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①뼛속까지 남은 4.3의 상처 '68년의 트라우마'
②진척 없는 제주트라우마센터 '광주의 교훈'
③야심차게 시작한 4.3평화인권교육 '이제는 내실'
④끝없는 4.3흔들기 '화해와 상생' 에 찬물
⑤제주평화공원 3단계 사업 '4.3초심 지켜야'
제주시 명림로(봉개동)에 위치한 제주4.3평화공원. 올해 말이면 제주4.3평화공원 3단계 사업이 마무리된다. 당국은 15년간의 프로젝트가 종료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총사업비 712억원. 전액 국비. 3월말 기준으로 사업 진행률은 95.7%.
지금이야 그 자리에 위치한 것이 당연해 보이지만, 그 모습을 갖출 때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최초로 제주4.3평화공원 조성이 공론화된 시기는 1990년대 중반. 그러나 정부와 국회 내 진상규명 노력이 지지부진하면서 구체적인 결과물은 나오지 못했다.
제주도가 4.3평화공원 조성사업에 뛰어든 것은 1999년. 그해 6월 제주를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이 '위령공원' 조성을 위한 특별교부세 30억원 지원을 약속하면서부터다.
같은 해 12월 국회 본회의에서 '제주4.3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하 4.3특별법)'이 통과되고 다음 해 1월 김대중 대통령이 이에 서명하면서 평화공원 조성사업도 탄력을 받게됐다. 4.3특별법에 따라 '제주4.3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이하 4.3위원회)'가 출범하게 됐고, 4.3평화공원 조성에 박차를 가하게 됐다.
2001년 4월 '제주4.3평화공원 조성사업 기본계획' 수립이 완료됐다. 2002년 3월에는 4.3위원회에서 공원조성 기본계획 1단계 사업이 확정됐고, 같은 해 10월 공원부지 매입도 완료됐다.
2003년 4월 3일 제주4.3평화공원 기공식이 열렸다. 이에 따라 위령탑과 위령제단, 추념광장과 기반시설이 들어서게 됐다.
2004년에는 제주4.3평화공원 조성 2단계 사업계획이 확정됐다. 이에 따라 지하 2층, 지상 3층 규모의 4.3평화기념관이 신축됐고, 위패봉안실도 들어섰다. 이 모습을 갖추게 된 게 2008년 3월의 일이다.
3단계 사업 추진계획이 확정된 것은 2011년 1월. 마침내 제주도가 10년 전 구상했던 단계별 사업의 마무리가 확정된 것이다. 그러나 3단계 사업을 확정짓기까지, 그리고 사업 확정 이후에도 현실화되기까지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제주 입장에서는 '투쟁'의 연속이었다.
끊임없는 외풍, 해마다 국비 확보 '전쟁'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당시 한나라당은 4.3위원회 폐지를 골자로 한 4.3특별법 개정을 시도한다. 야당과 시민사회, 제주도민의 반발로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지만, 이는 제주4.3과 평화공원 사업이 이명박 정부 아래서 겪어야 할 외풍의 서막에 불과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4.3평화공원 3단계 사업은 지지부진해졌고, 당초 예정된 사업비 120억원이 제주로 올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2011년 1월, 4.3위원회 회의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3년 3개월만에 처음으로 열려 2013년까지 120억원 국비 지원을 결정했으나 이것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것이다.
2011년말 제주도는 다음해 예산과 관련해 3단계 사업비로 국비 120억원 편성을 요구했지만, 행안부는 이를 절반으로 깎았고, 기재부는 난색을 표하다 다시 절반을 깎아 30억원을 반영했다.
2012년 제주는 3단계 사업 예산으로 90억원을 요청했지만 기재부가 '문제 사업'으로 분류하면서 벽에 부딪쳤다. 심지어 전년도에 반영된 예산마저 연말이 되도록 배정되지 않아 지역사회의 공분을 샀다. 국비 120억원 투입이 2013년까지 마무리돼야 하는데도 기존에 확정된 30억원을 배정하지 않는데다, 새로 요청한 90억원조차 이듬해 예산안 반영이 가물가물한 상황이었다.
지역 국회의원들과 도민사회가 공세에 나서자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예산결산심사소위에서 이듬해 90억원 배정과 함께 그때까지 집행되지 않고 있는 예산 30억원 집행을 결정했다. 겨우 숨통이 트인 셈이다.
그러나 2013년 1월 1일 합의된 새해 예산안은 실망스러웠다. 국회 심의과정에서 부활시킨 3단계 사업비 90억원이 끝내 반영되지 않은 것. 전년 예산안에 반영만 되고 배정되지 않은 30억원을 불용 처리해 새해 예산에 반영했을 뿐이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나머지 90억원을 '찾아오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제주지역 국회의원들이 연말 예산안 처리 때마다 끊임없이 전쟁을 치러야 했다. 내주지 않거나 예산안에 반영하지 않은 사업 예산을 제주지역 국회의원들이 상임위나 예결위에서 되살리는 일이 반복됐다.
그 결과 2014년 예산에 40억원, 2015년 예산에 35억원, 2016년 예산에 16억원이 반영되면서 총 사업비 120억원을 가까스로 확보할 수 있었다.
3단계 사업은 당초 2009년 착수하기로 됐으나, 진행이 늦어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기간 4.3평화기념관 개관 중지를 요구하는 등 평화공원 사업에 대한 보수단체들의 '딴지'도 끊이지 않았다. 이를 뚫고 4.3평화공원이 완성된 것은 분명 역사적 사건이다.
제주4.3평화공원, 정말 '완성'?
최초 제주도의 기본 계획안에서 3단계 사업 총 예산은 401억원이었다. 그러나 4.3위원회가 의결한 예산은 120억원. 항간에는 이명박 정부의 압박에 의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4.3위원회와 당시 재단 관계자 등의 발언을 종합하면 401억원에서 120억원으로 줄어든 것은 오히려 당초 계획에서 부적절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제주4.3과 딱히 관련이 없는 조형물들로 예산이 과다 책정된 것으로 판단, 4.3위원회 내부에서 예산을 조정해 의결한 것이다. 3단계 사업에 대한 갑론을박은 5년 전에만 있던 일은 아니다.
최근 완공된 4.3평화교육센터 1층에 들어선 다목적홀에 대해서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4.3평화공원 3단계 사업에 관여했던 복수의 전문가는 1000명 수용이 가능한 이 공간에 대해 "지금 대강당 규모로 사업이 늘어난 것도 궂은 날씨 때문에 위령제를 한 차례 실내에서 개최했던 것이 영향을 미쳤다. 단지 한 번의 날씨 때문에 이런 대강당을 만든다는 게 말이되냐"고 반문했다.
3단계 사업이 종점을 향해 가고 있지만, 뭔가 '불완전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사실 이 같은 지적이 더욱 날카롭게 나오는 것은 3단계 사업의 지향점에 관한 부분에서다.
4.3평화재단의 한 관계자는 "지금은 위령공간으로서의 성격이 강하지만, 앞으로 보편적인 평화가 살아있는 공간이 돼야 할 것이다. 도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특히, 지금 다른 육지부 역사공원에 비해 예술성이 있는 조형물이 빈약하다. 이를 통해 4.3평화공원을 더욱 성지화 할 수 있다"고 화두를 던졌다.
호소력 있는 예술이 담긴 공간, 모두에게 열려있는 동시에 4.3의 진실을 전파하는 보편적 역사문화공간으로서 작용해야 된다는 생각은 사실 공원 조성시 최초의 지향점이다.
2001년 4월 제주4.3평화공원 조성사업 기본계획이 수립될 당시 1단계는 '위령과 추모', 2단계는 '기록과 기념', 3단계는 '승화와 확산·교류'라는 방향성이 제시됐다. '승화'와 '확산'이라는 키워드 자체는 '문화예술'과 직접 맞닿아있다.
2009년 제주발전연구원이 2년간의 연구용역 끝에 내놓은 4.3평화공원 3단계 사업 구상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당시 제주발전연구원은 40억원을 투입해 평화문화예술시설을 도입해야 한다는 결론을 냈지만 수용되지 못했다.
새로 지은 4.3평화교육센터에 현재 4.3평화기념관 내부에 있는 어린이체험관을 옮기기로 한 것도 '예술전시공간이 부족하다'는 문제제기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문화예술 기능의 강화' 필요성은 어느정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3단계 사업 최종안에는 반영되지 못했다는 문제제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올해 정부예산에 4·3평화기념관 상설 전시실 리노베이션 예산으로 12억원이 반영됐지만, 이는 당초 목표했던 30억원에는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새로운 전시공간 조성을 위해서는 턱없이 부족하다.
"진실규명 앞장선 작가 작품 방치돼서야…강요배 작품이라도 걸었으면"
전시시설의 부족은 4.3평화공원의 확산성과 가치를 제고할 수 있는 계기를 놓쳐버린 것 아니냐는 지적과도 연결된다. 실제로 제주4.3을 대표하는 작품들이 4.3 정신 확산의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음에도 이 곳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김종민 4.3평화재단 이사는 "가령 강요배 화백의 그림을 걸 곳이 없다. 제주를 대표하는 상설전시 공간에 있어야 할 작품인데도 말이다. 혹 탐미협이 매년 개최하는 4.3미술제를 돌아가면서 전시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이제라도 조금 알차게 (예술적으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며 "4.3과 관련해 예술작품이 중요한 역할을 해야한다. 아트워크가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 힘든 것을 하나의 작품으로 표현해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경훈 제주전통문화연구소장 역시 4.3평화공원 내 예술문화 전시시설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박 소장은 "제주는 동일한 비극적 사건을 겪은 국가와 지역에서도 볼 수 없는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다. 사실 유족들의 삶이 정리되면 예술 문화적인 것이 남는다. 4.3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는 것인데 다들 무관심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옛날 '빨갱이' 소리를 들으면서, 손가락질 당하면서 4.3을 그려온 예술가들과 작품이 많다. 그런데 이제와서 그 작품들이 개인 작가 골방에 방치되고 분실되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 한다"고 아쉬움을 표명했다.
반면 제주도 관계자는 "3단계 사업 중 4.3평화교육센터가 준공됐고, 이어 연못수질개선과 노후 배수시설 정비, 추념광장 배수개선 사업, 평화의 숲 조성까지 진행돼 올해 마무리되면 2001년부터 이어져 온 4.3평화공원 조성사업이 마무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모든 사업이 마침표를 찍는 것으로 보는 셈이다.
그러나 4.3 평화공원이 완전한 모습을 갖췄다고 보기에는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모든 게 '완결'됐다고 보는 건 성급하다는 지적이 많다.
원희룡 지사는 2014년 4월 지방선거 과정에서 "(4.3평화공원은)아직 미완성"이라며 "120억원이 아니라 401억원의 국비를 확보해 하대부지에 복합문화시설과 4.3치유센터, 4.3올레길을 조성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 제주도당은 지난 2월 4.13총선 공약으로 4.3평화공원 4단계 사업을 내건 바 있다.
이들 모두 4.3평화공원 조성이 완결됐다고 서둘러 방점을 찍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인 셈이다.
이 대목에서 4.3특별법 제정의 터를 닦고, 4.3평화공원 3단계 사업 예산 확보에 큰 역할을 한 장정언 전 4.3평화재단 이사장의 말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나는 평화공원 조성을 '단계별 사업'으로 보고 이제 '3단계 사업을 마쳤다' 이런 인식을 갖고 있지 않다. 마무리되는 사업이 아니라 4.3희생자들의 넋을 달래고 유족들을 위한 일로써 계속돼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60년 동안 힘겹고 아프게 살아온 유족들의 마음을 달래는 일은 계속돼야 한다. 4.3 영령의 넋을 달래는 일, 그 일환으로 계속돼야 한다. 60년을 힘들게 살아온 유족들의 마음을 달래는 일이 어떤 것인지를 공직자나 관계자들이 소임으로 알아야 한다."
프레시안=제주의소리 교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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