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농림수산식품부와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가 발간한 <구제역 백서>는 지난 2000년과 2002년 발생한 구제역을 토대로 총 343쪽에 걸쳐 구제역의 유입 경위, 방역 평가 및 재발 방지 대책을 담고 있다.
▲ 구제역 사태로 텅 비어버린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의 한 축사. ⓒ김흥구 |
<구제역 백서> 만들어놓고도…후속 대책은 '전무', 내용은 '후퇴'
먼저 정부 스스로도 인정한 '초동 대응 실패'는 백서에서 언급된 대로 정책을 세웠다면 막을 수 있었던 '인재(人災)'였다. 백서는 2000년 구제역 발생 당시 "간이항원키트를 이용한 신속한 진단 기술을 개발해 농가에서 구제역 감염 여부를 신속하게 확진할 수 있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간이항원키트는 현재 국립수의과학검역원에서만 독점적으로 사용 중이며, 정작 발 빠르게 구제역 신고에 대처해야 하는 지역 가축위생시험소의 경우 감염 1~2주에나 진단이 가능한 간이항체키트만 배포된 실정이다.
지난해 11월 경북 안동에서 구제역 최초 의심 신고가 접수됐을 때도 방역 당국은 간이항체키트로만 검사해 음정 판정을 내렸고, 결국 공식 발생 확인까지 1주일간의 '방역 공백'이 생겼다. 그 사이 구제역 바이러스는 인근 시·도로 빠르게 확산됐다.
▲ 21일 경기도 이천시의 한 매몰 현장. 방역 관계자가 살처분을 피해 달아나는 돼지를 구덩이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김흥구 |
구제역 2년마다 발생했는데도…백신 비축량은 8년 전보다 감소
정부의 백신 정책은 8년 전인 2003년보다 오히려 후퇴한 모습을 보였다. 2003년 정부는 예방 백신 비축분으로 완제품 100만 마리 분량을, 항원 형태로 430만 마리 분량을 확보하고 있었지만 지난해 구제역 발생 당시 정부가 보유했던 백신은 30만 마리 분량에 불과했다. 전국의 소·돼지가 1300만 마리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할 때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또 백서는 "예방 접종 실시에 대비한 접종 단계별 시스템을 구축·보완해야 한다"며 "방역 당국은 구제역 예방 접종이 고려돼야 하는 상황에 대해 미리 평가·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단계별 시스템 구축'은 고사하고 백신 정책은 오히려 후퇴해, 정부가 백신 접종을 실기(失期)했다는 비판도 일었었다.
일단 백신이 부족했기 때문에 지난해 12월 백신 접종을 결정할 때도 소에게만, 그것도 일부 제한된 지역으로 한정했고, 그 사이 구제역 바이러스는 돼지를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정부는 뒤늦게 모든 소·돼지에게 백신을 접종키로 결정했으나, 구제역은 이미 전국으로 퍼진 뒤였다.
▲ 21일 경기도 이천시에서 살아있는 돼지가 트럭에 실려 매몰 현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날 돼지 900여 마리는 모두 생매장 됐다. ⓒ김흥구 |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박상표 정책국장은 "정부가 백신 비축량을 대폭 축소했기 때문에 초기 백신 정책이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며 "백신 접종은 상당한 시일에 걸쳐 찔끔찔끔 이뤄졌고, 백신 부족으로 돼지를 접종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이는 결과적으로 구제역 확산의 도화선이 됐다"고 비판했다.
8년 전 충고 수용했다면…"정부가 직무유기 했다"
방역 체계와 인력 부분도 '8년 전의 충고'를 수용했다면 충분히 개선할 수 있었다. 백서는 2002년 구제역 사태 당시 잘못된 점으로 "효과적인 방역 체계가 미확립돼 가축 방역 전담 수의사가 없는 일선 시·군이 많고, 읍·면 단위엔 축산 담당자가 없어 체계적인 농가 관리가 어려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런 지적에 대한 후속 대책은 사실상 전무해, 인력 부족과 고강도 업무로 방역에 동원된 공무원이 과로로 숨지는 일까지 발생했다.
박상표 국장은 "백서는 정부의 대응을 평가하고 문제점을 보완해 똑같은 일이 발생했을 때 최대한 잘 해보자고 만드는 것인데, 정부의 백서와 실제 현장에서의 방역 활동이 따로 놀고 있었다"며 "8년 동안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은 정부의 직무유기"라고 비판했다.
환경부, '침출수 재앙' 2년 전에 알고서도 '늑장' 대응
최근 논란이 되는 가축 매몰지의 2차 오염에 대해서도 정부가 2년 전 대규모 가축 전염병 발생에 대비한 매몰지 선정·관리 방안을 마련해 놓고도 이에 따른 제도 개선에 나서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매몰지에서 흘러나오는 침출수가 문제가 되자 정부는 지난 9일 전수조사 방침을 발표하는 등 뒤늦게 수습에 나섰지만, '엉터리 방역'에 이은 '엉터리 수습'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예고된' 재앙…'엉터리' 방역에 '뒷북' 수습까지
지난 2008년 환경부 연구 용역으로 서울시립대 산학협력단이 발표한 '가축 매몰에 따른 환경오염 관리방안' 보고서를 보면, 침출수로 인한 2차 환경 오염은 '예고된 재앙'이었다.
보고서는 경기 평택, 충남 천안 매몰지의 토양과 지하수를 채취해 분석한 결과 "매몰지로부터 15m 떨어진 지점에서 채취한 시료에서 암모니아성 질소 성분이 대조군의 약 80배 수준으로 검출됐고, 지하수 분석 결과 전기전도도 값이 농업용수 기준을 초과했다"고 밝혔다.
또 외국의 매몰 기준과 국내의 기준을 비교한 결과 "현행 국내 매몰 기준에는 지하수 오염관리 분야와 사후관리 분야 등 환경적인 측면에 미흡한 점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은 가축 매몰지를 선정할 때 침출수 유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하천과 지하수 관정, 마을, 도로 등과 비교적 넓은 이격거리를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국 환경보호청은 강·마을과 최소 100m 이상, 영국은 관정에서 250m 이상 떨어지도록 했다. 특히 침출수 유출로 인한 지하수·하천의 수질 오염을 우려해, 국가에 따라선 최대 1000m의 이격거리를 두기도 한다.
반면 한국은 최소 수준에 가까운 30m로 이격거리를 규정하고 있으며, 마을·수원지·하천·도로 등에 상관없이 일괄적으로 이를 적용하고 있다. 때문에 보고서는 인구 밀도가 높은 국내 여건을 고려해 △지표수체·도로·생산시설 30m △관정 75m △주거지 90m 등으로 이격거리를 다양화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격거리 다양화는 물론이고, 30m 규정조차 지켜지지 않아 하천과 도로에 인접해 매몰지를 조성하는 일이 수두룩하게 발생했다.
'침출수 유출' 가능성 높이는 생매장 금지 권고…현실은 '정반대'
매몰지의 침출수 유출 피해를 높인 생매장과 관련해서도 보고서는 생매장을 금지하고 침출수가 유출되지 않도록 고강도 폴리에틸렌 필름(HDPE)을 매몰지에 깔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현행 '구제역 긴급 행동 지침'엔 생매장 금지 조항이 없을뿐더러, 차수막을 비닐로 써도 문제가 없어 생매장된 가축이 비닐을 찢으면 침출수가 지하수나 하천으로 흘러들어갈 위험이 높은 상태다.
또 보고서는 사전에 매몰지를 선정해 이번처럼 대규모 발병에 대비해야 한다고 밝혔으나, 이조차도 지켜지지 않아 적절한 매몰지를 찾지 못해 산비탈이나 하천변에 마구잡이 매몰을 하는 일도 발생했다.
보고서는 단순 매몰 중심의 살처분 정책도 궁극적으론 환경 오염 저감 시설을 갖춘 매립과 소각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보고서는 "선진국은 소각이 원칙이며, 일부 지역에서 제한적으로 매몰을 허용한다"며 "궁극적으로는 소각 방식으로 가야한다"고 지적했다.
8년 전 충고 수용했다면…"정부가 직무유기 했다"
방역 체계와 인력 부분도 '8년 전의 충고'를 수용했다면 충분히 개선할 수 있었다. 백서는 2002년 구제역 사태 당시 잘못된 점으로 "효과적인 방역 체계가 미확립돼 가축 방역 전담 수의사가 없는 일선 시·군이 많고, 읍·면 단위엔 축산 담당자가 없어 체계적인 농가 관리가 어려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런 지적에 대한 후속 대책은 사실상 전무해, 인력 부족과 고강도 업무로 방역에 동원된 공무원이 과로로 숨지는 일까지 발생했다.
박상표 국장은 "백서는 정부의 대응을 평가하고 문제점을 보완해 똑같은 일이 발생했을 때 최대한 잘 해보자고 만드는 것인데, 정부의 백서와 실제 현장에서의 방역 활동이 따로 놀고 있었다"며 "8년 동안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은 정부의 직무유기"라고 비판했다.
환경부, '침출수 재앙' 2년 전에 알고서도 '늑장' 대응
최근 논란이 되는 가축 매몰지의 2차 오염에 대해서도 정부가 2년 전 대규모 가축 전염병 발생에 대비한 매몰지 선정·관리 방안을 마련해 놓고도 이에 따른 제도 개선에 나서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매몰지에서 흘러나오는 침출수가 문제가 되자 정부는 지난 9일 전수조사 방침을 발표하는 등 뒤늦게 수습에 나섰지만, '엉터리 방역'에 이은 '엉터리 수습'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의 한 가축 매몰지. 매몰지임을 알리는 안내판은 쓰러져 있고, 방역에 사용했던 장갑과 석회 자루는 아무렇게나 굴러다니고 있었다. ⓒ김흥구 |
'예고된' 재앙…'엉터리' 방역에 '뒷북' 수습까지
지난 2008년 환경부 연구 용역으로 서울시립대 산학협력단이 발표한 '가축 매몰에 따른 환경오염 관리방안' 보고서를 보면, 침출수로 인한 2차 환경 오염은 '예고된 재앙'이었다.
보고서는 경기 평택, 충남 천안 매몰지의 토양과 지하수를 채취해 분석한 결과 "매몰지로부터 15m 떨어진 지점에서 채취한 시료에서 암모니아성 질소 성분이 대조군의 약 80배 수준으로 검출됐고, 지하수 분석 결과 전기전도도 값이 농업용수 기준을 초과했다"고 밝혔다.
또 외국의 매몰 기준과 국내의 기준을 비교한 결과 "현행 국내 매몰 기준에는 지하수 오염관리 분야와 사후관리 분야 등 환경적인 측면에 미흡한 점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은 가축 매몰지를 선정할 때 침출수 유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하천과 지하수 관정, 마을, 도로 등과 비교적 넓은 이격거리를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국 환경보호청은 강·마을과 최소 100m 이상, 영국은 관정에서 250m 이상 떨어지도록 했다. 특히 침출수 유출로 인한 지하수·하천의 수질 오염을 우려해, 국가에 따라선 최대 1000m의 이격거리를 두기도 한다.
반면 한국은 최소 수준에 가까운 30m로 이격거리를 규정하고 있으며, 마을·수원지·하천·도로 등에 상관없이 일괄적으로 이를 적용하고 있다. 때문에 보고서는 인구 밀도가 높은 국내 여건을 고려해 △지표수체·도로·생산시설 30m △관정 75m △주거지 90m 등으로 이격거리를 다양화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격거리 다양화는 물론이고, 30m 규정조차 지켜지지 않아 하천과 도로에 인접해 매몰지를 조성하는 일이 수두룩하게 발생했다.
▲ 소 106마리를 묻은 파주시 탄현면의 한 매몰지. 3m 너비의 샛길 하나를 끼고 하천과 바로 인접해 있다. 매몰지는 하천으로부터 최소 30m 떨어진 곳에 조성해야 한다는 규정을 어긴 것이다. 비가 오거나 날씨가 풀려 침출수가 새어나올 경우, '바이러스 덩어리'인 침출수가 하천에 유입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김흥구 |
'침출수 유출' 가능성 높이는 생매장 금지 권고…현실은 '정반대'
매몰지의 침출수 유출 피해를 높인 생매장과 관련해서도 보고서는 생매장을 금지하고 침출수가 유출되지 않도록 고강도 폴리에틸렌 필름(HDPE)을 매몰지에 깔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현행 '구제역 긴급 행동 지침'엔 생매장 금지 조항이 없을뿐더러, 차수막을 비닐로 써도 문제가 없어 생매장된 가축이 비닐을 찢으면 침출수가 지하수나 하천으로 흘러들어갈 위험이 높은 상태다.
▲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원두리의 한 구제역 매몰지에서 흘러나온 누런색 침출수. ⓒ김흥구 |
또 보고서는 사전에 매몰지를 선정해 이번처럼 대규모 발병에 대비해야 한다고 밝혔으나, 이조차도 지켜지지 않아 적절한 매몰지를 찾지 못해 산비탈이나 하천변에 마구잡이 매몰을 하는 일도 발생했다.
보고서는 단순 매몰 중심의 살처분 정책도 궁극적으론 환경 오염 저감 시설을 갖춘 매립과 소각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보고서는 "선진국은 소각이 원칙이며, 일부 지역에서 제한적으로 매몰을 허용한다"며 "궁극적으로는 소각 방식으로 가야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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