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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이 떨어지면 박근혜가 무너진다!

[장석준 칼럼] 박정희의 유산 재론

요즘 박근혜 정부가 하는 짓을 보면 대통령이 '박정희의 딸'이라는 사실이 새삼 절실하게 와 닿는다. 40여 년 전 박정희 정권의 역사적 사실들이 반복 상연되는 것만 같다. 그래서 이제는 열성 야당 지지자들뿐만 아니라 냉철한 사회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유신 회귀'니 '파시즘 조짐'이니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지경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아무래도 박근혜 정부를 뜯어보는 데 '박정희'가 가장 중요한 열쇳말로 동원되곤 한다. 혹시 이 정부가 박정희 정권이 걸은 길을 교과서로 삼은 것은 아닌지 의혹이 늘어가고 있다. 둘 다 '권위주의적 국가주의'라고나 할 만한 통치 전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확실히 그런 구석이 있다.

그런데 주의해야 할 게 있다. 박정희 정권의 권위주의적 국가주의가 모아내려 한 1970년대의 지배 질서와, 박근혜 정권의 그 재판(再版)이 응집하려는 2010년대의 지배 질서는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는 이미 1987년 민주화와 1997년 외환 위기라는 돌이킬 수 없는 두 계기를 거친 뒤다. 따라서 아버지의 권위주의적 국가주의 전략과 딸의 그것은 그 양태만 서로 비슷할 뿐 역시 같은 것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박정희'가 박근혜 정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쇳말이 아니라는 말인가? 그렇지는 않다. 다만 박근혜 대통령 본인이 아버지를 어찌 생각하는지 혹은 얼마나 따라 배우려는 것인지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별로 중요한 사안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박정희'라는 열쇳말에 주목하더라도 이것과 현 정권의 관련성을 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박근혜 자신의 생각이나 감회가 아니라 그를 '박정희의 딸'로 바라보는 대중의 시각 쪽으로 초점을 옮겨와야 한다. 아마 박근혜 대통령 본인도 부친에 대한 자신의 상념 자체보다는 이러한 대중의 시각에 더 신경을 쓸 것이다.

유권자들이 박근혜를 바라보며 떠올리는 첫 번째 인상은 어쩔 수 없이 '박정희의 딸'이다. 박근혜 역시 자신을 이렇게 '박정희의 딸'로 보는 세간의 시각을 염두에 두며 그에 화답해 자신의 정치를 만들어왔다. 그리고 '박정희의 딸'에 대한 대중의 시각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첫째와 둘째는 우리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들이다. 박정희의 독재를 그리워하며 '지도자의 딸'을 열렬히 지지하는 게 첫 번째 시각이고, 이와 정반대로 독재의 기억에 진저리를 치며 '독재자의 딸'에 격렬히 반대하는 게 두 번째 시각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 두 시각은 어림잡아 비슷한 양적 분포를 보인다. 거리에 나와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이들이 있고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이들이 있지만, 꼭 그만큼 어떠한 논란에도 상관없이 현 정권을 열렬히 지지하는 이들이 있다. 두 진영은 서로 팽팽한 균형을 이룬다.

이것은 박근혜를 바라보는 이 두 시각의 존재만으로는 그가 대통령이 되기 쉽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박근혜 세력이 '박정희의 딸'에 대한 첫 번째 시각에만 의존했다면, 박근혜 정권은 없었을 것이다.

ⓒ연합뉴스

한데 제3의 시각이 존재한다. '박정희'를 무엇보다 한국 자본주의의 성장 신화와 겹쳐 이해하고 정확히 그 연장선에서 '박정희의 딸'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박정희'를 이렇게 경제 성장의 상징으로 여기는 데는 지금껏 지속되는 그 시대의 유산들이 한 몫 한다. 대표적인 것이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자산 가격의 지속 상승을 통한 중산층 지위의 확보와 유지다.

1997년의 단절과 상관없이 한국 사회에서는, 그 이전의 국가 자본주의 시기든 그 이후의 신자유주의 시기든, 부동산 보유와 투기를 통한 중산층 진입 메커니즘이 의연하게 작동했다. 그 덕을 보았거나 여기에 기대를 걸고 있는 상당수 대중에게 '박정희의 딸'이란 이러한 메커니즘의 연속성을 상징한다.

'박정희의 딸'을 이런 각도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위의 첫째 시각과 결합함으로써 마침내 박근혜 정부가 탄생하기에 이르렀다. 51%라는 득표율은 이러저런 관권 개입과 부정행위의 산물이기 이전에 이러한 동맹의 산술적 표현이었다. 지금도 최소한 절반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정부 지지율의 기본 토대 역시 다름 아닌 이 동맹이다.

박근혜 정권 스스로 이러한 상황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박정희의 딸'에 대한 첫째, 둘째 시각이야 어차피 상수(常數)다. 정권의 사활은 세 번째 시각이 지속되는 데 달려 있다. 그래서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대도시 아파트 가격 유지에 명운을 걸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 그 결과로 집권 초기에 줄곧 높은 지지율을 맛보았고, 이러한 자신감 덕분에 국정원 선거 개입 논란 등에도 강공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그래서 후보 시절에 보여준 '다양한' 얼굴들도 집권 이후 한 색깔로 간단히 정리될 수 있었던 것이다. 권위주의적 국가주의의 얼굴. 이 얼굴의 이면에 자리한 것은 역설적으로 민주화된 사회에서 지지율이라는 단순 수치가 갖는 힘이다.

이 대목에서 진부한 진실 하나를 상기해보자. '정치'는 '사회'를 응집하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래서 정치적 격변은 항상 사회의 심대한 변화로 확대되곤 한다. 그러나 '정치'는 또한 '사회'의 반영이다. 사회적 토대의 균열과 변화가 없고서는 정치의 격동도 없다.

지금 반박근혜 진영에서는 이 복잡한 상관관계의 한 쪽 면만을 주목하는 게 당연시되고 있다. 정권에 맞서려는 결기는 드높되 어찌 해야 승리하는 싸움을 시작할 수 있을지는 충분히 따지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싸움의 첫 번째 조건은, 다른 무엇보다, 이명박 정부에 이어 현 정부가 어떻게든 지탱하려 하는 주택 가격 거품이 무너지는 것이다. 이것은 '박정희의 딸'을 성장 신화의 버팀목 정도로 바라보는 대중적 시각의 와해로 이어질 것이다. 박근혜 정권이 권위주의적 국가주의의 길을 자신 있게 선택하는 데 기반이 되었던 지지 동맹이 결정적으로 와해되는 신호탄이 될 것이다.

이것은 한국 사회가 답답한 교착 상태를 벗고 새 출발을 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통과해야 할 시련이다. 노동당의 월간 <미래에서 온 편지> 12월호에 실린 글에서 성승현(토지자유연구소 연구원)은 현재 최선의 주거 정책은 "(주택) 매매 가격이 적정한 수준으로 떨어지도록 놔둔 뒤"에나 가능하다는 결론을 제시한다. <미디어오늘>과의 최근 인터뷰에서 김헌동(경실련 아파트값거품빼기운동본부장)도 주택 가격이 더 떨어져야 비로소 모든 주거 문제의 합리적 해결이 가능하다고 단언한다.

어찌 보면 지금 이 나라에서 "혁명하자"는 주장보다 더 혁명적인 게 다름 아닌 "집값이 더 확 떨어져야 한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가장 두려워하는 이 사태야말로 우리 사회가 가장 시급히 필요로 하는 기회다.

그럼, 정치 투쟁은 일단 접고 아파트 가격이 폭락할 때까지 기다려보자는 이야기인가? 아니다. 지금부터라도 거품 붕괴 이후의 구조 개혁 대안을 제시하며 중간층을 설득하자는 것이다. 정권에 맞선 싸움과 이러한 선전전을 병행하자는 것이다. '복지'나 '경제 민주화'로 포괄되었던 여러 요구들을 이러한 새로운 포격 방향 아래 재배열하자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박정희 정권의 황혼은 1970년대 말 경제 위기와 함께 왔다. 전 세계적인 스태그플레이션이 남한에서 뒤늦게 기승을 부리자 마침내 유신 체제의 철옹성도 더 이상 버텨내지 못했다.

21세기에도 황혼은, 다시 한 번, 한국 자본주의의 현실과 대중의 기대 사이의 어긋남에서 시작될 것이다. '박정희'는 이 점에서도 이 정권 아니 우리의 미래를 전망하는 데에 역시 중요한 열쇳말이 아닐 수 없다.

이 글의 일부는 노동당이 발간하는 월간 <미래에서 온 편지> 신년호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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