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이 올해로 68주년을 맞았다. 2000년 1월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공포되고, 2003년 10월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에서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가 확정되면서 4.3의 진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2014년 1월 정부는 4월3일을 국가추념일로 정했지만, 아직도 유족들은 4.3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화해와 상생으로 나아가는 지금도, 일부 보수세력의 4.3흔들기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제주의소리>가 제주4.3 68주기를 맞아 다섯 차례에 걸친 기획 기사를 준비했다.
글 싣는 순서
①뼛속까지 남은 4.3의 상처 '68년의 트라우마'
②진척 없는 제주트라우마센터 '광주의 교훈'
③야심차게 시작한 4.3평화인권교육 '이제는 내실'
④끝없는 4.3흔들기 '화해와 상생' 에 찬물
⑤제주평화공원 3단계 사업 '4.3초심 지켜야'
오래고 아픈 생채기를 더는 파헤치지 않으려 한다.
다만 함께 살아남은 자의 도리로 그 위에 한 삽 고운 흙을 뿌리려 한다. 지난 세월 돌아보면 모두가 희생자이기에 모두가 용서하는 뜻으로 모두가 함께 이 빗돌을 세우나니 죽은 이는 부디 눈을 감고 산자들은 서로 손을 잡으라.
이제야 비로소 지극한 슬픔의 땅에 지극한 눈물로 지극한 화해의 말을 새기나니, 지난 50여년이 길고 한스러워도 앞으로 올 날이 더 길고 밝을 것을 믿기로 하자. 그러니 이 돌 앞에서는 더 이상 원도 한도 말하지 말라.
- 애월읍 하귀리 영모원 4.3위령비에서
4.3은 보수단체들로부터 끊임없이 흔들렸다.
1999년 제주4.3특별법 제정, 2004년 4.3진상조사보고서 채택,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의 사과로 제주4.3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정리됐다.
특히 특별법에 따라 4.3희생자로 1만4000여명이 인정됐고, 4.3평화공원도 조성됐다. 뒤늦게나마 2014년에는 4월3일이 국가추념일로도 지정됐다.
하지만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제주4.3에 대한 흔들기가 시작됐다.
시작은 법적소송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의 양아들 이인수씨와 대표적인 극우인사 이선교 목사 등은 2008년부터 4.3특별법 제2조 2호에 규정된 '수형자 등에 대한 희생자 결정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며 헌법소원을 냈고, 국무총리가 위원장인 4.3중앙위원회가 결정한 희생자 1만3564명 중 1540명에 대한 결정은 헌법에 위배된다며 4.3위원회를 상대로 2차례나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또한 4.3위원회의 희생자 결정과 관련해 행정소송 2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 등 2건의 국가소송(민사)을 제기하는 등 지금까지 총 6건의 소송으로 국가 차원의 4.3희생자 결정 및 명예회복 활동 자체를 부정해왔다.
하지만 사법부는 이들이 제기한 헌법소원·행정소송·국가소송 6건 모두에 대해 '패소' 판결을 내림으로써 제주4.3에 대한 보수진영의 이념공세에 쐐기를 박았다.
마지막으로 대법원이 2012년 이인수씨 등 11명 제기한 제주4.3희생자 정보공개청구를 기각, 보수단체는 7전 7패를 당했다.
법적 소송에서 모두 패한 보수단체들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 전략을 바꿨다.
4.3희생자 중 남로당 간부 등이 포함돼 있다며 이른바 '불량위패'를 철거(희생자 재심사)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 시작했다.
재심사 대상으로 지목한 희생자는 처음에는 4명에 불과했지만 53명, 200명, 900명, 최대 3000명으로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보수단체 마다 '불량위패'의 수를 다르게 봤다. 특히 이선교 목사는 수형인 명부에 포함된 3000명까지 불량위패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제주4.3정립연구유족회를 만들어 제주에서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했다. 국가추념일로 지정된 2014년 4.3추념식에 앞서 4.3평화공원에서 자신들이 재심사 대상으로 지목한 위패 화형식을 하는 등 화해와 상생 무드에 찬물을 끼얹는 망동도 서슴지 않았다.
이들은 어버이연합, 종북척결단, 대한민국정체성회복국민협의회, 박정희바로알리기국민모임, 서북동지중앙회 등을 포함해 제주4.3진상규명모임을 구성, 행자부와 총리실, 청와대에 4.3희생자를 재심사해야 한다며 지속적인 민원을 제기했다.
성화에 못이긴 것인지, 이들의 주장에 편승한 것인지 지난해 행자부 차관은 제주에 내려와 4.3유족회와 제주도에 희생자 재심사 카드를 꺼내들었다.
더욱이 행자부는 67주년 4.3추념식에 대통령의 참석을 건의조차 하지 않았다.
행자부는 제주도 4.3실무위에 보수단체 민원을 받아들여 53명에 대한 재심사(사실조사) 요청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올해 4.13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부담을 의식했는지, 행자부는 재심사를 잠시 보류했다.
박근혜 대통령 집권 4년차인 올해에도 4.3추념식 참석은 애시당초 계획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4.3정립연구유족회 등은 지난 22일 제주도의회 도민의방에서 남로당 수괴급 간부와 무장공비까지 4.3희생자에 포함시켰다며 4.3희생자 재심사를 다시 들고나왔다.
4.3전문가들은 이들이 궁극적으로 노리는 것은 4.3희생자 재심사 자체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재심사를 통해 4.3중앙위원회가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입증하고, 정부가 공식적으로 채택한 4.3진상조사보고서를 폐기한 뒤 4.3특별법을 자기들 입맛에 맞게 뜯어고치려 한다는 것이다. 지난한 4.3 진상규명와 명예회복 노력을 무위로 돌리려 한다는 얘기다.
김동일 자유논객연합 회장은 "제주4.3을 재조사하고 수정해야 한다"며 "4.3중앙위원회에는 4.3을 왜곡하고 날조했던 주인공들이 그대로 포진하고 있고, 대부분 종북인사로 4.3중앙위원을 교체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언급했다.
김 회장은 "4.3은 공산주의자의 폭동으로, 잘못된 4.3진상조사보고서도 폐기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4.3특별법 개정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들의 입장에 보수단체가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화해와 상생 차원에서 4.3희생자유족회와 손을 맞잡은 제주도재향경우회 현창하 회장은 "잘못된 것이 있다면 법적 절차에 따라 결정하면 될 일"이라면서 "제주도경우회는 일관된 입장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현 회장은 "4.3평화공원에 위패로 모셔진 1만4000여 희생자에는 무장대에 피해를 입은 군인과 경찰, 우익인사 1700명이 포함돼 있다"며 "1만4000명의 희생자 중 53명 때문에 대통령을 못오게 반대하는 것은 명분상 약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4.3사건이 발생한 지 이제 68년이 지났다. 당시 대다수 도민들은 사상이나 이념이 없었다. 군경, 토벌대는 명령에 따랐고, 무장대의 위협에 산을 오르거나 밤과 낮에 다른 편을 해야 했던 제주도 비극으로 온 도민이 피해자로 봐야 한다"며 "그런 관점에서 도민 모두가 화해와 상생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68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제주4.3을 이념적 잣대로 재단하고, 아픈 상처를 덧나게 하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미 제주에는 군경 희생자와 4.3희생자를 한 곳에 모셔 위령하는 곳이 있다. 바로 제주시 애월읍 하귀리 '영모원'이다.
4.3희생자 신고조차 이뤄지지 않았던 2003년 애월읍 하귀리 주민들은 정부의 도움 없이 4·3희생자, 토벌대, 무장대 모든 이의 혼을 이념의 벽으로 가르지 않고 모셨다.
애조로 바로 옆에 위치한 영모원에는 위령단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위국절사 명현비'와 '호국열사 충의비'가 있고, 오른쪽에는 '4.3희생자 위령비'가 있다.
하귀리는 4.3희생자만 300명이 넘을 정도로 제주 단일 마을 중에서 가장 희생자가 많은 곳이다. 위령비에는 당시 숨진 희생자 명단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마을 출신 모든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화해와 상생' 차원에서 중앙에 있는 위령단에만 분향함으로써 모든 고인에 대한 예를 갖출 수 있도록 했다.
영모원은 4.3 당시 군경 희생자와 4.3희생자를 함께 모셔 화해와 상생의 상징으로 평가 받는다.
'지난 세월 돌아보면 모두가 희생자이기에 모두 용서하는 뜻으로 모두가 이 빗돌을 세우나니 죽은 이는 모두 눈을 감고, 산자들은 서로 손을 잡으라.'
영모원 4.3위령비에 새겨진 비문처럼 제주4.3의 화해와 상생은 언제쯤이면 온전한 모습을 갖출 수 있을까?
프레시안=제주의소리 교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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