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를 보훈공단 중앙보훈병원(이하 보훈병원)에서 받고 있는 정판배 씨. 그는 작년 10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달받았다. 담당 의사가 앞으로 치료 약을 복제약 '글리마'로 바꿀 예정이니 오리지널 약 '글리벡'을 처방받으려면 다른 병원으로 전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씨는 "5년 이상 글리벡 복용으로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었는데, 복제약으로 바꾸겠다면 환자 입장에서 걱정이 드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며 "병원이 환자의 의약품 접근권을 박탈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나는 위암으로 위도 상당 부분 절제한 까닭에 약물 사용이 특히 중요한 환자"라며 "병원에 글리벡을 요청했는데도 전산상으로 글리마만 처방하도록 세팅해서 안 된다고 한다. 나라를 위해 싸운 내게 보훈병원에서 이런 접대를 하니 더욱 화가 치밀어 오른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모든 의약품에는 특허기간이 있다. 그래서 이 기간이 지나면 다른 회사에서 복제약을 생산하고 판매할 수 있다. 글리벡이 현재 이에 해당한다. 언뜻 보기에 글리벡 복제약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글리벡 복제약 처방이 왜 문제가 되고 있는지 한 번 되짚어보자.
글리벡 복제약에 대한 불안감 높아
보통 복제약이 생산되기 전에 생체이용률이 오리지널 약과 비교해서 통계학적으로 동등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생물학적동등성시험"(이하 생동성시험)을 한다. 생동성시험 과정을 보면 먼저 피험자를 모집해서 두 군으로 나누어 오리지널 약과 복제약을 투입한 후, 혈액 채취와 같은 방법으로 약물 농도를 분석한다. 그리고 다시 피험자를 바꿔서 투약하고 마찬가지로 약물 농도를 확인해서 그 결과 오리지널 약과 비교해 농도가 80%~120% 사이에 해당하기만 하면 복제약으로 인정한다.
문제는 이 약이 '항암제'라는 점이다.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다른 질병의 복제약과 그 성격이 다르다. 글리벡 역시 그렇다. 글리벡은 획기적인 효능과 적은 부작용으로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의 삶의 질을 180% 바꿔놓은 최초의 표적항암제이다.
그러나 글리벡이 나왔을 때만 해도 일 년이면 3600만~7200만 원까지 드는 약값 때문에 만성골수병백혈병 환자들은 치료 약을 눈앞에 두고도 치료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후 환자들은 서명 운동, 1인 시위, 집회, 토론회, 행정소송, 헌법소원, 강제 실시 등 약값 인하와 신속한 건강보험 적용을 요구하며 1년 6개월 동안 싸웠다. 그 결과 1년 6개월 만에 보건복지부는 백혈병 환자의 본인부담률을 줄이고 제약회사 노바티스는 환자 본인부담률 중 일부를 기금으로 지원하기로 합의하면서 긴 글리벡 싸움은 끝났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8년 생존율이 85%에 이를 정도로 탁월한 효과는 글리벡에 대한 환자들의 신뢰를 더 크게 했다.
이런 상황에서 환자들이 복제약보다 오리지널 약을 처방받고 싶은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다. 게다가 지난 2006년 생동성시험 파문은 현재 만성골수성병백혈병 환자들의 불안감을 증식시키고 있다. 당시 중요한 평가 지표의 시험데이터가 시험기관에 의해 임의로 수정․변경됐음에도, 식약청은 이 데이터들을 근거로 평가한 생동성시험 결과를 '적합'으로 평가해 큰 파문이 일었던 바 있다. 물론 이 사건 이후 정부가 생동성 시험에 대한 관리를 강화해 아직 별다른 큰 문제는 발생하고 있지 않지만, 복제약의 효능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송형곤 대변인은 "약효가 같다는 증명 방법에는 '흡수율 차이, 순도'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생동성 시험은 가장 단순한 방법"이라며 "그래서 지금으로써는 오리지널 약과 복제약의 효과가 100% 일치한다는 보장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전문성을 더욱 강화하여 (복제약이) 같은 효과를 보이는 약이라고 증명된다면 의사 입장에서는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대한약사회 곽나윤 홍보위원장은 "복제약은 오리지널 약을 말 그대로 똑같이 만든 약이며, 약효 동등성을 확보한 의약품은 같은 약으로 본다"고 말했다. 곽 홍보위원장은 "최근 대한약사회가 이야기하는 대체조제나 성분명 처방의 당위성도 같은 이유로 설명 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글리벡과 복제약, 제형이 달라
생동성 시험을 통과했더라도 글리벡은 좀 더 특수한 경우다. 그 제형이 복제약은 알파형이고 글리벡은 베타형이기 때문이다. 겉모양인 분자식은 같지만 복제약과 글리벡은 서로 다른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 베타형은 특허기간이 2018년 7월에 만료된다. 제조사인 노바티스도 베타형 개발 이후 베타형만 출시하고 있다. 베타형이 성능 측면에서 더 우수하다는 이유에서다. 정 씨의 경우에도 베타형을 사용하고 있었다.
복제약으로 바꾼 뒤 부작용 의심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지난 2011년 만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은 이시정(가명) 씨가 그 예이다. 그도 보훈병원에서 글리벡으로 치료받은 후 건강을 되찾았지만, 지난해 10월부터 글리마로 바꾼 후 매달 몇 번씩 심한 장염에 걸린 것처럼 설사와 복통 등으로 고생하고 있다. 부작용이 의심되는 지점이다.
오석중 강북삼성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알파 제형은 열에 취약하다. 그렇지 않아도 학회에서 복제약은 중동 지역에서 그 효과가 떨어진다는 보고가 나오고 있다"며 "복제약을 사용하면 암세포를 추적하는 모니터링을 해야 하는데, 현재 이 수치가 얼마인지 모르는 환자도 많고 병원에서도 이것을 항상 체크하는 것이 아니어서 의식하지 못한 상황에서 병이 더 악화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글리벡 처방 막는 것은 환자의 의약품 접근권 막는 것
그렇다면 환자들이 반대하는데도 왜 보훈병원에서는 글리마만 처방하는 것일까? 보훈공단 약제구매 담당자는 "유공자들 입장을 보면 안타까운 것은 사실"이지만 "예산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환자들의 요구를 다 들어줄 수는 없다"고 답변했다.
병원 측이 일방적으로 약을 바꾼 것에 대해 보훈병원 약제부 관계자도 "병원이나 의사가 단독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위원회를 통해 투명한 절차를 거쳐 정했기 때문에 잘못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이하 보훈공단)도 "식약처에서 허가한 여러 제약사 의약품 중에서 공정한 입찰을 통해 의약품을 받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뿐만 아니라 모든 약품에 대해서도 특허 기간이 지나면 오리지널 약과 경쟁시키기 때문에 '글리벡'만 특별한 상황도 아니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대통령 공약 사항 이행을 위해 4대 중증질환의 건강보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마당에 보훈공단의 예산 탓은 궁색해 보인다. 환자의 생명과 관련된 암 치료를 예산 부족으로 내세우기에는 납득이 되지 않는다.
한국백혈병환우회 안기종 대표는 "보훈병원이 환자의 기본적 권리인 의약품 접근권을 막는 것은 문제"라고 비판했다. 안 대표는 "글리벡은 환자들에게 생명과 같은 약인데, 이에 대한 의약품 접근법을 막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보훈병원에서는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들이 최대한 빨리 복제약뿐만 아니라 오리지널 약인 글리벡 처방도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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