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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대한민국의 '교사'다!

[장석준 칼럼] 복지 동맹을 위하여

박근혜 대통령은 후세에 어떤 인물로 기억될까? 지금까지 행적으로 봐서는 아마도 '교사'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교사 노동조합을 탄압했다 해서 그걸로 이름을 남길 거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 자신이 '교사'로 평가받지 않겠냐는 것이다.

물론 그가 한국 사회에 어떤 새로운 지식이나 가르침을 전수한 적은 없고 앞으로도 그런 걸 기대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그는 보다 고차원적인 방식으로 배움의 기회를 열고 있다. 그는 마치 거울처럼 한국 사회를 비춤으로써 우리가 우리 자신을 직시할 수 있게 만들어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정말 '탁월한' 교사가 아닐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거울을 바라보며 우리는 무엇보다도 현재 한국 사회가 여전히 박정희 신화의 시간대 안에 머물러 있음을 깨닫는다. 박정희 정권 시절부터 엉키기 시작한 실타래에 포박돼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민주화의 외관상 성공에 취해 우리 자신 애써 무시하려 하거나 못 본 체 했던 그 짙은 그림자를 이제는 직시할 수 있다. 이만큼 용한 정신분석의(醫)도 달리 없을 것이다.

또 하나 커다란 가르침은 복지 국가에 대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 보수파 정치인으로서는 참으로 놀랍게도 복지 확대 공약을 흔쾌히 내놓았다. 이를 통해 오늘날 한국 사회가 복지 국가 건설을 얼마나 열망하는지를 실증해주었다.

그러고 나서, 당선된 뒤에는 기초 연금 공약을 주된 사례로 삼아 정치인이 약속한 '복지 국가'라는 게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또한 보여줬다. 적어도, 복지 확대를 약속하는 정치인이 선거에 당선되는 것만으로는 복지 국가가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입증했다. 이 역시 진지하게 복지 사회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참으로 아프면서도 소중한 학습 체험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주의할 게 있다. 박근혜라서 혹은 새누리당 소속 대통령이라서 문제인 게 아니다. 박 대통령이 보여준 것은 정치인 일반의 한계다. 설령 새누리당보다 좀 더 개혁적인 정당이 집권하더라도 혹은 심지어 '진보' 대통령이 나온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박근혜 정부가 걸어간 길과 크게 '다를 수 없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기초 연금 공약의 배신으로 보여준 것은 이런 배신이 쉽게 먹혀들 수 있는 한국 사회의 근본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복지 국가에 대한 전반적인 열망에 비해 이를 관철할 수 있을만한 사회 세력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연합뉴스

복지 '담론'은 넘쳐나도 복지 '세력'은 없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분석들이 있었다. 서구에서는 결국 노동 세력이 이 역할을 떠맡았는데 지금 한국 사회에는 노동 세력이 그럴 정도로 성장해 있지 못하다는 점이 주로 지적되었다. 그러면서 노동 계급이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으로 나뉘어 서로 갈등하는 게 주된 장애물로 지목되었다. 일종의 계급 '내전' 때문에 복지 확대를 압박할 계급 '투쟁'이 작동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박근혜 정부의 복지 사기극을 바라보면서 이 근본 장애물을 새삼 절감한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한 가지 더 지적하고 싶은 게 있다. 위의 진단에 따라 많은 이들이 노동 운동이 정규직-비정규직 연대를 위해 분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올바른 주장이다. 한데 아직도 뭔가 비어 있다는 느낌이다. 노동 현장에서 서로 다른 고용 형태의 노동자들 사이에 임금, 고용 등 노동권 쟁점을 중심으로 연대를 강화하는 것만으로 과연 충분할까? 아니, 이러한 노동 현장의 연대가 성사되기 위해서도 또 다른 방면의 노력이 더 필요한 것은 아닐까?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계급 '내전'의 전선이 위에 언급한 쟁점들에 그치는 게 아닌 것 같아서다. 사실 정규직-비정규직 갈등만 하더라도 다른 어떤 갈등들에 비하면 오히려 해결이 어렵지만은 않은 문제일지 모른다. 일단 내 편, 네 편이 확연히 갈리고, 몇 개 진영으로 정리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내전은 끝내기가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진영 구분이 확실하기 때문에 그들 사이의 타협을 시도해볼 수도 있고 그래서 종전(終戰)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다.

보다 어려운 것은 이런 식의 진영 구분이 분명치 않은 경우다. 즉,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식의 내전이다. 거의 모든 이들이 다른 모든 이들과 벌이는 경쟁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지금 그러한 계급 '내전'이 일상적으로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두 가지 문제가 이 내전의 쟁점이다.

하나는 교육이다. 이 나라에서 교육은 학벌 확보를 통해 최소한 중간층 이상의 삶을 보장 받는 핵심 통로다. 비교적 생활이 안정된 노동자층까지 포함한 대다수의 부모는 자녀들이 학벌 확보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뒷받침하는 데 인생 절정기의 온갖 열정과 시간, 재정을 쏟아 붓는다.

자식을 성공시켜서 그들의 부양으로 노후를 보장받는다는 게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기대는 뿌리 깊게 잔존한다. 그리고 이 기대는 공적 복지에 대한 기대와는 공존할 수 없다. 각 가정이 이 학벌 확보 전쟁의 전시 체제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복지 확대를 위해 이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전쟁을 벌일 사회 세력이 등장하기는 힘들 것이다.

다른 하나는 주거다. 이 나라에서 주택, 특히 수도권과 대도시의 아파트를 소유한다는 것은 중간층 이상의 삶에 진입하고 그것을 지켜나가는 또 다른 중요한 통로다. 부동산 자산 소유가 성공의 징표 역할을 하고, 더 나아가 부동산 투기에 참여해 불로 소득을 획득하는 게 노후 생활 보장의 가장 안정된 방편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일단 정기적 근로 소득을 확보한 거의 모든 가정은 부동산 시장이라는 전쟁터에 뛰어든다.

이러한 기대 역시 이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경험과 지표들은 이번 세기 초에 전 세계를 휩쓴 자산 시장 거품이 지속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대다수 시민들도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소유=중간층 진입"이라는 신화가 이들 시민의 뇌리에서 좀처럼 떠나지 않는다. 승패를 가릴 수 없게 된 싸움판인 줄 다들 알면서도 사격을 멈추려고 하지 않는다. 정부는 이것을 알고 있기에 이 전쟁을 어떻게든 연장해보려고 갖은 수를 다 쓰는 것이다.

교육과 주거, 이 두 쟁점이야말로 한국 사회에서 복지 동맹의 성장을 가로막는 양대 장애물이다. 그러면서도 이 두 쟁점은 넓은 의미의 복지에 포괄되는 중대한 과제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진보 좌파가 정면 승부를 펼쳐야 할 '가장 급한' 과제가 다름 아닌 교육과 주거라고 주장한다.

물론 '급한' 과제들은 그밖에도 많이 있다. 기본 소득 같은 제안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많다 하더라도 최소한 보편적인 공적 연금 도입이나 무상 공공 의료 실현 등은 시급한 과제들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에서도 '보다 급한' 과제라면 단연 교육과 주거를 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 두 영역에서 이제까지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넘어서는 새로운 집단적 문제 해결 세력이 등장하고 이들을 중심으로 전에 없던 동맹이 형성되지 않고서는 다른 영역에서도 복지 확대를 추구하는 사회 세력이 성장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들 각자가 교육과 주거라는 싸움터에서 서로에 대해 잘못 겨누고 있는 총부리부터 지금 당장 내려놓아야 한다. 과녁을 다른 쪽으로, 다른 한 곳으로 모아야 한다. 진정 필요한 싸움에 나서기 위해 무엇보다 이 계급 '내전'부터 끝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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