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마스카와 도시히데(71) 일본 교토산업대 교수가 한 말이다. 학문은 영어가 아닌 연구 자체가 우선이라는 이야기다. 수상 당시 마스카와 교수는 영어 사용은 고사하고 해외에 한 번도 나간 적이 없어 이슈가 됐었다. 수상을 위해 스웨덴에 나간 게 사상 첫 해외 탐방이었다.
당시 언론에 따르면 마스카와 교수는 영어에 서툴러 노벨상 재단으로부터 수상 소식을 전하는 전화가 왔을 때도 여성 통역이 일본어로 내용을 전달해야만 했다. 마스카와 교수는 "어렸을 적부터 문과계 과목에는 전혀 흥미가 없었다"며 "초등학교 시절에는 국어와 산수의 성적을 더해 둘로 나눠 반에서 중간쯤 했을 정도"였다고 자신을 소개하기도 했다.
실제 수학과 물리에서는 수재였으나 영어와 국어 등은 중간 이하 성적이었던 마스카와 교수는 나고야대학원 입시시험에서 외국어 시험을 면제받고 '특혜' 입학했다. 당시 대학원 입학 땐 영어 성적이 너무 안 좋아 교수회가 합격 여부를 결정했었다.
마스카와 교수는 영어가 서툴러 지금도 국제학회 등에서 요청하는 초청에도 일절 응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노벨상 수상기념 강연에서도 마스카와 교수는 일본어로 진행했다. 기념 강연은 관례적으로 영어를 써왔던 만큼 이례적인 일이었다.
▲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이 11일 긴급회의를 마치고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
"100% 영어 수업은 한 마디로 '미친짓'이다"
이런 마스카와 교수의 일화는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도 징벌적 등록금제에 이어 '전면 영어 강의'가 새로운 논란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퇴진 요구를 받고 있는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은 학과 수업을 전면 영어 수업으로 전환했다. 비영어 강의가 생기면 학생들이 몰린다는 이유로 예외도 없앴다. 현재는 모든 학생들이 영어로 수업을 들어야만 한다.
서남표 총장은 "카이스트와 같이 과학기술 분야에 특화된 연구대학의 경우 언어적 장벽은 큰 데미지로 작용할 수 있다"며 "세계적인 석학들이 대부분 영어 논문을 발표·토론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과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면 그만큼 이 분야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고 100% 영어 수업 도입 배경을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네 명의 학생이 잇따라 자살을 하며 서 총장의 소위 '개혁' 정책이 뭇매를 맞으며 100% 영어 수업도 도마 위에 올랐다. 언론에서 뿐만 아니라 카이스트 교수들도 일제히 100% 영어 수업의 문제를 비판하고 있다.
최광무 카이스트 전산학과 교수는 <프레시안>과의 전화통화에서 "(100% 영어 수업은) 한 마디로 미친 짓"이라고 비판했다.
최 교수는 "영어 강의는 마치 수학 시간에 영어 공부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영어 공부는 영어 시간에 함으로서 학생들이 제대로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교수는 "영어가 필요 없다는 게 아니라 리딩(reading), 라이팅(writing), 서양 문화의 이해 등을 세분화해서 차근차근 배워야 한다"고 했다.
최 교수는 영어를 중시하는 세태도 비판했다. 최 교수는 "이젠 우리가 새로운 문화, 기술 등을 만들어 나눠야 한다"며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서양 문물을 얻으려고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우리의 것을 더욱 개발하고 노력하면서 우리의 것을 밖으로 알리는 것도 필요하다"며 "영어는 필요할 때 쓰는 게 영어지 그것을 가지고 강의를 듣게 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최 교수는 "총장에게 등록금 문제, 영어 문제 등을 놓고 몇 차례 고언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미국에서 혼자 공부를 한 분이라 한국 정서를 잘 이해하기 어려운 듯하다"고 말했다.
"고등 학문을 자국어로 배우지 못하면 미개인 취급 받을 수 있다"
지난 10일에는 실명을 밝히지 않은 카이스트 교수가 학내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 전 과목 영어 강의 의무화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한국 과학대표 대학인 카이스트가 자국어가 아닌 영어로 100% 학문을 한다는 것은 국가의 수치"라며 "고등 학문을 자국어로 배우지 못하고 외국어로 사유한다면 미개인 취급을 받을 수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이 교수는 "수학과 영어능력은 단기간 속성으로 키울 수 없고 오랜 시간 노력을 해야 일정 수준에 오를 수 있는데, 이를 고려하지 않고 학생들에게 의미 없는 고통을 줘선 안 된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일정 수준 준비가 되지 않은 학생들에게 전 과목 영어 강의는 '체계적인 고문'에 지나지 않는다"며 "전공 실력을 탄탄하게 갖춘 뒤 영어 실력을 키우는 게 진정한 교육"이라고 덧붙였다.
문수복 전산학과 교수도 자신의 홈페에지에 '영어 강의에 부쳐'라는 글을 통해 영어 강의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전 과목 영어 강의를 통한 득과 실을 따지기가 쉽지 않다"고 밝혔다.
문 교수는 "학부 과목에선 영어 때문에 강의 내용을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었다"며 "그렇지만 대학원에 진학해 연구로 세계 경쟁에 뛰어들려면 연구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 만큼 토익 900점 이상은 갖출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공개적으로 영어 강의를 하지 않겠다는 교수도 나왔다. 한상근 수리과학과 교수는 학생 커뮤니티 사이트에 "앞으로 모든 강의를 우리 말로 하려 한다"고 밝혔다. 영어 강의가 교수와 학생 간 인간적 접촉을 단절해 버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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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명 이상 이공계 노벨상 수상자 배출한 일본은 영어 수업 하지 않는다"
이런 주장은 카이스트 밖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카이스트 외에도 많은 대학들이 영어 강의를 늘려가는 추세여서 이번 논란은 다른 대학으로 퍼질 가능성도 있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1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10명 이상의 이공계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일본 대학이 영어 수업을 강제한다는 얘기는 들은 적 없다"고 비판했다.
조 교수는 "영어 수업이 가능하고 필요한 분야와 그렇지 않은 분야,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분야를 구분하지 못하고 실적 채우기식으로 무작정 영어수업을 늘리는 대학지도부는 부끄러워해야 한다"고도 했다.
조 교수는 "여러 대학이 영어수업 개설숫자를 늘리려고 애를 쓴다"며 "이는 대학평가와 외국인 학생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심지어 동양사나 일어 수업도 영어로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며 "하지만 다수 학생은 영어 강의를 따라잡지 못할 뿐더러 교수의 수업전달력도 떨어진다"고 비판했다.
조 교수는 "대학과 학문의 발전은 새롭고 창의적인 인문사회학적, 과학기술적 발상과 상상력 그리고 이를 보장하고 독려하는 체제에서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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