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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에게 '대기업 때리기'는 '꽃놀이패'?

여권 권력다툼 '쑥' 들어가…실패해도 책임은 '대기업'에

'비즈니스 프렌들리'(친기업)를 경제정책의 근간으로 내세웠던 이명박 정부는 강만수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이 물러난 이래로 정체성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 <조선일보>에 "차라리 강만수가 그립다"는 푸념이 섞인 칼럼이 등장하는 게 이런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 중 하나다.

이명박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미디어법 날치기 통과로 이명박 대통령의 독단적 국정운영에 대한 비난 여론이 쏟아질 때였던 지난해 6월 '친서민' 행보를 본격화했었다. 그 결과로 나온 정책이 보금자리주택, 취업 후 등록금 상환제, 미소금융 등이었다. 부동산, 교육비, 은행 대출 등 대다수 서민들의 삶에 맞닿아 있는 부분들을 건드리는 정책들이었다. 또 강남 집값 하락 등 일정정도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부자 정권'이라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을 걷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MB 휴가 중에도 계속되는 여권의 '대기업 때리기'

그러다 6.2 지방선거 패배를 계기로 이 대통령은 '친서민' 행보에 다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애용하는 이벤트인 '시장 방문'도 등장했다. 오뎅, 떡볶이, 뻥튀기 등에 이어 '만두'를 먹는 장면도 연출했다. 하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지난달 22일 대기업계열 캐피탈사의 30%대 고금리에 대한 비판을 시작으로 '대기업 때리기'에 본격적인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했다.

그 이후 열흘 동안 나온 이 대통령의 대기업 관련 발언을 보면 숨이 가쁠 정도다. 25일 <조선일보>는 이 대통령이 "당신들 공무원 생활하다가 나와서 삼성이나 포스코 같은 대기업에 가서 자리 잡으려고 (대기업 신경 써주는) 사람들이 솔직히 있는 거 아닌가"라며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침해하는 것은 없는지 똑바로 살피라"고까지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 대통령은 28일 국무회의에서도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으며, 29일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는 "전경련도 대기업의 이익만 옹호하려는 자세를 가져선 곤란하다"며 전경련을 정조준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휴가를 떠나면서도 "선진일류국가는 돈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라 문화, 인격, 윤리와 같은 가치가 동반돼야 한다. 공직자는 공직자 윤리를, 기업인은 기업인 윤리를 지켜야 선진일류국가가 될 수 있다"고 한마디 남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 이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청와대 확대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선진일류국가는 돈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다"며 '대기업 때리기' 연장선상의 발언을 남기고 휴가를 떠났다. ⓒ연합

지난 주말부터 이 대통령은 일주일간 여름휴가를 떠났지만, 여권발 '대기업 때리기'는 계속되고 있다. 2일 임태희 대통령실장은 "거시경제 지표는 나아지고 있지만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들만의 잔치'가 아니냐는 불만도 갖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어떻게 이 문제의 해결책을 찾을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간 민주당 등 야권의 비슷한 주장에 '편 가르기'라고 맹비난해오던 보수주의 정권이 자발적인 '편 가르기'를 하고 나선 셈이다.

한나라당 홍준표 서민정책특위 위원장은 한발 더 나아갔다. 홍 위원장은 2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공정거래위원회에 대기업들의 부당행위를 추적하기 위한 계좌추적권을 부여하는 문제에 대해 "대통령께서 하신 말씀은 대기업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기업운영에 반영시켜 달라는 뜻인데 만약 대기업이 이를 거부한다면 당에서는 그것을 구현할 수 있는 제도적인 뒷받침을 만들 수밖에 없겠다"며 "공정거래위의 권한을 그렇게 바꿔줄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홍 위원장은 이어 "대학등록금도 서민 자제는 면제를 하고 부유층이 좀 더 부담하게 하자는 서민자제등록금 차등법안제도를 제출해놨는데 그것도 시행이 되면 정부예산이 추가로 투입이 안 돼도 사회제도가 바뀌면서 서민정책이 수립되는 경우도 생긴다"며 대학등록금 차등제의 도입 가능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시장에 권력이 넘어갔다? 삼성에나 해당되는 얘기"

대기업 건설회사 회장 출신이라서 이 대통령의 '대기업 때리기'는 의외인 측면도 있지만 타깃이 명확하다. 대기업들의 약한 고리가 어디인지 잘 알고 있다는 얘기다. 아파트를 통해 폭리를 취하는 구조를 누구보다 훤히 꿰뚫고 있기 때문에 보금자리정책을 시행했고, 건설사들의 아우성을 억누를 수 있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번에 캐피탈사의 고금리, 대기업의 중소기업 착취구조 등을 건드리고 나선 것도 대기업들의 가장 약한 고리를 건드렸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대기업의 전횡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대통령의 발언에 대기업들이 불만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면 대응하기는 어렵다. 전경련이 이 대통령 발언에 불만을 제기했다가, 오히려 "전경련은 대기업의 이익만 옹호해서는 안 된다"는 질타를 당했다. '대기업 때리기'에 있어 여론은 이 대통령 편이다.

단순히 여론만이 아니다. 대검 중수부, 공정거래위, 국세청 등 대기업과의 싸움에서 이 대통령이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은 무궁무진하다. 재계가 "도대체 대통령의 진심을 모르겠다"며 불안에 떨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아무리 시장이 권력에 넘어갔다고 한들 그건 삼성에나 국한된 얘기"라면서 "정부가 작정을 하고 덤비면 이런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대기업은 드물다"고 말했다.

'힘 보여주기', 관건은 '힘'

'대기업 때리기' 행보를 본격화하기 직전, 이명박 정부는 '벌써 레임덕에 빠진 게 아니냐'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힘 빠진 모습이었다. 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로 야기된 여권 내 치열한 권력 암투, 강용석 의원의 성희롱 파문, 리비아와 국교 단절 위기 등 정권 말기 현상이 집권 2년반 만에 표출됐다.

내분을 수습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가 '외부의 적'을 찾는 것이다. 외부의 적이 강력하면 할수록 더 효과가 뛰어나다. 대기업은 그런 면에서 최상의 외부의 적이었다. 천안함 사태로 북한이 '주적'이 되는 정치적 매커니즘의 동원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이 확인됐고, '노무현'이라는 핵심이 빠진 야권은 공격해봤자 큰 세 과시도 아니다.

물론 이명박 정부 입장에서 대기업은 '집토끼'이기는 하지만 공격 대상을 최대한 좁히면 지지세력의 분화로 인한 손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또 아직까지 '대기업 때리기'가 '말'로 그치고 있다는 점에서 얼마나 제도화될지는 미지수다.

야당들에서 "진정성이 떨어진다"고 공격하고 나선 것도 이런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2일 "이명박 정부가 입으로는 친서민을 외치면서 그와 상반된 모습으로 일관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작년 연말의 '친서민 떡볶이'처럼 이번에도 변죽만 울리다가 끝날 것이라고 보는 국민이 더 많다"고 주장했다.

우위영 민노당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이명박 정부가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한 최소한의 정책들로 △실질소득의 즉각적인 감소를 가져올 공공요금, 준공공요금(KBS수신료 등) 인상 포기 △ 불공정 하도급 문제를 해결할 실질적인 제도 개선과 재벌유통업체를 규제하기 위한 SSM 관련 법안 처리 △'부자 감세'의 원위치와 4대강 사업 등 낭비적 대형국책사업의 전면 재검토 △수출 대기업에 엄청난 보조금을 주면서 내수를 위축시키고 있는 고환율 정책의 포기 등을 제시했다.

이명박 정부 입장에서 이런 야당의 비판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은 시장주의자들의 반발이다. 결과적으로 이 '게임'의 본질은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힘겨루기'다. 대기업들이 지금은 묵묵히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휘두르는 뭇매를 맞고 있지만, 실질적인 정책의 변화로까지 이어질 경우 가만히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홍준표 위원장이 "자유시장주의자"라고 비난한 이한구 의원은 2일 CBS 라디오 <이종훈의 뉴스쇼>에 출연해 '"기업들은 미래에 투자를 해서 이익이 나올 거냐 안 나올 거냐를 갖고 걱정을 해야지, 이익이 지금 생겼다고 해서 투자를 해 실패하면 결국은 국민부담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며 "왜 투자 안 하고, 고용 안 하느냐는 식의 시비는 심각한 문제"라고 정부의 '대기업 때리기'에 대해 비판했다. 앞서 이 의원은 "대기업 입장에서 정권은 유한한데 사업은 무한하다"며 이명박 정부의 압박에 대기업들이 순순히 응하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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