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도어라고 부르는 승강장 안전문 설치 사업은 2004년 시작되었다. 당시 서울시장은 이명박이었다. 이명박 시장 시절 서울시는 시설 투자에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는데 바로 민간 투자 사업이었다. 지옥철로 악명 높은 지하철 9호선이나 연이은 사망 사고를 내고 있는 스크린 도어 관련 사업도 민간 투자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지하철에서 승객들의 추락이나 자살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자 이에 대한 대안으로 승강장에 안전문을 설치하는 방법이 모색되었다. 수완 좋은 이명박 시장 체제의 서울시는 일부 역의 스크린 도어 설치 사업자로 (주)유진메트로컴을 선정했다. 유진은 서울메트로가 관리하는 24개 주요역에 승강장 안전문을 설치해 서울시에 소유권을 넘기는 대신 운영권을 확보했다.
이른바 BTO(Build Transfer Operate)라고 불리는 민간 투자 사업 방식이다. 유진은 자신들이 운영하는 스크린 도어에 광고를 유치하여 수익을 얻고 유지 보수 비용을 서울메트로로부터 받는 구조로 사업을 유지했다. 열차 안전의 핵심 분야 가운데 하나가 이렇게 서울메트로의 직접 관리로부터 떨어져나갔다. 서울메트로가 직접 설치한 스크린 도어도 유지 보수 업무는 은성PSD라는 업체로 이관되었다.
중대사고 '제로' 만들겠다며 민간 투자 대폭 확대?
외주화된 스크린 도어 관리 업무는 지난 구의역 사고에서 드러났듯이 온갖 문제들을 쌓아올린 끝에 젊은 노동자의 죽음으로 폭발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서울시가 안전 업무의 외주화를 중단하고 직영 선언을 한 점이다. 구의역 사고는 비용 절감과 이윤의 논리로 안전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가져온 뼈아픈 교훈이었다. 그러나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철도 안전 정책을 총괄하는 국토교통부는 불안한 역주행 가속 폐달을 밟았다.
지난 6월 29일 철도산업위원회는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시행될 철도안전종합계획(종합계획)을 최종 확정했다. 2020년까지 철도 중대 사고를 0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밝힌 종합계획에는 어처구니없게도 최근 문제가 된 민간 투자를 대폭 확대하겠다고 당당히 밝히고 있다. 계획서에는 "철도 안전 분야의 민간 투자는 스크린 도어 등 일부 사업에만 적용되어 미미…민자 수익 모델 개발, 시범 사업 추진 등을 통해 안전 산업의 민자 활용 확대를 추진"한다고 밝히고 있다.
서울시에서는 그동안 문제된 민간 투자 방식의 외주화를 되돌리려는 노력을 하는 마당에 정작 정부는 스크린 도어 가지고는 성이 안차니 안전 분야 전체를 대상으로 민간 개방을 추진하겠다고 공표했다. 신자유주의적 철도 정책을 이상향으로 삼는 국토부의 안전 철학이 상식 이하인 것은 그렇다 쳐도 종합계획을 심사하는 철도산업위원회가 아무런 문제제기도 없이 국토부의 안을 확정한 것은 심각한 문제다. 국민들을 구조적 위험 속으로 인도하는 정책이 안전의 이름으로 실행되는 것을 방조하는 것이 철도산업위원회 위원들이 할 일인가?
철도 정책, 민자 산업 노골적으로 확대하는 국토부
그동안 한국 사회는 민간 투자 사업의 파행 속에 몸살을 알아왔다. 인천공항철도나 서울지하철 9호선, 수많은 민자 고속도로, 우면산 터널, 용인 경전철 등 온갖 비리와 불편함, 지자체 재정 파탄, 높은 이용 요금에 사업자만 배불리는 민간 투자 사업에 대한 전면적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판국에 국토부는 민자 사업이 파생시키는 문제를 해결하기위한 정책을 모색하기는커녕 민자 사업을 노골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철도 정책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지난 6일 경제부총리가 주재한 19차 재정전략협의회에서 국토부는 전면적 철도 민영화 추진 방침을 밝혔다. 민자 철도 사업을 수도권 광역 철도를 포함해 전국 철도망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재정 부족을 이유로 민영 철도를 일반적인 철도 운영 체제로 구축하겠다는 것인데 헌법에 명시된 민주공화국의 가치를 공무원들이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조차 의심스러운 정책이다.
국토부가 내놓은 정책들은 민간의 수익을 보장하기 위한 내용들이나 이마저도 실현 가능성이 불투명한 것들로 채워져 있다. 민간 업체의 수익을 보장하기 위해 역세권 개발이나 역사내 공간 임대 사업 등 부대 사업 활성화 안을 내놓았지만 한국 사회의 실정을 무시한 근시안 적 구상이다. 철도를 중심으로 도시가 발전하는 것은 근대초기의 현상이었다. 현재 한국 사회는 신설 역이나 철도 노선을 중심으로 도시가 새롭게 형성되거나 대규모 상권이 형성되기에는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부대 사업이 활성화된 일본의 경우에도 수백만이 이용하는 대도시 주요역을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되었다. 역을 중심으로 한 대표적 상권인 신주쿠역은 하루 이용객이 360만을 넘는다. 이런 조건에서의 부대 사업은 철도 회사의 수익에 도움이 될 수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가장 많은 철도 이용객이 몰리는 서울역조차 32만 명 수준으로 신주쿠역의 10분의 1 수준이 안 된다. 도쿄도에 만도 시부야, 이케부쿠로, 요코하마, 기타센쥬, 도쿄 등 이용객이 100만이 넘는 역이 6개나 되며 서울역보다 많은 40만 이상의 역까지 포함하면 15개나 된다.
이런 조건을 무시하고 철도 역 부대 사업을 촉진한다면 건설 업자와 개발 업자들은 수익을 올릴 수 있어도 부대 사업을 통한 민간 사업자 수익 증대에 따른 운임 할인은 공수표가 될 가능성이 크다. 국토부는 한 발 더 나아가 지차체의 개발 인허가도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되면 민간 사업자의 졸속적인 사업 추진으로 난개발을 불러 올 수 있다. 개발 업자와 지자체의 유착 비리가 생겨날 소지도 크다. 더구나 한국 사회는 다가오는 인구 절벽으로 무리한 개발을 해봤자 이용자 없는 유령 도시를 양산할 수도 있다. 한국 사회의 현주소와 미래에 대한 충분한 고민 없이 묻지 마 개발 우선주의를 조장하는 정책 당국의 모습은 참으로 우려스럽다.
급행 열차를 프리미엄 서비스로 둔갑하는 요술
국토부는 프리미엄 서비스를 도입해서 비싼 요금을 받아 일반 승객들의 운임을 절감시키겠다는 안도 들고 나왔다. 국토부가 밝힌 프리미엄 서비스는 관광 열차, 고급 객실 서비스와 급행 서비스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철도 이용자들은 180도 펼쳐지는 의자에서 와인 서비스를 바라는 게 아니다. 좌석이 모자라 카페 칸 바닥과 객실 연결 통로에서 불편을 감수하는 현실부터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급행 열차를 프리미엄 서비스로 둔갑시키는 것이다. 광역 급행 열차는 요금을 대폭 높여 받겠다는 것인데 이것은 서민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민자 사업자의 수익을 보장하겠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대도시 집값과 전세난으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외곽으로 쫓겨난 서민들이다. 이들에게 프리미엄 서비스라며 높은 열차요금을 부과 하겠다는 것이 정부 당국자가 할 일인가?
국토부의 철도 민영화 드라이브가 현실화되면 결국 최종 승자는 재벌과 외국 투기 자본이다. 우리는 이미 민자 사업을 통해 고도의 사업 수완을 보인 매쿼리를 알고 있다. 이와 같은 자본들이 한국 철도망에 물밀 듯이 들어와 국가기간 철도망을 장악한다면 되돌릴 수 없다. 여러 나라와 맺은 자유무역협정(FTA)이 외국 자본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국토부가 요금 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지만 민간 기업의 자율적인 요금 정책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FTA 위반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인 2012년 국민 뜻에 반하는 민영화를 절대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고 국가 기간망인 철도는 가스·공항·항만 등과 함께 민영화 추진 대상이 아니라고 약속했다. 국민과의 약속을 천금처럼 여긴다는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고 질주하는 국토부를 어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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