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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전쟁? 사회 교과서도 문제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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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전쟁? 사회 교과서도 문제투성이다!

[장석준 칼럼] 교과서 파동에서 우리가 더 보아야 할 것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로 인해 교과서 문제가 정치 쟁점이 되었다. 그간 역사 교과서 논란이라고 하면 그저 일본만의 특수한 현상쯤으로 여겼는데, 뉴라이트 덕분에 한국 사회에서도 어느덧 교과서 논란이 첨예한 정치적 대립선 중 하나가 됐다. 이것은 분명 중요한 쟁점이다. 우리는 극우사관이 한국사 수업에 침투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단순히 정치인들의 입씨름 거리로 맡겨둘 게 아니라 우리 모두 감시인이 되어 이 싸움에 나서야 한다.

그런데 따져야 할 게 이것만은 아닌 것 같다. 한국사 교과서가 쟁점이 된 김에 우리가 깊이 파고들어야 할 문제가 더 있다.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교과서 중심의 교육관이다. 뉴라이트는 자신들의 엉성한 역사관을 교과서에 반영하면 그게 자라나는 세대에게 '주입'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한국사 교과서를 급조해 보급하는 데 저렇게 기를 쓰고 달려든다. 그런데 이에 맞서는 진영도 기본 시각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역시 교과서 내용이 미래 세대에게 '주입'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어떤 내용을 '주입'할지를 놓고 다투는 것은 아닌가.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게 얼마나 무서운 이야기인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미래 세대에게 다른 내용이 '주입'되고 그래서 그들의 가치관이 정권에 따라 바뀌게 된다니 말이다. 이 상황에서 우리의 답은 "그러니까 우리가 빨리 정권을 잡아야 한다"가 되어선 안 된다. 교육을 바라보는 이런 지배적 시각 자체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참에 올바른 교육의 방법 자체를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국정 혹은 검인정 교과서가 정말 필요하냐는 물음을 던져봐야 하고, 또한 교과서가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도 따져봐야 한다. 한국 사회는 지금 교과서가 어떤 관점을 정답으로 제시할지를 놓고 다투고 있다.

하지만 과연 교과서가 하나의 정답을 제시하고 이것을 암기하라고 하는 게 옳은 것인가? 교과서의 몫은 오히려 학생들이 스스로 답을 찾아나가도록 그 방법을 안내하는 일 아닐까. 기존의 여러 시각들을 요약해서 펼쳐 보이고, 학생들 스스로 생각을 다듬어갈 수 있도록 학습과 토론의 방법을 충고하며, 중요한 읽을거리들을 소개해주는 일 말이다. 이 문제는 결국 우리 교육 전반의 목표와 지향, 체계를 새로 세우는 일과 직결된 것이기도 하다.

ⓒ연합뉴스

둘째로 짚어야 할 것은 한국사 외의 교과다. 뉴라이트가 한국사를 주된 싸움터로 삼아서 역사 교과만 부각되지만, 과연 문제가 한국사뿐인가? 다른 교과들은 문제가 없는가? 특히 우리가 관심을 쏟아야 할 것은 사회 교과다. 민주주의의 기본 교양, 노동권과 노사 문제 인식, 환경 생태 문제의 환기, 여성 및 다양한 소수자의 권리에 대한 시각 등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가 지속 가능하기 위해 필요한 참으로 중요한 내용들이 여기에 포괄된다.

그런데 과연 지금 한국의 학교들에서 이런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가? 입시에 밀려 주목도 받지 못하고 있고, 그나마 얼마 안 되는 수업에서는 편향된 신자유주의적 경제관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현실이다. 이런 식으로,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벌써 30여 년이 다 돼 가는데도 노동조합과 파업, 좌파 이념을 불온시하는 문화가 여전히 세대를 이어 전수되고 있는 것이다.

외국은 그럼 어떨까? 다른 나라도 자본주의 사회인 한, 사회 교과 내용에는 엄연히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분명 한국과는 다른 데가 있다. 프랑스에서는 중·고등학교 과정에 '시민 교육'이 있어서 기본적인 인권, 시민권, 노동권 등을 학습한다. 여기에서는 노동조합의 단결권, 단체행동권, 단체교섭권을 시민권의 필수적인 일부로 다룬다. 노동조합, 정당, 사회단체 가입을 장려하며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이들 조직의 활발한 활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중학교 시절부터 이런 내용을 접하며 성장하는 프랑스 학생들이 있다. 이와 달리 언론 매체 등을 통해 노동조합을 적대시하는 시각에 길들여지는 한국 학생들이 있다. 당연히 사회에 진출하고 나서 노동 운동을 바라보는 둘의 시각은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이 고스란히 프랑스와 한국의 노동 운동 여건 차이로 나타나게 된다. 파업이 닥치면 그때 가서 시민 사회 여론을 좋게 해보려는 식으로 접근해서 될 일이 아니다.

유럽에서는 이렇게 한국에 비해 정규 교육 과정에서 시민권과 노동권 교육이 충실히 이뤄진다. 그런데 내용만이 아니라 학습 방식도 크게 다르다. 프랑스의 교과서는 한국 교과서와는 달리 어떤 사안에 대해 설명을 장황하게 늘어놓거나 하나의 정답으로 마무리하지 않는다. 마치 콜라주처럼 신문 기사, 학술서, 법률, 사진 등의 다양한 자료들을 오려 모아놓고 학생들 스스로 이 자료들을 바탕으로 생각을 전개하고 정리하게 한다. 교과서 본문은 단지 중요한 질문들을 던져서 학생들의 사고를 자극하는 역할에 만족한다. 따라서 주입식 교육을 하려야 할 수가 없다. 기본적으로 토론 학습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식이다. 교과서에 큼지막하게 파업 시위 사진이 실려 있다. 한국이라면 대개 언제 어느 때 이런 파업이 있었다고 설명을 달면서 대체로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게 보통일 것이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사진 속 노동자들은 왜 파업을 하는지 학생들 스스로 조사하고 토론하게 한다. 물론 파업이 '준법'의 틀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결론을 유도하는 질문도 있다. 하지만 이런 파업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맥락을 토론하게 함으로써 단체 행동을 민주주의의 정당한 절차 중 하나로 인식하게 만들기도 한다.

독일에서는 토론의 특수한 형태로 모의 역할극을 장려한다. 학생들이 노동자 측도 되어보고 사용자 편도 되면서 노사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다지자는 것이다. 가령 교과서는 실제 사례에 기초한 노사 갈등 상황을 제시한다. 어느 기업이 매출 저하로 구조 조정을 실시하려 한다. 사용자는 동유럽 기업들에게 가격 경쟁에서 밀리는 데서 원인을 찾는다. 반면 노동조합과 직원평의회(독일의 노사 공동 결정 제도에 따른 노동자 대의 기구)는 노동 조건 악화로 인한 고충을 토로한다.

교과서는 노사 양쪽의 판단 근거가 되는 산업 현실과 노동 현장의 정보를 자세히 제시하고 좀 더 자세한 조사를 실시할 방법도 안내한다. 학생들은 경영진, 노동조합, 직원평의회 등으로 나뉘어 각자 자기 입장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한 논리를 가다듬는다. 그러고 나서 실제 노동법 절차에 따라 단체교섭 형태로 서로 토론한다. 이런 모의 역할극을 경험한 학생들에게는 최소한 사회 진출 이후에 노동조합이 낯설게 느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극우사관으로 점철된 한국사 교과서를 반드시 막아야 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도 꼭 지켜야 한다. 하지만 이 모두는 단지 출발점일 뿐이다. 한 차례 논쟁하고 넘어가면 될 사안이 아니다. 좁은 의미의 교육 운동만의 과제도 아니다. 역사와 사회 전반을 시민권, 노동권, 여성권, 다양한 소수자의 권리를 중심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정규 교육 과정에 뿌리내리게 만드는 것은 노동 운동과 진보 세력 모두의 근본 과제이자 또한 일상적으로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여야 할 과제다.

이 글은 필자가 노동당이 발간하는 월간 <미래에서 온 편지> 11월호에 발표한 글의 축약본입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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