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을 앞두고 한국 사회에서 가장 주목 받는 이슈 중 하나가 '경제 전망'이다. '먹고 사는 문제'가 언제들 중요하지 않은 적이 있었겠냐만, 특히 내년은 더 중요한 문제로 다가올 것이라는 사실을 많은 이들이 피부로 느끼고 있다. 정태인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을 만난 이유다.
현재 한국 경제가 처한 어려움은 근본적으론 박정희 정권 이래로 산업화 과정에서 추진해온 '수출주도형 성장 정책'이 한계에 다다랗기 때문이다. 한국의 최대 수출국인 중국을 비롯해 미국, 유럽 등 한국 물건을 사줄 나라들의 경제 사정이 좋지 않다. "가격 경쟁력에 기초한 수출은 이미 끝났으며, (중국 등과) 기술 격차 또한 줄어들고 있다"고 정 소장은 지적했다.
그러나 '박정희 정책에 신자유주의가 결합한 형태'인 현재의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이 경로 변경을 시도할까? 그럴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역대 대통령 모두가 경제가 나쁘면 재벌이 투자를 해야 경제 성장률이 올라간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재벌이 싫어하는 일을 하기 보다는 의지하게 됐다. 그런데 지금 재벌 역시 수출보다는 내수에 주력하고 있다. 과거 재벌 기업의 장점일 수 있었던 저돌적인 투자는 잊었다."
경제 민주화를 주요 대선 공약으로 내세우며 재벌 개혁을 약속했던 박 대통령은 '야당과 노동조합 망국론'을 내세워 정권에 반대하는 이들을 '때려 잡는' 동시에, 여당을 앞세워 노동 5법과 경제활성화법 등 '재벌들의 소원 수리'에 여념이 없다. '박정희식 해법'의 답습이다. 이번에도 성공할 수 있을까?
정 소장은 "(한국 경제의) 병은 속병인데, 뼈를 깎아 무엇하겠냐"면서 현 상황에서 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 소장은 또 "사회적 대타협은 인플레이션 상황보다 (침체기인) 지금이 쉽다"고 강조했다. 더욱이 '보수 정권'이 재벌을 설득하기에 더 유리하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정권 초 전교조(전국 교직원노조), 전공노(전국공무원노조)를 무력화 시키려했던 것의 연장선상에서 민주노총을 형해화시키려 하고 있다. 정 소장은 "민주노총이 무력화 되면 다음은 시민단체"라면서 "박근혜 정권은 상대를 배재해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일종의 파시즘으로 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다음은 지난 21일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에서 진행한 인터뷰 전문.
지금처럼 '정신분열'이라면… 경제 위기
프레시안 : 올해 경제 성장률은 2.7%다. 수출 증가율은 11개월 연속 마이너스(-)며, 지난 3분기 가계소득 증가율은 0%다. 가계부채는 1200조 원에 달한다. 박근혜 정부는 현 상황을 '국가 위기'로 규정해 경제활성화 및 노동개혁 관련 법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한국 경제, 진짜 위기인가.
정태인 : 위기다. 그러나 경제가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할 때를 말하는 그런 위기는 아니다. 내년 경제 성장률은 1% 후반대를 기록할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처럼 박근혜 정부가 구조조정을 대대적으로 하면 위기에 빠질 것이다.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
경제 불황의 가장 큰 원인은 수출 부진이다. 그렇다면, 내수로 경제를 살려야 하는데 주머니에 쓸 돈이 없다. 실질임금이 사실상 마이너스 아닌가. 그런데 지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동개혁 5법(근로기준법·기간제법·파견법·고용보험법·산재법 개정안 등)은 오히려 내수를 위축시키는 법이다. 이대로라면, 경제는 진짜 마이너스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 오늘(21일) 보도된 두 개의 뉴스가 인상적이다. 정부여당은 상향된 무디스의 국가신용등급이 구조개혁의 성과와 기대 때문이라며, 법안 통과를 위한 국회 압박용으로 적극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통계청·한국은행·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가구당 가계부채는 6100만 원이며 전 연령대에서 60세 이상 가구주 부채가 전년 대비 8.6% 상승해 가장 높다.
정태인 : 정부 스스로 두 가지 이야기를 동시에 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구조개혁은 성공적이며, 우리 경제는 괜찮다'라는 것과 '경제가 위기에 봉착했다. 기업에게 일반 해고의 자유를 줘 구조조정하고, 노동개혁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거의 정신분열 수준이다. 자신의 선거를 위해서는 '(경제가) 좋다'고 해야 하고, 개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나쁘다'고 해야 하니까. 최경환 부총리는 내년 4월 총선에 출마하면 그만이지만, 다음 부총리는 어쩌란 말인가. 유일호 후보자 역시 경기 부양 압박으로 '부동산 카드'를 고려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중산층이 빚을 내서 집을 살 수 있는 여력이 없다.
CBS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최경환 부총리의 '초이 노믹스' 성적을 D로 줬다. F 받으면 재수강할까 봐. 이번에 총선에서 떨어지면, 또 재수강하려나?(웃음)
국가신용등급 관련해서 무디스의 평가가 객관적으로 나온 거라면, 무디스는 있을 필요가 없는 집단이다. 2008년 금융위기가 일어났을 때 신용평가기관을 이대로 놔둬도 되는지, 정말 세계를 뒤흔들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데 일개 민간회사에 맡겨도 되는지에 대한 회의가 있었다.
신용평가회사들은 기본적으로 이해상충을 겪는 집단이다. 그들이 돈을 받는 곳이 그들이 신용평가를 하는 기업, 은행, 국가다. 그런데 만약 그쪽에서 상층부를 상대로 로비하면, 바로 말단 애널리스트에게 압력이 간다. 그렇게 끌어올리는 것이다. 또 정부가 신용평가회사에 보낸 통계가 장밋빛이면 그런 전망이 나올 수 있다. 그럼에도 신용평가기관 4곳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그렇게 틀리는 평가를 해도 살아있다는 게 시장 실패의 증거다.
프레시안 : 이미 가계의 4분의 1을 빚 갚는데 쓰고 있다. 가처분소득 대비 원리금상환비율(DSR)이 25%에 육박하고 70% 이상이 금융부채로 생계에 부담을 느껴 저축과 소비 모두를 줄이고 있다.
정태인 : 일반인 입장에서 소비를 줄여 빚을 갚는 수밖에 없다. 소비는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의 50%를 차지하는데, 1분기에는 0.6%였고 2분기에는 -0.2%였던 민간소비 증가율이 개별소비세 인하와 임시공휴일 지정 등으로 3분기에는 1.2%로 올랐다(올해 민간소비 증가율 1.9%). 민간소비 증가율 1%대라는 것은 국민이 가계소득의 1%도 소비하지 않고 빚 갚는 데만 쓴다면 0%가 된다는 말이다.
정부는 내년 경제 성장률을 3.1%, 민간소비 증가율을 2.4%로 전망했는데 굉장히 과한 것이다. 최근 3분기 수치를 기준으로 예측한 것이다. 하지만, 내구제 구매로 늘어난 소비는 연속해 증가하지 않는다. 앞날을 보고 미리 구매하는, 미래의 소비를 한 것이기 때문이다. 빚도 갚고 소비도 늘릴 수 있을 만큼 소득이 늘지 않으면, 지금 경제를 살릴 수 없다.
상위 계층은 돈이 많은데, 투자할 곳도 쓸 곳도 없다. 그 돈을 밑에서부터 소비하게 해야 한다. 그게 '복지'다. 가계소득을 단기간에 끌어올릴 수 없다면, 복지 혜택을 늘려 소비를 증가시켜야 한다. 돈이 남아도는 사람들에게 증세해서 돈이 없어 소비를 못 하는 사람을 보조하는 것, 그것이 경제를 살리는 가장 빠른 길이다.(소득 5분위 가구(소득 상위 20%)는 전년 대비 평균 소득이 195만 원 증가한 반면, 소득 1분위 가구(소득 하위 20%)는 35만 원 늘었다. 통계청, 금융감독원,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5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 중.)
프레시안 :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부분은 개인의 일자리와 부동산, 즉 집값 문제다. 지난 11월 6일 자 칼럼 '박근혜가 부풀린 집값 거품, 곧 터진다'에서 "부동산 경기 부양과 가계 부채 증가는 한 몸으로 묶여 있다. 이런 부동산 부양책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고 지적했다. (☞바로 가기)
정태인 : 집값 상승을 이용해 '집값이 오르니 집을 사라'고 말하는 이들이 나쁜 놈들이다. 올해 신규 분양 주택은 51만7398가구이며, 올해 건축 인허가를 받은 주택은 70만 가구다. 분양 주택은 지난해보다 47.5% 증가했고, 인허가 주택은 1990년 이후 처음으로 70만 가구를 넘어설 것이다. 공급 과잉이다. 집값은 내려갈 수밖에 없다. 더는 오를 수 없다. 집값이 폭락하면, 경제는 바로 위기에 처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일부의 지적대로, 부동산이 대폭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부동산과 가계부채는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정권이든 모든 수를 써서 막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도 가계부채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다.
다만, 중국에서 금융위기가 터질 경우 또는 4~5위 대기업이 파산할 경우 등 외부 변수가 너무 많다.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6%대로 둔화하면서 역시 부채 문제가 뇌관으로 떠올랐다. 해외 투기 자본과 금융기관 등에서 엄청난 과잉투자를 했기 때문에 이를 정리하기까지 꽤 오랜 기간이 걸릴 것이다. IMF도 경고했지만, 중국의 내년 경제성장률은 5%대로 떨어질 것이다. 중국이 우리나라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5%며, 중국과 분업을 이루고 있는 아시아 국가와의 수출도 20%가 넘는다. 중국 경제의 성장세가 멈추면, 우리나라 수출 증가율은 마이너스가 될 것이다. 미국과 유럽 상황도 좋은 편이 아니고.
재벌, 소원 수리 해주는 정부… 이대로는 망한다
프레시안 : 1970년대 산업화 이후 쭉 한국의 경제를 견인해왔던 '수출주도성장'이 한계에 봉착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경제 정책의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한데, 박정희식 경제모델을 답습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정태인 : 박근혜 정부는 내년 수출 증가율을 2%대로 예상했는데, 올해와 같은 마이너스 수출 증가율이 내년에도 계속된다고 봐야 한다. 경기 주도 면에서 수출주도성장은 끝났다. 이제 우리나라 경제가 수출을 주도할 방법이 없다. 저가(低價)에 기초한 수출은 이미 끝났으며, 기술 격차 또한 줄어들고 있다.
박정희 정권의 정책에 신자유주의가 결합했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경제 기조도 신자유주의였다. 이는 나라를 시장에 맡긴다는 뜻이고, 재벌이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구조다. 역대 대통령 모두 경제가 나쁘면 재벌이 투자를 해야 경제 성장률이 올라간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재벌이 싫어하는 일을 하기보다는 의지하게 됐다.
그런데, 지금 재벌 역시 수출보다는 내수에 주력하고 있다. 과거 재벌 기업의 장점일 수 있었던 저돌적인 투자는 잊었다. 특히 기업들의 3세 승계가 과정에서 IT 및 반도체 등에서 실패하면서 백화점, 면세점, 편의점, 빵집 등 내수 쪽으로 눈을 돌렸다.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이 장악하게 되어 있는, 땅 짚고 헤엄치기다.
삼성·현대·LG 중 일부는 최첨단 경쟁을 하고 있기 때문에 투자를 하고 있지만, 다른 부분에서는 스스로 혁신의 동력을 잃었다. 그리고 중소기업은 대기업 재벌들에게 워낙 수탈을 당하고 있어, 기술 개발을 할 인센티브도 여력도 없는 상태다. 그런 면에서 굉장히 어려워졌다.
정태인 : 과거 정권의 '재벌개혁'이 실패한 원인은 소유지배구조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인 것 같다. 기업들의 정치 개입과 하청업체 단가 삭감(후려치기) 등을 문제 삼았다면, 개혁이 조금 수월하지 않았을까? 사실 기업의 지배구조는 굉장히 미묘한 점이 많다. 재벌 경영이 단순히 기업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지난 정권의 재벌개혁 방향이 추상적, 원론적이지 않았나 생각한다.
대기업이 하청업체의 단가를 후려치기 하는 상황에서 중소기업은 생산성을 향상시킬 요인이 없다. 중소기업이 제조 공정에서 1000원을 절감했는데, 대기업이 단가 1000원을 내리면, 중소기업의 혁신 성과가 그대로 재벌에 넘어가는 것이다. 정부가 기금을 통해 중소기업을 지원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반은 재벌의 계열사 형태다. 기업 계열사인 중소기업이 더 안정적인 게 사실이다. 그렇다 보니, 대기업의 갑질에 대해 직접 말하지 못한다. 정부가 대기업 편만 들 것이 아니라, 의지를 갖추고 시정해야 하는 일이다.
프레시안 : '재벌개혁'에 있어 하청업체 문제는 정치적 의지 없이는 불가능하다. 지금도 재벌은 정권을 향해 '우리도 죽겠다'라며, 구조조정과 노동자 임금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소하려 한다. 박근혜 정부는 이를 '경제활성화법'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주고 있고.
정태인 : 박근혜 정부의 구조개혁안 중 '원샷법'(기업활력제고법)은 기업이 M&A 및 구조조정을 쉽게 해주기 위한 것이다. 특히 재벌 기업의 입장을 가장 많이 배려한 것은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다. 의료민영화를 사실상 가능하게 한 것으로, 삼성의 10년 이상 묵은 소원이다.
재벌의 소원 수리보다 중요한 것은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리는 것이다. 경제를 살리려면 내수를 늘려야 하고, 내수를 진작시키려면 중소기업 하청 노동자들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이 올라야 한다. 그게 경제민주화다. 아니면, 세금을 많이 거둬 복지를 늘려야 한다. 정치가 할 일은 재벌들도 이 같은 문제의식을 느끼고 동참하게 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 그렇게 생각하는 대기업이 있을까?
정태인 : 안 그러면 재벌도 망한다. 북유럽의 복지국가 과정을 보면, 1950~60년대 상황이지만 기업들이 복지 정책이 자신들에게도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적극적으로 동의했을 때다. 또 높은 조직률을 가진 노동조합이 다른 계급과 연대하며 유연하게 대처했기 때문이다. 힘으로 이룬 복지국가가 아니다.
대기업도 지금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현대는 상황이 조금 낫지만, 삼성은 위험하다. 현대는 '부품 3만 개의 산업(자동차, 중공업 등 제조업)'이기 때문에 후발주자가 따라오는데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삼성의 주력 사업인 반도체는 비교적 간단하다. 돈과 인력을 투자하는 만큼 빠르게 좇을 수 있다. 지금 미국 실리콘밸리의 반이 중국인이라고 한다. 중국의 자본력과 기술력이라면, 삼성은 조금 위험하다.
프레시안 : 만약 삼성이 중국 기업에 추월당한다면, 한국 경제에 큰 충격이 될 것 같다.
정태인 : 별로…. 삼성이 우리나라 경제에 미치는 바가 크지 않다. 국내에 산업역량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기술력을 전파할 만큼 대단한 기술을 가진 것도 아니다. 삼성 갤럭시폰이 애플 스마트폰을 따라잡은 것을 보면, 조직적으로 '베끼기'는 잘하는 것 같다. 삼성이 종합가전업체였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재벌이라는 경영 구조 자체가 비효율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히 장점이 있다. 하지만 재벌이 정치를 건드리거나 외부를 착취하는 게 문제다.
'뼈를 깎아야 한다'는 파시즘 정권, 그러나 사회적 대타협 기회
프레시안 : 현대중공업 하청업체 사장들의 인터뷰 기사가 나오고 있는데, 정말 재벌 마음대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용자와 노동자 관계가 얼마나 불평등한지를 엿볼 수 있다. 여기에 정부까지 나서 기업의 소원 수리를 해주고 있는데, 해결점은 없을까?
정태인 : 개혁의 흐름상 구조조정을 피해 갈 수는 없다. 대신 정규직은 임금삭감, 비정규직은 임금상승 등으로 여파를 줄일 수는 있다. 지금 민주노총에 필요한 건 사회적 타협이다. 민주노총은 마치 재벌과 한몸인 것처럼 인식되어 있다. 인사이더(insider)가 됐다는 얘기다. 민주노총이 그동안 말로만 비정규직을 옹호했지, 실제로 하청업체 노동자를 위해 싸운 적이 있나?
사실 이런 사회적 대타협은 인플레이션 상황보다는 지금이 쉽다. 인플레이션이 되면, 임금을 전체적으로 줄여야 하는데, 지금은 거시적 이익(내수 활성화)을 위해서 임금을 전체적으로 올려야 한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직장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임금 연대'을 주장해야 한다. 민주노총 산하 대기업 노조가 상대적으로 덜 올리고, 다른 노동자들의 임금을 더 올리자고 주장해야 한다. 아니면, 외부 쇼크로 인하나 패닉이 오지 않더라도 경제가 장기적으로 침체할 가능성이 높다.
전 세계적인 경제의 장기 침체 원인은 첫째, 고령화에 따른 인구 변화다. 둘째는 기술 혁신의 지체에 따른 것인데, 이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리고 셋째가 사회적 불평등이다. 모두 단기적으로 해결하기는 어려운 문제다. 그럼에도 시정할 수 있는 것은 불평등 문제다. 그리고 이는 정치적인 문제다.
비관적인 것은 자본주의 역사에서 불평등이 시정된 것은 전쟁과 대공황을 겪었을 때뿐이다. 어찌 됐든 사회는 불평등을 시정하는 쪽으로 가겠지만, 위기를 겪으며 갈 것이냐 아니면 정치적으로 부드럽게 갈 것이냐의 문제가 남았다.
프레시안 : 현재 야권을 볼 때 내년 총선이 지나도 별로 기대할 게 없을 것 같다.
정태인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말하는 '소득주도성장', 방향은 맞다. 소득이 오르려면 경제 민주화가 이뤄져야 하고, 복지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성장 전략을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이젠 누구나 다 아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 야당이 국회나 정부를 집권한다고 해도 정책 기조가 크게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새정치민주연합 경제통 대부분이 관료 출신이다. 단지 그들이 새누리당으로 가지 않은 이유는 호남 출신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자신의 지역구에 호남 출신이 많아서다. 그 이유밖에 없다.
여야 할 것 없이 현 정치권의 경제정책가 성향이 거의 비슷하다. 예를 들어, <조선일보>가 기획을 위해 전직 경제부총리를 모으면, 새누리당이나 새정치민주연합 출신이나 같은 이야기를 한다. 경제 정책 기조가 바뀌기 어렵다.
무엇보다 한국 토양에서 좌파정당이 크지 못해 답답하다. 갈수록 불평등은 심화되는데, 노조도, 정당도 힘이 없어 경제적 약자의 목소리가 대변되지 않고 있다.
프레시안 : 우리가 엄청난 위기를 겪지 않고 가는 길은, 말한 대로 사회적 대타협과 같은 일종의 정치적 프로세스를 거치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소요죄까지 적용하는 현 집권세력을 볼 때 가능할까?
정태인 : ILO 사무총장이 박근혜 대통령 임기 초기에 세 번의 긴급 권고안를 보냈다. 두 번은 전국교직원노조, 한 번은 전국공무원노조와 관련해서다. 그럼에도 현 정권은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들었고, 전공노는 공무원 연금 개혁으로 거의 무력화시켰다.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 초기부터 민주노총을 형해화(形骸化)할 목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민주노총이 무력화되면, 다음은 시민단체다. 파시즘이다. 박근혜 정권은 상대를 배재해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일종의 파시즘이다. 이 또한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감각이다. 작은 정책은 레이저를 쏘듯 순식간에 처리한다.
프레시안 : 정권이 파시즘적 면모로 정치적 싹쓸이를 한다고 해도, 경제적으로는 버티기 어려운 상황 아닌가?
정태인 : '줄푸세'하고, 공기업 민영화하고, 서비스산업의 규제를 완화하면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실제로 많다. 우리나라 경제학자 90%가 그렇게 믿고 있다. '뼈를 깎는 고통을 통해 우리는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자해적 사고가 있다.(웃음) 병은 속병인데, 뼈를 깎아 뭣하겠나 싶지만…. 걱정스런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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