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북한은 4차 핵 실험을 단행했고, 이어 2월에는 장거리 로켓을 발사했다. 그리고 5월에 개최된 7차 당 대회에서는 핵 무장과 경제 발전을 동시에 추진한다는 '병진 노선'을 다시 한 번 대내외에 천명하고, 앞으로 핵무기를 협상 카드가 아닌 '항구적 무장 수단'으로 견지해 나갈 것임을 밝혔다.
이와 같은 북한의 노선 확정으로 인해 북핵 문제는 중요한 전환기를 맞게 됐다. 왜냐하면, 지금까지는 북한으로 하여금 어떻게 핵 개발을 포기하게 만들 것인가가 북핵 문제의 핵심이었지만, 이제는 북한이 이미 사실상 핵무기를 보유하게 됐고, 또 이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상황이 전혀 달라진 것이다.
이렇게 북핵 문제가 전환기를 맞은 만큼, 주요 관련국들은 어떻게 새로운 변화에 대응할 것인지 고민에 빠진 모양새다. 특히, 북핵 문제의 핵심 당사국인 미국과 북한에 큰 영향력을 가진 중국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가 큰 주목을 받아 왔다.
그런 가운데 최근 리수용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의 방중과 미-중 전략 경제 대화 등이 이뤄지면서 이를 통해 미-중 양국의 대북 정책이 어느 정도 윤곽을 드러냈다.
리수용 방북으로 윤곽 드러난 중국의 대북 정책
지난 5월 31일 리수용 부위원장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구두 친서를 가지고 7차 당 대회의 결과를 중국 측에 설명하기 위해 베이징을 방문했다. 방문 첫날 리수용 부위원장은 쑹타오(宋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과 만나 7차 당 대회의 결과에 대해 설명한 후, 다음 날 류윈산(劉雲山) 등 정치국 상무위원을 만날 것으로 점쳐졌다.
우선 리 부위원장이 김정은 위원장의 구두 친서를 가지고 갔다는 점에서 북한이 중국과의 관계를 여전히 중시하고 있으며, 그동안 서먹해진 관계를 개선해 보고자 하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강화되고 있는 대북 제재 분위기를 완화시키고 경제 발전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역시 중국의 지지와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북한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중국은 북한이 4차 핵 실험을 실시하고 병진 노선을 통해 핵 무장 강화를 선언하자 대북 정책을 어떻게 조정해야 할지 내부적으로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 그 논의 결과를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이번 리 부위원장의 방중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윤곽을 엿볼 수 있다.
특히 리 부위원장이 만난 중국 측 인사의 '급'에서 의미 있는 신호를 읽을 수 있다.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인 리 부위원장이 첫날 만난 쑹타오 부장은 중국공산당의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도 아직 이름을 올리지 못한 인물이다.
만약 리 부위원장이 쑹 부장만 만나고 돌아갔다면 이는 북중 관계가 생각보다 안 좋은 상황이라고 해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만큼 리 부위원장과 쑹 부장은 '급'이 달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리 부위원장과 쑹 부장 사이에서 진행된 회담을 전한 북한과 중국의 관영 언론 보도에는 상당한 온도차가 나타났다. 북한 언론에서는 리 부위원장이 7차 당 대회에서 채택된 병진 노선을 중국 측에 설명했다고 보도한 반면, 중국 언론에서는 병진 노선에 대한 언급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즉, 북한은 병진 노선을 중요한 국가 전략 노선으로 채택하고 중국 측에 설명했지만, 중국은 이에 대해 지지하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사항에 대해 의견 차이가 있는 상황에서 중국 측의 누가 리 부위원장을 접견하느냐는 상당히 큰 의미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결과는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양국 사이에 사전 조율이 있었겠지만, 그 내막을 알 수 없는 제3자의 입장에서는 중국 측 인사의 급이 생각보다 높았다. 시진핑(習近平)이 '중공중앙 총서기'와 '국가주석'이라는 직책으로 직접 리 부위원장을 만났고, 양측은 북중 친선 관계와 지역의 평화, 안정을 위해 함께 노력해 나가기로 약속했다.
물론 이 회담에 대한 중국 관영 언론의 보도에서도 역시 북한과는 달리 '병진 노선'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시진핑 주석이 직접 리 부위원장을 만난 것이나 회담에서 시 주석이 북중 관계를 대단히 중시하고 있다고 강조한 점 등은 중국이 얼마나 북중 관계를 중시하고 있는지를 대변해 준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중국은 자신의 대(對)한반도 정책의 3대 핵심 중 하나인 '한반도 비핵화'와 충돌하는 북한의 병진 노선을 지지하지 않고, 책임있는 대국으로서 국제 사회와 보조를 맞춰 대북 제재에 동참할 것이지만, 여전히 북한과 전통적인 우호 관계를 이어가는 방향으로 대북 정책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이란 핵 문제에서 해법 찾는 중국
이와 함께, 중국은 미-중 관계라는 큰 틀 속에서 어떻게 북핵 문제를 다뤄 나갈 것인지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입장을 정리한 듯 보인다. 지난 4월 1일 워싱턴에서 열린 이란 핵 문제 관련 6개국 정상 회의에서 시진핑은 이란 핵 문제 해결이 적지 않은 시사점을 주었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첫째, 대화와 담판은 중요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대화와 협상은 물론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 성과는 확실하다. 둘째, 대국 사이의 협력은 중대한 분쟁을 처리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국제 사회는 운명 공동체이다. 대국은 이란 핵 문제의 6개국과 같이 문제 해결의 튼튼한 기둥이 되어야 한다. 셋째, 공평과 공정은 국제적인 협의를 이뤄내기 위한 원칙이다. 각국의 정당한 관심 사항들은 적절히 해결되어야 하고, 국제 분쟁은 공정하게 해결되어야 하며, 이중 잣대가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 넷째, 정치적 결단은 담판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도록 이끌어가기 위한 관건적 요소이다."
북핵 문제 해결의 방향성을 제시한 것으로도 해석되는 이러한 발언으로 보건대, 중국은 여전히 6자 회담과 같이 강대국들이 참여하는 메커니즘을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 나갈 것으로 보이고, 특히 가장 관건인 미국의 정치적 결단을 이끌어 내기 위해 꾸준히 물밑 작업을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중국은 북한과 우호 관계를 유지해 가면서, 끊임없이 6자 회담과 같은 담판을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 할 것이고, 미-중 관계라는 큰 틀 속에서 북핵 문제를 관리하기 위해 미국과 끊임없이 접점을 모색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비록 미국은 최근 오바마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과 케리 국무장관의 몽골 방문, 그리고 아시아안보회의나 G7 회의 등에서의 행보에서 보듯 대(對)중국 압박 외교에 힘을 들이고 있는 모양새이지만, 언제든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대북정책을 조정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
'3류 외교'로 전락한 한국의 '북한 압박 외교'
그런데 걱정이 되는 것은 우리 정부의 외교 행태다.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북핵 문제를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는지, 미국의 정책에 완전히 편승해서 대북 압박 외교에 '올인'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이 아프리카 우간다까지 날아가 북한과의 교류 단절을 독촉하는가 하면, 이제는 북한의 전통 우방인 쿠바와 관계 정상화를 추진함으로써 북한을 압박하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외교부 장관의 러시아 방문도 예정되어 있고, 북한의 대화 제의에도 지금은 제재에 집중할 때라고 하면서 거부하고 있다. 현 정부의 3대 외교 정책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 협력 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아예 접은 모양이다.
그런데 누구를 고립시키기 위해 펼치는 '3류 외교'가 얼마나 국익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이런 식의 외교로 북한과 '신뢰'는 커녕 불신만 증폭되고, 북핵 문제 해법을 둘러싸고 중국과는 점점 불편해지며, 상황에 따라 미국이 대북 정책을 조정하게 되면 외톨이로 남겨지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경제 외교, 자원 외교, 문화 외교 등 국익을 위해 외교 영역에서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지금, 매일같이 들려오는 정부의 '북한 압박 외교' 소식에 마음이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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