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한나라당에선 1996년 노동법 날치기와 관련한 '역풍의 악몽'이 남아 있다. 초선급 의원들은 체감 온도가 다르겠지만, 중진 의원들은 12년 전의 일이 깊숙히 각인돼 있다.
홍준표 원내대표마저도 "기분 나쁜 추억이 있다. (12월) 26일은 피하겠다"고 말했고, 박희태 대표도 "김영삼 정부 때 노동관계법을 단독 처리해서 역풍이 강했다"고 회고했을 정도다. 한보 사태, 김현철 씨 구속, IMF 외환 위기, 정권 상실로 이어진 1997년 악몽의 서막이 바로 노동법 날치기였기 때문이다.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한나라당이 당시 사태로 부터 별로 교훈을 얻은 것 같지 않다. 급기야 박희태 대표는 "(96년) 노동법 '개정'을 유지했으면 IMF 사태가 쉽사리 오지 않았을 것이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선수'도 같고 '법안'도 유사하고
▲ 노동법 날치기 이틀 후 총파업이 확산되던 1996년 12월 28일 당시 이홍구 신한국당 대표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왼쪽에 배석한 인사는 당시 정책위의장이던 이상득 의원이다 |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 의원들은 96년 12월 25일 밤 서울 시내 4개 호텔에 나눠 투숙했다가 26일 새벽 차창이 가려진 관광버스를 타고 국회로 들어갔다. 그리고 신한국당 소속 오세응 부의장의 사회로 7분 만에 노동법, 안기부법 등 11개 법안을 처리했다. 물리적 충돌도 전혀 발생하지 않은 '엔테베식 기습작전'이 말끔하게 완료된 것이다.
현재 한나라당을 이끌고 있는 내로라 하는 인사들은 당시 돌격대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해 12월 23일 임시국회가 개회된 직후 야당이 김수한 당시 의장의 사회를 막고 나서자 김문수(현 경기도지사), 이재오(전 최고위원) 등 당시 재야출신 초선 의원들은 '의장 구출조'로 편성됐다.
그날 밤 김문수, 권철현(현 주일대사), 홍준표(현 원내대표) 등 당시 신한국당 환경노동위 소속 초선의원들은 야당 의원이 없는 회의장에 들어와 노동관계법의 '날치기 상정'을 시도하다가 이해찬 전 총리 등 야당 의원들에 의해 '적발'되기도 했다.
이런 활극 끝에 신한국당은 1996년 12월 26일 서청원 당시 원내대표 (현 친박연대 의원)의 지휘 하에 작전 수행을 완료했다.
당시 기습 처리된 안기부법은 반국가단체 찬양, 고무, 이적표현물 소지죄와 불고지죄에 대한 안기부의 수사권을 부활시키고 직원의 직권남용 금지 규정을 삭제한 것었다.
노동법의 경우 국제기구가 요구해 정부가 받아들였던 복수노조금지, 제3자 개입금지, 공익사업장 직권중재 등에 대한 개정을 연기하거나 이행치 않기로 한 것이었다. 대신에 정리해고제 명문화, 노조 전임자의 임금지급 금지, 해고자의 조합원 지위유지 기간 단축 등이 포함됐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정부가 상급단체 복수노조 허용을 통해 민주노총을 합법화하려 했으나, 신한국당이 '복수노조 허용 유예'로 바꿔치기 했다는 사실이다.
이명박 등 기업인 출신 의원들과 전경련 등 재계 인사들이 '복수노조를 허용할 경우 노사갈등이 첨예화 된다'고 강한 의견을 제시했고, 이홍구 당시 신한국당 대표가 결국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당시 신한국당의 정책위의장은 바로 코오롱 사장 출신인 이상득 의원이었다.
포지션만 다를 뿐 '선수'는 12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셈이다. 한나라당이 지금 처리하려는 법안 내용을 들여다봐도 유사한 점이 적지 않다. 권한 확대를 골자로 하는 국정원법은 '우선처리 114개'안에 포함됐고, 마스크를 쓰고 집회에 나오면 잡아가는 법안도 '민생법안'의 외피를 뒤집어쓰고 있다.
당시 민주노총 위원장의 회고
홍준표 원내대표가 "이미 정기국회 시작 때 노동부에 비정규직법이나 계층 결집을 가져올 노동관계법안을 제출하지 말도록 했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한나라당의 바람대로 강행처리 이후의 상황전개가 1996년과는 다를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1996년의 일은 널리 잘 알려진 대로다. 당시 민주노총 위원장으로서 해방 이후 사실상 최초의 전국적 정치 총파업을 지휘한 권영길 의원은 당시 일을 소상히 기억하고 있었다.
권 의원은 "민주노총 지도부는 명동성당에서 이미 대기하고 있었고 26일 08시를 기해 위원장 명의의 총파업 지침을 하달했다"면서 "당시와 지금의 유사점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권 의원은 "'시대가 변했다. 이제는 군부독재가 아닌 문민정부다'라고 말하던 신한국당 모습과 '우리가 지금 독재하냐'는 한나라당 이야기가 똑같고, 당시 안기부법과 지금의 국정원법이 똑같고 당시 노동법과 지금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해고요건 완화 등이 완전히 닮은 꼴이다"며 이같이 말했다.
권 의원은 "당시 민주노총은 '이 법은 노동자 죽이는 법이 아니라 아예 한국을 죽이는 법이다'고 국민들에게 호소했고 총파업의 호응도 높았다"고 전했다.
"불법파업을 엄단하겠다. 민주노총 지도부를 엄벌하겠다"고 연일 엄포를 놓던 최병국 당시 대검 공안부장은 현재는 한나라당 의원으로 국회 정보위원장을 맡고 있다.
총파업이 1997년 2월까지 이어지던 중 결국 '한보사태'도 터졌다. 김영삼 당시 대통령은 김대중 당시 국민회의 총재와 영수회담에서 "복수노조 허용 유예는 당에서 추진한 것인데 잘못된 일"이라며 신한국당에 책임을 떠넘기기에 이른다.
'용꿈'을 꾸던 이홍구 대표는 대선 후보군에서 떨려나가고 홍준표, 이재오, 김문수 등 '돌격대'역할을 했던 의원들은 초선 모임인 '시월회'에 참석해 날치기 처리에 대한 반성, 당내 민주주의 확대 등 거침없는 '쓴소리'를 토해 내면서 여당 내 '개혁파'로 탈바꿈했다.
"노동법 날치기가 뒤집혀 IMF사태가 왔다"?
당시 법무장관을 역임한 3선 의원으로 전후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박희태 대표는 26일 오후 의원총회장에서 노동법 날치기를 "대통령 선거를 그해 치러야 하는 정치적 상황에서 민주당이 정권쟁취 수단으로 엄청난 세력 동원해 비판을 엄청나게 했다. 그래서 당시 김영삼 정권이 통과된 법을 전부 백지화시키며 한 발 후퇴했다"고 회고했다.
야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후퇴한 것이지만, 날치기의 내용은 정당했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특히 "그 후 얼마 안 돼서 IMF 사태가 왔다. 당시 여러 학자들은 우리가 노동법 개정을 그대로 유지해 나갔던들 '그리 쉽게 IMF사태가 오지 않았을 것이다'고 말했다"면서 "그런데 IMF 이후에 집권한 민주당이 제일 먼저 한 것은 바로 폐기한 노동법 부활시키는 일이었다. 그게 대책이었다"고 주장했다. 12년이 지난 일이라지만, 지나친 아전인수가 아닐 수 없다.
과거사 논란이 교과서 뜯어고치기로 이어지더니 불과 10여 년 전에 벌어진 일도 '재평가' 되는 걸까?
'바보도 경험으로부터는 배운다'는 격언이 있다. 하지만 현 집권여당에게는 그 정도를 기대하는 것도 무리인 것 같다. 12년 전과 똑같은 사고구조를 가진 사람들이, 똑같은 행위를 하겠다는 것 같아 안쓰럽고 우려스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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