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이 수도권의 과밀화, 지방의 과소화 문제 해결, 즉 국토의 균형적 발전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아이쿱(iCOOP)생활협동조합은 지난 8일 서울 조계사에서 '커뮤니티 활성화를 위한 협동조합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국제포럼을 열었다.
▲ 8일 조계사에서 열린 아이쿱생협 국제포럼. '커뮤니티 활성화를 위한 협동조합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일본과 한국의 협동조합의 지역 활성화 정책을 토의했다. ⓒ프레시안(김하영) |
아이쿱생협은 지역 클러스터 전략을 통해 지역 활성화를 꾀하고 있다. 아이쿱생협은 2011년 전남 구례 용방면 죽정리에 라면 공장을 세운 것을 시작으로 물류센터, 양조, 제분 공장, 게스트 하우스 등 10여 개 시설을 지어 '자연드림파크'를 조성하고 있다. 앞으로도 14만9336제곱미터(약 4만5000평) 부지에 10여 개의 식품 가공업체를 더 들이고 체험장, 레스토랑, 카페, 피트니스센터, 영화관 등을 추가해 문화복합 생태마을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450여 명이 단지 내에서 근무하고 연간 10만 명 이상의 조합원 및 외부 방문객이 이 곳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구례 자연드림파크를 농촌 지역사회의 주요한 거점으로 자리매김한다는 전략이다.
구례군청 장용욱 도시경제과장은 "구례는 20~30대의 젊은 층 일자리가 없어 인구가 외부로 유출돼 미래가 위태로운 상황이었다"며 "자연드림파크가 들어선 이후 236명의 신규 고용이 창출돼 20~30대 인구의 외부 유출이 차단되고 신규 일자리 제공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아이쿱은 '일자리 창출' 외에도 씨앗재단을 통해 매년 3000만 원의 장학금을 구례에 기부하고 있고, '우리 밀 축제' 등 지역의 친환경 농산물 재배 확대를 이끌고 있다.
최근 추진 중인 충북 괴산 클러스터는 구례보다 규모가 더 크다. 칠성면 일대 613만2250제곱미터(약 185만 평) 중 19만 평 규모로 조성돼 40여 개의 친환경식품 가공업체가 입주할 예정이고,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과수단지, 생태마을, 목장단지, 화원, 허브농장, 학교, 병원 등으로 이뤄진 '생협밸리'가 조성된다. 산림 지역은 삼림욕 등 에코투어리즘 공간으로 사용된다. 생협밸리가 완성되면 500가구 이상이 입주할 예정이다.
아이쿱인증센터 박인자 회장은 아이쿱생협의 클러스터 전략이 지역의 경제적 자립 기반 확보라는 측면에서 중앙과 지방의 상생 기반이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박 회장은 "아이쿱생협은 수도권에 모든 자원이 집중돼 있는 것을 극복해 수도권과 비수도권, 중앙과 지방, 도시와 농촌이 함께 상생하도록 기여하고자 한다"며 "비수도권은 아이쿱 소비자 조합의 사업과 활동의 근거지이자 생산지이므로 더욱 활성화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특히 "자본도, 사람도 떠나는 인구 과소지역에 사람이 돌아오고 그 돌아온 사람이 경제, 사회, 문화적 욕구를 시장만이 아니라 가능한 협동조합, 사회적경제를 통해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이쿱생협의 지역 클러스터 전략은 기존의 협동조합 발전 과정과 다른 측면이 있다. 구례 클러스터, 괴산 클러스터는 지방자치단체와의 협력을 통해 실현됐지만, 엄밀히 말하면 지역 주민들의 자발적인 요구와 조직에 의해 생겨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신대 장종익 글로벌협력대학 교수는 "아이쿱생협 조직 전체 차원에서 비수도권의 조직화된 소비자들과 연계해 농촌지역에서 식품가공, 식품개발연구, 그린투어리즘, 생태마을 등 다양한 소득원과 고용을 창출하는 노력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은 우리나리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든 사례"라며 "아이쿱생협이 비수도권에서 목적의식적으로 생협을 활성화하고 비수도권에서 식품클러스터 및 문화센터를 추진하는 노력은 비수도권의 지역활성화를 위한 매우 소중한 실천"이라고 평가했다.
장 교수는 "자본주의의 논리는 집적과 집중의 논리이기 때문에 목적적으로 인구분산 정책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노무현 정부의 혁신도시, 행정수도 이전, 교육기관 이전 등 국토균형 발전 전략은 장기적으로는 큰 업적으로 평가 받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다만 정부 통제 방식이 아닌 시민 영역에서 풀어 나가야 할 문제라는 지적이다. 장 교수는 "최근 생협 운동을 제외하면 우리나라는 정부 통제형 협동조합 정책을 펼쳐왔기 때문에 협동의 의지와 노하우 등이 축적돼 있지 않다"며 "도시든 지역이든 커뮤니티 활성화 노력을 통해 인간의 얼굴을 한 거래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의 지역, 농촌도 한국과 비슷한 상황이다. 키타가와 타이치(北川太一) 후쿠이현립대학 교수는 "일본의 식량자급률은 40%가 채 안 되고, 사료용을 포함한 곡물 자급률은 28%로 매우 낮으며, 농업종사자는 최근 5년 사이 25% 감소했고, 65세 이상 비율은 60%로 평균 연령은 65.8%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키타가와 교수는 다만 "농업‧농촌의 역할은 단순히 식량 공급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며 "홍수 방지, 토양 침식 방지, 수질 정화, 유기성 폐기물 분해, 대기 정화, 생물 생태계 보전, 녹색 공간의 제공, 풍경 보전 등의 환경에 대한 공헌 및 전통문화와 지역사회 진흥 등 다양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키타가와 교수는 "지역사회의 재생은 단순‧획일적인 방법이 아니라 각각의 지역이 안고 있는 역사적 풍토를 포함한 고유한 상황을 고려하면서 실천해야 한다"며 "이점이야말로 풍요로운 지역사회 만들기를 실현해 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며 지역에 존재하는 협동조합의 역할은 대단히 크다"고 강조했다. 키타가와 교수는 이와 같은 설명과 함께 후쿠이현의 생협, 농협, 삼림조합 등의 활동을 소개했다.
일본에서는 2011년 3월 대지진을 계기로 '협동'의 가치가 새로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한다.
키타가와 교수는 "최근 지진을 계기로 '유대'라는 단어에 관심이 모아지고 사람과 사람이 함께 돕는 소중함, 우리들이 생활하는 지역사회를 풍요롭게 육성하는 일의 중요성이 재인식되고 있다"며 "지진 피해 현장에서는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해 많은 협동조합이 노력하고 협동의 네트워크가 커다란 힘을 발휘했다"고 말했다. 대지진 직후 일본생활클럽 등 생협 조직이 피해 지역 주민들에게 신속하고 전폭적인 지원 활동을 펼쳐 주목을 받았었다.
그런데 피해 지역 주민들에 대한 지원이 '구호' 차원에서 그치지 않는다고 한다.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유출 사건 이후 일본 동북지역 농수산물에 대한 방사능 오염 불안이 커졌다. 동북 지역의 협동조합 생산자들에게는 심각한 생계 위협일 수 있다.
시바 사나에 일본협동조합학회 부회장은 "육아를 하는 조합원들에게서 방사능에 대한 불안이 커졌지만 생산지를 바꾸지는 않았다"며 "동북지역 생산 농산물에 대한 방사능 검사를 확실하게 해서 공급할 수 있는 농산물은 공급한다는 원칙을 세웠다"고 말했다.
시바 부회장은 이어 "식품 안전에 관한 정보를 최대한 많이 자세하게 공개하고 공유하다 보니 조합원들이 이해를 했고, 2년이 지나면서 조합원들이 돌아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농협 개혁의 발아 지방에서 도시 지역을 제외한 농어촌에서 가장 크고 촘촘한 조직은 농협. 이날 포럼에서 가장 관심을 끈 이는 충북 괴산군 불정농협의 남무현 이사장이었다. 남 이사장은 "아직은 시험적 농협"이라면서 불정농협의 '5대 원칙' 등 개혁 사례를 소개했다. 첫째는 '지역 농업의 재편.' 남 이사장은 "그동안 농협은 농산물을 잘 팔아주는 역할에 국한됐지만, 농협은 적극적으로 지역의 농업에 대한 장기 발전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불정농협은 3년마다 지역농업기본계획을 세우고 있다. 둘째는 '투명한 경영.' 남 이사장은 "의사 결정을 모두 투명하게 공개해야 조합원들에게 주인의식이 생긴다"며 "단돈 3만 원까지 어떻게 썼는지 알기 쉽게 공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 이사장은 "기존 재무재표 공개 방식은 조합원들이 알아볼 수 없기 때문에 총회 때만 되면 손만 들어주고 끝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셋째는 '조합원의 사업 참여'이다. 남 이사장은 "조합원이 조합의 주체가 아니라 사업의 대상자 혹은 고객이 돼버렸다"면서 "농협을 직원들에게 맡기면 직원 중심의 조합이 되고 조합원들에게 맡기면 조합원 중심의 조합이 된다"고 말했다. 넷째는 '민주적 운영.' 남 이사장은 "농협은 농민조합원을 위한 농민 조합원이 운영하는 조직"이라며 "협동조합은 개개인이 자신의 독립성을 어느 정도 포기하고 자발적으로 함께 묶어 놓은 조직"이라고 정의했다. 즉 개별적으로 행동하는 것보다 제휴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남 이사장은 "위험을 공동으로 부담하려는 조합원들이 제휴하는 데서 오는 이익이 없다고 한다면 협동조합이 태어날 이유가 없다"고 했다. 남 이사장은 그 예로 불정농협이 실시 중인 '최저가격보장제'를 예로 들었다. 생협들은 가격 안정기금이라는 이름으로 시행 중이지만 지역 농협 중 이 제도를 실시하는 농협은 불정농협이 국내에서 유일하다고 한다. 남 이사장은 "최저가격보장제를 위해 조합원들이 합의를 통해 2억 원의 유통기금을 조성했다"며 "최저가격이 보장되기 때문에 조합원들은 1년 농사를 예상할 수 있고 생산에만 전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섯째는 '운영 원칙.' 남 이사장은 "협동조합은 조합원에게 미래를 제시하고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남 이사장은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얘기한다. 이를 위해 불정농협에서는 은퇴한 어르신들의 농지를 농협에서 대리 경작해 평당 4000원의 소득을 보전해주는 사업을 시행 중이라고 한다. 조합 안에서 젊은 농부들이 은퇴한 선배 농부들의 노후를 지원하는 시스템이다. 남 이사장은 농협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대해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큰 소리를 쳤다. 그는 "지금까지는 지역 유지들이 조합장을 하고, 독재정권 시절 농민 통제를 위한 제도적 관성이 남아 아직도 농협이 '기관'으로 인식되고 있다"면서도 "협동조합은 운동이다. 뜻을 같이 하는 조합장 22명이 모여 공부를 하고 있고 여기에 동참하는 조합장들이 늘어나고 있기에 농촌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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