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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부터 올리자는 주장, 바보스러운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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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세금부터 올리자는 주장, 바보스러운 접근"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길]<10> 정세균 민주당 최고위원

정세균 민주당 최고위원은 우리나라 주요 복지제도 중 하나인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만든 당사자다. 노무현 정부에서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내는 등 '경제통'으로 분류되지만 정 최고위원이 '복지 주장의 진짜 원조는 나'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정 최고위원은 '복지 포퓰리즘'이라는 한나라당의 비판도, '돈 얘기부터 하는' 민주당 내 일각의 증세 주장도 모두 문제라고 했다. 동시에 '3무1반' 정책을 내놓은 민주당의 '보편적 복지' 밑그림도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동안은 선당후사 정신으로 주어진 일에 충실했지만 이제 정세균의 정치를 하고 싶다"는 정세균 최고위원을 지난 16일 만났다.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길' 열번째 인터뷰다. 편집자.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길]<1> "복지국가 단일정당 못 만들면 한나라당에 필패한다"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길]<2> "작은 차이 때문에 'MB후예'의 재집권을 용인할텐가?"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길]<3> "증세 없는 보편적 복지는 허구다"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길]<4> "장래희망이 '기초생활수급권자'라는 아이에게 우리는?"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길]<5> "2012년 민주진보정부, 아! 이건 된다"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길]<6> "'돈부터 내라'면 복지 자체가 안 된다"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길]<7> "지출구조 개혁이 우선, 마지막 기댈 수단이 증세"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길] <8> "부자 증세는 보편적 복지의 최소 조건"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길] <9> "'요람에서 무덤까지', 그게 바로 국가의 역할"

"역시 손바닥은 부딪혀야 소리 나더라"

▲ 정세균 민주당 최고위원. ⓒ프레시안(최형락)

김윤태 : 최근 '국민시대'라는 싱크탱크 준비위원회를 발족했다. 발족식에서 '공동체 복지'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최근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복지 논쟁을 어떻게 보나?

정세균 : 복지 담론이 이렇게 활기를 띄리라고는 아무도 기대하지 못했다. 역시 손바닥은 부딪혀야 소리가 난다는 걸 다시 깨달았다. 지난 2008년 <질 좋은 성장과 희망한국>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당시 공동체 복지를 한 장으로 만들어 나름의 내 생각을 개진했지만 그때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18대 국회에서도 민주정부 10년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이 미흡하고 양극화가 심화되는 것에 대한 반성으로 복지 수준이 향상돼야 한다고 여러 번 얘기했다. 민주당이 지금의 3+1(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의료 + 반값 등록금)을 내놓은 것도 내가 당 대표였던 지난해 정기국회 때였다. 그동안 아무도 경청하지 않더니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한국형 복지'를 얘기하면서 담론이 됐다.

연유야 어쨌든 복지국가라는 우리의 이상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복지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것이 당면한 우리 과제라면 최근의 현상은 매우 바람직하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민주당의 복지를 비판하는 것도 환영이다. 선수가 뛰어들어 담론을 더 활성화시키는 것은 매우 좋다. 그것이 복지 하지 말자는 것만 아니라면 적극적으로 논쟁에 동참할 생각이다.

김윤태 : 공동체 복지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복지국가를 의미하는 것인가?

정세균 : 나는 복지를 그 자체로만 얘기할 게 아니라 교육과 노동, 조세 정책, 재정 정책, 심지어 산업 정책과도 연결되어야 한다고 본다.

과거 우리나라에는 국가에 의하나 복지는 없었다. 그야말로 가족 복지 뿐이었다. 산업화 과정에서 기업이 복지를 맡았다. 그런데 지금은 대기업 정규직 빼고는 이런 기업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결국 국가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

1980년대, 미국에서 공부할 때 대학 도서관에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인권을 정의하면서 '사람은 태어나면 의식주의 권리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적혀있는 액자를 보고나서였다. 당시에는 '이상'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와 너무 동떨어진 얘기였다. 어린 시절 할머니는 거지들이 문을 두드려도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는 쌀 한 줌을 주지만, 젊고 건장한 사람이 동냥을 하면 그 쌀 한 줌도 주지 않았다. 기본권에 대한 시각차가 컸다. 당시 미국의 국민 소득이 지금 우리나라 정도였을 것이다. 이제 우리도 국가가 최소한의 의식주를 책임지는 복지국가로 가야하는 이유다.

"한나라, 포퓰리즘 공세보단 물타기가 낫다"

김윤태 : 민주당이 강령에 보편적 복지를 넣었다. 최근의 복지 담론도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이를 놓고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한다. 이에 대한 생각은?

정세균 : 진정성이 없으면 포퓰리즘이라 비판 받을 수 있다. 표만 얻고 실천할 노력이 진지하지 못하다면 포퓰리즘이다. 그러나 복지에 대한 민주당의 시각은 일대 변동이 오고 있다. 민주당 내의 이른바 '중도 보수' 인사들도 이제는 '사회적 갈등을 줄이고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복지 수준을 높여야 되겠구나'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놓고 포퓰리즘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자신들의 정책과 다르다고 폄훼하는 잘못된 태도다. 오히려 한나라당이 현실을 인정하고 복지 논쟁으로 들어오는 것이 그들의 미래를 위해서도 더 낫다고 본다.

박근혜 대표의 선별적 복지도 사실 과거 한나라당 주장에 비해서는 매우 진보된 입장 아닌가. 정두언 의원 등 젊은 의원들도 마찬가지다. 전반적으로 한나라당도 과거의 '잔여적 복지'에서 '선별적 복지' 수준까지는 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나라당도 차제에 물타기를 하는 것이 낫다.

우리나라 복지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도 못 미친다. 지출이 한 자리 숫자다. 그것을 고수한다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저출산은 특히 심각한 문제 아닌가.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낳기만 하세요. 국가가 키워주겠다'고 약속했고,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보육 예산을 나름대로 많이 늘렸지만 아직도 저출산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지금 '포퓰리즘'이라고 민주당을 비판할 것이 아니라 코페르니쿠스식의 전환을 하는 게 좋다. '군자표변'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자신이 잘못된 것을 느끼면 군자는 바로 입장을 바꾼다. 보편적 복지라는 시대적 대세에 동승하는 것이 지금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살 길이다.

"돈 먼저 내라? 아주 바보스러운 접근"

▲ ⓒ프레시안(최형락)
김윤태
: 민주당이 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보육 정책을 내놓았다. 최근에는 재원에 대한 내부 논쟁도 한창이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부유세를 주장하고 손학규 대표는 증세 없이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복지 재원은 어떻게 마련해야 하나?

정세균 : 사실 민주당이 현재 제시한 패키지는 좀 문제가 있다. '3무1반'에 앞서 우선 4대보험의 사각지대를 해소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기초생활보장법과 기초노령연금법에 의한 공적부조를 좀 더 내실화하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나서 3+1이 되어야 하는데, 이 역시 일자리와 주거를 포함시켜 5+1이 돼야 한다. 이 모든 것을 모아 '종합선물세트'를 만들어야 하는데 지금 민주당이 제시한 것은 그 가운데 한 부분에 불과하다. 만일 민주당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이런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했더라면, 포퓰리즘이라는 비난도, 구호에 그친다는 비판도 받지 않을 수 있는 정책 패키지를 제시할 역량이 있는데 그 점이 안타깝다.

좋은 정책을 펴려면 돈이 없이는 당연히 안 된다. 그러나 돈 먼저 내라고 하면 못 한다. 물건 교환할 때도 내 것을 먼저 받으려고 하지 자기가 먼저 주려고는 안 한다. 그래서 복지를 먼저 향유하게 해야 한다. 복지가 사회갈등도 치유하고 국가경쟁력도 높이는 것이라고 느끼게 하면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부담을 지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무엇을 할 것인지도 확정되지 않고 국민적 공감대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돈 더 걷자고 하면 당연히 저항이 만만치 않다.

김윤태 : 증세는 반대하는 것인가?

정세균 : 아주 바보스러운 접근 아닌가. 부유세가 일부 부자들만 해당되는 것이라고 조세 저항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면 착각이다. 부유세 성격이 있는 종합부동산세가 결국 어떻게 됐나. 박근혜 대표가 '세금폭탄'이라고 이름 붙이면서 이후 모든 선거에서 계속 졌다. 굉장한 출혈을 했는데 결국 종부세 자체가 형해화 돼 버렸다. 비슷한 혹은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는 것은 저급하다.

또 가까운 길이 있는데 왜 돌아서 가나. 부자감세만 당장 철회해도 5년 동안 90조 원이니 대단한 재원이 만들어진다. 물론 앞서 말한 복지 종합선물세트를 하려면 큰 돈이 들어간다. 일단 부자감세 철회부터 시작하자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표에게 '부자감세 철회에 동의하냐'고 자꾸 물어야 한다. 민주당의 힘만으로는 안 되는 일이니 그렇다. 감세 정책을 철회하고 이런 저런 씀씀이도 줄이고 조정하고, 세원 포착도 해서 조세 정책과 재정, 예산 정책만 합리화해도 상당한 재원이 마련된다.

복지 정책을 순차적으로 진행해야 하는 것은 꼭 돈 때문이 아니다. 돈이 있어도 행정 능력이 뒤따르지 못한다. 하루 아침에 모두 실행할 수는 없단 얘기다. 그러니 돈도 내가 만들 수 있는 것부터 하면 조세 저항도 안 생기는데 수순이 잘못되면 될 일도 망친다. 지혜롭게 해야 한다.

김윤태 : 장기적으로는 우리나라의 GDP 대비 복지 예산 비율을 현재 8% 수준에서 OECD 평균인 21%까지 올려야 한다는 데 동의하나?

정세균 : 그렇다. 물론 OECD 중에서도 스웨덴이나 북유럽 수준까지 올리는 데는 매우 긴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또 각 나라마다 특성도 있다. 그런데 OECD 평균은 돼야 한다는 것은 '당위'다. 논란 없이 거기까지는 가야 한다.

김윤태 : 혹시 자신의 복지국가 구상에서 참고하고 있는 외국의 모델이 있나?

정세균 : 미국에서 9년 동안 공부했다. 1982년 당시에는 미국의 복지수준조차 부러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의료보험은 참 형편없는 수준이다. 유럽은 의료도 공공이 중심이고 영리법인은 아주 작은 수준인데 미국은 아니다. 우리가 미국을 복지국가의 모델로 생각할 순 없다는 얘기다.

유럽은 한국사회와 격차가 너무 크다. 정부에서 일할 때 정상회담 수행원으로 가서 얘기를 들어보니 교육제도, 복지제도 모든 면에서 우리와는 너무 차이가 많았다. 언제 저기까지 갈까 싶을 정도다.

결국 우리 실정에 맞는 모델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한국형'하면 예전 박정희의 '한국형 민주주의'가 떠올라 이유 없는 거부감이 있다. 당시 '한국형 민주주의'란 결국 '사이비 민주주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정 국가를 모델로 해서 추종하기 보다는 우리 지식수준이나 학문적 능력을 활용해 다른 나라들의 장점을 잘 살리고 우리 특성을 반영하는 모델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민주정부 10년,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난 비정규직…비판해도 할 말 없다"

▲ ⓒ프레시안(최형락)

김윤태 :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복지 정책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 진보 진영 일각에서는 '신자유주의 정권'이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정세균 : 두 분 대통령을 모두 가까이서 모시고 일했다. 두 분 모두 앞서 나가시는 분들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나보다 연세가 훨씬 많은데도 복지나 노동에 대한 철학과 입장을 접하면 나보다 더 진보적이어서 놀랄 때가 많았다. 1999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 당시 내가 새정치국민회의 제3정조위원장으로 기획단 단장을 맡았는데, 당시 법은 당의 아이디어가 아니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국민 생활 기본선을 보장하는 법을 추진하라'고 주문했다. 당시엔 미국에서나 가능할 것 같았던 일이 한국에서도 도대체 가능하단 말이냐,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기분이었다. 2000년 10월부터 4인 가족 기준 월 100만 원 가량을 보장하게 됐는데 내가 홍보를 하면서도 '진짜 되는 거야' 할 정도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나는 공무원은 직장협의회 수준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노 전 대통령이 공무원노조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정부 10년을 거치면서 양극화가 심화됐다. 두 분 대통령의 국정 철학의 잘못이라기보다는 그 시대적 상황이었다. 면책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비정규직법도 차선이었다. 당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를 하면서 그 법을 만들었는데 완벽한 것을 만들겠다면서 아무 것도 안 만들면 욕은 안 먹는다. 면피는 된다. 그러나 욕을 먹더라도 실현 가능한 법을 만들자고 했다. 의석이 제한돼 있었고 일단 부족한 법이라도 만들어 놓고 개선하는 것이 옳았다. 지금도 우리가 실현 가능한 것부터 그때그때 해 놓고 욕을 하면 욕을 먹어야 한다. 과거사법도 마찬가지다. 누더기법 만들었다고 욕을 많이 먹었지만 그때 안 만들었다면 조봉암 사건, 민청학련 사건도 해결되지 못했다. 요즘은 내가 큰 소리를 많이 친다.

물론 정치는 결과가 중요하다. 아무리 의도나 생각이 바르더라도 성과를 내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탁월하게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대통령을 모시고 10년 집권했지만 여전히 채워지지 않은 부족함이 매우 많다.

김윤태 :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일정한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가장 부족한 점으로 지적할 문제는 무엇인가?

정세균 : 가장 아픈 점은 그럼에도 비정규직이 양산된 것이다. 같은 사업장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 임금은 반도 못 받는 것이 말이 되나.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동료애가 나오고 신바람이 나겠나. 비정규직이 이 정도로 양산된 것은 두고두고 우리가 반성해야 한다. 비판해도 할 말이 없다.

무리한 것도 제도화한 것이 굉장히 많았지만 국제통화기금(IMF)과 미국이 정리해고 법제화 등 노동유연성 확보를 강제했다. 미국도 별별 압력을 다 넣었다. 결국 지금에 와선 잘못된 정책으로 다 판명 났지만, 당시엔 이렇게까지 걷잡을 수 없이 비정규직 숫자가 늘어날 줄은 몰랐다.

정부 통계로 500만 명이 넘고 민주노총 통계로는 850만 명이다. 우리가 경제 성장을 대체 왜 하나. 질 좋은 성장이 되어야 한다. 성장률이 중요한 게 아니고 내용이 중요하다. 고용 있는 성장이 되어야 하고 균형 있는 성장이 되어야 한다. 결국 이제는 우리가 주체적으로 감당해야 할 시대가 된 것 아닌가 싶다. 그때 우리는 일꾼의 하나로 일했지만 이제는 책임지고 결정하는 중심적 역할을 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의회권력 교체, 정권 교체 열망에 부응하지 못하면 책임자는 역사적 책임 져야"

▲ ⓒ프레시안(최형락)
김윤태
: 야권연대 얘기를 해 보자. 야권연대로 큰 성과를 냈던 지난해 6.2 지방선거 당시 당 대표였다. 그런데 4월 재보선과 2012년 총선을 앞두고 야권연대의 전망이 어둡다는 지적도 있다. 내년 총선과 대선도 야권연대가 필수적이라고 보나?

정세균 :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는 방법은 통합이다. 통합이 되면 연대고 후보 단일화고 필요 없다. 6.2 지방선거 때도 얘기했지만 통합이 최선이고 연대가 차선이고 분열은 최악이다. 그런데 통합만 추구하다가 만일 안 되면? 최선을 지향하지만 차선책도 준비해 나가는 것이 현명하다. 당장 4.27 재보선 전에는 100% 통합이 불가능한 것 아닌가. 그러니 재보선에서는 후보 단일화를 해야 한다.

내년 총선 전에는 어떤 식으로든 통합을 추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빨리 협상 테이블이 열려야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재앙이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상황은 고착화 된다. 정권교체, 의회권력을 교체하라는 국민의 열망은 하늘을 찌르는데 민주개혁 진영이 거기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이때의 정치 책임자는 이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한다.

김윤태 : 지난해 민주당 전당대회 이후 연대연합위원회가 만들어졌지만, 별로 성과가 없다는 지적이 있다. 지금 당장 민주당이 야권연대 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인가?

정세균 : 당 대표를 2년 넘게 하면서 많은 선거를 치러봤다. 공천도 해 보고 연대 테이블에도 나가 봤는데, 결국 중요한 것은 욕심을 부리지 않아야 한다. 버릴 때는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그로 인해 책임을 져야 하면 지면 된다. 그 정도의 결단성과 과감성이 없으면 잘 안 된다. 통합만 되면 사실 한나라당도 하나도 안 무섭다.

"비민주 통합, 억지로 결혼 못한다시간 없는데 속이 탄다"

김윤태 :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등은 민주당을 뺀 통합을 얘기한다. 진보진영 일각에서는 신자유주의로 기울었던 민주당의 과거를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세균 : 진보 정당들이 결혼 안 하겠다는데 억지로 할 수는 없다. 이웃으로만 살자는데 집을 합치자고 아무리 한다고 되겠나. 그런데 어쨌든 진보정당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빨리 했으면 좋겠다. 단일 대오를 만들겠다면 좋은데, 시간이 없다. 지켜보는 내가 속이 탄다. 가을 얘기가 나오던데 그렇게 되면 다 버린다. 국민들로부터 호된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김윤태 : 진보진영이 먼저 통합하고 그 후에 민주당과 통합이든 연대든 해야 하니 시간이 없다는 얘기인가?

정세균 : 당장 지금부터 통합 논의를 하면 최선이지만 그쪽에서 응하지 않고 있다. 국민참여당은 내가 재작년부터 창당하지 말라고 했는데 결국 만들었고, 작년에도 우리와 통합하자 그러는데 안 들어준다. 그러나 지금 식으로 일여다야(一與多野) 구도가 고착화되고 이 상황에서 각계약진하면 모처럼 만들어진 정권교체의 분위기가 살아날 수 없다.

김윤태 : 민주당이 먼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정규직 관련 입장을 명확히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정세균 : 그건 핑계다. 지난 지방선거에서도 정책 연합을 했고 거의 대부분을 합의했다. 비정규직 문제만 하더라도 생각은 같다. 그리고 방법론에서의 선명성보다 의회 권력을 잡는 것이 가장 빠른 길 아닌가. 선명성 주장이야 제일 쉽다. 이래서 안 한다고 하면 쉽지만 그래선 안 된다. 한미 FTA도 이명박 정권이 재협상을 잘못해서 민주당 당론이 지금 '비준 반대'다. 이명박 정부가 해결해 줬다. 우리 진영의 논란으로 보면 사실 차이라는 것이 거의 없다. 어느 신문을 보니 정동영 최고위원이 조승수 대표나 이정희 대표보다 더 왼쪽으로 분류돼 있더만.(웃음)

김윤태 : 가치 기준도 문제지만 규모의 격차도 문제다. 민주당이 당원 수도 많고 힘이 세니까 통합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정세균 :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고, 안 되는 이유를 찾다보면 역사적 죄인이 된다. 지방선거에서 본 것 아닌가. 연대를 하면 모두가 승자가 된다. 과거에 한 번도 기초자치단체장을 만들어내지 못했던 정당에서 단체장이 나왔다. 광역의원도 매우 어려운데 연대한 곳에서는 성공했다. 직접 수혜를 봤다. 연대에 참여했던 정당 가운데 혼자 손해 본 경우는 하나도 없다. 그런데도 학습 효과가 없다면 그건 바보다. 다같이 함께 죽자는 거냐.

김윤태 : 2012년 대선에서 연대를 통해 승리한다면 연합정부 구성도 할 수 있을까?

정세균 : 당연하다. 고양시가 그 사례 아닌가. 인천의 경우도 당시 버스가 10대나 와서 중앙당을 점거할 만큼 지역위원장들 반발이 심했다. 그런데 상대가 너무 과욕을 부리면 안 된다. 실행이 쉽지 않다. 서울과 경기가 (다른 정당이) 과욕을 부린 예다. 인천은 합의하자마자 가지고 와서 최고위원회에서 통과시켰는데 서울, 경기는 중간에 말이 새 나가니 도저히 감당이 안 됐다. 해당 지역위원장들도 총론은 찬성인데 우리 지역은 빼고 하라 그런다.

"지방선거 졌으면 정권교체 말도 못 했을 것…야권연대, 죽을 각오로 해야"

▲ ⓒ프레시안(최형락)
김윤태
: 총선은 지방선거와 달리 양보가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정세균 : 그래서 내가 마음이 급하다. 지난 전당대회에서 내가 '당 대표가 되면 1월까지 협상의 틀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지금은 협상 테이블도 열리지 않고 있다. 일단 만나야 연대든 통합이든 논의할 텐데…. 4.27 재보선보다 내년 총선이 훨씬 중요하다. 못 이기면 정권교체도 쉽지 않다. (야권연대를) 죽을 각오로 해야 한다.

김윤태 : 민주당 대표를 오랫동안 맡았다. 대표직 수행 시기를 지금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정세균 : 당 대표직을 하면서 오직 한 가지만 생각했다. 6.2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면 성공하는 대표가 되는 것이고 패배하면 실패하는 대표가 되는 것이라고. 그 이전에 받은 박수는 의미가 없다. 그래서 모든 의사 결정을 6.2 지방선거 승리에 맞췄다. 사람들은 '왜 자기 홍보는 하지 않냐'고 하는데 정말 그럴 여력이 없었다. 선거 준비도 해야지, 이명박 대통령과도 싸워야지, 정말 선당후사 했다. 결국 지방선거를 이겼다. 그랬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정권교체도 얘기하는 것이다. 지방선거에서 졌다면 완전히 자신감을 상실해 정권교체 열망조차 표출되지 못했다.

지금 책임을 맡고 있는 사람들은 1차 총선 승리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그러면서 '스타 프로젝트'를 해야 한다. 대선 후보가 될 사람을 양성하는 것이다. 적게는 5명에서 많게는 7~8명의 후보군이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줘야 한다.

김윤태 : 대선 후보로 나선다고 밝혔다. 내년 총선에서는 지역구를 서울로 옮기겠다고도 했다. 다음 대선에서 만일 뜻을 이룬다면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가 되면 좋겠는지 얘기해 달라.

정세균 : 나는 아직은 국민들의 지지를 별로 못 받고 있으니까.(웃음) 스스로 위안 한다면 지금까지 한 번도 국회의원만 한 적이 없다. 당직을 맡거나 정부에서 일하거나 늘 그랬다. 그러니 나는 상당히 좋은 일꾼 중에 한 사람이었음이 틀림없다는 자부심이 있다. 그리고 내가 맡았던 일은 항상 성과를 냈다. 성과를 내지 못해 쫓겨난 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이다.

과거에는 선당후사 정신으로 당을 위해 주어진 일을 충실히 하는 정치인이었다면 이제 정세균의 정치를 해야 될 때가 됐다. 내 정치를 해보고 싶다. 나도 꿈과 이상이 있다. 더불어 잘 사는 대한민국, 개천에서 용 나는 기회의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다. 물론 어떤 자리에 오르는 것보다 좋은 정치를 하는 것이 항상 더 우선이다. 앞으로도 그렇게 할 작정이다.

김윤태 : 긴 시간 얘기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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