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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서 '탈핵' 외치면 좌파인가 우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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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러시아서 '탈핵' 외치면 좌파인가 우파인가?

[민교협의 정치시평] 현실사회주의 및 탈사회주의 사회 연구의 중요성

과거 수많은 대학생들은, 대학교 1학년 때 어떤 정파가 주도하는 동아리, 학회, 비합법 서클에 가입했는가에 따라서, 주체적 고민 없이 자연스럽게 특정 정파의 구성원이 되곤 했다. 신이 이끌었다고들 강변하지만, 주변이 온통 빨간 십자가로 뒤덮인 나라에서는 기독교인이 되기가 쉽고, 주위에 이슬람 외 종교를 접할 수도 없는 나라에서는 무슬림이 되듯, 자주적이고 비판적 사고가 모자란 경우 좀처럼 진실을 알려고 하지 않고, 자신의 관념이 진실이라고 믿으며 평생을 그 관념의 우리 안에 갇혀 살게 된다.

문제는 그러한 집단이 여전히 사회운동과 진보 좌파 정치에서 상당한 발언권을 갖고 있다는 데에 비극이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한 진보적 포럼에서 바로 그러한 집단은, 다당제 정치와 현재의 소유 체제를 비롯한 사회 경제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꿀 계획은 갖고 있지 않은 한 국가의 급진 좌파 정권의 등장에 대해, '우경화', '개량주의'로 몰아 비판하는 것으로 무려 40분을 채우기도 했다. 옛 현실 사회주의는 사실 '모종의 자본주의'였다면서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고민을 너무나 쉽게 해결했다고 자부하는 그러한 집단은, 무책임하게도 사회주의에 관한 원론적 자구만으로 러시아 혁명 초기 외에는 지구상의 그 어떤 국가의 좌파 정권도 모두 다 타도해야 할 개량주의로 규정해 왔다.

이들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사회주의와 혁명 이론을 주문처럼 읊어대면서, 아직도 사회주의나 혁명을 외치면 논쟁에서 우월한 위치를 점한다고 착각하고 있다. 근본적인 체제 변혁을, 다른 이들은 왜 쉽게 외치지 않는 걸까? 90여 년 전, 사회주의 실험이 시도되기도 전이라면, 뚜렷하게 사회주의나 혁명을 외치지 않는 이들이 진짜 개량주의, 우경화로 매도되어 마땅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현실 사회주의 실험이 실패로 끝난 후에도 치열한 분석과 반성 없이 몇몇 원전과 이론만 붙잡고 교조주의적, 원론적 주장을 반복하는 것은, 인류와 역사에 대한 가장 큰 죄악이고, 사회의 진보와 자신들을 포함한 사회운동의 발전을 가로막는 해악이다. 과거 현실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반성과 비판 없이 외쳐대는 주장은 그저 급진적이기만 한 관념론에 불과하다.

현실 사회주의 체제는 사회주의 사회를 상정한 원전들의 예측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체제였지만, 자본주의 체제와는 더 더욱 거리가 멀었다. 따라서 몇 가지 요인만으로 양 체제의 차이가 없다는 주장은 전형적인 단순 일반화의 오류이며, 따라서 수많은 다양한 상부 구조에 대한 연구를 무의미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반면 이렇게 두 체제가 동질적이라는 주장과 정반대로, 구(舊)소련식 현실사회주의는 어찌되었든 이론 그대로의 사회주의 체제라고 생각하는 우파적 경향도 있는데, 이는 전자보다 더 큰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조금 다른 맥락이지만, 체제의 붕괴와 전환이 이미 오래 전에 이루어졌으므로, 그 유산이 현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쉽게 기각하고 연구하는 경향도 이러한 오류의 범주에 든다.

옛 사회주의 체제 국가들 중 러시아에서는, 그 자신이 주변부 제국이면서도, 동시에 내부에 주변부를 두고 있는 특이한 위치에서 연유하는 문제들이 많이 존재한다. 더군다나 주변부 제국주의 러시아와 현대 러시아 사이에서 존재했던 70년간의 전혀 다른 체제의 역사적 존재는, 연속성과 단절의 경계, 그리고 그 내용 문제에 있어서 매우 까다롭고 복잡한 접근법을 요구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러시아와 구소련 지역 국가들의 고유한 문제는 물론, 시장 체제로의 전환 이후 확산되고 있는 세계 보편적 문제들에 대해서도 현실 사회주의 체제를 규명하는 연구는 진보적 연구자들에게 여전히 유효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체제에 대한 개념적 혼란은 시장 경제 체제로 전환한 국가들, 특히 현대 러시아에서의 구체적인 정치·경제·사회·문화 연구에서 더욱 가중되고 있다. 이러한 혼란은 체제 전환 과정에서 소위 '보수파/개혁파', '좌파/우파'의 잘못된 구분법과 더불어,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의 '민주화'라는 개념 규정 등에 있는 많은 혼동에서도 기인한다. 이론상으로는 더 '직접 민주주의적' 체제였어야 할 사회주의 체제가 현실에서는 정반대의 억압적 권위주의적 체제였다는 역사적 사실이, 좌파적인 수사들이 등장할 때마다 우리에게 혼동을 주는 가장 근본적인 토대임은 분명하다.

체제 전환 이후에도 원래의 의미와는 달리 오랜 지배 정당의 역할에 더 익숙한 공산당 등 현실 사회주의 좌파 후신 세력들은, 사회주의권 바깥에서 발달한 (신)좌파적 의제들에는 물론 자유주의적 의제들을 소화해 내지 못 하는 의식 수준을 보여 주고 있다. 또 세계화 과정에서 중심부 국가와 자본이 러시아를 비롯한 중심부 외 지역에서 가하고 있는 불공평하고 부정적인 행위에 대한 분석은 날카롭지만, 자국의 안팎에서 자국에 의해 행해지는 유사하거나 더 잔혹한 행태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무관심, 혹은 아예 무지한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구에서는 우파보다는 좌파적인 운동 영역이었던 환경·여성·반핵·인권 등의 문제가 러시아에서는 자유주의자들의 활동 영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과거 공산당의 폭압적 지배로 인해 좌파적 대안이 왜곡되어진 이들 국가들에서는 자유주의적 의제들이 급진적 성격을 갖는 경우가 많아 자유주의적 단체들이 저항 세력의 주축을 이루기도 한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특히 자유 시장, 개방 경제 등으로 상징되는 경제적 측면에서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이념은 민중들에게 자연스럽게 진보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따라서 비록 유럽을 지향하고, 미국을 찬양하며, 서구의 지원을 노골적으로 받거나 신자유주의, 극우 민족주의적 이념이나 근본주의적 종교, 그리고 특정 지배 엘리트를 저항의 이데올로기로 삼고 있다고 하더라도, 민중의 저항이 일어나는 지점을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식 구좌파는 물론 이에서 벗어난 신좌파 양자 공히 위에서 언급한 시민 사회 문제에 대한 올바른 관점에서의 접근과 시민 사회 단체들과의 올바른 연대는 아직 요원하다. 그런가 하면 좌파적 정당과 시민 사회 운동의 사상적 동질성은 많지 않지만, 반면 바로 그 이유로 인해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연대도 이루어진다. 반대로 좌파적 대안 이데올로기가 사라진 현재 많은 국가들에서 좌파 성향을 갖지 않은 반외세, 반제국주의, 반권위주의 세력들 중에서 많은 이들이 반동적인 이슬람 근본주의나 민족주의에 의존하는 경우도 종종 목도되고 있다. 반제적인 부분을 제외하면 이들의 이념은 좌파적인 것과 거리가 먼 경우도 대부분이다.

정치 외의 문제에는 신경을 쓰기 힘들만큼 권위주의적 정권의 정치적 탄압에 저항하는 데 집중해야하는 러시아 정치의 후진적 현실도, 올바른 관점에 입각한 연대를 방해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지만, 이보다는 그에 선행하는, 위에서 언급한 더 근본적인 이유들이 존재한다. 즉, 서구에서 수백 년 동안에 걸쳐 이루어진 일들이 압축적, 복합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에 더하여 자본주의의 경험도 없고, 자유주의적 가치가 제대로 실험되지도 못한 채 사회주의 체제로 전환되었다가 다시 시장 경제로 회귀하면서 여전히 자유 자본주의적 가치조차 제대로 완수되지 못 한 단계에 있는 러시아의 특수한 현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이다.

체제 문제는 마치 별도의 연구 분야인 것처럼 보이는 민족 문제에 대해서도 그 연구의 핵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사회주의 소련의 대(對)소수 민족 정책과 제국주의 국가들의 대(對)식민지 정책은 근본적으로 큰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억압적 지배 구조의 유사성만으로 파시즘이나 제국주의 체제를 현실 사회주의를 같은 질의 체제로 보는 주장들이 있다. 물론,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에 반강제로 편입된 비(非)러시아 소수민족에 대한 소련 중앙의 정책은 이상과 달리 식민지에 대한 그것과 유사한 점도 현저했다.

그러나 소련의 정책은 식민 본국을 위한 잔혹한 수탈과 억압, 동화 과정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오히려 그러한 서구 식민지-피식민지 관계와 다른 유산이 소련 붕괴 과정과 심지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서구와 다른 민족 문제의 양상을 보여주게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독립을 획득한 구소련 소수민족 국가들의 입장에만 의존하거나 단순 일반화된 민족자결주의 혹은 민족국가건설론에 입각한 구소련의 과거 민족 억압에 대한 논의는 경계해야 한다.

비슷한 문제는 종교 등 문화에 대한 영역에서도 존재한다. 특히 소수 민족 문제와 관련하여 그들의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는 구소련 내 이슬람에 대한 연구에서 주의가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구소련 민족/국가들 중에서도 이슬람화된 시기와 정도, 수용 양상이 매우 판이함에도 불구하고, 수용 과정에 대한 역사적 팩트는 비교적 정확하게 서술하는 반면, 수용한 민족과 지역의 여러 특수성을 세밀하게 분석하지 못 하는 경향이 있다. 더군다나 70년간의 소련 시기를 거치며 매우 세속화되고 변질된 이슬람, 종교로서가 아니라 관습으로 굳어져 종교적 요소가 약해진 면도 존재하는 구소련 지역 이슬람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인한 잘못된 분석도 눈에 띈다. 또한, 외부 세력에 대한 저항과 계급적 이익 표현으로 이용되는 이슬람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중동의 이슬람과 유사한 것으로 일반화되거나 이슬람주의자들은 모조리 근본주의자로 오해되기도 한다.

또한 러시아 외 구소련과 동유럽의 많은 신생 민족 국가에게 있어서 민족주의는 신자유주의적 경제 개혁을 강요하는 서구라는 또 다른 외세의 개입이라는 문제와 크게 대립하지 않았던 특징을 보여 왔다. 따라서 다양한 우파 조직들이 자민족의 민족주의와 대립될 수도 있는 적극적 유럽화를 추구하는 것은 모순적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유럽이라는 과거로의 복귀, 즉 비공산 민주주의 체제와 시장 경제로의 복귀란 이제 무조건적으로 서구 경제에 의존했었던 공산주의 시대 이전의 주변부 자본주의 구조로의 복귀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사회주의 체제 붕괴 이후 어떤 국가는 비교적 역동적으로 발전하여 유럽의 주변부로 편입되고, 다른 어떤 국가들은 세계 체제의 주변부 혹은 반주변부로 분화할 것이라는 것, 그리고 지역을 막론하고 이들 지역의 후진성이 중심부의 발전을 위한 조건으로 변화할 것은 자명했다. 그러나 동유럽 국가들의 민중들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로의 재편입에 있어서의 종속적 지위도 마다하지 않으며 오히려 적극적으로 시장을 개방하면서, 설사 유럽 자본주의의 주변부가 되더라도 서구의 일원이 되는 것이 러시아로의 종속보다 낫다고 판단해 왔다.

따라서 시장 경제로의 전환은 곧 유럽으로의 통합을 위한 적극적 개방을 의미했다. 미국과 서구가 강요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가져 올 파국적 측면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구 사회주의 국가들의 지배 계급들 뿐 아니라, 민중들조차 시장 경제 혹은 자본주의 체제로의 전환을 받아들였다. 대안이 없는 상황 속에서 중심부 지역 국가들에 의해 운명이 좌지우지되는 것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안타깝게도 그 틀 속에서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개혁 및 개방 정책을 추구해 온 것이다.

이렇듯 탈사회주의 국가들에서의 다양한 분야에서 벌어져 왔던 현상들은 익숙한 우리의 기존의 좌/우 잣대로 분석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들이 많다. 그러나 사실 위에서 지적한 문제들은 탈사회주의 국가들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서구 중심부 지역 국가 외의 모든 국가에서의 사회 변혁 운동과 사회 현상 연구에 필요한 시각 교정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단순 현상 분석이나 학문적 연구가 아니라, 사회의 진보적 발전을 위한 연구를 지향하는 자들이라면 현실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사변적인 관념론적 해석에서 벗어나 치열한 고민에 입각한 냉정한 연구와 분석, 반성과 자기비판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한 작업 없이 외쳐대는 급진적 구호는 대중에게 설득력을 갖지 못하며, 따라서 자기 만족 외에는 사회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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