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세계대전 이후 세계는 후기 산업사회로 접어들게 된다. 그 후 과학기술과 민주주의 체제에 힘입어 세계는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룩하였다. 인류는 역사 이래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물질적 풍요로움을 누리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여기에는 많은 한계와 문제가 노출된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먼저 자본주의 체제는 그 자체로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이 극명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세계적인 맑스주의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y)는 최근 저작 <자본의 17가지 모순>에서 과잉으로 치닫고 있는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세 가지 모순을 제시한다. 그것은 끝없는 성장이란 신화와 함께, 인간과 삶을 총체적으로 소외시키는 것, 마지막으로 환경문제로 요약된다. 전 세계적 자본주의가 오늘날처럼 놀라운 물질적 성장을 가능하게 한 것은, 무엇보다 말없이 인간에게 수십 억 년 동안 저장한 우주 에너지를 공급하는 자연에 대한 압축적 착취에 있다. 그럼에도 자연은 무한하지 않다. 자본주의의 신화인 끝없는 성장이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그 끝이 언제일지는 예측하기 힘들지만, 현재와 같은 생태계 파괴에 미뤄보면 그 종말이 결코 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더 큰 자본주의의 문제는 인간의 삶과 생활 세계를 극단적으로 소외시키고, 최상위 계층에 부를 일방적으로 몰아주는 데 있다. 부의 불평등과 양극화는 전 세계적인 문제로 나타난다. 이는 한 국가 내의 문제일 뿐 아니라 국가와 국가 사이의 문제이기도 하다. 서방세계와 이른바 제삼세계의 차이는 물론, 서방 세계 내에서도 부는 갈수록 양극화되고 극단화되고 있다. 이런 부의 불평등 현상을 수정하지 않고서는 지속가능한 성장이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점차 분명해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자본주의를 넘어서려는 노력을 가시화하는 데 있다. 그와 함께 이를 위한 전 세계적 연대와 공동 대처의 필요성이 절박한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는 단순히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좌파적 발상이 아니라, 인류가 당면한 절박한 과제이다. 다보스 포럼에서도 끊임없이 지속가능한 성장과 자본주의 이후의 경제 모형에 대해 심각하게 논의하는 배경에는 이런 인식이 자리한다. 현재와 같은 경제성장은 불가능하다. 물리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그러하다. 이는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는 진실이다. 눈 앞에 닥친 재앙과 한계를 보지 않고 최상위 1퍼센트를 위해 움직이는 국가와 경제는 파멸로 결과 지워질 수밖에 없다.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학자들과 양심적인 지식인은 말할 것도 없고, 자본주의 최고 본거지에서조차 이런 논의들이 이뤄지고 있는 까닭은 산업시대의 논리나 자본주의3.0으로는 더 이상 세계의 미래가 없다는 인식 때문이다. 그래서 자본주의 내부에서는 자본주의4.0을 말하고, 또 지속가능한 성장이란 형용모순의 명제를 제시하기도 한다. 온건하게 자본주의의 이행 전략을 논의하거나, 또는 원론적인 자본주의 폐기 논의들이 제기되기도 한다. 어떤 급진적 전략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여하한 형태로든 자본주의 이후의 경제 모형에 대해 고뇌하는 것은 국가를 책임진 정치인이나 시대를 고뇌하는 학자들에게는 결코 피해갈 수 없는 의무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의 처지는 어떠한가?
도대체가 이 나라의 부정과 부패, 무능과 무지는 거론하기조차 힘들 정도이다. 부정과 부패로 물든 총리 후보자가 정치적 이유만으로 총리로 인준된다. 더욱이 첫마디가 "부정부패 척결"이다. 이런 코미디가 가능해지는 나라가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그런데도 금방 이 문제는 묻혀버리고 또 다른 헛소리로 논점이 변경된다. 미국대사에 대한 피습 사건과, 이후 벌어진 석고대죄, 기독교계의 회복 기원 부채춤 소동은 우리나라의 현실이 얼마나 광기에 찬 것인지를 남김없이 보여준다. 이 두 현상이 광기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럼에도 이에 대해 반성하고 성찰함으로써 이런 광기 현상을 넘어설 기회가 도무지 주어지질 않는다. 그 사이 최악의 청년 실업과 부의 불평등, 양 극단적 경제 현실에도 "젊은이들이 텅텅 빌 정도로 중동으로" 나가서 일자리를 찾으라거나, 여당 대표란 사람이 태연히 "자유를 유보해서라도 경제성장을 이룩해야"한다는 소리로 그런 노력과 문제 해결을 대신하고 있다.(3월 26일 한양대 강연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그래서 우리는 힘을 얻기 위해서라면 다소간에 자유를 유배(유보)해서라도 경제를 빨리 발전시켜야 된다, 이것이 바로 박정희의 5·16 혁명이었습니다"라고 발언했다. 편집자)
맹목적 자본의 논리와 일부 계층, 겨우 1%에서 5%에 불과한 자산가를 위한 정책이 지속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국가와 정책이, 언론과 법이 자본의 논리에 종속되고, 학문과 예술조차 이제는 자본에 굴종하게 되었다. 이런 일방적 부가 언제까지 가능하리라 생각하는가? 그럼에도 이 나라의 정책 입안자와 집행자는 물론, 그를 문제시 해야 할 계층은 오히려 그 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우리의 미래는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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