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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법안 '날림' 처리…야당, 또 참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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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법안 '날림' 처리…야당, 또 참패했다

국회, 심사 건너 뛰고 '학교 앞 호텔법' 등 처리…선진화법의 '역공'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2016년도 예산안 법정 처리 시한을 넘긴 3일 새벽, 예산안과 연계 논의돼 오던 '관광진흥법'과 '국제의료사업지원법안'을, '모자보건법'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안' '대리점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안(일명 남양유업법)'과 함께 본회의에서 전격 합의 처리했다.

이 가운데 '학교 앞 호텔법'으로도 불리는 '관광진흥법'과 외국인 환자 유치업자와 해외 진출 의료기관을 지원하는 '국제의료사업지원법'은 대표적인 '박근혜 관심 법안'이다. 정부·여당이 정기국회 내 처리를 계속해서 압박 중인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노동 5법, 대테러방지법, 북한인권법 등보다도 우선해서, 새누리당이 2일 중 처리에 총력을 기울인 법안들이기도 하다.

새정치연합은 애초 관광진흥법을 두고 "학습권을 파괴하는 전형적인 재벌 호텔 특혜법"이라고 비판하며, 이 법안을 반대해 온 시민 사회 및 학부모들과 의견을 같이 했었다.

국제의료사업지원법에 대해서도 야당은 "자칫하면 의료 민영화의 개문발차가 될 수 있다(지난 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유승희 최고위원)"며 난색을 보여 왔다. 보건복지위원회 야당 간사인 김성주 의원도 최고위를 찾아가 '여당 추진하는 국제의료법과 야당이 요구하는 모자보건법·전공의법의 맞바꾸기'가 어렵다는 입장을 전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새정치연합은 새누리당의 '예산안 연계 압박'이 계속되자 결국 이날 중 본회의 처리 요구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새누리당은 "야당이 협조하지 않으면 국회 심사를 거친 '수정 예산안'이 아닌 '정부 예산 원안'을 일방 처리하겠다"는 취지로 끊임없이 압박했다. 야당은 국회 상임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등에서 감액 및 증액 심사를 거친 수정 예산안을 포기하거나, 관광진흥법·국제의료사업법을 처리하라는 여당의 요구들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서 있었던 셈이다. 정부 예산 원안을 두고 새정치연합은 그간 '총선용 TK(대구·경북) 편중 예산' '보육 공약(누리과정) 포기 예산' 등이라며 비판해 왔다.

결국 새정치연합 이종걸 원내대표 등은 전날(2일) 새벽 1시께 두 법안의 처리와 함께 야당 관심 법안인 △모자보건법 △전공의법 △대리점법과 등을 '패키지'로 처리하는 데 새누리당과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 관련 기사 : '의료 영리화법·경복궁 옆 호텔법'…여야 '빅딜')

본회의를 앞두고 진행된 새정치연합 비공개 의원총회에서는 '우리 당이 대통령 심기 관리를 왜 해주느냐' '불가피하다면 (예산안의) 정부 원안으로 가자' '말도 안 되는 법을 요구하는데 뭘 얻어냈느냐' '주택임대차 전월세 상한법을 여당에 요구하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이런 합의는 하지 않는 것이 나았다' 와 같은 항의가 빗발쳤다고 한다.

그러나 2일 오후 11시까지 이어진 새정치연합 의원총회는 끝내 애초 여야 원내대표 간 심야 합의에 따라 5개 법안에 대한 표결을 진행하는 쪽으로 매듭지어졌다.

<2일 본회의를 통과한 5개 법안 표결 결과>

대리점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 : 재석 263 찬성 215 반대 25 기권 23

관광진흥법 : 재석 267 찬성 158 반대 86 기권 23

국제의료사업지원법 : 재석 264 찬성 245 반대 5 기권 14

모자보건법 : 재석 262 찬성 199 반대 25 기권 38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 : 재석 261 찬성 226 반대 9 기권 26

상임위·법사위도 건너 뛴 '직권 상정'…날림으로 쟁점 법안 처리


여야 협상에 따른 이같은 쟁점 법안 처리를, 제대로 된 법안 심사 과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예산안 처리를 앞두고 벌어진 '주고받기 식' 졸속 합의라는 비판과 함께 '국회의 정상적인 법안 심사 권한 및 의무 포기'라는 비판 또한 불가피해 보인다.

우선 이날 통과된 다섯 개 법안들은 통상적인 국회 입법 절차의 마지막 관문인 법제사법위원회의 의결을 모두 거치지 않았다. 새정치연합 소속의 이상민 법사위원장이 여야 지도부의 "심야 합의는 명백한 국회법 (59조) 위반으로 수용할 수 없다"고 반발하며 법사위를 열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회법 59조에 따르면 각 상임위원회 심사 및 의결을 거친 법안들이 법사위에 회부되면 5일간의 숙려 기간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이는 법안의 체계·자구 심사를 위해 법이 정한 기간이다. 대리점법과 국제의료사업지원법, 모자보건법, 전공의법 모두 2일 밤 소관 상임위인 정무위원회와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다. 숙려 기간을 지키면 7일에야 법사위 의결이 가능했던 셈이다.

5개 법 중에서도 관광진흥법은 아예 소관 상임위원회(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의결 절차도 누락된 채 법사위를 건너뛰어 본회의장으로 직행했다. 이날 오전 소집됐던 교문위 법안심사소위는 관광진흥법을 반대해온 교문위 소속 야당 의원들의 불참으로 여당 단독으로 개의됐다. 교문위 법안소위는 여야 동수인 까닭에 새누리당 주도의 표결 강행도 불가능해 법안은 교문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여야 지도부가 이 같은 야당 내 반발을 돌파한 방법은 국회의장의 '심사 기일 지정'을 통한 '직권 상정'이었다. 정의화 의장은 여야 지도부의 요청에 따라 해당 법들의 심사 기일을 '2일 밤 11시 30분'으로 지정했고, 이 시각이 지난 직후 5개 법안들이 법사위를 건너 뛰어 곧장 본회의에 상정됐다. 보기 드믄 일이 벌어진 셈이다.

정 의장은 당초 이날 이른 오후까지만 해도 "법안이란 충분히 논의가 되어야 하며 충분한 숙려 기간을 두고 검토가 필요하다"면서 "7, 8, 9일 중 시간을 갖고 처리하자. (이날엔 예산안만 처리하고 쟁점 법안들은) 8일 본회의가 어떠냐"고 중재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여야 원내대표가 '직권 상정' 방식에 합의하자, 정 의장은 이같은 제안을 철회했다.

국회법 85조에 따라 '직권 상정'은 △천재지변인 경우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의 경우 △의장이 각 교섭단체(새누리당·새정치연합) 대표 의원과 합의하는 경우에만 가능한 아주 예외적인 절차다.

상임위 통과 법안이 없던 관광진흥법은 더 희한한 방식으로 본회의에 올랐다. 학교 주변 75미터(m)부터 관광호텔의 건립을 허용하는 정부 발의 법안에, 여야 원내대표의 심야 합의 결과인 '서울·경기 지역 대상 5년간 한시적 시행'을 반영한 수정안이 급히 만들어져 본회의에 바로 상정된 것이다.

▲ 정의화(가운데) 국회의장과 새누리당 원유철(왼쪽)·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가 2일 오후 국회 의장실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렇게 '날림'으로 본회의장에 오른 관광진흥법의 표결 결과는 여야 '합의 처리'라는 말이 무색할 수준이다. 새정치연합 이춘석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저녁 열린 의원총회에서 "관광진흥법 중 유해 요소를 상당 부분 제거했다"면서 자당 의원들을 설득했으나, 호소력이 크지 않았던 모양이다.

관광진흥법의 표결 결과는 재석 267명, 찬성 158명 반대 86명 기권 23명이다.


새정치연합 의원 중 79명이 반대표를 던졌고 21명이 기권했다. 새정치연합 소속 교문위원 중 본회의에 참석한 의원 9명(김태년·도종환·박홍근·배재정·안민석·유기홍·유은혜·유인태·윤관석)은 모두 관광진흥법을 반대했다. 무소속의 박주선 교문위원장과 정의당 소속 의원 5명도 전원 반대했다.


이 같은 여야 협상에 대해 정의당 한창민 대변인은 "새정치연합 역시 그동안 이 법안(관광진흥법·국제의료사업지원법)은 사회적 논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해왔음에도 이런 말도 안 되는 합의에 동참했다"면서 "제1야당인 새정치연합이 원칙과 민생을 지키기보다 밀실 합의에 동참한 것에 대해 매우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비판했다.

'국회 선진화법'의 역설…연말 맞이 '여당 법안' 강행 계속될 듯


새정치연합의 이런 협상 실패는 국회선진화법의 역설 때문이다. 국회 선진화법은 연말 예산 정국이 되면 집권 여당에 훨씬 유리한 국면을 만들어준다. 매년 11월 30일까지 여야가 예산안 심사를 종료하지 못하면, 정부가 제출한 예산 원안을 국회 본회의에 '자동 부의'할 수 있게끔 한 규정 탓이다.


여당으로선 '예산 발목 잡기를 통한 쟁점 법안 처리 압박' 전술을 펼칠 절호의 기회가 열리는 셈이다.


실제로 새누리당은 올해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야당과 쟁점 사안들을 협상하면서 예산 심사를 의도적으로 지연시켰다. 해마다 "국회 선진화법으로 야당이 법안 심사 발목을 잡는다"면서 위헌 소송까지 제기한 새누리당이 연말이 되자 역으로 '예산 발목잡기'에 나선 것이다.


결국 지난 1일 0시를 기해 정부 예산안은 본회의에 자동 부의 됐다. 이는 야당에 '예산이냐, 법안이냐, 양자 간에 하나를 택하라'는 피하고 싶은 선택을 사실상 강제했다.


결과적으로 새누리당은 이날 예산안 처리와 함께 '총선용 예산'이란 비판을 받아온 'TK(대구·경북)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5600억 증액'을 그대로 사수하고, 동시에 '박근혜 관심 법안' 일부 처리라는 일거양득의 성과를 얻었다.

논란이 됐던 내년도 누리 과정(만 3~5세 무상보육제도) 예산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임에도, 올해와 마찬기지로 정부 예산이 직접 지원되지 않게 된다. 다만 '학교 시설 개선' 등을 명분으로 국고에서 3000억 원이 목적 예비비 형태로 지원됐다. 사실상 '우회' 지원이다.

향후 '국회 선진화법'의 역설은 연말마다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여야 간 이견으로 국회에서 장기 심사되고 있는 쟁점 법안들이 연말이 되면 예산안 처리와 맞물려 졸속 처리되는 전례가 계속 쌓일 것이라는 우려다. 꼭 새누리당이 아니라 새정치연합이 여당이 되더라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산 넘어 산…서비스발전기본법·노동5법, 이대로면 野는 '필패'


남은 정기국회 기간도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야 원내지도부가 2일 새벽에 내놓은 합의문에 따라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안(일명 원샷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테러방지법 △북한인권법 등을 여야는 정기국회가 종료되는 9일 안에 '합의 처리' 해야 한다. 모두 여당 요구 법안이며, '반(反) 민생 친(親) 기업 법안' 또는 '반(反) 인권 법안'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법들이다. (☞ 관련 기사 : '원샷법', 원샷으로 재벌 경영권 승계?)

새누리당이 지난 9월 당론 발의한 노동 5법(근로기준법·고용보험법·산재보험법·기간제법·파견법 개정안) 등의 임시국회 합의 처리에도 여야 원내지도부는 심야 협상 끝에 결국 합의하고 말았다. 기간제법과 파견제법 개정안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도 아직 상정되지 않아 충분한 논의는커녕 논의 시작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법안들이다.

이에 대해 새정치연합 이춘석 원내수석부대표는 "(합의문 안의 처리 시안과 관련해) '이번 임시국회'라는 문구에서 (새누리당이 요구한) '이번' 자를 빼는 데만 두 시간 반이 걸렸다"며 자당 의원들의 양해를 구했다. '합의 처리'는 '합의해서 처리한다'가 아니라 '합의가 되지 않으면 처리하지 않는다'는 뜻이라는 설명도 내놓았다.

그러나 이런 당장의 설명과는 별개로 '비정규직 확산법' '장시간 노동법'이라는 비판을 받는 노동법들 또한 관광진흥법·국제의료사업지원법과 마찬가지로 결국 '졸속 처리'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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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하얀 기자
곽재훈 기자
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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