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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부터 내라'면 복지 자체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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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돈부터 내라'면 복지 자체가 안 된다"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길]<6> 손학규 민주당 대표

복지가 대세다. 무상급식 논란이 촉발시킨 '복지' 담론은 국민들이 낸 세금의 쓰임새와 국가재정, 나아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둘러싼 백가쟁명의 각축장이 됐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코앞에 둔 정치세력들에게는 비껴갈 수 없는 소용돌이인 셈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신년연설에서 "한정된 국가재정으로 무차별적 시혜를 베풀고 환심을 사려는 복지 포퓰리즘은 문제의 해결책이 결코 아니다"고 선을 그으면서 논란은 한층 확산됐다. 감세, 작은 정부, 시장 만능주의의 경제정책을 신념으로 내면화시킨 보수 정부로서는 복지라는 말 자체가 달갑지 않음이다. 하지만 복지 소용돌이는 여권의 미래권력들 사이에 균열을 냈다. '복지 포퓰리즘'을 비판하는 오세훈 서울시장,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달리 박근혜 의원은 '한국형 복지'를 내걸고 이슈 선점에 속도를 붙였다.

반면 복지 담론은 야권 전반을 아우르는 우산이다. '뭉쳐야 산다'는 지상명제를 받아든 야권에선 연대·연합의 질서로 '복지동맹'을 발전시키려는 움직임이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원론적 교감만 오갈 뿐 연대·연합의 방법론에서는 동상이몽이다. '복지국가 정치동맹'은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프레시안>은 '복지국가 정치포럼'과 함께 야권의 유력 정치인들 및 학계·시민사회 인사들을 두루 만나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길'을 모색한다. 김윤태 고려대 교수가 진행하는 연쇄 인터뷰의 여섯 번째 손님은 손학규 민주당 대표다. <편집자>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길]<1> "복지국가 단일정당 못 만들면 한나라당에 필패한다"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길]<2> "작은 차이 때문에 'MB후예'의 재집권을 용인할텐가?"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길]<3> "증세 없는 보편적 복지는 허구다"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길]<4> "장래희망이 '기초생활수급권자'라는 아이에게 우리는?"

[복지국가 정치동맹의 길]<5> "2012년 민주진보정부, 아! 이건 된다"
▲ 손학규 민주당 대표. ⓒ프레시안(최형락)

"지금 증세는 필요 없다"고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분명히 말했다. 이는 정책적 판단이기도 하고, 전략적 판단이기도 하다. 4대강 사업 등 다른 곳에 쓰이는 돈을 돌려 충분히 가능하다는 주장이면서 동시에 증세 논란이 복지 정책을 펴보이기도 전에 말려 죽일 수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된 얘기다.

손학규 대표는 증세 주장에 앞서 "이 복지 제도가 나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 검증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 정책이란 정권 교체 이후 5년에 걸쳐 완성되어 가는 것이데 "처음부터 국민들에게 '돈 부터 내라'고 하면 복지 자체가 안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집권 이후를 가정한 장기적인 그의 '플랜' 속에서도 증세 얘기는 한참 뒤에서야 나왔다. 손학규 대표가 내놓은 '창조형 복지국가'는 "단순히 (복지에) 돈을 쓰는 것이 아니라 성장과 선순환을 이루는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는"만큼, 경제성장에 따라 세금도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손 대표는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등 당내에서부터 나오는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주장에 대해 불편함을 토로하지도 않았다. "민주당이 독재 정당도 아니고 1인 정당도 아닌데 문제제기는 당연하다"고 했다. "다양성은 민주주의의 힘"이라며 "활발한 토론을 기대한다"는 그에게서는 여유가 느껴졌다.

그의 신중한 정치 스타일은 야권연대에 대한 생각에서도 드러났다. 그는 "한국 사회가 양대 정당 체제로 가야하는 것은 틀림없다"면서도 "그런데 지금 바로 어떻게 한다는 것은 좀 성급하다"고 선을 그었다.

4월 재보궐 선거가 '미니 총선' 급으로 커지면서 더 강해지고 있는, "민주당의 특정 지역 양보" 요구를 놓고도 그는 "어떤 방법으로 서로 힘을 합칠 것인지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될 것으로 기대한다"는 원칙적인 답변만을 내놓았다.

다음은 지난달 31일 서울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진행된 손학규 대표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특권 물리치는 정의란 이름의 창과 서민 보호하는 복지라는 방패가 시대정신"

김윤태 : 민주당 대표가 된 이후 예상치 못하게 거리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 연말 국회의 날치기 통과 이후에도 전국을 다녔고 최근에는 '100일 희망대장정'을 벌이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을 만날 텐데 직접 본 민심은 어떤지 듣고 싶다.

손학규 : 무엇보다 살기가 참 어렵다. 그러다 보니 정치에 대한 원망 같은 것도 있다. 대놓고 얘기는 안 하지만, 정치가 무엇을 했냐는 질책이다. 국민들을 만나면 먼저 우리가 생각하는 생활 속 정책을 내놓고 그 다음에 물어본다. 국가가 국민에게 무엇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나라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다양한 얘기들이 나온다. 지역 문제 얘기도 많고 아무래도 자기 먹고 사는 문제 얘기도 있다. 소상공인 자영업자는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피해를 막아달라고 호소하고 농민들은 농산물 가격을 보장해 달라고 말한다. 학부모들은 역시 보육에 관심이 많다.

우리 사회가 지금 상당히 살기 어렵고 빈곤층이 늘어나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상대적 격차가 특히 크고 특권에 대한 반발도 크다. 특권과 반칙을 없애는 사회, 정의로운 사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적 약자와 서민을 보호하고 중산층을 튼튼히 하는 복지정책이 적극적으로 필요한 때다.

특권을 물리치는 정의라는 이름의 창과 서민을 보호하는 복지라는 이름의 방패가 지금 우리의 시대정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김윤태 : 대표로 취임한 이후 정부여당과 강한 대립구도를 형성하고 거리에서 투쟁하면서 강한 야당 이미지를 이끌고 있다. 손 대표 개인으로 놓고 보면 이런 과정을 통해 민주당 안에 상당히 뿌리를 내렸다는 평가도 있다.

▲ ⓒ프레시안(최형락)
손학규
: 좋게 평가해주시니 고맙다. 야당의 첫째 과제는 분명히 이명박 정부의 허상을 벗겨내는 일이었다. 지난해 국회 예산안 날치기 통과에서 이명박 정부와 여당은 그 본색을 제대로 드러낸 것 아닌가? 민주주의 안 하겠다는 것이다. 의회도 필요 없다는 얘기다. 독재 본색을 드러냈다.

더욱이 통과된 예산안의 내용을 보니 완전히 '반(反)서민'이었다. 어려운 사람을 위한 예산은 다 빼버렸다. 결식아동을 위한 방학 중 급식비 예산, 저소득층 영유아 예방접종 예산, 육아수당 예산, 그리고 노인 예산을 다 깎았다. 여당이 정치적으로 챙기려 했던 것조차 챙기지 못한 측면도 있지만, 이는 이 정권이 얼마나 서민과 복지에 소홀히 하고 등한시하는지를 분명히 드러낸 예였다.

민주당은 그 실체를 알리고 우리가 잃어버린 예산을 찾아오겠다고 캠페인을 벌인 것이다. 그것이 국민들로부터 상당한 관심과 호응을 받았다고 평가한다. 특히 젊은 여성, 젊은 학생이 서명에 많이 참여했다. 아무래도 자기 교육 문제와 보육 문제가 연관돼 있으니까 그랬을 것이다. 지난해 12월 8일부터 연말까지는 이명박 정부의 독재와 반서민 본질을 보여주는 민주대장정이었다.

올해 들어서는 대안을 얘기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을 심판하고 나면 그 뒤엔 어떻게 할 것이냐? 민주당이 나서야겠다. 우리가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국민들로부터 그것을 구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희망대장정이다. 물론 우리가 준비한 5대 정책 30대 과제도 설명을 하지만 각 지역에서 만나는 국민들로부터 들은 얘기를 정책화하기 위해 기록하고 있다. 정책위 위원장 및 부위원장, 전문위원들이 각각 들은 얘기를 기록하고 나도 나대로 메모하고 있다. 여기서 걸러지는 정책들이 앞으로 민주당의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정책이 될 것이다.

일례로 기업형 슈퍼마켓(SSM)을 규제하기 위한 유통법과 상생법만 해도 그렇다. 현재 법에서는 전통시장에서부터 500m 이내에는 허가를 내주지 못하도록 돼 있는데 이걸로는 안 된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500m면 성인 걸음으로 10분도 안 걸린다는 것이다. 최소 2km 정도로 반경을 넓혀야 한다는 얘기들이 있다. 아예 도심권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는 요구도 있고 SSM의 영업시간이나 품목을 제한해 달라는 구체적 요구도 있다.

"복지=포퓰리즘이라는 오세훈, 시대에 뒤떨어졌고 시대를 역행하는 사람"

김윤태 : 희망대장정도 비슷한 맥락에 있는 것으로 해석되는데, 최근에는 복지가 화두다. 민주당이 복지정책을 내놓으면서 이슈를 선점하는 분위기다. '복지 포퓰리즘'이라는 한나라당의 공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손학규 : 시대의 흐름을 모르는 것이다. 시대는 분명히 복지의 시대로 가고 있다. 1980년대는 민주화가 화두였다면 1990년대와 2000년대의 화두는 평화였다. 비록 지금 후퇴하고 있지만. 그리고 이제는 그동안 경제발전 과정에서 누적돼 온 문제들이 드러나고 있다. 사회적 격차가 심해지고 단순히 경제적 격차 뿐 아니라 사회, 정치적 특권과도 결합돼 있다. 차별과 특권이 판치고 반칙이 성행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이를 물리쳐야 한다는 정의에 대한 요구다.

오죽하면 이명박 정부가 '공정 사회'를 얘기하겠나. 그것이 사회적 현상이자 요구라는 것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불공정하고 불공평한 사회라는 것을 이명박 정권도 보고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가 베스트셀러가 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차별, 특권, 불의가 판치면서 어려운 사람들은 점점 더 어려워지는데, 이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이 바로 사회 안전망이다. 그것이 복지 정책으로 나타난다. 지금까지의 복지는 기본적으로 생계형 복지였다. 최저 생계비를 보장하는 수준이다. 거기서 한 단계 높여서 나아가는 것이 보편적 복지다.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뿐만 아니라 전체에게 복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단적인 예가 바로 무상급식이고 보육에 대한 관심이다. 우리 어릴 때는 유치원 가는 건 꿈도 못 꿨지만 지금은 모든 아이들이 유치원에 간다. 보통 5세면 유치원을 보내는데 형편이 어려워 못 가는 애들이 있으니 그 아이들을 국가가 돌봐 주는 것이 바로 5세 아동에 대한 무상보육이다. 그런데 그러면 아이를 낳아서부터 4세까지는 어쩌란 말이냐? 사회가 돌봐줘야 한다고 해서 0세에서 5세까지 모두 지원해주겠다는 것이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내는 아이들은 그 비용을 지원해주고, 안 보내는 아이들은 육아수당을 줘서 국가가 뒷바라지를 해주자. 아이 낳아서 기르는 데 걱정이 없어야 저출산 문제도 해결된다. 여성의 사회 활동도 늘어난다.

김윤태 : 무상급식, 보육은 보편적 복지로 제공해야 한다는 것인가?

손학규 : 보편적 복지를 대단하게 생각할 것 없다.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요구가 밀려오는 것이다. 흐름이다. 그 흐름을 제대로 받는 것이 바로 보편적 복지다.

여당에서 복지 포퓰리즘 운운하지만 오는 3월이면 이미 전국 초등학교의 80%가 무상급식을 실시하게 된다. 그런데도 아직 서울시장은 안 하겠다고 버티고 있다. 과천 같이 잘 사는 도시에서 가장 먼저 무상급식을 시작했다. 그런데도 부자에게 공짜 밥을 먹인다고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시대 흐름을 거스르는 일이다. 한 마디로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고, 시대를 읽지 못하는 사람이다.

"민주당 내 증세논란, 1인 정당 아닌데 당연하다"

▲ ⓒ프레시안(최형락)
김윤태
: 이미 지난해 10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강령에 '보편적 복지'를 추가했다. 러나 민주당 내부에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3+1 시리즈를 내놓으면서 비록 복지 주도권은 쥐고 있지만, 당내 이견이 만만치 않아 보이는 것이다. 특히 증세를 놓고 의견이 대립하는 것으로 보인다.

손학규 : 당연하다. 복지는 돈인데 그러면 그 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이냐. 당연히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민주당은 독재 정당도 아니고 1인 정당도 아니다. 당의 정책위에서 복지 정책이 나오면 재원 마련 대책을 묻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이 무슨 이견이라 할 만큼 우리가 획일적인 정당이 아니다. 다양성은 민주주의의 힘이고 민주당의 힘이다. 최고위원회의에서도 활발한 토론을 기대한다고 얘기했다.

김윤태 : 민주당 '재원조달방안 기획단'이 30일 기자회견을 가졌다. 핵심 내용은 추가 증세 없이 보편적 복지를 확대하겠다는 것이었다. 손학규 대표도 이 자리에 참석해 "이명박 정부의 잘못된 부자감세 정책 등으로 인해 왜곡된 세제를 정상화시키고, 세정개혁을 통해 조세부담률도 적정화하겠다"고 말했다. 증세는 없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 것인가?

손학규 : 완성된 보고는 아니었다. 1차 보고였다. 사실 복지 정책은 끊임없이 수정하고 보완해 나가야 한다. 2012년 정권 교체를 이룩하면 2013년 2월 25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하겠지만 그 즉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5년 임기 동안 완성시킬 목표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처음부터 국민들에게 '돈 부터 내라'고 하면, 복지 자체가 안 될 수 있다. 돈 내겠다는 국민이 어디 있나. 세금은 어차피 내는 것이지만 이 복지 제도가 나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 검증되어야 한다. 그러니 1차적으로는 지금 있는 재정구조와 지출구조를 바꿔 절약하고 부자들에게 감세해준 것을 철회해서 원래 받을 세금을 받고, 비과세 감면 없앨 것부터 없애면 된다. 그렇게 되면 지금 재원 가지고도 우선은 충분히 해 나갈 수 있다.

복지 정책을 늘려가면서 국민들의 동의도 얻고 사회적 합의도 해야 한다. 이제 이만큼 복지 수준이 높아졌으니 이제는 세금을 좀 더 내야하지 않겠냐고 설득해야 한다.

또 사실 경제성장이 되면 예산은 매년 늘어난다. 1년에 5%씩 성장한다고 하면 (현재 예산) 300조의 5%, 15조가 늘어나는 것이다. 3년 후에는 재정이 약 400조 될 것이고 그 중 5%면 20조다. 여기의 3분의 1만 쓰더라도 예산이 7조 늘어나는 것이다.

김윤태 : 이번에 민주당이 내세운 복지모델의 특징은? '창조형 복지국가'란 무엇인가?

손학규 : 복지가 단순히 돈을 쓰는 것만이 아니라 성장과 선순환을 이루는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다. 과거와 같이 토목, 건설에서 움직이는 돈과 달리 복지를 통해 만들어지는 일자리는 서민 경제에 직접 도움이 된다. 복지가 성장과 연결되고, 이는 혁신과 창조, 창의를 바탕으로 한 역동적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가 '창조형 복지국가'라고 정의를 내렸다.

복지국가라고 해서 경제 발전에 관심을 안 쏟는다거나 첨단 산업이나 R&D(연구개발)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어림없는 얘기다. 당연히 그것도 해야 한다. 다양한 전략을 구상할 것이다. 창조형 복지국가는 지속가능한 모델이다.

"증세, 지금은 필요 없다…정책 시행이 먼저, 증세는 국민 동의 필요"

김윤태 : 그럼에도 기획단은 새로운 세목을 신설하거나 대폭적인 증세는 없다고 분명히 했다. 정동영 최고위원이 주장하고 있는 부유세는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입장을 확인한 것이다.

손학규 :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재정 구조 개혁만으로도 가능하다. 4대강 사업으로 감축된 예산의 많은 부분이 복지 예산이다. 그 예산을 돌려 보충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쓸데없이 책정된 예산이 있었다면 복지에 투자하겠다. 그리고 부자감세 철회만으로도 연 18조가 늘어난다. 다 걷을 수는 없다 하더라도 그 중 5조 만 갖다 놔도, 비과세 감면이나 건강보험 개혁을 통해 지금 당장 최소한 20조 이상의 재원이 마련된다. 2~3년 동안은 그 돈으로 충분히 복지를 늘릴 수 있다.

2~3년 동안 복지 정책을 실시해 본 후에 돈이 더 필요하다는 객관적 인식이 확산되면 그 세원은 마련해야 한다. 더 발전되면 더 내는 사람이 더 받고 덜 내는 사람이 덜 받는 식으로도 나갈 수 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우선 보편적 복지의 기본 모델부터 마련하는 것이다. 가장 필요한 무상교육, 무상보육, 무상의료에 덧붙여 일자리 복지와 주거 복지 안부터 마련하자는 얘기다.

김윤태 : 사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복지 재정은 많이 늘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심화됐다. 민주정부 10년의 복지 정책을 평가해 달라.

손학규 : 기본을 만들었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생산적 복지'라는 개념과 기초생활보장제도를 통해 복지가 단순히 소비가 아니며 흔히들 염려하는 도덕적 해이를 줄일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됐다. 기초와 방향을 잡은 것이다. 참여정부도 노인 장기요양보험을 도입했다. 상당히 선진적인 복지제도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모두 후퇴했다. 더 발전시키기는커녕 기업 프렌들리다, 747 경제성장이다 하면서 말로만 친서민 정책을 폈다. 우리가 주장했던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양당이 합의했던 것조차 지키지 못했다.

김윤태 : 김근태 고문이나 정동영 최고위원은 스웨덴 모델을 얘기한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한국형 복지를 말하고 있다. 손 대표가 얘기한 '창조형 복지국가'가 참고한 특정 국가의 모델이 있나?

손학규 : 좋은 것은 취하고 부작용은 피해 나가면 된다. 대한민국 국민이 잘 나라를 만드는 방향이라면 그것이 길이다. 반칙과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들고 기초생활 보호는 한 단계 높여 더 많은 수혜자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경제력이 또 뒷받침 되어야 한다. 혁신과 창의가 중요한 이유다. 우리가 추구하려는 것은 지속가능한 복지다.

"야권 연대와 통합, 지금 바로 어떻게 하자는 건 성급하다"

▲ ⓒ프레시안(최형락)
김윤태
: 이제 좀 다른 얘기를 해보자. 복지와 함께 최근 정치권, 정확히 야권의 화두는 연합정치이다. '빅텐트론'(김기식), '100만 민란'(문성근) 등 다양한 주장이 쏟아지고 있다. 수준도 야권 단일정당부터 선거 연대, 즉 후보 단일화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이런 야권통합과 선거연합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손학규 : 좋은 현상이다. 한국 사회가 크게 양대 정당 체제로 가야하는 것은 틀림없다. 그런 맥락에서 범 민주진보 진영이 하나로 돼야 한다. '하나'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을 것이다. 연대도 있고 연합도 있고 통합도 있다. 그런데 지금 바로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은 좀 성급한 주장이다.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큰 뜻에 동의하면 된다.

당장 민주당이 정치적 통합을 전면에 내세우면 다른 정당들이 그 뜻을 순수하게 받아들일까. 우리 잡아먹으려는 것 아니냐고 의심할 것이다. 연대와 통합을 위한 민주당 특별위원회를 전당대회 직후 바로 준비했으나 좀 천천히 띄운 것도 그래서다. 대신 구체적이고 실무적인 차원의 연대는 이어가자고 했다. 대표적인 것이 4대강 사업 반대 운동이다. 노동 문제도 많은 연대가 이뤄지고 있다. KEC, 현대차, 홍익대 등 실무 단위에서 그렇게 연대 연합이 이뤄지다보면 자연스럽게 정치적 연대로 발전해나갈 것이다.

김윤태 : 야권연대 움직임 가운데는 민주당을 제외하고 통합하자는 흐름도 있다. 이른바 '비민주 진보대통합'인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손학규 : 다양한 조합이 있을 수 있는 것 아닌가. 거기에 안 들어간다고 적대적이 되나? 그렇지 않다.

김윤태 : 큰 틀에서 통합이 어렵다면 후보 단일화나 정책 연합이라도 할 수 있다는 뜻인가?

손학규 : 모든 것을 다 열어놓고 있다. '이런 게 어렵다면'이라는 전제를 할 것도 없다. 필요하고 가능한 건 다 취하자는 얘기다.

김윤태 : 이분법적인 구분이 무의미할 순 있지만 연대와 통합 가운데 손 대표가 선호하는 것을 꼽아본다면?

손학규 : 그렇게 분리해서 얘기하는 것은 전혀 과학적이지 못하다. 연대가 통합으로 발전할 수도 있고, 통합을 하더라도 아무 것도 못 할 수도 있다. 통합만 외친다고 능사가 아니다.

김윤태 :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이 민주당과의 통합을 꺼리는 것은 이런 이유도 있다. 두 당의 내부에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폈던 정부라는 비판이 있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한 반성이 먼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손학규 : 그것은 그 당시의 세계적 흐름이었다.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는 없었다.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여건이었던 것이다. 그 점을 생각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도 주어진 여건 속에서 어떻게든 경제 활력을 기하기 위해 노력했다. 두 정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복지를 확대한 것 아닌가.

김윤태 : 문성근 '100만 민란 국민의 명령' 대표는 진보정당과 민주당의 통합이 어려운 이유 가운데 정책적 차이도 있지만 그보다 조직의 문제가 크다고 분석했다. 공천 등 민주적이지 않은 당 운영 원리가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혁신 방향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손학규 : 당 혁신은 현재 제도개혁특위가 움직이고 있는 만큼 내가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민주적 방식으로 최대한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김윤태 : 당장 4월에 재보궐 선거가 있다. 그 전에 연대나 통합이 가시화되거나 진일보한 변화가 드러날 수 있을까?

손학규 : 충분히 가능하다. 어떤 방법으로 서로 힘을 합칠 것인지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명박 정부로부터 민심 떠난 것 분명하나, 우리가 어떻게 담을지는 남은 문제"

김윤태 : 내년에는 총선과 대선이 있다. 일부 전문가의 의견에 따르면 지난 지방선거에서 야당이 승리하면서, 다음 선거 구도에서도 야당이 유리하지 않느냐는 전망도 있는데, 어떻게 보는가.

손학규 : 쉽지 않다. 오히려 한나라당이 엄살을 피우고 있지 않나. 그러나 민심이 급격하게 이명박 정부로부터 이반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서민 경제가 워낙 엉망이고 빈부격차도 더 커지고 있다. 구제역으로 농촌은 인심까지 흉흉하게 만들었다. 그러니 민심이 좋을 수가 없다.

거기에 전에 없던 안보불안까지 생겨났다. 보수 정권이 안보 태세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북한과 좋은 관계를 맺어 불안과 긴장 요소를 없애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남북관계는 역행하고 있다.

민심의 이반은 분명한데 이것을 우리가 어떻게 주워 담을지는 아직 남은 문제다. 그동안 우리가 꾸준히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고 지적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우리가 만들 정권과 사회에 대한 그림을 내놓고 있다. 동시에 당 체제도 안정적으로 자리 잡아 가면서 국민들이 민주당에 거는 기대가 상당히 높아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 그 기대를 앞으로 선거에 접목시키고 표로 연결시켜야 한다. 충분히 가능성은 있다.

▲ ⓒ프레시안(최형락)

"야권 대선 후보의 낮은 지지율, 본격적인 선거 구도 되면 달라질 것"

김윤태 : 한편으로는 대선 주자, 즉 인물을 놓고 보면 상대적으로 야권이 부진하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워낙 지지율이 높다 보니 '박근혜 대세론'도 나온다. 반면 민주진보진영에서 거론되는 후보의 지지율은 낮다.

손학규 : 오히려 그것이 좋은 것 아닌가? 우리가 여당처럼 1인 독주가 된다고 해도 별로 안정되지 못할 것이다. 그 부분은 크게 걱정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민주당이 열심히 갈고 닦아 신뢰를 주는 정책을 제시하면 된다. 그렇게 본격적인 선거 구도가 되면 달라질 것이다. 이미 범 여권 후보 대 범 야권 후보, 또는 범 보수 후보와 범 진보 후도의 단일 구도가 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여론조사가 나오고 있다.

김윤태 : 마지막 질문이다. 다음 선거에서 민주진보세력이 집권을 한다면 보편적 복지라는 정책을 넘어 대한민국을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겠다는 큰 그림과 비전이 있을텐데, 말해 달라.

손학규 : 보편적 복지는 단순히 복지 정책의 변화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이다.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인식의 변화, 경제와 재정 구조의 변화, 나아가 사회 구조의 변화다.

인식의 변화란 먹을 것 없는 사람을 먹여주고 재워준다는 최소 생활 보장 개념에서부터 더 나아가는 것이다. 물질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에서 동등한 인격적 대우를 보장하는 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새로운 사회다.

무상급식이 대표적인 예다. 무상급식 아니더라도 어려운 집 아이들은 학교에서 점심을 먹는다. 그러나 지금 제도로는 어려운 집 아이들은 가난 증명서를 떼어 가야 한다. 그러니 부잣집 아이들이 가난한 집 아이들을 깔보는 일도 발생한다. 어려서부터 인격적 층위가 만들어지는 사회가 된다. 그런 것을 없애자는 얘기다. 모든 인격체는 동등하다. 사람은 태어나서부터 동등하다. 그것을 실현하는 사회가 새로운 사회다.

두 번째로 지금까지는 물질 위주, 외형적 성장 위주로 경제와 재정을 운영했다면 이제는 사람 위주, 질적 성장을 추구하자는 얘기다. 개발 경제에서는 사회간접자본(SOC) 투자가 가장 우선했다면 이제 사람에 대한 투자를 하자. 대기업 위주의 지원보다는 중소기업에 적극 투자하고 사회적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간병 서비스나 보육이 대표적인 예다. 경제와 재정의 구조가 변화해야 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얼마든지 변동이 가능한 사회가 온다. 차별과 반칙이 판치고 빈부가 대물림 되는 사회가 아니라 '소셜 모빌러티(사회이동)'가 가능한 활발한 사회가 돼야 한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새로운 사회, 함께 잘 사는 사회다. 보편적 복지는 그런 사회로 가는 정책 방향이 되야 한다.

내년에 반드시 정권 교체를 이루겠다는 것은 야당 하려니까 힘들어서가 아니다. 우리 한 풀이 좀 하자는 것도 아니고, 세를 펴자는 차원도 아니다.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비전이고 요구다.

김윤태 : 긴 시간 얘기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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