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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김정은 '헤드 게임'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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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김정은 '헤드 게임'이 시작됐다

[정욱식 칼럼] 60년 꼬인 실타래, '이명박근혜' 이후는?

'거대한 럭비공'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을 코앞에 두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트럼프의 발언도 오락가락하고 있고, 그가 지명한 외교안보팀과도 엇박자가 난다. 이게 불협화음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의도적인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분명한 것은 트럼프가 '헤드 게임(head game)'을 즐기고 있다는 점이다. 헤드 게임은 상대방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두뇌적·심리적 영향을 미치려는 전술을 의미한다.

주목할 점은 트럼프의 헤드 게임의 대상이 중국과 같은 경쟁자나 북한과 이란과 같은 적대국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서구 문명과 패권의 상징이었던 대서양 동맹마저 흔드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동아시아 패권의 가장 중요한 두 축인 미일 동맹과 한미동맹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는다. 반면 미국의 기득권 세력(establishment)이 하나같이 가장 큰 위협으로 간주하는 러시아에 대해서는 손을 내밀려고 한다.

이게 누구한테는 기회로 인식될 것이고, 누구한테는 도전으로 간주되겠지만, 혼란스럽기는 매한가지일 것이다. 트럼프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도 힘들고 설사 파악하더라도 그의 요구 사항을 쉽게 들어줄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무게 중심을 잡고 있거나 국력이 만만치 않은 나라들은 트럼프의 헤드 게임에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세계화의 기수를 자처한 미국이 보호무역주의로 돌아설 조짐을 보이자 미국의 빈자리를 자신이 일정 부분 채울 수 있다고 호언한다. 독일과 프랑스와 같은 유럽의 주요 국가들은 트럼프의 엄포에 "유럽의 일은 유럽이 알아서 해결하겠다"며 응수한다.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은 가장 먼저 트럼프에게 달려가 '헤드 게임'의 여지를 최대한 줄이려고 한다.

이러한 와중에 러시아의 몸값이 치솟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서방 국가들의 경제제재와 압박에 직면해 있었다가 이란 핵 협상 타결 및 시리아 사태 개입을 계기로 중동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확보했다. 중국과의 관계는 '사실상의 동맹'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밀착되었다. 이러한 와중에 일본도 러브콜을 보내고 있고, 트럼프는 자국 내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다짐하고 있다. 유럽연합도 경제제재 완화를 저울질하고 있다.

아마도 러시아 역사상 주요 국가들로부터 이렇게 러브콜을 거의 한꺼번에 받기는 처음을 것이다. 이는 곧 러시아의 영향력과 입지가 앞으로 상당히 강화될 것임을 예고해준다. 이를 두고 미국 내에선 트럼프의 대선 슬로건이었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을 '러시아를 다시 위대하게(Make Russia great again)'로 바꿔 부르는 게 유행할 정도이다.

당장 헤드 게임은 북미 간에 벌어질 전망이다. 이미 그 게임은 연초부터 시작됐다. 북한의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대륙 간 탄도 로켓(ICBM) 시험 발사 준비 사업이 마감 단계"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트럼프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응수했다. 북한도 물러서지 않았다. 외무성 대변인이 "ICBM은 최고 수뇌부가 결심하는 임의의 시각·장소에서 발사될 것"이라고 받아쳤다. 그러자 미국의 국무장관과 국방장관 지명자들은 인준 청문회에서 북한의 ICBM에 강력하고도 우선적으로 대처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에 따라 향후 한반도 정세의 핵심적인 변수는 ICBM을 보유하려는 김정은의 시도와 이를 저지하려는 트럼프의 대응이 어떤 '화학 작용'을 일으킬 것인가가 될 것이다. 화학 작용의 양상은 극단적인 대결 국면에서부터 극적인 대화 국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날 수도 있다.

문제는 한국이다. 남북관계는 이미 냉전 시대로 회귀했다. 한중관계는 수교 이래 최악이다. 한러관계도 흔들린다. 하지 말았어야 할 '위안부 합의'는 부메랑으로 돌아와 한일관계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만들고 있다. 이 와중에 한미동맹과 한미 FTA에 근본적인 의문을 품고 있는 트럼프가 취임했다. 아마도 건국 이래 한국이 동북아에서 이렇게 불리하고도 난처한 위치에 직면한 건 처음이 아닐까 한다. '이명박근혜 9년'의 가장 큰 병폐가 아닐 수 없다.

골치 아픈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문제가 어려울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분단된 현실에서, 그것도 60년 넘게 정전체제에서 살아온 우리에게, 강대국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우리에게 과연 기본은 무엇일까?

오늘날과 정반대로 한국 외교에도 황금기가 있었다. 2000년이 바로 그때였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남북한의 화해협력과 한반도 탈냉전 프로세스라는 확실한 무게 중심을 잡고 숨 가쁜 외교전을 벌였다. 그 결과 6.15 공동선언으로 대표되는 남북관계의 전환기를 만들었고, 미중일러 모두 한국의 주도권을 인정하면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동참했다. 아마도 건국 이래 한국이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 속에 한반도 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잡았던 적은 이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남북관계라는 기본에 충실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물론 김대중 정부에게도 한계가 있었다. 햇볕정책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이 독이 된 경우도 있었다. 또한 그때보다 지금 사정이 훨씬 복잡하고 어렵다. 주어진 것도 있지만, 위안부 합의와 개성공단 폐쇄, 그리고 사드 배치 결정과 같이 자초한 것도 많다. 무엇보다도 문제는 훨씬 어려워졌는데 선수들의 기량은 예전만 못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대혼란과 불확실성의 시대에 한국의 외교안보 전략을 놓고 백가쟁명이 벌어지고 있다. 대선이 다가올수록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하지만 애플 신화의 주역 스티브 잡스는 "복잡함의 궁극은 단순함에 있다"고 했다. 모든 고차 방정식도 1차 방정식으로 환원되기 마련이다.

그렇다.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덕목은 복잡함에 담겨 있는 단순함, 고차 방정식을 풀 수 있는 1차 방정식을 찾을 수 있는 지혜에 있다. 이를 찾았다면 우왕좌왕하지 말고 단호하게 밀고 나갈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단언컨대, 단순함과 1차 방정식, 즉 우리가 충실해야 할 가장 기본은 바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있다.

'박근혜 이후'를 책임지겠다는 대선 후보들도 바로 이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재개하고 그 속에서 북핵 해법을 찾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64년째 접어든 '비정상의 극치'인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겠다는 의지도 확실히 밝혀야 한다.

이는 단순히 대선 공약이나 집권 이후 청사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대선 후보들이 이런 입장을 분명히 하면 트럼프 행정부의 대한반도 정책 검토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곧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할 중국과 러시아의 대미 설득에도 유용한 근거가 될 수 있다. 사드 보복에 나선 중국에 재고를 요구할 수 있는 강력한 근거로도 작용할 수 있다. 심지어 일본으로 하여금 북일 수교 재추진의 필요성도 일깨워주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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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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