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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 김태호 PD를 '1년 됐다'고 다른 데로 보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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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무한도전> 김태호 PD를 '1년 됐다'고 다른 데로 보내면?"

[인터뷰] 최승호 PD "비판 저널리즘 질식 시스템이 갖춰졌다"

MBC <PD수첩> 최승호 PD. 올해 나이 쉰 하나. 방송 경력 25년. 데스크에 앉아 후배들을 지도하고 있어도 어색하지 않을 나이이다. 그의 직급도 '부장'이다. 그는 그러나 현장을 누비고 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작품이 '검사와 스폰서', '4대강 수심 6m의 비밀', '공정사회와 낙하산'이었다. 그가 만드는 방송은 최근 폐지되거나 연성화된 여타 시사프로그램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강제 발령 당시 그가 소망교회를 취재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권력에 정면 돌파하는 그의 성격을 보여준다. 이명박 정부가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법도 하다. 이 정부는 2008년 촛불의 주범으로 '광우병' 편을 제작한 <PD수첩>을 지목하지 않았던가.

▲ 최승호 PD ⓒ프레시안(최형락)
그래서 지난해 2월 김재철 사장이 취임할 때부터 그가 <PD수첩>을 손볼 것이라는 예측은 하나의 '정설'이었다. 여태까지의 우려가 '예고'이기라도 한 것처럼 연임에 성공한 김재철 사장은 <PD수첩>을 겨냥한 것이 분명한 일련의 조치를 단행했다. 노조의 반발을 무릅쓰고 단체협약을 해지했고 시사교양국을 TV제작본부에서 편성본부로 옮겼으며 <PD수첩> 제작진을 대거 타부서로 강제 발령냈다.

<PD수첩>은 진보 정권에도 눈엣가시

그런데 사실 <PD수첩>은 어느 정권에서나 눈엣가시였다. 1990년 초창기에는 '우루과이라운드'의 문제점을 취재했다가 불방 사태까지 겪으며 제작진 전원이 교체됐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부동산 정책 등에 대해 사사건건 시비를 걸더니 '황우석 박사와 줄기세포' 편을 제작해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최승호 PD는 그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래서 최승호 PD를 '정치색이 있느냐 없느냐', '진보냐 보수냐'로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검사와 스폰서'와 같은 경우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90% 이상의 시청자들이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고 한다.

김재철 사장이 '인사는 인사권자의 고유 권한'이라고 항변하더라도 이번 경우에 대입하면 '경영진의 무능'이라는 답이 나온다. 최승호 PD는 박건식 PD와 함께 2008~2009년 1년 동안 미국 IRE(탐사보도 협회)에서 탐사 저널리즘에 대한 연수를 받은 뒤 귀국해 <PD수첩>에 전문 조사원을 배치하고 CAR(Computer Assisted report) 기법을 적극 활용했다. 지방선거 결과,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낙하산 인사 실태를 분석하기도 했다.

덕분에 과거에는 "코레일에는 왜 낙하산이 많으냐?"고 했을 질문을 "모든 공공기관을 분석했더니 코레일이 가장 낙하산이 많았다. 그 이유는 뭔가?"라는, 차원이 다른 힘 있는 질문을 할 수 있었다. 분명한 저널리즘의 발전이다. 이런 전문가들을 아침 프로그램과 특집 생방송을 담당하는 부서에 발령내는 것은 회사 측의 손해다. 최 PD는 "1992년에 마지막으로 생방송을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적재적소'라는 인사의 기본이 무시됐다.

윤길용 시사교양국장은 3일 평PD들과의 면담에서 "<PD수첩> PD들의 출세를 위해 변화가 필요했다"면서 "지방사 사장으로 간 시사교양국 출신 선배들이 없는데 너무 암담하다. 최승호 PD에게 자유를 주자. 프로그램할 때마다 신경 쓰고 저 사람이 얼마나 피곤하겠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지방사 사장으로 간 시사교양국 출신 선배들이 없다'는 말도 사실관계(김윤영 전 원주MBC 사장이 시사교양국 출신이다)와 다를 뿐더러, 쉰이 넘은 나이에도 현장으로 돌아와 MBC에 '탐사 저널리즘'을 정착시키려 고군분투하는 최 PD에 대한 인사 명분으로 궁색하다.

이번 인사의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는 것은 당연하다. 최 PD는 <프레시안>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김재철 사장이 연임에 성공하고 나면 나에 대한 인사가 있지 않겠는가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자신에 대한 정권의 보복 심리를 감지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는 김재철 사장이 강행한 일련의 조치를 두고 "그야말로 철저한 준비, 확실한 기획이 느껴진다"고 비판하면서 그 이전에도 '4대강'편이 방송불가 조치를 당한 것 뿐 아니라 '인사위 회부' 등의 각종 개입이 있었다고 밝혔다.

▲ '검사와 스폰서' 편의 최승호 PD. ⓒMBC

"비판보도 질식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최 PD는 이번 인사발령으로 그간 <PD수첩>이 구축해온 심층 취재 시스템이 무너지지 않을까 우려했다. 3년 전 최 PD가 부러워하던 KBS의 탐사보도 팀은 이명박 정부 들어 해체됐다. 결국 탐사보도 프로그램으로서의 <PD수첩> 발전이 이명박 정부에게는 눈엣가시가 되었던 셈이다. 그는 "그간 구축해온 탐사보도 시스템의 맥이 끊기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비판 프로그램을 질식시키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에는 사회 비판성 아이템이 기각 당하고, 제작이 이뤄져도 사내 심의위원회가 태클을 걸고, 방송이 나간 이후에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징계하고, 사측은 방통심의위 징계를 이유로 제작진을 징계하고, 다음 번에는 "징계 받았는데 이런 걸 또 하느냐"고 아이템을 기각하는 '질식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권력은 이렇게 치밀하게 압박을 가해온 것이다. 2008년 KBS가 정연주 당시 사장 강제 해임 논란에 휩싸였을 때 최 PD는 "MBC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 조직"이라고 자신있어했다. 그런데 MBC도 KBS와 마찬가지로, 사장에 이어 본부장, 본부장에 이어 국장급까지 권력이 조금씩 내부를 장악해왔다.

최 PD는 "지난 3년간 줄기차게 싸워온 것 아닌가. 그런데 점점 더 위에서부터 조직을 침투해온달까. 처음엔 비교적 위쪽에서 전선이 그어졌다면 이제는 더 아래에서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이번 <PD수첩> 인사 파문이 MBC 사 측으로서는 조직 완전 장악의 기로인 셈이다.

이날 최 PD는 "이번 문제로 후배들이 행동에 나섰다가 징계 등을 받을까 개인적으로는 부담스럽다"면서도 "지금 내가 겪는 것처럼 언론인이 타의에 의해 해야할 사회적 역할을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면 저널리즘이 망가지고 저널리즘이 망가지면 민주주의는 한순간에 후퇴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 PD는 "무엇보다 권력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여론'인만큼 시청자들이 <PD수첩>을 보호해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다음은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MBC 사옥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가진 1시간 20분 가량의 인터뷰 전문이다.

"<PD수첩> 사태, 철저한 준비-확실한 기획이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김재철 사장의 연임을 전후로 '단체협약 해지-시사교양국 이관-대거 인사발령-<PD수첩>제작진 교체' 등 MBC 사측의 움직임에 일련의 흐름이 있는 것 같다.

최승호 : 그야말로 철저한 준비, 확실한 기획이 있음이 느껴진다. 나도 방송을 25년간 해왔으니 나름 전문가라고 할텐데, 최근 MBC에서 연속적으로 벌어지는 일들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들이다. 시사교양국을 편성 본부로 이관 시킨 것이나 계속 제작을 원하는 PD들을 대거 다른 부서로 옮긴 것, 앞서 단체협약 일방 해지 등이 모두 그렇다. <PD수첩>을 진행해 온 홍상운 PD를 교체한 것도 그런데, 아직 맡은 지 1년도 안된 상황이다. 홍 PD는 사실 <PD수첩>의 얼굴인데 자주 바뀌면 시청자들이 프로그램에 갖는 '밀착도'가 떨어지지 않겠나.

내게 강제발령 낸 것도 마찬가지다. 일반 시청자들에게도 배경에 깔린 여러 의도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조치였다. 신임 국장은 내가 만든 프로그램에 문제가 있다든가 하는 것은 전혀 아니라고 하는데, 프로그램의 문제도 아니라면 이번 인사는 설명이 안되는 것 아닌가.

프레시안 : 윤길용 신임 시사교양국장은 최 PD에 대한 강제 발령을 해명하면서 "시사교양국의 변화를 위해 1년 이상 한 프로그램에 일한 사람은 예외없이 교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겠다"고 했는데, 이 '원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최승호 : 예를 들어 김태호 PD가 <무한도전>을 잘 만들고 있는데 1년 만에 '공정 인사'한다며 다른 프로그램으로 발령내고 <무한도전> 제작을 원하지 않는 PD를 발령낸다고 생각해보라. 프로그램의 기본은 창의성과 전문성 아닌가. '1년 교체'라는 건 전문성이 필요없다는 식의 주장으로 들린다. 게다가 나뿐 아니라 다른 PD들을 포함해 이번 인사는 개개인의 능력이나 재능 등을 감안하지 않고 오히려 거꾸로 된 점이 많다. 결국은 <PD수첩>의 발언력을 감소시키고 그간 해왔던 정부 비판 등을 침묵시키려는 의도라고 밖에 볼 수 없다.



프레시안 : 이번 강제 발령 외에도 시사교양국을 TV제작본부에서 분리해 편성본부로 이관시키는 것 역시 시사교양국 PD들의 강한 반발을 샀다. 무엇이 문제인가?

최승호 : 사측에서는 예능, 드라마에 집중하기 위해 시사교양국을 떼낸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시사교양국의 프로그램들은 집중하지 않아도 되는 프로그램인지 반문하고 싶다. <아마존의 눈물>이나 <PD수첩>은 회사가 육성해야 하는 콘텐츠에서 빠지는 것인가. 말이 안된다. 이렇게 말이 안되는 일을 한 것은 시사교양국을 편성본부로 이관해 <PD수첩> 등의 시사 프로그램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복안에 따른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제작본부는 창의성과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자연히 담당 PD가 그 프로그램에서 중요한 권한을 가지게끔 한다. 이러한 제작본부의 특성상 그에 대한 개입이 문제로 인식되고 크게는 노사 공정방송위원회까지 열리게 한다. 반면 편성본부는 기본적으로 경영진이 크게 그리는 편성의 방향을 기준으로 현 프로그램을 분석하고 조치하는 성격이 강한 조직이다. 물론 제작본부와 같은 자율성이 요구되지만 속성상 위에서 요구하는 바가 쉽게 이행되는 속성을 갖고 있다. 지금 사측의 조치는 경영진의 개입이 있어서는 안되는 부서, 저널리즘을 생산하는 부서를 편성본부에 배치한 것이다.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한 형태의 통제 구조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그간 언론 인터뷰 등에서 '오늘의 <PD수첩>이 가능했던 이유는 경영진의 개입을 차단하는 단체협약이 있기 때문'이라는 취지의 말을 자주 해왔다. 김재철 사장이 일방적으로 단협을 해지한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남다를 것 같다.

최승호 : 그간 MBC에 독립적인 프로그램 제작이 가능했던 것은 단체협약 상의 국장책임제 등의 역할이 컸다. 경영진은 단협을 해지한 것은 프로그램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겠다는 방침으로 읽힌다. 지금으로서는 경영진이 일방적으로 해지한 상황이지만 이후 6개월까지는 단체협약의 효력이 있다고 들었다. 만약 실제로 회사의 의도대로 진짜 단협이 해지된다면 저널리즘에는 상당한 타격이 될 것이다.

"소망교회 취재 탓? '오비이락'인 듯"

프레시안 : 김재철 사장 취임 초기에는 안팎의 우려에도 '프로그램에는 간섭하지 않는다'는 일선의 반응이 많았다. 연임을 전후로 크게 바뀌고 있는 것 같은데, 제작진으로서 받은 간섭 등이 있었나.

최승호 : <PD수첩> '4대강 수심 6m의 비밀' 때 방송을 불방시킨 것이 가장 명백한 개입이다. 그때 사태가 너무 커져서 그런지 그 뒤로 크게 적극적인 간섭은 없었으나 다른 형태의 개입이 있었다. '공정사회와 낙하산' 편 당시 심의평가부에서 우리가 받아들이에는 상식적이지 않은 수정 요구를 했다. 요구 사항도 굉장히 많았고 시간적으로도 그 요구를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반영이 되지 않고 방송이 나갔는데 당시 사측은 담당 부장과 나를 인사위에 회부하겠다고 공언했었다. 최종적으로는 그렇게 하는 게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는지 실제로 인사위에 회부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간 간접적인 시그널이랄까 그런 건 있어왔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최승호 PD를 <PD수첩>에서 몰아내리라는 것을 예감해왔다는 말인가?

최승호 : 나를 <PD수첩> 제작진에서 뺄 것이라는 이야기는 추측이나 풍문 등으로는 오래 전부터 있었고 나름대로는 김재철 사장이 연임하고 나면 인사가 있을 것이고 그 와중에 나에 대한 인사도 있지 않겠느냐고 생각해왔다. 구체적으로 진행되는 상황을 들은 것은 현 국장 발령이 난 지난주 금요일이었다.

프레시안 : 왜 지금일까?

최승호 : 일련의 조치를 정밀하게 해오는 데에는 근원적으로 <PD수첩>의 비판 보도를 잠재우려는 시도가 있다고 밖에 볼 수 없고, 이는 구체적으로는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선거에 미치는 영향을 축소시키기 위한 것으로 본다.

프레시안 : 최 PD가 소망교회를 취재 중이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커졌다. 어느 정도 취재가 진행된 상황이었나?

최승호 : 소망교회 취재 때문에 강제 발령내거나 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제보가 들어와 직접 기초취재를 했고 방송을 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판단해서 담당 부장에게 보고를 했다. 담당 부장도 '한번 해봅시다'라고 승낙을 했고 부장이 국장에게 정식 보고를 하려는 차에 국장이 바뀌었다. 국장이 바뀌니 부장도 바뀌었고, 부장이 신임 부장에게 '이런 취재를 해왔으니 국장에게 보고하라'고 당부하는 상황이었다. 그 상황에서 나까지 발령난 것이지 소망교회 취재 때문에 이런 인사가 났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다만 '오비이락'이랄까 그런 점은 있는 듯하다.

"현장PD로 복귀…탐사 저널리즘의 '전문성' 위해 노력해왔다"

프레시안 : 사측은 최승호 PD를 제작 현장에서 제외시키려고 아등바등해온 것 같다. 1986년 입사이면 상당히 고참 그룹인데 제작 현장을 고수하는 까닭은?

최승호 : 황우석 사태 당시 <PD수첩>이 대단한 취재와 대단한 방송을 했다고 감히 자부하는데, 그때도 여러가지 논란들이 많이 벌어졌다. 취재윤리니 뭐니 하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 사태를 겪으며 취재 방법, 팩트를 찾는 과정을 정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고 공부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 이후에 미국 연수를 신청해 미국의 탐사보도협회(IRE)에서 운영하는 각종 훈련 프로그램과 컴퓨터를 이용한 분석 기법 등을 배웠다. 미국에서 '한국에 돌아가면 그야말로 현장에서 뛰는 저널리스트로서 역할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한국의 저널리즘이 갖는 가장 큰 결점 중의 하나가 나이가 들어 좀 취재할만하면 현장을 떠나 후배들의 취재를 관리하거나 기사를 첨삭하는 사람으로 전환되는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미국 백악관에서는 케네디 때부터 출입한 아흔살이 넘은 할머니 기자가 대통령에게 전문성 있는 질문을 던지는 반면 청와대에서는 장관 인사 이야기 같은 것도 엠바고를 걸고 기자들이 수용하는 등의 일이 벌어지는 것 아닌가. 이런 상황이니 현장에서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나름의 성과가 있었다고 자평한다.



프레시안 : 그렇게 <PD수첩>에 복귀한 지 1년 8개월만에 이번 인사발령이 났다. 미국에서 배워온 것, 하고 싶었던 것 다 해보셨나.

최승호 : 다 못했다. 정말 기초적인 것밖에 못했다. 나와 박건식 PD가 함께 미국에서 공부했는데 이번에 거의 모든 PD를 보내버려서 우리가 구축한 시스템의 맥이 끊길까 걱정하고 있다.

프레시안 : 복귀한 이후 최 PD의 방송을 보면서 미국 탐사 저널리즘에서 배워온 것을 많이 녹이고 있다고 느꼈다. 가장 도움이 된 취재 기법이라면 무엇이 있을까.

최승호 :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데이터를 어떻게 분석해야 하느냐는 부분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컴퓨터를 활용한 과학탐사보도(CAR) 시스템을 구축해 분석력을 높인 게 크다. 전문 리서처와 대형 컴퓨터를 들여와 기본적인 자료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을 해냈다. 가령 '일당 독주, 견제없는 지방자치' 편에서 후원금 내역을 분석해 지방 의원 후보자들이 정치인들에게 후원금을 내는 실태를 고발한 것이나 김재형 PD가 '욕망의 땅, 강남 재건축 아파트' 편에서 판교, 은마 아파트 입주자를 전부 분석해서 빚 등을 분석한 것도 들 수 있겠다. 기본적으로 자료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 이후에 취재를 하면 직접 사람을 만나 좀더 깊은 실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된다.

프레시안 : '공정사회와 낙하산' 편의 경우 코레일 허준영 사장을 인터뷰하던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

최승호 : '코레일이 전체 공공기관 중 정부 관련 인사가 가장 많다'는 분석이 있었기 때문에 허준영 사장에게 인터뷰를 요구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던 것이다. '좀 많습디다' 수준이 아니라 '최고치다. 왜 이런가'라고 물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구체적이고 힘있는 질문을 하게 된 것이다.

▲ 허준영 코레일 사장을 찾아가 "코레일이 공공기관 중 가장 낙하산이 많은 이유가 뭐냐"고 묻고 있는 최승호 PD. ⓒMBC

프레시안 : 최 PD의 프로그램을 보며 한국의 마이클 무어가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최승호 : '마이클 무어' 방식이 '취재 과정을 오픈한다'는 의미라면 저널리스트들이 자기를 드러내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널리스트가 질문을 던지고 상대의 답변을 듣는 과정을 시청자들에게 공개하는 것은 결론만 제시하는 것보다는 문답 과정에서 시청자들이 팩트를 찾을 수 있도록 하고 흥미도 끌 수 있다. 물론 '마이클 무어' 방식이 정치적으로 비틀고 주관이 많이 섞이는 식을 말한다면 한국의 공영방송에서는 '지나치게 편파적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을 것이다.

"비판 프로그램을 질식시키기 위한 완벽한 시스템이 갖춰졌다"

프레시안 : 방송사를 불문하고 시사프로그램의 연성화에 대한 우려가 많다. 지난해 시사 프로그램이 대거 폐지되면서 사실상 <PD수첩> 하나만 남아 있는 상황 아닌가.

최승호 : '연성화'라기 보다는 정부, 권력을 정색하고 비판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이 없어졌다. 양적으로도 많이 없어졌고 질적으로도 줄었다. KBS가 과거 대한민국 역대 최고의 탐사보도를 구가하던 탐사보도팀을 해체하다시피한 이후 심층적인 탐사보도가 거의 나오지 않는 상황 아닌가. 그래서 다른 프로그램들이 충분한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PD수첩>이 실제로 한 것보다 과분한 관심을 받아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프레시안 : 정부 비판 보도를 할 때마다 '정파성' 논란이 따라오는게 오늘의 현실이다.

최승호 : 비판하는 주체가 <PD수첩>이든 <조선일보>든, 그 대상이 정부 여당이나 검찰이든 야당이든 '팩트'를 가지고 비판할 때는 당연히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정치적으로 재단해서 '일방적인 죽이기다'라고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PD수첩>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도 강도 높은 비판을 해왔다. 황우석으로 대표되는 국책 과제에 근원적인 비판을 가했고 한미FTA에도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PD수첩>이 4대강 사업을 비판하거나 현 정부의 낙하산 문제를 비판했다고 해서 정치 편향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정확한 팩트에 따른 비판도 받아들이지 못하면 저널리즘이 설 자리는 없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지금 <PD수첩>이 처한 상황을 평가한다면.

최승호 : 지금은 비판 프로그램을 질식시키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이명박 정부 이후 많은 프로그램들이 아이템을 제기하는 차원에서 기각당하고, 방송이 된다고 해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징계하고, 사측은 그 징계를 받아서 해당 제작진을 징계하고, 그 이후 비슷한 류의 아이템을 제시하면 '지난번에 징계 받았는데 이런걸 왜 또 하느냐'며 기각되는 사이클이 완벽하게 만들어져 있다. 현 방송에서 비판적인 보도를 한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 힘들어졌다. <PD수첩>도 상당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프레시안 : 김재철 사장이 취임하고 나서 가장 많이 강조하는 것이 '시청률'이다. '시청률 성과주의'라는 비판도 나오는데, 어떻게 보는가.

최승호 : 시청률이라는 것은 방송사의 숙명이다. PD들이 올리고 싶지 않아서 시청률이 낮은 것이 아니다. <PD수첩> PD로서도 시청률이 높으면 사회적 반향이 크니까 높이려고 애쓴다. 문제는 경영진이 시청률을 높이고 싶다면 제작진이 콘텐츠를 만드는데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게 일차적인 과제일텐데 지금 경영진이 그런 역할을 잘하고 있는가, 대부분 구성원들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처럼 비상식적인 강제 발령을 내서 한창 일을 해야하는 PD들이 모여 대응책을 논의하게 하고 화합해야 하는 국장-부장, PD가 서로 갈라져서 대립하는 사태가 프로그램 경쟁력이나 시청률에 좋은 영향을 미칠까. 시청률은 짧게 생각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제작진과 경영진이 긴 안목으로 안정적으로 조율하면서 큰 흐름으로 만들어나가는 것인데 이렇게 자주 소모적인 혼란을 빚어낸다면 좋은 결과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후배들이 징계당할까 걱정…불합리한 선례로 남을 수 없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의도치 않게 논란의 중심에 선 주인공이 됐다.

최승호 : 개인적으로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다. 이번 사태 때문에 후배들이 징계를 당한다든지 하는 상황이 오면 어떻게 해야하나, 하고 생각한다. 현명하게 논의해서 희생이 없었으면 한다. 항의를 하면 사측에서는 징계 등으로 저항의 의지를 완전히 꺾어놓겠다는 식으로 나오니까, 그 다음에는 또 항의가 어려워지지 않나.

물론 항의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내가 해야 하는 역할이 있는데 자의도 아닌 타의에 의해 강제적으로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지 않았나. 이게 선례로 남아 후배들에게도 똑같이 반복될까 걱정스럽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저널리즘이 망가질테고 저널리즘이 망가지면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것은 한 순간일테니까.

프레시안 : 지난 2008년 정연주 전 사장의 강제 해임을 두고 KBS가 시끄러울 당시 최 PD는 'MBC는 KBS와 다르다. MBC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 조직'이라고 자부했었다. 지금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최승호 : 적어도 지난 3년간 줄기차게 싸워온 것 아닌가. 그런데 점점 더 위에서부터 조직을 침투해온달까. 처음엔 비교적 위쪽에서 전선이 그어졌다면 이제는 더 아래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아래쪽에서 남은 PD, 기자들이 저항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단체협약이 있고 노동조합이 분열되지 않은 MBC였기 때문에 이렇게 버텨온 것이다. 앞으로의 상황은 우리가 여기서 더 밀릴 것이냐 혹은 치고 올라갈 것이냐에 달려있을 것이다.

프레시안 : 지금 MBC가 중대 기로에 서있다는 말인가.

최승호 : 그렇다. 그리고 단체협약이 끝끝내 해지되는 상황이 올 것인가가 결정적인 국면이 될 것이다. 노사가 단체협상을 두고 그래도 합리적인 협상을 통해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는가 여부가 더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느냐 마느냐를 결정하게 될 것 같다.

ⓒ프레시안(최형락)

"후배들이 이 모든 난관을 소중하게 여기길"

프레시안 : 앞으로의 <PD수첩>이 지금까지의 <PD수첩>의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까. 시청자들이 'MBC가 후퇴했다'고 할 때는 비단 경영진만이 아니라 구성원들에 대한 비난도 섞여 있는데.

최승호 : 지난 1990년에도 이런 식의 강제적인 인사 발령이 있었다. 우루과이라운드를 다룬 방송에 방송 불가 판정을 내서 항의하자 <PD수첩> 제작진 전체를 내보내고 전부 새로운 PD로 교체한 적이 있었다. 그 이후 <PD수첩>은 그런 상황을 극복하며 발전해왔다. 앞으로도 <PD수첩>이 시청자들의 기대에 충분히 부응할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항상 후배들에게 '언젠가는 침묵당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전에 할 수 있는 사회적인 역할은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하고 있다. 다만 징계나 인사 발령 등으로 개개인의 노력이 한계에 부딪히고 있음을 알아줬으면 한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방송을 하려다 난관을 겪는 것 자체가 그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반증이고, 후배들이 그를 소중하게 여겼으면 한다. 노력의 와중에 겪게되는 불이익이나 피해가 당장은 개개인에게 크고 벅차게 느껴질 수 있으나 이런 것이 하나둘씩 늘 때 더 나은 환경을 만드는 쪽으로 발전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권력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여론'인만큼 시청자들이 <PD수첩>을 보호해주셨으면 한다. 과연 '정부 비판 보도를 하지 못하기 위한 제재가 이렇게 이뤄질 수 있는가, 이를 허용할 수 있는가'를 시청자들이 적극적으로 문제제기 하고 공론화 해주시면 큰 힘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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