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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역 사고 원인은 노동자의 '기강 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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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역 사고 원인은 노동자의 '기강 해이'?

[기고] 철도 안전을 바라보는 국토부의 구시대적 관성

국토부는 지난 6월 10일 철도 안전 관리 체계의 실효성을 강화하겠다며 철도 안전법 시행령,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7월 25일부터는 시행에 들어갈 예정이다. 최근 여수시 율촌역에서의 열차 탈선 사고, 구의역 스크린 도어 사망 사고 등으로 철도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은 시점에서 철도 안전법과 관련 시행령, 시행규칙을 보완하는 것은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국토부의 철도 안전을 바라보는 시각은 구시대적 관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토부는 사고를 막겠다며 철도 종사자가 안전 수칙을 위반할 경우 최고 3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거나 면허 정지, 면허 취소를 하는 개정안을 내놓았다. 국토부는 강력한 처벌 규정이 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자신할 줄 모르나 철도 선진국들은 책임추궁으로는 사고를 막을 수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국토부의 처벌 강화 방안은 철도 안전에 대한 당국의 철학이 얼마나 미천한지 드러낼 뿐이다. 처벌 강화안의 전제는 철도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수시로 안전 수칙을 위반하고 이로 인해 사고가 발생하니 강력한 처벌을 하면 사고가 줄어들 것이라는 단순한 판단에 기초해있다. 인공지능 알파고와 미래학을 이야기 하는 시대에 1970년대식 채찍을 드는 국토부의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철도 현장의 노동자들, 특히 기관사들은 작은 규정 하나라도 오해를 하거나 실수를 하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면서 일을 하고 있다. 율촌역 사고 기관사도 안전 수칙을 위반한 것 이전에 선로 변경 지점에 대한 착각으로 속도를 줄이지 못해 사고를 일으키게 되었다.

철도 안전은 기본적으로 시스템이 보장해야 한다. 철도가 처음 놓였을 때부터 현재까지 철도 안전은 열차가 신호와 선로에 제대로 조응하게 하는 안전 시스템의 발전 과정이었다. 앞서 달리는 열차와의 추돌을 막아주거나 곡선 구간이나 선로 변경 지점에서 속도를 줄이도록 하는 것도 모두 신호로 제어되고 있기에 가능하다. 그러나 시스템이라고 해서 절대적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다. 최신 컴퓨터도 갑자기 먹통이 되듯이 안전 시스템이 여러 가지 이유로 오류가 발생하거나 기능을 하지 못할 때가 있다. 이때 기관사가 시스템을 리셋하거나 관제실과의 협력으로 안전을 지키고 있다. 또 기관사가 착각을 하거나 심신의 이상으로 열차의 제어를 할 수 없을 때에는 운전 보안 장치나 운전자 경계 장치가 동작해 열차를 비상 정지 시킨다. 시스템과 인간이 안전을 위해 상호 보완하는 크로스 세이프 체킹 시스템이 열차 안전의 기본이다.

율촌역 사고가 나자 국토부가 철도종사자의 기강해이를 지적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철도 안전에 대한 번지수를 잘못 찾아도 이렇게 잘못 짚을 수 있는가? 율촌역 사고는 선로 공사 관계로 정상적인 신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 기관사의 착각을 보정할 수 있는 조건이 사라진 셈이다. 열차는 정상 운행해야 할 선로가 공사 중이라 반대선 운전을 하다가 공사 구간이 지나면 정상 선로로 들어오는 운행을 해야 했다. 기관사는 이런 방식의 운전을 최근 몇 년간 해본 적이 없었다.

또 사고가 난 전라선은 오랫동안 단선 구간이었다가 여수엑스포를 계기로 복선화되었다. 기관사는 경부선 같은 복선 구간을 운행하는 기관사와 다르게 반대선 운전 경험이 부족했다. 또 율촌역은 역무원이 근무하지 않는 무인역으로 이런 역에서의 선로 변경은 하지 않았었다. 이 같은 조건에서는 기관사의 착각이나 오류를 막을 수 있는 조치들이 선행되어야 했다.

ⓒ프레시안

사고 이후 철도공사는 공사 구간 반대선 운전 시 최고 속도를 시속 60킬로미터로 제한했다. 사고 전에 이런 조치가 취해졌다면 율촌역 탈선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한국 철도 영업 킬로미터의 두 배나 되는 일본에서 가장 큰 철도 운영사인 JR동일본은 노사 공동으로 세 차례 철도 안전 선언을 했다. 당국이나 회사가 철도 노동자를 엄벌 대상이 아닌 안전을 지키는 파트너로 인식하고 공동 노력한 결과 1987년에서 2014년까지 연간 400여 건이었던 사고가 100여 건으로 70%나 줄었다. 이때의 기본 원칙은 '책임 추궁에서 원인 규명으로'였다. 사고의 현상만 보고 관련자를 징계하는 것으로는 사고의 재발을 막을 수 없다. 책임을 면하기 위해 사고를 은폐하거나 왜곡하고자 하는 유혹에도 노출된다.

구의역 스크린 도어 사고 역시 2인 1조의 작업 규정을 어긴 것만으로 원인을 파악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컵라면 먹을 시간조차 없는 부족한 정비 인력, 이를 구조적으로 만든 외주화와 비정규직 문제, 메피아, 전임 시장들의 무분별한 인력 감축 등 하나의 사고가 일어나기까지는 사고로 인도하는 문제들이 하나 둘 쌓여진 결과였다. 사고만 나면 책임 추궁을 하며 지탄받을 희생양을 물색하는 데 골몰하는 현재의 안전 철학은 현장의 노동자들만 경직시켜 무사안일주의를 낳거나 오히려 사고를 키울 수도 있다.

철도 안전은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열차 운행을 총괄하는 안전 시스템의 지속적 강화, 현장 노동자들이 책임지는 업무에 대한 안전 원칙 수립, 철도-지하철 이용객의 안전 확보 방안이 그것이다. 그러나 철도 안전법은 앞에서 말한 어떤 것도 제대로 명시하지 못하고 있다. 철도정책을 책임지는 정부당국이라면 마땅히 철도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기준과 원칙을 제시해야 하는데 알맹이가 빠져있다. 철도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파편화 되면 안 된다.

철도는 상호 경쟁보다는 협력과 조화를 통해 안전이 보장되는 구조다. 따라서 철도 현장의 상시 업무는 기본적으로 외주화를 금지하는 것이 안전에 한 걸음 더 다가서는 길이다. 스크린 도어 정비 같은 경우에도 회사 정규직 직원이 관제실 및 역과의 상호 소통 속에 이루어진다면 사고는 예방될 수 있다.

KTX에 승무하는 승무원들은 철도공사 직원과 외주화된 자회사 직원이 함께 탑승한다. 법적으로 다른 회사 직원이 업무를 나누어 담당하고 있는데 평상시에는 문제가 없어 보일지 몰라도 사고 등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문제가 달라진다. 자회사 소속 승무원은 안전 업무에 관련된 일을 할 수가 없다. 철도공사 소속 승무원과 자회사 소속 승무원의 협력이나 상호 지시 같은 게 있으면 불법 파견이 되기 때문이다. 900명이 넘게 타는 KTX 승객의 안전을 철도공사 소속 승무원 한명이 책임지는 게 안전한 일인가?

러시아워 시간 지하철 역 승강장은 발 디딜 틈이 없다. 만약 이런 공간에서 사고나 비상상황이 발생 하면 승객들은 알아서 생존해야 한다. 객실 혼잡률 150% 이상 시 승강장 역무원 증강 배치나 기관사 1인 승무 금지 같은 내용들이 철도 안전법에 명시 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철지난 관료주의의 냄새가 물씬 나는 시행령과 규칙 개정안을 내고 철도 안전의 책임을 다했다는 듯이 보도 자료를 내는 모습은 씁쓸하기만 하다. 철도 안전법이 고려해야 할 것은 오직 철도 안전이다. 안전한 철도 이용 환경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대안이 법에 담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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