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봉 1개월도 억울하다, 소송 건 고위공무원
며칠 전,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감봉 1개월 징계를 받은 국토교통부 고위 공무원이 징계 취소 소송을 냈다가 패소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해당 공무원은 2012년 6월부터 2014년 3월까지 인천지방해양항만청장을 지낸 김수곤 서울지방항공청장이다. (☞ 관련기사 바로가기 : 세월호 참사로 '감봉 1개월' 경징계 받은 고위 공무원, 징계 취소 소송냈지만 패소)
청해진해운은 2011년 7월 인천항만청에 '총톤수 5000~6000t급, 여객 정원 750명의 카페리형 선박 증선' 사업계획변경 인가를 신청했고, 인천항만청은 1년 내 증선 선박과 계류 시설을 확보하는 조건으로 인가했다. 알고 보니 일본 선사로부터 납품받기로 한 시기가 애초 2012년 10월로 조건을 지킬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도 일단 인가를 받은 청해진해운은 기한이 끝날 때인 2012년 8월 기한 연장을 요구했다. 인천항만청은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2013년 8월까지 기한 연장을 허가해줬다. 청해진해운은 2013년 2월 세월호를 확보했다며 최종 인가를 신청했다. 세월호는 6825t, 여객 정원 921명으로 조건부 인가 당시 계획과 달랐지만, 한 달 뒤 김 청장은 적합하다며 최종 인가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인 2014년 10월 감사원은 기한 연장 처분 및 최종 인가를 부당하게 처리했다며 국토부에 김 청장에 대한 징계를 요구했고, 2015년 4월 감봉 3개월 처분했다. 소청 심사를 통해 감봉 1개월로 징계를 낮췄고, 이에 "징계가 가혹하다"며 소송까지 냈던 것이다.
재판부는 "직원들에 대한 지휘·감독을 소홀히 해 청해진해운의 선박 확보 지연에 불가피한 사유가 없는데도 조건부 인가 기한을 연장해 세월호가 도입되도록 했다"며 "세월호가 조건부 인가 당시 선박에 맞는지 전혀 검토하지 않고 최종 인가를 해 비위 정도가 결코 가볍지 않다"고 패소 판결을 내렸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비위에 대한 처벌은 겨우 '감봉 1개월'이다.
인·허가, 관리 책임 공무원에 대한 처벌은 없다
2014년 2월 17일 마우나리조트 체육관 천정이 무너져 내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한 대학생 10명이 숨졌다. 당시 수사 결과, 마우나리조트 체육관은 인허가 과정에서부터 문제가 있었다. 리조트 부지에 새 건물을 신축하려면 도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이를 생략하고, 기존에 승인받았던 리조트 조성계획서에 원래 없던 체육 시설을 끼워 넣었다. 이미 제출, 승인까지 된 이 공문서를 리조트 측에 전달한 것은 경주시 공무원이었다. (☞ 관련기사 바로가기 : 마우나리조트 참사 1년…공무원은 "책임 없음")
리조트측은 위변조한 서류를 바탕으로 경주시청 건축과에 '건축허가' 신청서를 냈다. 건축과도 리조트측이 제대로 승인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하지 못하고 건축허가를 내줬다. 위변조 서류로 건축허가를 받은 리조트 측은 건물도 부실하게 지었지만 건축과는 무난하게 준공 허가까지 내줬다.
참사 후 문제가 드러나자, 경주시는 책임자를 가려내고 분명히 책임을 묻겠다고 했지만, 1년 뒤 보도에 따르면, 마우나리조트 체육관 붕괴 사고로 징계를 받은 공무원은 말단 공무원 단 1명, 그것도 신분상 불이익이 없는 견책이었다고 한다. 10명이 사망하고, 200여명이 다친 참사가 공무원의 직무 유기와 태만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이 일에 대해 책임진 사람은 없다.
소방 안전점검서 허위 작성, 처벌은 벌금
2015년 1월 5명이 사망하고, 130여명의 사상자가 난 의정부 아파트 화재 사건도 비슷하다. 불이 난 대봉아파트는 외벽에 스티로폼 등의 단열재를 붙이고 그 위에 마감재를 얇게 입히는 공법으로 단열하고, 각 건물 간 이격 거리도 매우 좁아 화재에 매우 취약한 구조를 지녔다. 건축 과정에서는 분양 수익을 높이기 위해, 일명 '쪼개기'를 통해 가구 수를 늘렸고, 방화문, 완강기 등을 제대로 갖추지도 않았다. 감리나 소방 관리에서도 이런 문제점이 전혀 지적, 관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화재가 참사로 커졌다.
화재가 발생한 두 아파트 모두 1년에 한 번 실시해야 하는 소방안전 점검을 준공 후 한 번도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 과정에도 역시 공무원이 개입돼 있다. 소방 공무원 2명은 하지도 않은 소방 안전점검서를 허위로 작성해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가 확인됐다. 그러나 처벌은 벌금형에 불과하다.
참사의 직접적인 원인을 중심으로 조사와 처벌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주로 구조적인 원인에 책임이 있는 공무원들에 대한 적절한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이렇게 비일비재하다. 그러니 여론을 의식할 법한 지위의 고위공무원조차 감봉 1개월 처분도 억울하다 재판을 제기하는 게 아닐까?
참사의 구조적 원인 제공한 공무원도 처벌하자
그러나 위에 예를 든 가까운 사례들만 하더라도, 공무원들이 안일한 태도가 실제로 국민안전을 위협하고, 세월호와 같은 참사의 원인이 된다. 우리가 국가와 정부에게 요구하는 '안전 문제를 엄격하게 관리 감독하는 것'은 결국 상당 부분 공무원의 행위를 통해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에, 기업과 사업주, 경영책임자 뿐 아니라 공무원 처벌 조항이 들어가야 한다. 처벌은 사고 발생 후의 조치에 불과하지만, 그나마 강한 처벌 조항이 있어야 업무 과정에서 만나는 업체들과의 짬짜미,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안일주의, 나아가 뇌물에 따른 배임 등의 유혹과 절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연대가 내놓은 법안은, 사업장이나 다중이용시설 등에 대한 위험의 예방 및 안전관리와 보건관리 의무의 준수 여부를 감독하는 공무원이 그 직무를 유기하여 사람이 다치거나 사망한 경우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여기에는 마우나리조트 사례에서처럼 사업장이나 다중이용시설 등의 건축 및 사용에 대한 인・허가에 관여하는 공무원도 포함된다. 의정부 화재 사건에서 소방 안전 관리 의무 준수 여부를 제대로 감독하지 못 했던 소방 공무원도 포함된다.
또, 이런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공무원을 감독할 책임이 있는 지위에 있는 공무원 즉, 중앙 행정기관의 장 등이 포함되는 고위공무원에 대해서도 같은 처벌을 적용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인천지방해양항만청장으로 지위와 명예는 누리면서도, 자신의 책임 하에 있던 부실한 허가 과정의 결과로 발생한 참사에 대해서는 감봉 1개월의 책임조차 나눠지지 않으려는 고위 공무원들도 처벌하기 위함이다. 그래야 마우나리조트 건처럼, 가장 말단 공무원 한 명만 징계당하고 일이 유야무야 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무원은 군주국가의 관리가 아니다
그런데 의외로, 지난 6월 23일 열린 '기업처벌 토론회'에 참여한 토론 참석자 중 여럿이, 법안 중 공무원 처벌에 대한 저항이 가장 클 것이라고 예측했다. 공무원이 일부러 법과 규정을 어겨서 참사의 책임이 발생한 경우가 아니라면, 처벌하는 것이 법리상 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자기 임무를 꼼꼼하게 처리하지 못 하고, 관리와 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은 상황에서 발생한 사고에서 공무원의 책임을 어디까지 물을 수 있느냐는 항변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국민들의 법감정은 이런 지적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공무원은 군주국가시대의 관리와는 다른 말이다. 공무원은 주권을 가진 국민의 수임자로서 언제든지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지며, 공익을 추구하고 맡은 바 임무를 성실히 수행할 의무가 있다. 그래서 국민들은 국가와 공무원들이 국민 안전에 대한 자기 책임을 좀 더 무겁게 받아들이길 요청하고 있다. 안전사회를 바라는 국민들은 안전 문제를 책임지는 공무원들이 인‧허가 과정, 제도의 관리 및 감독 과정에서 엄격하게 법을 집행해주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이런 책임을 다 하지 않는 것은, 단순한 사고를 참사로 키우는 구조적인 원인 중 하나라는 것을, 계속해서 되풀이 되는 참사를 통해 배웠다. 그래서 책임과 기대를 저버린 공무원에게는 그에 따른 무거운 처벌이 따라야 한다고 믿는다. 물론 이와 함께, 안전을 담당하고 관리하기 위해 더 많은 인력이 확보되고, 더 많은 투자와 지원이 있어야 한다. 이 모든 변화는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시민들의 참여와 감시 속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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