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정신이야. 지금 그럴 때가 아냐. 빨리 대피해야 한다고!"
요코야마 씨는 정신을 차리고 대피소로 갔다. 시아버지와 아들이 있었다. 그런데 대피소도 안전하지 않다고 해서 동사무소 건물 3층으로 다시 대피했다. 거대한 쓰나미가 몰려들었고, 집은 휩쓸려 갔지만 가족들은 무사할 수 있었다.
▲ 요코야마 미요시 씨가 살던 마을. ⓒ요코야마 미요시 |
"그 때 시어머니 위패를 가지러 집에 갔었으면 저는 이 자리에 없었을 겁니다."
▲ 요코야마 미요시 씨. ⓒ프레시안(김하영) |
시어머니 위패도 챙겨 나오지 못했다. 살림이 남아 있을 리 없었다. 길은 막혔고 휘발유를 구할 수도 없었고, 식료품점에는 긴 줄이 늘어섰다. 먹을거리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렇게 사흘이 지났을 때 구원자가 나타났다. 일본생활클럽 트럭이 식재료와 생필품을 한 가득 싣고 도착한 것이다.
"배송이 어려웠지만 생활클럽에서는 여기저기서 휘발유를 모아 안전한 채소 등 안전한 식품들은 물론이고, 저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배송해 주었습니다."
모두 무료였다. 지금까지도 생활클럽의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무상으로 받기 미안했던 조합원들은 '푸른하늘시장'(靑空市)을 열어 구매를 했다. 삶의 터전을 잃어 곤궁한 상태였기 때문에 구매 가격은 실제 시장 가격의 1/20 수준 밖에 낼 수밖에 없었지만, 그만큼이라도 내야 마음이 편했다. 그런데 생활클럽은 이 돈마저 모아서 집을 잃고 가설주택에서 생활하는 피난민들의 주민자치회에 기부를 하고 있다.
▲ 가설주택에서 열리는 '푸른하늘시장' ⓒ요코야마 미요시 |
생활클럽의 지원은 식자재·생필품 공급에서 끝나지 않는다.
"가설주택 생활이 길어지다 보니 심리적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생활클럽에서는 심리적 안정을 위해 마사지 서비스도 해주고 대화 상대가 돼주는 전문가들을 파견하기도 합니다. 또한 직장을 잃은 분들이 많은데, 이들이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게 사회복지사 자격 공부 모임 등 각종 자격증 강좌를 개설하고 있습니다."
특히 각 지역 생활클럽 단위조합에서는 후쿠시마 지역 조합원들을 초청하기도 한다. 후쿠시마 지역에서는 아직도 마음 놓고 바깥 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방사능에서 비교적 안전한 지역 조합이 여름방학만이라도 후쿠시마 지역 조합원 아이들이 마음껏 밖에서 뛰어놀게 하자는 것이다. 이번 한국 두레생협의 '리프레시 투어' 역시 이런 취지의 프로그램이다. 일본 참가자들의 비용은 전액 생활클럽에서 부담했다. 요코야마 씨는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감사드린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아낌없는 지원을 받고 있는 후쿠시마 지역의 생활클럽 조합원들은 대신 경험을 전파한다.
"재작년 쓰나미 피해로 돌아가신 분들 중 1/3 정도는 쓰나미 경고를 받고도 '괜찮다'면서 경고를 무시한 분들입니다. 안전한 위치에 있었으면 살 수 있던 분들인데 근거 없는 안전에 대한 의식 때문에 돌아가신 겁니다."
후쿠시마 지역은 진앙지에서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쓰나미 경고 후 대피할 시간이 있었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이런 비극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타 지역 조합원들에게 우리가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이런 피해가 다시는 없게 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구전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경험을 공유해서 우리가 받은 도움을 되갚는 의미가 있습니다."
요코야마 씨는 17년 전 생활클럽에 가입했다. 당시 일본생활클럽은 생긴지 1년 된 신생 생협이었다고 한다.
"원래 미야기 생협이라는 곳에서 식료품을 구매했었는데 안전성을 신뢰할 수 없었어요. 그러던 때 생활클럽이 생겼는데 주변에서 생활클럽이 좋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미야기 생협을 같이 이용하던 친구와 함께 탈퇴해서 생활클럽에 가입했죠. 생활클럽에서도 조합이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생활클럽에 가입한 이후에 안전한 식료품과 바른 생산 활동 및 생산자와의 교류 활동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요, 후쿠시마 제2원전 반대 운동도 펼쳤죠."
특히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에 먹거리의 안전성에 대한 걱정이 높아지면서 새로 생활클럽에 가입한 주민들도 많다고 한다. 요코야마 씨는 원자력 발전에 대한 경고를 잊지 않았다.
"이런 비극이 일본 뿐 아니라 세계 어디에서도 있으면 안 됩니다. 원자력 발전소는 정지가 아니라 저지돼야 합니다. 방사선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언제 사고가 날지 모릅니다. 먼 미래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피해를 입힐지 모릅니다. 일본은 2년 동안 원자력 발전소가 가동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정전 사태는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과연 원자력 발전소가 필요할까요? 아름다운 한국을 여러분의 힘으로 지켜줬으면 좋겠습니다."
▲ 주민들의 방사능 측정 활동. ⓒ요코야마 미요시 |
요코야마 씨는 2년 넘게 가설주택에서 머물며 급식소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녀에게 '집에 언제 돌아갈 수 있냐'고 물었다.
"제가 살던 동네는 침수 위험 구역으로 지정돼 다시는 돌아갈 수 없습니다. 대신 바다에서 떨어진 산중턱에 택지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내년에 택지가 만들어지면 집을 짓는데 더 시간이 걸리겠죠."
식품의 안전성 문제에 관심이 많아 생협 활동을 꾸준히 해온 요코하마 씨는 마지막으로 이 말을 <프레시안> 독자들에게 전했다.
"세슘도 위험하지만, 식품첨가물도 그에 못지않게 위험하다고 생각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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