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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 경제'의 몰락, 기로에 선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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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 경제'의 몰락, 기로에 선 한국

[좋은나라 이슈페이퍼] 신기후체제와 대한민국의 선택

파리 협정 타결로 신기후 체제 출범과 화석 연료 퇴출이 가시화하면서 우리나라는 과거의 패러다임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 교토 의정서 체제에서 우리나라는 온실 기체 의무 감축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었다. 하지만 신기후 체제에서는 5년마다 감축 목표를 주기적으로 갱신해 유엔에 제출해야 한다. 후퇴가 불가능한 '래칫(ratchet)' 메커니즘을 고려하면 우리나라는 보다 과감한 감축 목표 설정과 이행 압력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저탄소 경제를 향한 기술, 금융, 시장의 방향 전환이 없었더라면 파리 협정은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파리 협정은 '외교적 승리'이자 동시에 '시장의 승리'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화석 연료 우대 정책을 지속해 국가 경제의 미래를 통째로 희생시키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화석 연료에 의존하는 갈색 경제와 재생 가능 에너지 및 에너지 효율 혁명에 기초한 녹색 경제, 대한민국은 그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필자)

2015년 12월 12일 저녁 7시 16분 프랑스 파리 북동부의 르부르제(Le Bourget). 롤랑 파비우스 프랑스 외무부장관이 반기문 사무총장 등 유엔 고위급 인사들과 함께 회의장에 들어섰다. 단상에 오른 그는 상기된 표정으로 녹색 의사봉을 내리치며 말했다.

"여러분, 파리 협정이 체결되었습니다."

회의장은 순식간에 박수와 환호로 가득 찼다. 불과 몇 주 전 테러로 130명이 사망한 비극의 도시에서 '지구 행성과 미래세대의 승리'를 선언하는 반전의 순간이었다.

파리협정 타결은 '세계 외교사에서 가장 위대한 승리'로 평가된다. (☞관련 기사 : Paris climate change agreement: the world's greatest diplomatic success) 국제 사회가 196개 당사국(20163월 현재 195개국이 유엔기후변화협약에 서명했지만 유럽연합(EU)이 별도의 당사국 지위를 갖고 있기 때문에 당사국(parties) 수는 196개이다.) 모두에 적용되는 보편적이고 구속력 있는 기후 체제의 출범에 처음으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사실 파리 총회는 인류가 기후 변화에 따른 파국을 막을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마지막 시험대였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부터 가장 부유한 나라까지 동의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일각에서는 파리 협정의 의미를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나 권리장전 선포에 견주기도 한다.
교토 의정서에서 파리 협정까지

국제사회의 기후변화 대응이 본격화한 것은 1992년 브라질 리우에서 열린 유엔환경개발회의에서 166개국의 서명으로 기후변화협약이 채택되면서부터다. 기후변화협약은 협약 당사국들을 선진국 그룹인 부속서 I 국가와 개발도상국 그룹인 비부속서 I 국가로 구분하고, '공동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common but differentiated responsibility)' 등 기후변화 대응의 기본원칙을 채택하였다.

당사국들은 1997년 일본 교토에서 열린 제3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온실 기체 감축행동과 관련하여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선진국들의 의무감축을 규정한 교토의정서가 체결된 것이다. 교토의정서는 미국과 호주 등의 불참으로 그 의미가 퇴색했지만 2004년 11월 러시아가 비준에 성공하면서 2005년 2월 발효되었다. 이로써 선진국들은 제1차 공약기간(2008~2012년) 동안 온실 기체를 1990년 배출량 대비 평균 5.2%를 줄여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되었다.

그러나 교토의정서의 한계는 처음부터 분명한 것이었다. 주요 배출국들이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의무감축 대상이 37개 선진국(전 세계 배출량의 약 24%)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교토의정서의 실효성을 둘러싼 논란은 제1차 공약기간이 끝나는 2012년이 가까워지면서 가열되기 시작했다. 유럽연합 등 선진국들은 감축의무를 지는 국가가 너무 제한적이어서 기후변화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주장을 폈다. 중국과 인도 등의 온실 기체 배출량 증가속도가 너무 빨라 선진국들만의 감축은 더 이상 의미가 없으므로 제2차 공약기간(2013∼2020)부터는 개발도상국도 감축에 함께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과 인도 등은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들에게 감축 부담을 요구하는 것은 전형적인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논리로 맞섰다. 온실 기체 배출의 역사적인 책임은 선진국들에게 있으므로 기후변화 대응을 핑계로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려는 개도국들의 경제발전을 막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개발도상국들은 온실 기체 배출에 역사적인 책임이 있는 선진국들이 더욱 과감한 온실 기체 감축에 나서야 하며, 개발도상국들의 기후변화 대응에 필요한 재정과 기술 제공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렇듯 상반된 시각은 2009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제15차 당사국총회에서 파열음을 내면서 협상 실패와 유엔이 주도하는 다자간 협상의 무용론 확산에 기여하게 된다. 유엔 기후체제의 붕괴까지 거론되던 분위기가 반전의 계기를 맞게 된 것은 2011년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제17차 당사국총회에서다. 당시 194개국 정부 대표단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모두 참여하는 신(新)기후체제를 2020년 이후 출범시키고 이에 관한 협상을 늦어도 2015년 말까지 마무리한다는 시간표에 합의했다. 파리협정은 파리에서 탄생했지만 이 협약을 잉태한 곳은 더반이었던 셈이다.

'총성' 멈추고 '평화' 깃들다

신기후 체제 출범 논의의 배경에는 현재의 레짐인 교토의정서 체제에서는 기후변화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는 인식이 존재한다. 따라서 신기후 체제의 제반 규범을 정하고 있는 파리협정은 구기후체제의 상징인 교토의정서와 근본적인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교토의정서는 온실 기체 감축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파리협정은 감축, 적응, 재정, 기술, 역량배양, 투명성의 6대 쟁점을 포괄하고 있다. 교토의정서의 적용 대상이 37∼38개 선진국에 국한된데 반해 파리협정은 196개 당사국 모두에 적용되는 보편적인 협약이다. 따라서 감축 대상이 전 세계 배출량의 100%에 근접하는 것은 파리협정이 교토의정서에 비해 진일보한 측면으로 해석된다. 두 협약은 감축목표 설정방식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교토의정서는 줄여야할 온실 기체 배출량을 정한 후 그 부담을 국가별로 배분하는 하향식이었지만, 파리협정은 개별국가가 스스로 결정한 '자발적 국가 기여(Intended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s; INDCs)'에 기초해 상향식으로 참여하도록 설계됐다.

파리협정문에는 2100년까지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2℃ 훨씬 아래로 유지하며, 궁극적으로는 1.5℃까지 제한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목표가 담겼다. 이는 해수면 상승으로 국가를 포기해야 할 운명에 처한 도서 국가들과 시민단체들이 '윤리적 마지노선'으로 요구해 왔던 사항이다. 파리총회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베네수엘라 등 일부 산유국들이 1.5℃ 목표의 채택에 반대했지만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2℃ 이내로 제한하는 것과 1.5℃로 제한하는 목표의 차이는 무엇일까. 국제사회가 화석 연료 이용에서 탈피하는 탈탄소화 시점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발간한 제5차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을 2℃ 이내로 억제하기 위해서는 2050년까지 세계 온실 기체 배출량을 2010년 대비 40~70% 줄여야 한다. 그리고 21세기 후반부에는 화석 연료의 이용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반면 1.5℃ 상승 억제 목표의 달성 경로에 대해서는 과학적인 분석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기후변화 회칙 작성을 자문한 독일 포츠담기후영향연구소의 한스 쉘른후버 박사에 따르면, 1.5℃ 목표를 달성하려면 2050년경 화석 연료의 완전 퇴출이 불가피하다.
지금까지 188개 당사국이 제출한 '자발적 국가 기여(INDCs)'를 종합하면, 모든 국가가 스스로 설정한 감축목표를 차질 없이 달성할 경우에도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 대비 2.7~3℃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세계 온실 기체 배출량이 매년 1% 정도씩 증가하고 배출량 정점(peak) 도달도 2030년까지는 불가능한 시나리오다. 따라서 파리협정에 담긴 내용에서 가장 주목해야할 것은 법적 구속력이 있는 '래칫(ratchet)' 메커니즘이다. 이는 당사국들이 5년마다 감축목표를 주기적으로 갱신해 유엔에 제출하는 방식인데, 과거에 제출한 내용과 비교해 전진은 가능하되 후퇴는 허용되지 않는다.(파리협정 타결 후 당사국들은 자발적 국가 기여(INDCs)’국가 기여(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s; NDCs)’로 전환해 5년마다 갱신된 형태로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국에 제출해야 한다.)

파리협정이 지니는 의미 중 하나는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을 둘러싸고 건널 수 없는 강처럼 여겨졌던 선진국과 개도국의 인식 차이가 상당부분 좁혀졌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당사국총회는 양 진영이 벌이는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파리협정 타결은 총성이 멈추고 평화협정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예고하고 있다. 온실 기체 감축만 하더라도 지금까지는 '선진국들만의 리그'였지만 신기후 체제에서는 '모든 국가의 경연(競演)' 방식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화석 연료에 대한 재생 가능 에너지의 승리

파리협정은 선진국의 재원공여 규모를 확대해 2020년에는 개도국에 1000억 달러를 제공하기로 한 코펜하겐회의 결정을 재확인하고 2025년까지 매년 1000억 달러 이상을 지원하기로 했다. 구체적인 재정지원 로드맵을 협정문에 넣으려 했던 개도국들이 한 발 물러서고 선진국들도 2020년 이후의 재정지원 로드맵이 필요하다는 개도국의 주장에 동의한 결과다. 하지만 선진국들의 재정 지원 약속이 '휴지조각'으로 변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올해부터는 재정지원 규모 산정 범위와 공여방식 문제가 주요 의제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몇 년간 기후변화 협상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였던 '손실과 피해' 문제에 대한 합의도 주목할 만하다. 파리협정과 당사국총회 결정문은 '손실과 피해에 관한 바르샤바 국제 메커니즘'을 지속하며, 정보 제공과 위험 전가(risk transfer) 문제를 다루는 청산기관을 설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주목해야할 것은 '손실과 피해' 메커니즘이 제도화될 경우 기후변화에 취약한 국가들이 새로운 재정지원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파리협정의 최대 승자는 투발루, 몰디브, 키리바시공화국 등 해수면 상승으로 영토를 포기해야할 처지에 놓인 군소도서국가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선진국들도 '안전장치'를 마련해두었다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파리 당사국총회 결정문은 '손실과 피해' 메커니즘에서 "법적인 책임과 보상은 배제한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21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의 결과물은 12쪽 분량의 파리협정문과 18쪽 분량의 당사국총회 결정문으로 구성된다. 전자는 법적 구속력이 있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미국 등 선진국들은 '손실과 피해' 메커니즘이 구체화할 경우 화석 연료를 과다 배출한 국가나 기업들에게 보상 책임을 묻는 국제소송이 빈발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왔다. 기후과학의 성과와 현재의 법체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피해소송 제기는 이론적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공공 및 민간영역의 기후변화 피해는 연간 560조원 정도로 추정된다. 피해규모와 원인이 분명해질수록 기후변화 피해에 따른 손실과 복구에 드는 비용을 과연 누가 지불해야 하는지 따지게 될 수밖에 없다. 몇 년 전 캐나다의 한 연구기관은 보고서를 통해 "기후변화의 다음 전장(戰場)은 법정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Gage A. & M. Byers (2014) : Payback Time? - What the Internationalization of Climate Litigation Could Mean for Canadian Oil and Gas Companies. Canadian Centre for Policy Alternatives.) 법정으로 가게 되면 우리나라 정부와 기업들은 어떻게 될까. 피고석에 앉게 될 가능성이 높다.(2012년 기준 우리나라 온실 기체 배출량은 세계 12, 연료 연소에 의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7, 기후변화의 역사적 책임을 나타내는 누적배출량은 16위이다.)

파리협정은 기후변화를 방치할 경우 국제사회가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의 산물이다. 기후변화는 국지적 분쟁과 난민 증가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등 지구촌의 안녕과 평화를 위협하는 '대량살상무기'로 인식되고 있다. 올해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을 앞두고 700여명의 전문가들이 '기후변화 대응 실패'를 현 시대의 가장 심각한 위협으로 꼽은 것이 좋은 예다.(World Economic Forum (2016) : The Global Risks Report. 11th ed. Insight Report.) 협상 타결 지연은 곧 지구공동체의 위기관리 실패로 이어진다는 공감대가 없었더라면 파리협정은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파리 당사국총회의 성공은 이미 예약되었던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국가별로 기후변화 대응수위를 스스로 결정해 유엔에 제출하는 방식은 협상 타결을 위한 보증수표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파리총회 성공의 배경에는 그보다 더 근본적인 요인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세계자본주의의 변화된 현실이다. 사실 파리협정은 '외교적 승리' 이전에 '시장의 승리'였다. 기술, 금융, 시장의 흐름이 저탄소경제 쪽으로 이미 방향을 튼 것이 파리협정 타결의 실질적인 배경이라는 의미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지멘스 IKEA 등 수백 개 기업과 도시들이 '100% 재생 가능 에너지 동맹'에 참여하고 있는 것은, 재생 가능 에너지와 저탄소기술이 이미 글로벌 시장을 움직이는 강자로 등극했음을 보여준다.

파리 협정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일 수는 없지만 파리 이전과 이후의 세계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파리 협정은 개별 국가의 자발성에 기초하고 있는 신기후 체제의 한계 속에서도 탈(脫)탄소 경제로의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는 명확한 신호를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엑슨 모빌, 셸, BP 등 글로벌 기업들이 각국의 온실 기체 감축의지를 과소평가하여 화석 연료의 과잉생산을 초래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 분석에 따르면 2025년까지 화석 연료 산업에서 약 2.2조 달러 규모의 좌초 자산(stranded asset)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Carbon Tracker Initiative(2015) : The $2 trillion stranded assets danger zone: How fossil fuel firms risk destroying investor returns)

▲ 그동안 미국 등 온실 기체 다배출 국가는 온실 기체 감축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해 왔다. 이를 풍자하기 위해 예술가들은 자유의 여신상을 '오염시킬 자유(Freedom To Pollute)'의 여신상으로 세워 놓았다. 여신상이 들고 있는 횃불에서 온실 기체를 상징하는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그 아래에 가난한 나라를 상징하는 사람들이 서 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선택의 기로에 선 대한민국

신기후 체제 출범과 화석 연료 퇴출이 가시화하면서 우리나라는 과거의 패러다임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 지난해 6월 말 정부가 발표한 온실 기체 감축 목표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2030년까지 배출 전망치의 37%를 감축하되, 그 중 11.3%는 국제 시장 메커니즘을 활용하며, 산업 부문 감축률은 12%를 초과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은 당초 제시했던 14.7∼31.3%까지 감축 범위의 4개 시나리오에 비해 목표가 상향 조정되었다며 2020년 목표보다 진전된 안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상향 조정이라는 말이 무색해진다. 해외 감축을 제외한 순수 국내 감축분만 따지면 배출 전망치의 25.7%를 줄인다는 시나리오 3안과 같기 때문이다. 이 경우 2030년에 국내에서는 온실 기체를 6억3200만 톤 가량 배출하게 된다. 이는 2020년 목표 배출량보다 16.4%포인트 증가한 양으로써, 2020년 감축 공약 파기를 전제하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수치다. 당시 정부는 4개 시나리오를 발표하면서 "2030년 목표가 확정되면 2020년 목표를 수정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2010년 이명박 정부는 2020년까지 배출 전망치(BAU) 대비 30% 감축(목표 배출량 54300만 톤)한다는 중기 온실 기체 감축 목표를 유엔에 제출했다.) 세계적인 연구 기관들이 참여하는 기후 정책 평가 기구인 '기후행동추적(Climate Action Tracker)'은 우리나라의 감축 목표를 매우 부적절한 것(inadequate)으로 평가했다. (☞관련 자료 : Climate Action Tracker)

전국경제인연합(전경련)과 대한상의 등 경제 단체들은 온실 기체 감축이 기업에 부담을 준다고 강변해왔다. 하지만 국내외를 통틀어 온실 기체 규제 때문에 기업이 문을 닫거나 해외로 이전한 사례가 있는지 의문이다. 온실 기체 감축은 에너지 효율적인 산업 구조를 촉진함으로써 경제 체질을 개선하고 성장 동력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기업의 부담이 증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부담은 미래세대를 위한 보험 혹은 투자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온실 기체 감축과 경제 성장이 상충한다는 착시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낡은 사고방식과 경제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에서 감축과 성장은 충돌하지 않는다. 1990년 이래 GDP가 44% 이상 증가하면서도 온실 기체 배출량은 19.2% 줄어든 유럽연합(EU)의 사례가 증명하고 있다. (European Environment Agency (2014) : Why did greenhouse gas emissions decrease in the EU between 1990 and 2012?) 10년 전 600억 달러였던 세계 재생 가능 에너지 투자액은 현재 3100억 달러 수준으로 5배 이상 증가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현재 전력 시장의 1% 정도를 차지하는 태양광 발전이 2050년에는 단일 에너지원으로는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International Energy Agency (2015): WEO-2015 Special Report on Energy and Climate Change.)

신기후 체제 준비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정책의 일관성이다. GDP 비중이 8%에 불과한 에너지 다소비 업종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명목으로 화석 연료 우대 정책을 지속해 국가 경제의 미래를 통째로 희생시키는 우를 더 이상 범해서는 안 된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 과정에서 석탄 화력 발전소 추가 건설 계획을 수정하고 재생 가능 에너지 확대를 가로막는 제도를 고치는 일이다. 갈색 경제에 의존했던 과거와 녹색 경제가 이끌어가는 미래, 둘 중 어디에 투자할 것인가. 파리협정 이후 대한민국은 그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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