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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의 '경제 실패'가 트럼프를 소환했다

[트럼프 시대 ②] 노동자들은 왜 민주당 정부에 등을 돌렸나?

오는 1월 20일 세계는 전혀 새로운 불확실성의 시대로 접어든다. '미국우선주의', '백인우선주의'를 주창한 도날드 트럼프가 패권국 미국의 대통령으로 취임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은 앞으로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199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확대돼왔던 세계적 자유무역의 추세는 역전될 것이다. 미국의 제조업 회복 및 일자리 창출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의 대외 군사 개입(동맹국에 대한 군사적 보호와 적대국에 대한 군사적 공격)도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미국의 과도한 대외 군사 개입이 미국 경제를 약화시켰다고 인식하고 있다. 물론 그는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라면 핵공격 위협도 불사하겠다는 극단적 태도를 보이고 있어 앞으로 미국의 군사력이 어떻게 사용될지는 아무도 쉽게 예측할 수 없다.

노엄 촘스키 등 미국의 비판적 지성들은 기후온난화 위기와 미국의 경찰국가화를 트럼프 시대의 최대 위협으로 꼽고 있다. 화석연료에 의한 기후온난화를 부정하는 트럼프는 셰일 오일과 셰일 가스 등 화석연료 개발과 사용을 확대할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로써 기후온난화는 악화되고 인류를 비롯한 지구상 모든 생물종이 절멸하는 최악의 사태가 올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2001년 9.11사태 이후, 테러 위협을 빌미로 강화돼온 정보기관의 대국민 사찰 등 미국의 경찰국가화와 민주주의의 후퇴도 우려되고 있다.

한편 국내에서는 트럼프의 대외 개입 축소 공약이 한국 외교의 자율적 공간을 넓힐 수 있는 호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도 하고 있다. 남북관계 개선과 북핵 문제 해결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오바마 정부와는 달리 러시아에 대해서는 유화적인 반면, 중국에 대한 견제와 반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 때문에 트럼프 정부가 그동안 미 군부와 군산복합체가 추진해온 동아시아 미사일 방어망 구축과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에 어떤 태도를 취할지는 현재로서는 판단하기 어렵다. 트럼프 시대가 불확실성의 시대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프레시안>은 노엄 촘스키, 톰 엥겔하트, 월든 벨로, 이매뉴얼 월러스틴, 존 페퍼, 팀 셔록 등 세계 진보적 지식인들의 글을 통해 트럼프 시대, 세계와 한반도의 미래를 전망해 본다.

[트럼프 시대 ①] 톰 엥겔하트 : 트럼프는 전쟁의 역사가 자초한 '역풍'

지난 2008년 버락 오바마는 '담대한 변화'를 외치며 미국 최초의 유색인 대통령에 취임했다. 하지만 '오바마 유산의 계승'을 다짐하며 대선에 임했던 힐러리 클린턴은 '미국 우선', '백인 우선'을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에게 패배했다. 클린턴의 패배 원인은 무엇인가?

필리핀 출신의 사회학자 월든 벨로는 한마디로 오바마가 '담대한 변화'를 이룩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미 국민들의 사회경제적 삶의 개선에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벨로는 오바마가 대대적 재정 투입에 의한 경기 부양, 금융위기로 집을 잃은 수백만 중산층 가구들에 대한 구제, 월가의 약탈적 금융 행태에 대한 규제 등에 실패함으로써 그를 지지했던 미국 서민들의 기대를 저버렸다고 지적한다. 공화당 보수세력 및 부유층과 정면으로 맞서 싸우기보다는 어설픈 타협에 만족함으로써 담대한 변화를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003년 집권 후 얼마 되지 않아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며 정치권력에 의한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개선을 스스로 포기한 바 있다. 그리고 3년 후인 2006년 3월에야 경제적 양극화가 우리 사회의 최대 문제임을 인정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노무현 정부의 경제 정책 실패는 보수 세력의 집권으로 이어졌고 이후 9년간 한국의 경제적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담대한 변화를 외치며 나름 야심찬 개혁을 추구했던 오바마도 실패한 마당에 경제권력에 대한 통제를 포기한 노무현 정부가 어찌 사회경제적 개혁에 성공할 수 있겠는가.

촛불 민심의 폭발 덕택으로 정권 교체의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단지 정권 교체만으로 '헬조선'의 경제적 불평등을 개선할 수는 없다. 한국의 정치세력들이 오바마 실패의 교훈을 깊이 새겨야 하는 이유다.

다음은 오바마 정부에 등을 돌린 미국 노동자들의 '경제적 분노'를 되돌아본 월든 벨로 교수의 칼럼 전문. (☞원문 보기)

'오바마 유산'은 어떻게 힐러리를 망쳤나?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확인된 분명한 사실은 힐러리 클린턴의 예기치 못한 패배의 결정적 원인이 소위 '러스트 벨트'라고 불리는 4개 주(위스콘신, 미시건,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에서의 참패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중 위스콘신, 미시건, 펜실베이니아 주는 민주당의 전통적 텃밭이었다. 오하이오 주는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를 오가는 이른바 스윙 스테이트였으나 이전 대선에서는 두 번 모두 버락 오바마를 지지했다.

그런데 (힐러리 측이 민주당 지지 지역으로 오판해) 당초 격전지로 생각지도 않았던 이들 주에 속한 64명의 선거인단을 도널드 트럼프가 쓸어 담았다. 이들 4개 주에서 트럼프의 승리는 공화당 지지자들의 높은 투표 참가, 전통적 민주당 지지자 중 상당수의 이반(트럼프 지지), 그리고 대다수 민주당원들의 투표 포기 등이 어우러진 결과다.

잘못된 메신저, 올바른 메시지

그러나 클린턴의 패배가 처음부터 결정돼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번 대선에서 투표에 참가한 많은 유권자들의 투표 동기는 경제적 문제였다. 그리고 트럼프는 이들에게 보낼 확실한 메시지를 갖고 있었다. (오바마 정부 하에서) 경제 회복은 신기루였고, 오바마의 경제 정책으로 피해를 입었으며, 민주당 정권의 연장은 더 큰 고통을 가져올 뿐이라는 게 트럼프의 메시지였다.

클린턴이 패배한 이유는 이러한 트럼프의 선동적이고 기회주의적인 메시지가 러스트 벨트에 거주하는 중산층과 노동자들에게 진실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흠결 많은 후보, 즉 잘못된 메신저였지만 그의 메시지는 유권자의 심금을 울린 것이다.

확실히, 트럼프 지지로 돌아섰거나 투표에 불참한 노동자 유권자들은 주로 백인들이다. 이들은 지난 2008년 대선 때, 존 매케인을 큰 격차로 따돌릴 정도로 버락 오바마를 지지했던 바로 그 사람들이다. 이들은 2012년 대선에서도 오바마를 지지했다. 하지만 2008년에 비해 공화당 후보와의 격차는 줄어들었다.

그리고 2016년, 이들은 경기 침체의 이유를 조지 W. 부시 정부 탓으로만 돌리는 민주당 정부를 더 이상 용인해주지 않았다. 클린턴은 '오바마의 유산'을 계승하겠다는 전략적 실수를 범해 대중적 반발을 산 것이다. 유권자들에게 '오바마 유산의 계승'이란 자신들의 삶의 개선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즉 부시 정부 시절 시작된 (2007년 금융 위기로 인한) 극심한 경기 침체 상황에서 미국을 인수받은 오바마는 경제 사정의 개선과 번영을 약속했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고 유권자들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러스트 벨트 4개 주는 미국 경제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들을 대표하는 지역이다. 지난 20년 간 미국 기업들이 아시아 등 해외로 이전하면서 일자리가 사라지고 제조업이 쇠퇴하는 현상을 가장 심각하게 경험한 지역이다. 2007~2008년의 금융 붕괴와 함께 대출금으로 샀던 집을 빼앗겨야만 했던 수백만 중산층, 그리고 은행의 꾐에 빠져 빚더미에 올라앉은 빈민층들로 러스트 벨트는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내몰렸다.

▲ 버락 오바마(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당선자 ⓒAP=연합뉴스

오바마 경기 부양의 대실패

소위 '대침체(Great Recession)'가 시작된 2007년 전국적으로 670만 명에 달했던 실업자 수는 2015년에 약 200만 명 이상이 늘어나 870만 명을 웃돌았다.

실업률은 2009년 10%로 정점을 찍은 뒤 현재 다소 감소되긴 했다. 하지만 감소 추세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더디다. 그나마 추세가 개선된 이유도 노동 조건의 향상 때문이 아니라, 몰락한 노동자들이 노동 인구에서 이탈해서 발생한 노동 참여율의 하락(더 이상 구직을 포기해 실업률 통계에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질적 일자리 창출이 이뤄지지 않은 것은 민주당이 상하원을 장악했던 2009년, 정부가 단행한 결정적인 조치 때문이었다. 1조 8000억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써서 대침체에서 시급히 빠져나와야 한다는 경제 참모들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오바마는 불과 7870억 달러를 투입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경제적 합리성을 고려하기보다는 공화당 예산 매파들에게 합리적인 방안처럼 보여주려는 정치적 임기응변에 따른 결정이었기 때문이었다. 2기 오바마 정부까지 짙게 드리웠던 민초들의 경제적 고통 해소를 위해 오바마는 보다 강력한 정치적 의지를 발휘하지 않았다.

UC버클리의 배리 아이켄그린 교수는 이를 이렇게 지적했다. "대규모 경기부양의 효과를 확신하는 정부와 대통령은 이를 밀어붙일 수 있었다. 오바마는 대선 승리로 손에 쥔 자신의 정치적 자산을 활용할 수 있었다. 그는 메인 주, 펜실베이니아 주 같은 스윙 스테이트의 공화당 상원의원들에게 호소할 수 있었다. 오바마는 상원의장이 이를 수용토록 해서 국민들을 설득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오바마는 정책을 밀어붙이는 대신 선택지를 저울질했다. 결국 그는 정적에 맞서기보다 어설픈 타협을 택했다."

부동산 대책 실패

오바마의 일자리 정책 실패는 부동산 분야에서도 재연됐다. 은행이 조장한 주택시장 거품이 꺼져 파산했거나 파산 직전으로 내몰린 수백만 가구를 구제해주지 못한 것이다.

정부가 은행으로 하여금 주택담보 대출금의 상환을 일부 완화시키도록 함으로써 위기에 처한 주택 소유자들의 구제에 개입해야 한다는 요구가 전 방위적으로 제기됐다. 그러나 오바마와 그의 경제팀은 단지 주택 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해 위기에 빠진 은행들에게 구제금융을 제공했을 뿐이다. 이로써 은행권이 손해 보지 않도록 도움을 주었으나 대출금 상환을 못해 주택 압류의 위기에 처한 일반 국민(주택 소유자)들을 돕는 조치는 전혀 취하지 않았다.

오바마는 자기 집을 빼앗길 위기에 놓인 400만 주택 소유자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다. 대체로 온건한 논조를 유지해온 <내셔널 저널>조차 오바마의 부동산 대책에 대해 "자유낙하 하는 부동산시장과 주택 압류 조치 등 곤경에 처한 수백만 미국인들을 위해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은 미적지근하고, 진정성 없고, 갈등만 유발하는 재앙적 접근"이라고 질타했다.

민주당 지지에서 트럼프 쪽으로 뒤집힌 경합 주 플로리다처럼, 러스트 벨트에도 버려지거나 압류된 집들이 넘쳐났다. 당초 오바마가 자신들을 구제해줄 것으로 기대했다가 집을 잃은 수백만 중산층은 오바마 정부에 대한 분노로 불타올랐다.

월스트리트 규제 실패

아마도 오바마 정부의 가장 중요한 정책 실패는 금융권 단속과 규제에 완전히 실패했다는 점일 것이다. 1기 오바마 정부 출범 때 오바마 대통령은 금융업계 대표들에게 자발적으로 금융 규제 강화 대책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면서 다음과 같은 경고를 날렸다. "정부는 당신들에게 쇠고랑을 채울 수도 있다."

그러나 거대 은행들의 속임수로 미국 경제가 거의 거덜이 난 지 8년 후,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파생상품을 판매한 월스트리트 고위층들 중 화이트칼라 범죄 혐의로 감옥에 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반면 은행 고위급 임원들의 연봉은 사실상 무제한적으로 상승했다. 20대 은행의 고위급 임원들은 그 은행 주식 가치가 금융위기 이전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약 8억 달러를 자기들 주머니에 챙겼다. 2007년 금융 위기의 주범인 두 명의 CEO가 합산 연봉(임금과 보너스, 스톡옵션) 상승을 이끌었다. 2015년 제이미 다이몬 JP모건 회장은 2760만 달러를, 로이드 블랭크페인 골드만삭스 회장은 2340만 달러의 연봉을 챙겼다.

소위 '도드 프랭크법'이라고 불리는 월스트리트 개혁법안과 2010년 소비자보호법 등 포괄적 금융 개혁 조치에 서명하며 오바마는 "다시는 월스트리트의 잘못으로 인한 구제 금융 비용을 미국 국민들에게 떠넘기지 않겠다. 더 이상 월가에 대한 긴급구제에 혈세를 쓰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망하도록 내버려두기엔 너무 크다는 '대마불사' 논리가 거대 은행들에게 적용됐다. 도드 프랭크법은 자산 규모 500억 달러 이상의 금융회사는 "시스템적으로 중요하다"는 이유로 예외로 규정했다.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이 "대량 살상 무기"라고 비판한 금융 파생상품들도 금융개혁가들이 요구한 만큼 규제되지 않았다. 도드 프랭크법은 고객들의 예금을 은행 계좌로 전용하는 은행권의 행태를 허용했다. 금융 위기의 반복을 피하기 위해 금융개혁가들이 제안한 모든 조치들도, 조나단 커쉬너 코넬대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예외와 면제 조치의 연속으로 '물타기' 되었거나 무력화됐다."

현재 미국의 4대 은행의 보유 자산이 미국 전체 GDP 규모(18.6조 달러)의 절반에 육박할 정도로 2009년 이후 가파른 금융 자산의 집중화가 진행된 점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대선 일주일 전, 2015년에 1900만 달러라는 연봉을 챙긴 존 스텀프 회장이 경영하는 금융업체 웰스 파고가 고객들 명의를 몰래 도용해 수백만 개의 허위 계좌를 개설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오바마 정부의 '월가 사랑'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었으며, 당선되면 월가를 '강하게 옥죄겠다'던 힐러리 클린턴의 공약에도 심각한 회의감을 형성했다.

미래 비전의 실패

유권자들은 정치 지도자들에게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비전을 기대한다. 중국 등 저임금 국가에 일자리를 빼앗겨 삶이 파괴된 러스트 벨트 유권자들에게 오바마가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며 제시한 미래 비전은 희망적이기는커녕 걱정스럽기만 했다.

오바마의 미래 비전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 그들 삶의 터전을 완전히 탈산업화시킬 수도 있는 각종 자유무역이었다. 힐러리 클린턴조차 오바마가 추진한 정책을 지지하면 매우 위험해진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나 국무장관 시절에 열렬히 지지했던 자유무역 정책에 등을 돌린 클린턴은 선거 유불리만 따지는 기회주의자로 비쳐졌다.

클린턴은 결함이 없는 인물은 아니었지만, 당선 가능성을 날려버릴 정도로 결함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클린턴이 침몰한 진짜 이유는 노동자들에게 실패를 거듭한 오바마의 경제적 유산 위에서 선거를 치렀다는 점이다. 선거 전략상, 클린턴은 오바마 유산에 의지하기보다는 거리를 두는 것이 유리했다.

그녀의 남편 빌 클린턴은 1992년 대선에서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슬로건으로 톡톡한 효과를 봤다. 하지만 힐러리 클린턴은 그러지 못했다. 클린턴이 던진 메시지에는 트럼프의 기이한 행각에 대한 신경질적인 반박이 중심 맥락을 차지했다. 이는 적어도 러스트 벨트 유권자들에게는 우려스러운 것이었고 그것이 결국 당락을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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