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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시리자에 열광하는 관념 좌파들, 현실을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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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시리자에 열광하는 관념 좌파들, 현실을 봐라!

[민교협의 정치시평] 그리스에서 한국 진보 좌파가 배워야 할 것은?

지난 1월 25일 치러진 그리스 조기 총선에서 반자본주의·사회주의를 전면에 내건 급진좌파연합 시리자가 집권에 성공하는 일대 사건이 있었다. 전 세계적 우경화의 바람 속에서 얼마 전까지 불과 지지율이 3%에 불과했던 시리자의 집권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비록 그리스의 경제 위기를 과도한 복지 탓이라는 거짓 선동이 버젓이 유력지에 자주 실릴 정도로 먼 나라 얘기로 여겨 왔던 한국이지만, 지리멸렬한 상태에 놓인 진보 좌파의 발전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시리자의 집권은 상당한 관심사가 되었다.

그러나 집권 이전의 호언장담과는 다르게, 연장한 구제 금융이 끝나는 6월에 체결할 새 협상에서 총선 공약을 반영하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한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는 유럽연합(EU) 탈퇴는커녕 그리스와 채권단 서로에 이익이 되는 합의를 강조해 왔다. 또한 시리자 정부가 협상 타결을 위해 민영화와 연금, 노동 등의 부문에서 양보할 가능성이 커지고, 결국 지난 2월 20일 기존 구제 금융 연장에 합의하게 되면서 에너지부 장관 등 시리자 내부 강경파의 불만이 폭발하게 되면서 이들에 의해 다시 조기 총선이 제기되는 등 벌써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그리스가 유로에서 탈퇴하여 새로운 화폐로 전환한다면 큰 평가 절하로 인한 손해가 확실하기 때문에 시리자 정부의 위험한 행보가 그리스의 유로 탈퇴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람들은 은행에서 현금을 대거 인출하는 등 국민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까지 겹쳐 경제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기댈 곳이라고는 러시아 밖에 없지만 자신이 심각한 경제 위기를 맞고 있는 러시아로서도 과거처럼 EU 대신 지원해 주겠다는 제스쳐조차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더해 국제 무대에서의 치프라스 총리와 야니스 바루파키스 재무장관의 불필요한 '객기'는 일부 국민에게는 자존심 회복을 가져다 주었는지는 몰라도 대부분의 국민에게는 불편함을 안겨 주었고, 그리스를 지지해 온 유럽의 시민들에게 실망감을 안겨 주었다. 결정적으로 나치 독일의 만행에 대한 천문학적 배상금을 요구한 치프라스 총리의 행위는 궁여지책으로밖에 해석되지 못 하고 있다.

EU '자본' 싫다고 더 추악한 '러시아'에 손 벌리는 시리자
선거 전 시리자는 빈곤선 이하의 30만 가구에게 월 300킬로와트의 전력을 무상으로 공급하고, 소득이 전혀 없는 30만 가구에게는 식량 보조금을 지급하며, 난방용 연료에 대한 세금을 폐지하고, 직업이 없거나 의료 보험이 없는 가정에는 무상 의료를 제공할 것을 공약으로 내 걸었다. 일자리 창출과 최저 임금 보장도 혁명적인데, 정부, 민간, 사회 부문에서 3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월간 최저 임금을 현재 580유로(약 71만 원)에서 751유로(약 92만 원)로 올릴 것이며, 실업률이 50%에 이르는 20대와 장기 실업의 고통을 겪고 있는 55세 이상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 외에도 최저 임금의 월 750유로로 원상 회복, 공공 보건 예산 유럽 평균 수준으로 확대, 의료 보험 본인 부담금 폐지, 민간 병원 국·공립화, 공공 병원의 부분 사유화 금지, 기초 생필품 가격 인하, 은행 국유화, 국가 성장 전략 부문(철도, 공항, 우편, 상수도)에서 사유화된 기업의 재국유화 등 전체적으로 전 지구적인 신자유주의 바람에 반하는 뚜렷한 좌파적 정책을 공약해 왔다. 무엇보다도 시리자는 이 모든 과정을 끊임없는 시민 운동과의 결합을 통해 이룰 것을 강조함으로써 당의 관료화를 방지하고 민주주의를 확대하고자 노력해 왔다.

동시에 50만 유로 이상 소득자에 대해 소득세를 75%로 인상하고, 대기업에 대한 법인세를 유럽 평균 수준으로 인상하며, 금융 거래세 및 사치재 특별세를 도입하며, 투기적 금융 파생 상품을 금지하며, 그리스 정교회와 선박산업에 대한 금융 특혜를 폐지하며, 은행 영업 비밀 및 자본 해외 도피를 막으며, 국방비를 대폭 삭감하는 등의 정책을 통해 지배 엘리트들의 지배를 약화시킴과 동시에 분배와 복지를 강화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위와 같은 구체적인 좌파적 정책보다는 부채 탕감과 긴축 폐지, 반(反) EU 구호가 시리자 집권의 결정적 요인이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의 진보 좌파 진영은 유럽 주변부 특유의 중심부 유럽 국가들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된 민족주의적 감정에 대한 이해 없이 그저 급진 좌파의 당선 그 자체에 취해 있다. 안타깝지만 부패와 긴축 재정에 시달리는 노동 대중은 얼마든지 우익적 선택을 하고 있으며, 그들에게 있어서 우익적 선택과 좌익적 선택과의 차이는 거의 없다. 파시스트 정당인 황금사자당이 3위를 하게 한 그 동력과 차이가 크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긴축 재정 반대 세력 혹은 이유 반대 세력에는 민족주의 우파들도 있는데, 특히 연정 파트너로 우파 정당인 그리스 독립당을 쉽게 택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유럽 주변부 좌파의 특징이자 취약점에서 기인한다. 반 EU 정책이 두 당 공히 같다는 데에서 이 두 당은 서로를 연립 파트너로 선택하는 괴이한 모습을 보였다. 우리의 관점에서는 절대로 성립할 수 없는 이러한 연대가 가능했던 것은 주변부에서는 반제·반서구주의가 갖는 민족주의적 특성이 쉽게 사회주의 이념과 혼융되어 왔던 전통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번 시리자의 집권은 결국 대안없는 반 EU 구호가 결정적인 것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흥분을 가라앉히고 시리자의 집권이 가능했던 진정한 의미를 파악하는 것, 그리고 과연 긴축 반대와 EU반대 외, 현재 경제적 조건에서 시리자의 사회 경제 정책이 진정으로 작동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예측할 수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이미 일부 관념 좌파들은 치프라스와 같은 개인 행위자에 초점을 맞추거나, 시리자가 집권 이후 우경화되었다거나, EU 특히 독일로부터의 압력과 방해가 실패의 결정적인 요인인 것처럼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고 있다. 긴축 반대와 EU 반대의 구호로 당선되었지만, 현재 그리스 경제 상황에서 이들의 여타 사회 경제 정책은 급진적 원칙만 나열되어 있을 뿐, 대안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진지한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

말 그대로 국가가 '파산'한 상황에서 최저 임금 인상과 저소득층 전기 요금 면제, 공공 부문 인력 구조 조정 취소 등의 수많은 급진 좌파적 실험은 시작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이들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국가 예산을 책임지고 관리해야 하는 국가 권력 장악 이후 이 모든 정책의 성공 여부는 결국 돈이다. 경제가 파탄이 난 상황에서 이러한 정책이 가능하려면 방법은 거의 하나이다. 부유층, 올리가르히들, 선박 마피아들부터 세금을 더 걷거나 이들의 탈세를 철저히 막는 일 외에는 없다. 그러나 이는 결코 단기간으로 성과를 낼 수 없는 혁명에 가까운 기득권 세력과의 격렬하고도 끈기를 요하는 지리한 싸움이 될 것이다.

결국 유럽 중심부의 신자유주의 악마들의 추악한 '자본'이 싫다고 해도 좌파적 개혁을 추진한다고 해도 결국 또 다른 추악한 '자본'이 필요할 것이다. 이 점을 러시아는 잘 파악하고 있었고, 지금은 러시아 자신이 심각한 경제 위기에 빠져 있어 아무런 지원도 해 줄 수 없는 상황이지만, 불과 몇 개월 전 만해도 시리자에게 추파를 던져 왔다.

이에 호응하여 우리의 급진 좌파라는 시리자의 이데올로그들은 엉뚱하게도 이유보다 더 추악한 러시아라는 우산을 쓰려고 애쓰고 있다. 코치아스 외무부 장관은 러시아의 극우 민족주의자 두긴과 친분을 갖고 교류하고 있으며, 키메노스 국방장관은 모스크바를 방문 러시아 권위주의 정부 여당 의원들과 자주 회동해 왔다. 압권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파시스트 정권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넘어 크림 합병이라는 러시아의 타 주권 국가 침탈 행위를 지지하는 치프라스 총리의 언행이었다. 진보 좌파와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우익 독재의 전형인 푸틴과 그의 정책을 지지하는 시리자의 행보는 경제적 지원을 받기 위한 단순한 외교적 행보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전형적인 비중심부 좌파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유럽 좌파의 인기 부침 현상, 냉정히 분석해야

결론적으로 유럽 주변부 좌파의 인기의 부침 현상은 냉정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특히 급진 좌파라는 이들이 러시아의 국제 정치경제 정책을 지지하는 것, 극우파와의 연정을 쉽게 하는 것 등에 대해 신랄한 비판이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어떻게 급진 좌파 시리자가 내부 이데올로그들은 물론 당원들과 당내 정파들, 그리고 시리자를 지지한 유권자들의 반발 없이 이런 선택을 할 수 있는지 그 사회적 배경에 대해서 진지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

시리자의 경험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이제 집권한 지 몇 개월도 안 되었는데 무엇을 교훈으로 삼을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러나 몇 가지 지점에서 이미 많은 것을 논할 수 있으며, 많은 것이 예상가 능하기에 길게 써 보았다. 즉 시리자의 실험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향후 일어날 일들에 대해 원론에만 입각한 낡은 관념의 잣대로 평가, 극단적으로 환호하거나 폄하하는 추태가 반복되어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며, 이러한 잘못된 평가는 마찬가지로 한국의 진보 좌파 세력의 발전에도 해가 되기 때문이다. 혹여 실험이 실패했을 때, 서구 중심부 국가들과 초국적 자본과 같은 외적 요인, 혹은 집권 이후 우경화되었다면서 철저하지 못한 반자본주의 정책과 같은 원인에 집착하는 등 비현실적인 관념론적 사고에 근거한 비판은 아무 말도 안 하는 것과 같다.
결론적으로 말해 좌파 정당의 일당 국가 체제를 수립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면, 우리가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할 부분은 집권 자체가 아니라, 정당 정치 이면의 특권 관료-자본-사회 기득권 세력의 헤게모니 블록에 대한 제어 여부에 있다. 시리자가 정치 정당 권력 교체 여부와는 상관없이 사회를 지배하는 올리가르히들의 척결을 내세운 점은 한국의 진보 좌파들이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이다. 또한 작은 차이들을 극대화해서 서로를 잘게 나누고 적대시하는 한국 특유의 좌파 문화를 배격하고, 그리스에서처럼 좌파들 간의 유연한 연대 현상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국민 모임의 등장 이후 크게 약화된 한국의 진보 좌파 운동은 더욱 더 잘게 나뉘어져 분란이 발생하고 있다. 진정으로 비판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무관심하고, 심지어 무지한 반면, 진정으로 이해하고 배워야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과도할 정도로 비판의 날을 세워 어떤 현상에 대해 엉뚱하게 정리하고 제대로 된 교훈을 얻지 못 하는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이제는 조금도 전진하기 어렵다고 단언한다. 자원을 바탕으로 한 베네수엘라에서보다 유럽 주변부 그리스의 시리자의 성공과 실패의 모습은 우리네 진보 좌파 운동의 발전을 고려할 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단지 기존의 낡은 잣대로 평가하는 악습을 버려야 진정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관련 기사 : 민교협의 정치 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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