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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월 아기를 바위에"…여전히 아픈 4.3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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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월 아기를 바위에"…여전히 아픈 4.3 이야기

[박진현의 제주살이] 4.3 다룬 그림책 펴낸 권윤덕 작가

현대사의 비극 제주 4.3 사건을 다룬 그림책 <나무도장>(꿈교출판사)이 출간됐다. <나무도장>은 학살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한 소녀의 아픈 이야기를 아름다운 그림으로 풀어냈다. <시리동동 거미동동>, <꽃 할머니> 등의 작품을 만든 권윤덕 작가(57세)가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취재와 현장답사, 자료조사, 고증과 모니터링 등을 거쳐 제주 4.3의 이야기를 다듬었다. 작가는 올해 2월에 책을 발간하고 3월부터 6월까지 전국 곳곳에서 출간기념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제주에서는 지난 3월 26일 4.3평화기념관 대강당에서 출간기념 '헌정식'을 열었고, 그 다음날 27일에는 서귀포시 '북타임'이라는 책방에서 강연을 했다. 필자는 3월 27일 강연회에서 작가를 만나 책 이야기를 들었다.

▲권윤덕 작가 ⓒ박진현


학살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한 소녀의 이야기


<나무도장>은 학살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한 소녀의 이야기이다. 책 속의 주인공인 열세 살 시리는 집안 누군가의 제삿날, 어머니를 따라 집을 나선다. 두 사람이 다다른 곳은 산자락 우거진 덤불 사이 입구가 좁다란 동굴. 어머니는 동굴 속 어디쯤 자리를 잡고 앉아 시리에게 10여 년 전 이야기를 들려준다.


검거를 피해 산으로 올라간 사람들과 이들을 토벌하려는 군경과 서북청년단 사이에서, 애꿎은 사람들이 무참히 죽어 간다. 수많은 사람들이 '산사람'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빨갱이'로 몰려 토벌대의 총탄에 죽어 가고, 적잖은 사람들이 경찰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앞잡이'로 몰려 무장대의 죽창에 죽었다.


어머니는 어느 날 '토벌'에 나섰던 동생으로부터 가슴 아픈 고백을 듣는다. 동굴 속에 숨은 주민들을 밭담 앞으로 끌고 가 사살했는데, 그 중 한 여인이 품에 안고 있던 어린아이가 잊히지 않더라는, 그 아이가 아직 살아 있을지 모른다는... 두 사람은 어둠을 틈타 밭담 앞으로 가, 죽은 어미의 치마폭에 쌓여 있는 아이를 데려온다. 어린 시리의 작은 손에는 나무 도장 하나가 꼭 쥐여 있었다. 시리는 어머니와 함께 동굴을 나간다. 11년 전 어머니 품에 매달려 나갔던 그 길이다. 오늘은 어머니의 제삿날. 제사엔 시리가 좋아하는 외삼촌도 온다.

제주 4.3을 모르고서는 제주를 알 수 없어


제주는 아름다운 풍광과 자연을 간직한 섬이다. 이 제주의 첫 관문인 제주공항부터 4.3 사건 당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간 학살 터이다. 우리가 제주에 첫 발을 디딜 때부터 4.3 사건의 현장을 밟고 서 있는 셈이다. 돌담, 오름, 바닷가 곳곳에 68년 전 그 슬프디 슬픈 역사가 배어 있다. 1947년 3월 1일 '관덕정 발포 사건' 이후 1954년 '한라산 금족령 해지' 때까지 당시 제주 인구 10명에 1명꼴인 2만5000명 이상의 주민들이 죄 없어 죽어갔다. 이 비극적인 사건을 모르고서는 제주도민과 제주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제주에 와서 <프레시안>에 글을 쓰면서 4.3의 이야기는 나에게 언젠가는 써야할 숙제로 남아 있었다. <나무도장>을 만나고 비극적이고 끔찍한 이야기를 풀어낼 용기가 생겼다.

끔찍한 '유아 살해 사건'을 모티프로 삼아


작가는 이 책의 모티프를 '빌레못굴의 학살'에서 찾았다. 제주 어음리에 있는 빌레못굴은 4.3 당시에는 몇몇 사람을 제외하면 그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다. 지금은 그 길이가 1만1749m로 단일계통의 용암굴로는 세계최장이라 하여 천연기념물 342호로 지정되어 있다. '빌레못굴의 학살'은 1948년 1월 16일 일어난 사건이다. 가족 중 청년이 입산한 소위 '도피자 가족'이거나, 토벌대의 주목을 받게 된 사람들이 숨어 지내다 굴이 발각되는 바람에 28명이 집단총살 됐다. 작가는 '빌레못굴의 학살' 중 경찰이 일곱 달 된 아기를 바위에 던져 죽인 끔찍한 '유아 살해 사건'을 이 책의 모티프로 삼았다.

"제주 4.3 증언집을 보면 토벌대에 의해 빌레못굴이 발각됐어요. 토벌대가 나오면 살려준다고 해서 동굴 속에 숨었던 사람들이 나와요. 그 중 아이 엄마가 일곱 달 된 아이, 제주말로 물애기를 안고 나오다가 동굴 입구가 좁아 같이 나올 수가 없는 거에요. 동굴 앞에 있는 경찰에게 아이를 맡겼어요. 경찰은 그 아이를 받자말자 다리를 잡고 바위에 내쳐서 죽여요. 엄마가 그것을 보고 동굴에서 나와 울부짖으면서 아이를 안으니까, 경찰이 개머리판으로 엄마 머리를 부숴서 죽였다는 내용입니다."

작가는 끔찍한 '유아 살해 사건'을 '유아 구조'라는 문학적 허구로 바꾸어 이야기를 만들었다. 아이를 살린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겨우 일곱 달 된 아기가 그렇게 죽은 것이 가슴 아파 이 책에서라도 살리고 싶었고, 지옥 같은 학살의 역사 속에서도 실낱같은 희망을 끝내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토벌대에 의해서 벌어진 끔찍한 학살을 보면 인간에 대해 좌절을 느끼기도 해요. 하지만 당시 증언집을 보면 군인이나 경찰도 저항을 했던 기록들이 남아 있어요. 학살의 순간에 총을 쏘지 않는다든지, 확인사살을 할 때 방아쇠를 당기지 않는다든지 해서 시체더미 속에서 살아서 나오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저항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게 많은 위안이 됐어요."

▲ 빌레못굴 ⓒ권윤덕

제주 4.3은 국가권력에 의해 자행된 제노사이드


"나무도장의 시대적 배경은 4.19 혁명이 일어난 1961년이에요. 4.19혁명이 일어나면서 4.3이 다시 수면위에 올라오게 되고 진상조사도 요구하게 되잖아요. 시리 엄마도 이때 시리에게 출생의 비밀을 얘기하게 되고요. 5.16 군사 쿠데타가 터지면서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되죠."

제주 4.3 사건은 2000년 1월에 가서야 제주 4.3 특별법이 제정 공포되면서 비로소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가 착수되었다. 2003년 10월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권력에 의해 제주도민이 희생된 것을 인정하고 사과하면서 "4.3사건의 교훈을 승화시킴으로써 평화와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확산시켜야 한다"고 발표했다. 제주 4.3사건이 발생하고 55년이 지나서야 덧없이 죽어간 영혼들이 폭도가 아니라 양민이었음이 확인됐다. 진상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희생자 중에서 10세 이하도 5.8%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작가도 "국가권력에 의해 가해진 폭력이라는 관점에서 나무도장을 그렸어요"라고 밝혔다.

어른과 아이들이 같이 읽는 그림책


<나무도장>은 어른과 아이들이 같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3월 27일 서귀포 한 책방에서 열린 출간기념 강연회를 참여한 한 참가자는 "가슴이 먹먹해진다"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강연회에는 시리 나이의 여자 아이도 왔다. 그 여자 아이도 <나무도장>을 읽고 "너무 슬펐다"고 소감을 밝혔다.

"아이들이 타인의 아픔에 대해 공감하는 능력이 어른보다 훨씬 뛰어나요. 모니터링을 할 때 아이들이 이 책을 과연 이해할 수 있겠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아이들은 <나무도장>을 보면서 그림이 매우 아름답고, 색깔도 예쁜데 내용이 너무 끔직하다고 말해요. 가슴이 척척해진다고. 그런 표현들을 들으면서 아이들이 이 책에 대해서 정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지만 질문들을 품게 하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곱 살 된 첫째 아들이 집에 있는 <나무도장>을 보고 "이게 무슨 책이야, 읽어줘"라고 말해 보여준 적이 있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아들은 "왜 사람을 죽였어", "빨갱이가 뭐야"라고 나한테 물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이 다르다고 빨갱이로 몰아 사람을 죽였어"라고 답했다. 아들은 "왜 생각이 다르다고 죽여?", "옛날 경찰과 군인은 나빴어?"라면서 도대체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아이는 4.3사건의 진실을 아직 알 수는 없지만, 이야기와 그림책을 통해 고통에 대한 공감 능력과 사회적 감수성의 씨앗이 자라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작가는 이 그림책을 만들면서 현장답사와 인터뷰, 철저한 고등과 독자 모니터링을 거쳐 '4.3'의 역사를 정확히 재현하려고 애썼다. 실재했던 사건이면서, 이념과 정치적 견해에 따른 다양한 해석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직접 겪은 사람들과 유가족이 지금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림책에 나오는 장면 하나 하나가 현장 취재를 통해 만들어졌다. 등장인물들도 당시 사진을 참조해서 그렸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열권이 넘는 더미북을 만들어 다듬고 다듬었다. 작가는 <나무도장>을 통해서 "'평화와 인권'이라는 가치와 함께 해방 당시 제주 사람들의 '꿈'도 같이 이야기 하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 <나무도장>, 권윤덕 글.그림 ⓒ권윤덕


"첫 번째 장면을 공들여서 그렸어요. 해방 이후에 제주로 6만 명의 사람들이 들어왔어요. 고향을 찾아서요. 해방이 되고 나서 우리가 만들어야 할 사회에 대한 꿈도 같이 들어왔을 거라 생각하고, 그림을 그렸어요."

<나무도장>의 첫 번째 장면은 이렇게 시작된다.

'1945년, 해방을 맞아 외지에 나갔던 사람들이 고향, 제주도로 돌아온다. 새로운 꿈도 함께 들어온다.'
'사람들은 남녀가 평등하게 손잡고 가는 시대, 자유로운 나라, 모두 잘사는 세상을 꿈꾸었다. 꿈은 1947년 3월 1일, 관덕정 광장에 모인 사람들 가슴에도 넘쳐났다. 사람들은 파도가 되어 거세게 출렁거렸다.'

작가는 책을 마무리하면서 "7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가 묻어 두었던 이야기, 빠뜨리거나 애써 지워 버린 이야기들 속에서 그 파편을 찾아내 우리의 꿈으로 복원해야 한다"고 담담히 적었다. 작가가 되살린 것은 시리와 그림책 속의 제주사람 만이 아니다. 아름다운 글과 간결한 글로 새로운 세상을 향한 제주 사람들의 꿈도 함께 살렸다.

▲ <나무도장>의 첫 장면 ⓒ권윤덕

나무도장: 한국전쟁 당시 양민학살사건이 일어난 곳을 발굴하는 도중 나무도장이 나와 고인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작가는 여기서 모티프를 얻어 어린 시리의 작은 손에 나무도장을 쥐어준다.

작가소개: 1960년 경기도 오산에서 태어나 서울여자대학교 식품과학과와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광고디자인과를 졸업했다. 이후 미술을 통해 사회참여 운동을 해 오다가 1995년 첫 그림책 『만희네 집』을 출간하면서 그림책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1998년부터 산수화와 공필화, 불화를 공부했으며, 옛 그림의 아름다움을 그림책에 재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작품으로 <엄마, 난 이 옷이 좋아요>, <만희네 글자벌레>, <시리동동 거미동동>, <고양이는 나만 따라해>, <일과 도구>, <꽃 할머니>, <피카이아> 들이 있다. 2010년 한국출판문화상 저작상과 CJ그림책상, 2013년 일본군 '위안부' 유공 여성가족부장관상, 2014년 '올해의 여성문화인상-청강문화상'을 받았다.

책을 펴낸 곳: '나무도장'을 펴낸 '꿈교출판사'(대표 황수경)는 '평화를 품은 집'에서 만든 출판사다. '평화를 품은 집'은 경기도 파주에 평화도서관과 제노사이드 역사자료관을 운영하고 있다. 르완다 제노사이드, 오키나와 전쟁, 광주민주화운동, 제주 4.3 이야기 등 평화와 인권의 가치가 담긴 책을 꾸준히 기획하고 출간하고 있다.

나무도장 출간 기념 권윤덕 작가 강연회

4월 7일(목) 오전10시 30분 서울 느티나무어린이도서관

4월 15일(금) 오전10시 30분 부산 시청자미디어센터 2층 공개홀

4월 16일(토) 오후3시 부산 책과 아이들

4월 21일(목) 오전10시 순천 기적의도서관

4월 23일(토) 오후1시 인제 작은도서관 숲으로

4월 30일(토) 오후2시 제주 한라도서관 강당

5월 2일(월) 오전10시 광주 무등도서관

6월 11일(토) 오후2시 광주 양림역사문화도서관

6월 22일(수) 오전10시 파주 한빛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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