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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의 포로가 된 박근혜, 네 가지가 없다"

[인터뷰] 문정인 연세대학교 교수 ①

북한의 4차 핵 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에 대한 대응으로 시작된 국제 사회의 대북 제재가 석 달째로 접어들고 있다. 이번에야말로 북한의 '셈법'을 바꾸겠다는 박근혜 정부와 미국은 북한에 대한 금융 제재까지 시행하며 강력한 압박 전술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국제 사회의 대북 제재 국면에 파열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북한 리수용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수십여 명의 대표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 양국 관계의 복원을 대내외에 알렸다. 특히 리 부위원장은 중국 고위급 인사로는 3년 만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만남을 가지며 그동안 소원했던 양국 관계가 정상화될 것이라는 신호를 보냈다.

여기에 미국과 중국의 양국 관계는 북핵 문제뿐만 아니라 남중국해, 경제 분야의 통상 마찰 등으로 점점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또 한반도 내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가 후보지 검토에 들어가면서 양국 간 갈등은 더 거세질 전망이다.

그런데 이러한 정세 변화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 박근혜 정부는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 일변도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에 <프레시안>은 한국 국제정치학의 권위자 문정인 연세대학교 교수를 만나 북핵 국면에서 박근혜 정부의 조치를 돌아보고 향후 전망에 대해 들어봤다.

문 교수는 우선 현 정부의 대북 정책에는 '네 가지'가 없다고 평가했다. 북한에 대해 무지하고, 북핵 문제에 대해 무능하며, 북한의 행태에 대해 무책임하고, 북핵 해결을 위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명박 정부 때는 외교부가 '한미 동맹부'였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 '대북 제재부'가 돼버렸다. 외교부가 가지고 있는 자원 모두를 북한의 행태 변화를 위해 쓰고 있는데, 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선호가 반영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문 교수는 "박 대통령은 제재를 가하면 북한이 망할 것이고 그러면 우리 식으로 핵과 통일 문제를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그런데 '북한이 곧 망할 것'이라는 사고는 북한을 잘 모르고 하는 희망적 사고에 불과하다"고 일갈했다.

그는 "희망적인 사고는 대북 협상에 큰 장애가 된다. 아무리 북한 지도자가 우리가 수용할 수 없는 독재자라 하더라도 대화의 상대라고 생각한다면 북한의 정체성을 인정해줘야 한다. 그런 태도 없이 북한과의 진정한 대화나 신뢰 구축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문 교수는 "비핵화는 '슬로건'으로 이야기하는 것보다 구체적 행보가 중요하다. 그런 것 하나 없으면서 제재만 가하면 북한이 비핵화 하겠는가"라며 "'제재 = 비핵화'라는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계속 주다가는 크게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북한이 비핵화는 하지 않은 상태에서 중국 중재 하에 미국과 평화 체제 관련 직간접적 대화라도 전개하면 낭패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인터뷰는 지난 3일 서울 정동에 위치한 달개비에서 박인규 프레시안 이사장(편집인)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문정인 연세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북한의 4차 핵 실험과 장거리 로켓 광명성 4호 발사에 대해 박근혜 정부는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 일변도를 고수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다가 우리만 국제적으로 고립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들기도 한다.

문정인 : 현 정부의 대북 정책에는 4무(無), 즉 네 가지가 없다. 첫째는 북한에 대해서 무지하다, 북한을 잘 안다고 하면 이런 식으로 정책을 펴지 않을 것이다. 둘째로 무능하다. 북한이 계속 핵 실험하고 미사일을 쏘고 있는데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세 번째는 무책임이다. 북한이 저렇게 하는 것을 전부 북한과 중국 책임으로만 돌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건데, 대책이 없다. 정부의 대안이라고 하는 것이 제재 이외에 다른 것이 보이지 않는다. 원래 제재는 대화와 협상을 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박근혜 정부는 제재를 위한 제재를 하고 있다. 제재를 하면 북한 체제가 무너지는 것처럼, 아니면 북한 체제가 고통 때문에라도 우리가 원하는 것을 들어줄 것이라는 환상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7월부터 북한 체제 붕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드러냈다. 지난해 7월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통일준비위원회 민간위원 집중 토론회에서 박 대통령은 '내년에라도 통일이 올 수 있으니 준비를 잘하라'고 말했다.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의 숙청과 북한의 고위급 인사들이 망명하고 있으니 북한 체제가 심상치 않은 것 같고, 이대로 가면 북한에 변고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 바 있다. 이렇게 되면 통일이 찾아올 수도 있으니 준비를 잘하라는 맥락이었다.

프레시안 : 중국은 비핵화는 비핵화고 북중 관계는 북중 관계대로 진행하겠다는 입장이고, 미국도 북한과 대화 가능성을 아예 닫아버리지 않고 있다. 어느 국가든 외교적인 영역에서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데 우리는 너무 외통수로 제재만 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 되면 굉장히 큰 위기로 몰릴 수 있는데, 관료 내에서 자기 정화가 안되는 것일까?

문정인 : 이명박 정부 때는 외교부가 '한미 동맹부'였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 '대북 제재부'가 돼버렸다. 박근혜 정부는 북한이 고통을 느껴서 스스로 셈법을 바꾸게 하겠다는 생각을 담고 있다. 이에 외교부가 가지고 있는 자원 모두를 북한의 행태 변화를 위해 쓰는 것이다.

이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박 대통령의 선호를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대통령 표현대로 하면 이건 '원칙의 외교'다. '죄와 벌'이라는 원칙 말이다. 북한이 잘못된 행동을 했으니까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건데, 그대로 적당히 넘어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북한이 자발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우리가 고통을 줘서 바꾸게 해야 한다는, 즉 '가학적 버릇 고치기'라는 측면이 상당히 강하다. 어떻게 보면 박 대통령은 자신이 정한 원칙의 포로가 되어버린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박근혜 대통령은 시간은 우리 편이라고 보는 것 같다. 그러나 많은 북한 전문가들은 시간을 끌면 끌수록 북한 체제는 망하지 않고, 북한은 더 많은 핵 탄두를 가지고 더 많은 핵 실험을 할 것이고 미사일을 가질 거라고 예측한다. 그리고 그렇게 강해진 북한을 상대로 협상하는 것은 더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박 대통령과 참모들은 제재를 가하면 북한이 망할 것이고 그러면 우리 식으로 핵과 통일 문제를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러한 생각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박 대통령의 지금과 같은 외교적 행보를 가져온 것이 아닌가 한다.

프레시안 : 북한 체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 보수 세력의 가장 큰 맹점과 이상한 확신 아닌가?

문정인 : '북한 같은 체제는 용납할 수 없고, 저게 없어져야만 진정한 의미의 통일도 가능하다'는 생각인데 일단 북한을 '있는 그대로'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북한이 곧 망할 것'이라는 희망적인 사고는 대북 협상에 큰 장애가 된다고 본다. 아무리 북한 지도자가 우리가 수용할 수 없는 독재자라 하더라도 대화의 상대라고 생각한다면 그만큼 북한의 정체성을 인정해줘야 한다. 그런 태도 없이 북한과의 진정한 대화나 신뢰 구축은 불가능한 일이다.

프레시안 : 베이징 대학교 진징이(金景一) 교수는 이렇게 진단을 하더라. 이명박 정부 때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쓰러지면서 북한이 망할 거라고 판단했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장성택 전 국방위 부위원장의 처형을 보고 저 체제도 끝장이라는 생각을 한 것 같다고. 실제 장성택 처형 이후 남재준 당시 국정원장이 2015년 자유민주주의 체제 통일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런 발언 역시 한국의 보수 세력이 북한을 잘 모르기 때문에 나오는 것 아닌가?

문정인 : 그런데 한국도 그렇지만 미국도 북한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다. 미국의 대북 정보와 인식은 한국이 준 정보에 많은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미국 국제전략연구소(CSIS)와 <중앙일보>가 공동 주최한 세미나에서 웬디 셔먼 전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은 "북한은 곧 붕괴될 것이며, 지금 필요한 것은 북한을 제외한 6자 회담 5개국이 협의체를 만들어서 북한 붕괴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과 미국 사이에 이른바 '대북 정보 일체화 현상'이 있는 것 같은데, 사실상 북한의 변화에 대한 한국의 이른바 '희망적 사고'가 미국 주류 사회에 많이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 한-미-일 3국 6자 회담 수석대표가 1일 일본 도쿄에서 만났다. 왼쪽부터 성 김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 이시카네 기미히로(石兼公博)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 김홍균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AP=연합뉴스

프레시안 :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안인 2270호가 곧 100일이 된다. 실효성이 있었다고 보나?

문정인 : 부분적인 실효성은 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생각한 것처럼 치명적인 실효성은 없는 것 같다. 어느 정도 효과는 있지만 북한이 생존할 수 있다면 그건 효과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물샐 틈 없는 제재를 통해 북한이 엄청난 고통을 느껴야만 제재가 효과가 있는데, 그런 효과를 보진 못한 것 같다.

프레시안 : 그런데 미국은 북한을 '주요 자금 세탁 우려 대상국'으로 지정했다. 2005년 방코델타아시아(BDA) 제재보다 훨씬 더 강력한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고 있다. 박근혜 정부도 이런 기대를 하고 있는지 외교부 대변인 논평을 통해 미국의 조치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문정인 : 이미 다 실행하고 있는 것이라서 기대만큼 효과가 나올지는 의심스럽다. 오히려 한국 외교부가 제재 효과를 지나치게 과대 포장하면서 국민의 기대를 높이고 있다는 점이 다소 우려된다.

지난번 북한 해외 식당 종업원 13명이 집단 탈북한 사건과 관련, 박근혜 정부는 대북 제재가 잘되고 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이라고 포장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체제 동요가 생기고, 북한이 손들고 나올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북한은 망할 것이라는 집단적인 사고가 작동하는 것 같다.

여기에 워싱턴까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한국과 미국의 집단적 사고가 북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악화시키고 있다는 데 문제의 본질이 있다.

중국, 북한과 당 대 당 채널 복원 시동

프레시안 : 북한에 대한 국제적인 대북 제재 국면이 계속되는 가운데 리수용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수십 명의 대표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했다. 4차 핵 실험 이후 북한 고위급 인사의 첫 방중이었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도 만나면서 주목을 받았다.

문정인 : 중국은 일관된 자세를 가지고 있다. 중국은 한반도 문제 해결의 3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고 비핵화를 모색하며, 모든 현안은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면 만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이번 만남도 이러한 기본적인 입장 하에서 이뤄졌을 것이다. 중국 정부는 자신들이 내놓은 3대 원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물론 그렇다고 중국이 비핵화와 관련한 자기들 입장을 약화시킨 것은 아니라고 본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 이행은 계속하고 있지만, 중국은 북한에 대한 압박보다는 설득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입장이다. 여기서 한국과 미국이 보조를 잘 맞춰주면 뭐라도 만들 수 있는데, 중국의 이러한 행태를 '중국이 주도권을 쥐려는 것'으로 파악하고 한미 양측이 화답하지 않으면 국면 전환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특히 한국, 미국과 중국 간의 대북 공조 간극은 더 커질 것이다.

프레시안 : 이번에 리수용 부위원장이 시진핑 주석을 만난 것은 북중 관계에서 나름의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 있다.

문정인 : 상당히 의미가 있다. 시진핑 주석의 표정부터 3년 전에 최룡해 당시 당 비서를 만났을 때와 다르지 않았나. 최룡해 만났을 때는 표정이 굉장히 딱딱했는데 이번엔 밝게 웃기도 하더라. 더군다나 지금 4차 핵 실험 때문에 국제 사회가 서슬 퍼런 대북 제재를 하겠다며 달려들고 있는데, 북한이 중국에 와서 식량을 달라고 했던 것을 보더라도 이 방중이 사전에 상당히 조율이 잘 돼 있었던 것 같다.

▲ 지난 1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과 리수용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만남을 가졌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이번에 중국이 내보낸 메시지는 분명하다. 당 대 당 관계는 잘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북중관계 관련 질문에 대해 "다른 기관들끼리 잘 협력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라고 답변하는 것을 보더라도 중국공산당과 조선노동당 사이에 그동안 소원했던 채널이 복원된 것 아닌가 하는 추론을 하게 된다.

당 대 당 관계가 좋아져야 중국이 북한에 영향력을 갖고 그래야 핵 문제에도 일정 부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당 (중국의 대외연락부) 대 당 (북한의 국제부) 대화 채널을 복원시켰을 것이다.

프레시안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과 히로시마를 잇따라 방문한 것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문정인 : 중국 입장에서는 이를 염두에 둔 포석이었을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행보가 대중국 봉쇄의 일환이라고 생각하고, 북한을 끌어들여서 미국에 메시지를 던지는 것일 수 있다.

오바마, 북핵 해결 나설 가능성 없어

프레시안 : 그런데 북한이 핵 실험을 하기 전에 뉴욕에서 북미 간 평화 협정 이야기가 오갔다는 보도도 있었고 지난 2월에는 민간 차원이긴 하지만 독일 베를린에서 최선희 북한 외무부 부국장과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 미국의 북한 전문 사이트 38노스의 조엘 위트 연구원 등이 만남을 가졌다. 또 얼마 전에는 스웨덴에서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개최하는 세미나에 북한과 미국 측이 참석했다. 민간 차원이긴 하지만 이러한 접촉이 있다 보니 북한과 미국 사이에 핵 문제에 관한 협상이 진행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 문정인 연세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문정인 : 북한은 미국과 대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2012년 3월, 북미 간 2.29 합의가 나온 뒤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 리영호 당시 외무부 부상과 최선희 부국장이 뉴욕을 찾았다. 그때도 북한 측의 발언은 일관됐다. 미국과 관계 개선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리영호 부상은 미국은 불공정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이 이란, 쿠바, 시리아 같은 국가들과는 수교를 했다가 단교했지만 북한에게는 수교의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는 것이 리 부상의 주장이었다. 심지어 최선희 부국장은 '핵이 문제라고 한다면 미국이 북한과 군사 동맹을 맺어주는 즉시 핵무기를 포기할 수 있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당시 존 케리 상원의원은 수교를 맺으려면 미국 상원의 비준이 필요한데 상원의원 100명 중 어느 한 명,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비준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행정부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북한이 먼저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 행보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구체적 행보에 대해서는 대니얼 러셀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의 발언을 보면 알 수 있다. 핵 동결하고 과거의 핵 활동에 대해 믿을 만한 신고를 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이 핵 시설을 사찰하고 나면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도 원하는 것이 있다. 연례적인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의 중단이다. 이걸 하면 미국이 원하는 것을 수용하겠다는 건데 한미 양국은 군사 훈련은 주권적 조항이라며 수용할 의사를 보이지 않았다. 이게 결국 맞지 않으면서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셈이다.

프레시안 : 일각에서는 미국이 지난 25년 동안 고수해왔던 '선 비핵화 후 평화 협정' 정책을 포기하고 동시적인 접근법을 가져가려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미 군사 훈련 중단과 북한의 핵 동결을 일차적인 조치로 동시에 하려는 준비가 있다는 관측도 있다.

또 미국 외교정책포커스의 존 페퍼 소장이 얼마 전 오바마 정부의 핵 정책에 대해 대단한 업적이지만 동시에 실망스럽다고 평가했다. 이란의 핵을 동결시켰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부분들이 남아있고, 특히 북한이 오바마 대통령의 임기 동안 세 번이나 핵 실험한 것을 예로 들었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오바마 대통령이 임기가 끝나기 전에 북한과 핵을 가지고 협상할 가능성이 있을까?

문정인 : 그건 현실적으로, 시간적으로 힘들다고 본다. 이제 여름이면 완전한 대선 국면에 접어들기 때문에 더욱 어렵다.

미국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 마지막 해는 업적을 남기기는 너무 늦은 시기다. 물론 힐러리 클린턴과 오바마 쪽이 인사들은 생각이 같은 사람이 많다. 그래서 만약 클린턴 전 장관이 당선된다면 오바마의 대북 정책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더 강경한 입장을 취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중국의 압력 때문에 평화 체제 협정과 관련한 연구를 해야 한다는 주장은 많이 나오지만, 국무부 쪽에서 이걸 심각하게 보고 행동에 옮기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프레시안 : 결국 미국은 북한 붕괴에 대한 기대가 있고, 적어도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선조치를 하지 않는 한 협상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문정인 : 잘 짚었다. 그 두 가지가 핵심이다.

박근혜, 명분 때문에 아무것도 못할 것

프레시안 : 지난 5월 20일부터 북한은 국방위원회 공개 서한, 인민무력부의 통지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담화 등을 통해 이례적일 정도로 남북 군사 회담을 열자고 재촉하고 있다. 북한은 대체 무슨 목적을 가지고 이러는 것일까?

문정인 :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한마디 하지 않았겠나. 7차 당 대회 끝났으니까 남북 관계 개선해야 한다고 한마디 했겠지.

남이나 북이나 정책 결정 구조에서 경직성이 작용하는 것 같다. 사실 우리가 볼 때는 북한의 행태가 이해가 잘 안 되지 않나? 그 정도로 판을 깨 놓고 나서 대화하자고 하면 그걸 어떻게 받겠나?

그렇다고 남한이 잘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시간을 끌수록 우리한테 불리해지는데 박근혜 정부는 자꾸 '시간은 우리 편'이라고 우기고 있는 형국이다. 남북이 모두 '오도된 구체성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느낌이 든다.

▲ 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1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추념사를 통해 북한이 핵을 고집하면 자멸의 길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AP=연합뉴스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 임기가 1년 반 정도 남았다. 남북 간의 대치 상태가 이대로 쭉 가게 될까?

문정인 : 박근혜 대통령은 확고한 '명분주의자'다. 명분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명분을 바꿔야 한다. 그러려면 정당화의 '준거'가 있어야 하는데 북한이 협조를 안 해주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자기 원칙을 꺾으면서까지 북한과 대화할까? 상당히 어렵다고 본다.

더군다나 내년에는 대선 국면이라 박 대통령은 더 주목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동력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대통령이 리더십을 발휘해서 남북 대화를 시작하고 핵 문제와 관련된 외교적 주도권을 가져온다면 좋겠지만 가능성이 높지 않아 보인다.

요즘은 가는 데마다 비핵화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비핵화는 그렇게 슬로건으로 이야기하는 것보다 구체적 행보가 중요하다. 그런 것 하나 없으면서 제재만 가하면 북한이 비핵화 하겠는가. '제재=비핵화' 라는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계속 주다가는 크게 역풍을 맞을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이 비핵화는 하지 않은 상태에서 중국 중재 하에 미국과 평화 체제 관련 직간접적 대화라도 전개하면 낭패 아닌가.

(문정인 연세대학교 교수와의 인터뷰는 다음 기사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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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규 편집인
박인규

서울대학교를 나와 경향신문에서 워싱턴 특파원, 국제부 차장을 지내다 2001년 프레시안을 창간했다. 편집국장을 거쳐 2003년부터 대표이사로 재직했고, 2013년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이사장을 맡았다. 남북관계 및 국제정세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프레시안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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