은 답이 아니다.
사실 민주당의 당원 규모는 정확하지 않다. 25만 명부터 170만 명까지 다양한 설이 있다. 25만 명이 대략 맞는 것 같다. 전당대회 당원 여론조사를 위해 3만 명 찾는 것이 그렇게 힘들었다고 하지 않나. 민주당이 25만 명, 작은 정당들을 합치면 15만 명이다. 통합하면 작은 정당들이 소멸된다고 우려 할만 하다. 그러니 국민들이 해결해주자는 것이다. 당원이 되겠다는 국민을 10만 명만 만들어도 동등해진다. 그보다 더 많은 수의 국민이 당원이 되면 소수 정당의 공포를 씻어줄 수 있다. 우리가 들어가서 희석시켜 주자는 것이다. 민란의 핵심 내용이다.
물론 민주당 내 일부에서도 거부감이 있다. 지금 구조대로 가만히 있으면 '빅3' 중 한 명에게 줄을 서 이 편안하게 후보가 되는데, 내가 왜 그 선택권을, 즉 공천권을 시민들에게 넘기냐는 거다. 하지만 그들도 '싫다'고는 말 못 한다. '왜 싫으냐'고 물으면 '나 국회의원 되기 편해서'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 여론의 힘으로 그들의 거부를 넘을 수 있다.
"진보정당의 실험,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 입증됐다"
▲ ⓒ프레시안(최형락) |
문성근 : 오죽하면 그렇게 생각할까. 역사적 경험 때문에 그런 주장이 나오는 것인데 그러니까 더 하자는 얘기다. 나는 학자가 아니다. 운동가다. 현상을 분석하려는 것이 아니라 타파하려는 것이다. 결국 관건은 민주당이 얼마만큼 믿을 만한 혁신안을 내놓느냐에 달려 있다. 북핵 문제를 놓고 매번 '불가역성'을 얘기하는데, 민주당의 혁신안이 불가역적인 것임을 확실히 인지시켜 줄 필요가 있다.
진보정당의 지난 노력을 나 역시 진심으로 존경한다. 하지만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있다. 남북 분단 모순에, 지역 구도에, 더욱이 <조선일보>가 존재하는 나라다. 선거 제도는 소선거구제이며 비례대표는 5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울산, 창원 같은 곳은 진보정당이 되지만 그 지역을 넘어서면 안 된다. 나도 선거 때면 후보는 될 사람을 찍고 정당 투표는 진보정당에 준다. 비례대표 의원 한 명이라도 더 얻으라고. 그렇지만 한계가 있다는 건 모두가 알지 않나.
민주당을 자유주의 세력이라고 질타하면 유권자들이 진보정당으로 올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20년을 살았는데 국민들은 박정희와 김대중+노무현 둘로 나눠서 본다. 민주세력이 몰락하면 진보세력도 같이 몰락한다. 천하를 3분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 역사적으로 입증됐다. 분단에 전쟁까지 치른 나라에서 진보정당의 실험이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가 됐다. 정치적 이익으로 따져 보더라도 6.2 지방선거에서 진보진영도 연대의 꿀맛을 보지 않았나.
문제는 지방선거는 후보군이 수천 명이지만 총선은 아니라는 데 있다. 지방선거 때도 중앙 차원의 연대는 불발됐는데 총선이 가능할까? 2012년 총선에서 후보가 되려고 이미 지역에서는 머리 터지게 싸움을 시작했다. 그런데 선거에 임박해서 '이 지역구는 민노당에게 줄 거니까 넌 물러서라'고 할 수 있나? 안 되는 얘기다.
진보대통합도 잘 됐으면 좋겠다. 논의가 단순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힘을 키워서 힘 대 힘으로 맞장 뜨자. 그럼에도 남는 문제는 민주당의 지역적 한계다. 언제까지 민주당을 저렇게 방치할 수 없다. 판을 바꾸고 야권단일정당을 만들어 지역구도를 넘자는 거다.
"내년 4월 총선까지 지금처럼 지지고 볶고 있으면 진다"
김윤태 :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이기려면 정당 간 통합이 전제되어야지, 후보 단일화나 정책연합 수준으로의 연대는 불가능하다는 얘기인가?
문성근 : 선거 연합이 안 된다는 말이다. 끝까지 합의가 안 되면 망한다. 벌써 몇 번의 경험이 있는 것 아닌가? 1987년도 그렇고. 2002년이나 지난 지방선거의 경기도지사 경우도 여론조사로 결국 했다. 현재 법으로 하면 다른 당 후보들의 경선은 안 되고 여론조사뿐인데 그렇게 되면 제일 큰 당이 끝까지 합의를 늦추려 할 것이다. 끝까지 가야 큰 당 후보에게 유리하니까. 지난해 7.28 재보선에서 은평을이 그런 것 아닌가. 그렇게 후보를 뽑으면 최선의 후보가 안 뽑힐 수도 있다. 또 최선의 후보가 뽑혀도 다른 정당 당원들이 찍지 않는다. 당원들 뿐 아니라 유권자도 그렇다.
요즘 거리를 다니면서 '정치는 연애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후보와 유권자가 소통하고 마음을 주고받는 과정이다. 이미 한 후보에게 마음을 줬는데 막판에 자기들끼리 콩닥콩닥 하더니 사퇴했다고, 그 마음이 전부 다 '단일 후보'에게 가지 않는다. 경기도지사 선거가 그 사례다. 만일 여론의 압박 때문에 민주당 지도부가 이정희, 노회찬에게 특정 지역을 준다 치자. 그 지역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오려던 사람이 불복해서 무소속으로 출마하면? 이겨서 복당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되는가.
그러니 다시 생각해보자는 얘기다. 연합 정당에 들어와 정파등록제도 하고, 원내교섭단체도 하면 되지 않나. 집권하면 바로 선거제도를 개편해서 결선투표도 도입하고, 기존 진보 블럭이 분리해서 생존이 가능하겠다 싶으면 분리하면 된다. 집권당의 노동부 장관, 복지부 장관을 맡는 정파로 일단 시작하자. 그렇게 되면 우리 정치 모순의 근본인 지역구도는 상당히 극복할 수 있다. 남북관계도 나아지지 않겠나. 그렇게 진보 블럭이 다수 정파가 되어 가는 것이다.
이미 당 대 당으로 합쳐도 새 야권 단일 정당의 진보 블럭이 절반은 된다. 기존 진보정당 외에 민주당 내 486도 있다. 우리 주장은 각자가 가진 작은 파이를 내놓으라는 게 아니라 엄청난 큰 파이를 함께 만들어서 나눠 갖자는 얘기다.
그에 덧붙여 민주주의도 한 발 나아가고, 한스러운 이 지역구도도 깨질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헛되이 하면 정말 안 된다. 참여정부의 공과에 대해 여러 가지 비판들은 있었지만 노 대통령이야 말로 죽음으로 '진보'라는 용어를 해금한 사람 아닌가.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진보라는 용어를 정치에서 쓴 적이 없다. 늘 중도 개혁,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이라고만 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진보 해금이 교육감선거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지역구도도 그렇다. 노 대통령은 철옹성 같았던 지역구도를 온 몸을 던져 완화시켰다.
노 대통령 서거의 충격이 과연 언제까지 갈까? 지난 6.2 지방선거에서는 국민들이 노 대통령에 대한 미안함으로 불완전한 야권 연대를 밀어줬다. 무상급식 때문이 아니다. 물론 무상급식이 영향은 미쳤겠지만 야권을 밀어준 국민들의 바닥은 미안한 마음이었다. 그러니 지금 해야 한다. 국민은 노무현에게 미안해하는데, 정치권은 미안한 마음이 없나. 민주당이나 국민참여당이나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이 맞다면 지역구도를 이번에 넘어서야 한다.
김윤태 : 2002년에도 문성근 대표는 명계남 씨와 함께 새로운 한국 정치의 실험을 주도했다. 어찌 보면 한 개인에 대한 지지 운동이었지만 그것이 정치 개혁의 큰 도화선이 됐다. 그런데 야권 단일 정당은 어떻게 보면 단순히 대통령 하나 바꾸는 것이 아니라 또 다시 새로운 정치 실험이 된다. 지금 추진하는 새로운 시민정치운동이 앞으로 승산이 있다고 보나?
문성근 : 이길 것이다. 물론 여러 가지 변수는 있다. 만일 내년 4월 총선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지휘한다면 그때부터는 '과거 심판'에서 '미래 선택'으로 넘어갈 것이다. 그때까지 지금처럼 지지고 볶고 있으면 진다. 국민들 열을 머리 꼭대기까지 올려놓고 나서 하면 '너희 둘 다 나오면 질 것 같으니까 단일화하는 거지'라는 조소나 받기 십상이다.
거리 나가서 보면 안다. 이명박 정권 비판하면 잠깐 듣다가 돌아선다. 돌아서려고 하면 바로 얘기한다. 민주정부 10년, 다 잘했다는 거 아닙니다. 정말 잘못 한 거 많습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 잘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한나라당 정권은 정말 아니지 않습니까? 어떻게든 2012년에 민주진보정부를 세우려면 야권 단일정당이 필요합니다. 국민의 힘으로 만들어내자. 그러면 '되겠어요?' 하면서도 서명 하고 간다.
지금 국민들은 변심한 연인이다. 마음을 닫고 돌아앉았다. 그리고 욕망을 쫒아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했다. 그건 사랑해서가 아니다. 돈 준다고 하니까. 내 집 값 올려준다니까. 그런데 그 거품이 확 꺼졌다. 민망한 거다. 그런 즈음에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다. 민망함에 미안함이 더해졌다. 일종의 허망함 같은 것이다. 연기자식 표현으로 하자면, 내장이 다 빠져 나간 것 같은 상태…. 미안함도 있고 그래도 민주진영이 한나라당보다는 낫구나 하면서 조금 돌아본 것이 지난 지방선거였다.
그러니 먼저 위로부터 해야 한다. 죄송하다, 잘못했다고. 그래서 여러분을 그렇게 고통스럽게 했다고. 입 바른 거짓말이 아니라 진정으로 믿음직한 사람으로 느껴져야 마음을 돌린다. 다시 열 것이다.
"복지와 평화는 '나랑 결혼해주면 이렇게 할께'란 약속일 뿐 마음부터 얻어야"
▲ ⓒ프레시안(최형락) |
문성근 : 1997년 대선에서 우리가 표를 다수 얻어 대통령은 뽑았지만 완전한 약세였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 당선으로 5년 연장되니 나른해졌다. 비판받을 여지가 왜 없을까. 그러나 당당한 토론이 필요하다고 본다. 나는 학자는 아니지만, 김대중, 노무현 두 사람은 당대에 가장 진보적인 사람이었다. 노 대통령은 진보를 넘어 굉장히 과격했다. 불안할 정도로. 그분들을 비판할 때는 가장 진보적이었던 사람들이 대통령이 되서 그렇게 했다면 거기에는 상당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라는 점을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한나라당이 망가뜨린 나라를 빠르게 회복시켰다. 1997년 국민소득 7000불이었던 나라가 2006년 3배로 늘었다. 수치가 그렇다. 그런데 다만 양극화가 심해져 비정규직이 늘어났다. 여야를 불문하고 공약이 '삽질'에서 '복지'로 바뀐 것은 바로 6.2지방선거였다. 다시 말하면, 지방선거 전까지 우리 국민은 고도성장이라는 박정희 환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단 얘기다.
민주정부 10년의 첫 번째 멍에는 국민이 성장을 원한다는 사실이었다. IMF는 해고의 자유화라는 각서를 쓰게 했다. 그 과정에서 탈락한 사람들을 위해 복지를 확대했다. 기초생활보호제도도 민주정부에서 도입됐다. 근본적 한계와 시대적 흐름을 놓고 좀 더 구체적으로 비판해야 한다. 또 어떻게 보면 참여정부의 출발은 정치개혁이었다. 정상적인 사회를 만들자는 그 출발이 조기 달성돼 버렸다. 그러면서 경제로 넘어갔는데 그 부분에서는 준비가 부족했다.
다음 정권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한나라당은 집권만 하면 나라를 망가뜨리기 때문이다. 참여정부에서도 외환위기 때 생긴 빚 때문에 원리금 상환에 1년에 7조 원이 들어갔다고 한다. 미치겠더란다, 아까워서. 민주정부 10년 동안 간신히 추슬러 놨더니 또 국가, 공기업 부채가 3년 동안 450조 늘었다. 국가 예산이 1년에 300조인데 빚을 400조 늘리는 사람이 대체 어디 있나. 매번 설거지를 해야 하는 운명이 안타깝지만 그래도 완전히 부도 난 다음에 하는 것보단 낫다.
김윤태 : 문성근 대표의 말을 듣다 보면 조직을 내게 주면 내가 세상을 바꾸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만일 집권을 한다면 그 이후 새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
문성근 : 인간이 존중 받는 사회다. 지금은 너무 상스러워졌다. 시민의 자존을 다 상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우주를 가진 귀중한 존재라는 인식이 확산되는 사회가 돼야 한다. 복지 얘기도 많이 하는데 그것 역시 인권 차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비정규직 문제도, 한 공장에서 일하면서 한 쪽 라인은 월 300만 원, 다른 쪽 라인은 월 120만 원을 받는다. 인간이 인간에게 이러면 될까라는 물음으로 접근하자. 물론 위로가 먼저다. 복지나 평화는 '나랑 결혼해주면 이렇게 할께'라는 약속이다. '나는 너하고 결혼할 마음 자체가 없다'는 사람에게 그런 말이 통할까?
김윤태 : 복지 논쟁이 최근에는 증세 논쟁으로 옮겨가고 있다. 증세를 주장하지 않는 복지는 포퓰리즘이라는 얘기다.
문성근 : 섬세하게 검토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의 2030 계획도 결국은 장기적인 재정계획이었다. 퇴임 후에 한 얘기지만, 지금 극우의 나라에서 2020년에는 중도의 나라로, 2030년에는 진보의 나라로 가자. 복지국가로 가자는 계획이다. 거기에 섬세한 재정계획이 붙어 설득력 있게 접근해야 한다. 물론 선수들이 잘 할 걸로 믿는다.
"출마? 이 운동 책임지는 일이라면 뭐든 하겠다"
김윤태 : '국민의 명령' 대표이기도 하지만 노사모 이전까지는 국민에게 사랑 받는 배우였다. 2002년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는 아예 새 정당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그런 힘이 어디서 나오나?
문성근 : (한숨) 아무래도 어려서부터 밥 먹을 때마다 계속 정치 얘기를 들었던 경험이 크다. 할아버지가 조선인 중에는 최초의 캐나다 유학생이었다. 해방됐을 때 유창하게 영어를 하는 소수의 한국인 중 하나였다. 우리 집안이 아직 만주에 있을 때 할아버지가 서울에 가서 이승만 선생을 만나고 왔다. 돌아와서 구체적으로는 말씀하시진 않았지만 '큰일 났다, 우리 민족 큰일 났다'고 말했다. 그리고 호를 벙어리라는 뜻의 '승아'로 지었다. 이승만 선생이 미군정에서 같이 일하자고 했는데 거절하고 막노동을 하며 살았다는 것이다. 그런 얘기들을 들은 영향도 있고, 무엇보다 아버지에 대한 죄송함이 크다. 늘 뵈면서 살 수가 없어서 문목(문익환 목사) 사진을 거실에 안 두고 책장 뒤에 걸어 놨다. 평소에는 안 보이게 하려고.
민망한 얘기지만 김대중 선생님이 '네가 싸워라'는 얘기도 하셨고…. 노무현 대통령의 유서에서 집 가까운 데 작은 비석 하나 세우라는 얘길 보고 처음에는 이 나라가 얼마나 싫으면 국립묘지를 거부하실까 생각했다. 1년이 지나서야 알았다. 죽어서도 지역 구도를 넘어서는 데 기여하겠다는 의지였다. 봉하마을에 묻혀 있으니 자꾸 사람들이 찾아간다. 거기서 바로 부엉이바위가 보인다.
지금 아니면 못 한다. 2012년 총선 전에 반드시 해야 한다. 종편이 4개나 더 생겼는데 이번에 지면 언제 이길 수 있을까? 기존 공중파도 이미 우리에게 불리한 여건이다. 또 김대중, 노무현은 그들의 삶에 감동이 있었다. 대가 없는 희생에서 오는 감동이었다. 그런데 야권에 지금 그만한 인물이 있나? 2012년 총선을 박근혜 전 대표가 지휘해 치르면 이미 이슈가 과거 심판에서 미래로 넘어가는데 어떻게 경쟁할 수 있을까. 짧은 기간 안에 진정 어린 희생이라는 감동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야권 단일정당이다.
다 같이 거리에 나가자고 제안하고 싶다, 마음 같아서는. 심상정, 노회찬, 이정희, 유시민, 손학규, 정동영, 한명숙, 이해찬, 문재인 다 거리로 나가 "정당에 가입해 달라"시국강연회를 하자, 야권 단일정당 당원이면서 동시에 '민노회' 회원으로 가입해달라 호소하자제안하고 싶다. 안 듣겠지만.
김윤태 : 이미 시민 정치 운동을 하고 있지만 직접 출마를 한다든지, 입각을 하든지 현실 정치에 뛰어들 생각도 있는지?
문성근 : 김대중 대통령 때부터 지금까지 늘 그런 권유는 많았다. 그런데 2002년에는 사죄의 마음이 컸다. 1987년 분열에서의 문목의 책임에 대한 사죄였다. 내가 참여정부에서 입각하면 결국 노무현 덕을 보는 것 아닌가. 그렇게 되면 사과가 성립되지 않는다. 2002년에도 앞으로 배우로 받게 될 불이익을 알면서도 참여한 것이다. 대의제는 원래 시민의 참여를 위해 피로 얻은 것 아닌가. 그 참여가 개인의 영달과 관계없더라도 해야 한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참여했다. 사실 나는 시민정치 운동을 하다가 정당 정치인이 되는 사람에게 굉장히 고맙게 생각한다. 정치인의 삶이 얼마나 피곤한가. 제대로 하려면 정말 고달픈 삶이다.
사실 불이익도 컸다. 민주진영의 딜레마도 거기 있다. 민주진영은 민주주의 하자는 것이니까 한나라당 지지 했다고 집권한 뒤에 그 문화예술인을 못 살게 굴지는 않는다. 유일한 예외는 이덕화 씨의 경우인데 그 경우는 감정이 많이 상했던 거다. 이덕화 씨도 국민의 정부 때고 참여정부 때는 정말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못 살게 군다. 가만히 돌아보면 한나라당 지지한 사람은 복귀에 아무 문제가 없다. 대중은 상관 안 한다는 것이다. 물론 배우만 열심히 하는 것보다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마음에 안 들 수는 있지만. 문제는 정권의 천박함이다. 국민은 상관하지 않는데 그 세력은 천박하니까, 당하는 수밖에 없다.
내가 연기자에서 직업을 정치인으로 바꾸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내 자유에 속하는 부분이다. 미리 내 자유를 속박할 생각은 없다. 또 최근에는 '이 운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2012년 이후에도 존속시켜야 한다는 고민이 생겼다. 이 운동이 잘 되게 하는 방향으로, 이 운동을 책임지는 일이라면 (나를) 필요로 하는 일은 뭐든 안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사실 배우는 사회과학 서적을 자꾸 읽으면 안 된다. 방해가 된다. 대본을 느껴야 하는데 생각을 하게 된다. 감독은 좀 다르다. 완전히 다른 직업이다. 감독도 정서로 느끼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지만 동시에 여러 인물을 충돌시키고 풀어내는 사람이다 보니 사고가 포괄적이고 과학적이어야 한다. 구조적 생각이 필요하다. 나는 배우 자질이 그다지 없는 사람이 배우하려고 25년 동안 노력해 왔다.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빨리 끝내고 배우로 돌아갔으면 한다. 연기할 때가 젤 행복하다. 내 행복을 찾으면 제일 좋다. 그러나 책임을 방기하지는 않겠다.
열심히 운동하는 한 선배에게 '이번이 마지막 봉사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니 그 선배가 이렇게 답했다. '사람이 숨 쉬고 있는데 마지막이 어딨겠냐'고.
김윤태 : 긴 시간 많은 대화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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