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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린내 나서 물도 못 마셔요"…'공포의 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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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린내 나서 물도 못 마셔요"…'공포의 봄' 온다

[르포] 제2의 환경재앙, 구제역 매몰지를 가다

'구제역 발생 출입금지'라고 쓰인 팻말 뒤로 보이는 축사는 '가축들의 무덤'이었다. 19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지영동의 한 가축 매몰지. 구제역 매몰지 취재를 찾은 이곳은 놀랍게도 젖소 농가였다. 한 때 가축들이 살던 축사가 이제는 가축들의 '무덤'으로 변한 것.

좁은 진입로를 따라 축산 단지로 진입하자, 다닥다닥 붙은 농가들은 마치 페스트 같은 돌림병이라도 지나간 듯 텅 비어 있었다. 곳곳에 남아 있는 사료 포대와 농자재들만이 한 때 이곳에 가축이 살았던 사실을 알려주고 있을 뿐, 지나가는 사람 한 명 찾아보기 힘들었다.

구제역이 발생한 농가는 6개월 동안 입식에 제한을 받고, 매몰지 역시 3년간 발굴이 금지된다. 축산업을 포기하면서까지 축사 안에 가축을 파묻는 상황에서, "더 이상 묻을 곳도 없다"는 이야기는 단순한 '푸념'이 아닌 '현실'이 되어 있었다.

▲ 구제역이 휩쓸고 지나간 경기 고양시 지영동의 축산 농가. ⓒ김흥구

▲ 구제역 발생지임을 알리는 팻말만이 한 때 이곳에 가축이 살았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김흥구

▲ 가축들이 살았던 축사는 이젠 '가축들의 무덤'으로 변해 있었다. 축사 내부에 매몰지를 조성한 고양시 지영동의 한 농가. ⓒ프레시안(선명수)

'가축 무덤'이 된 축사…"매몰 후부터 지하수서 노린내 난다"

"혹시 시청에서 나왔수?"

손수레에 개밥을 싣고 축사 앞을 지나던 한 주민이 기자에게 말을 건넸다. 구제역 발생 농가 바로 아랫집에서 개 30여 마리를 키우고 있는 주민 김흥섭(가명·63) 씨는 "물에서 노린내가 나서 그릇조차 헹구지 못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살고 있는 지역엔 몇 년째 계속된 민원에도 아직 상수도가 보급되지 않았다.

"물에서 소 냄새인지 뭔지, 노린내가 너무 나서 먹기는커녕 그릇도 못 닦아요. 위에 축사에서 다 매몰하고 나서부터 그럽디다. 동네 반장이 민원 넣는다며 서명까지 받아갔는데 시청에선 소식도 없고…. 저기 윗동네에서 물을 길어와 쓰기도 하고, 먹는 물은 생수로 사다 먹고 있어요."

시청에서 나온 직원에게 하소연이라도 한 번 해볼 참이었다. 그 상대가 시청 직원이 아닌 기자라는 사실을 일러주자, 김 씨는 체념한 듯 인사를 남긴 채 손수레를 끌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 '구제역 발생지'라고 쓰인 출입금지 팻말 뒤로, 한 지역 주민이 개밥을 실은 손수레를 끌고 지나갔다. 그는 "매몰 이후 지하수에서 냄새가 나 그릇조차 헹구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김흥구

가축 매몰지에서 흘러나오는 '침출수 공포'는 비단 고양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기 파주·이천·용인·안성 등 경기도 16개 시·군의 581개 마을 주민들은 지하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조속한 상수도 설치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달 중순 돼지 9000여 마리를 논 4000㎡에 한꺼번에 파묻은 이천시 백사면 모전리 주민들도 매몰지에서 수십 미터 떨어진 관정에서 퍼올린 지하수에서 심한 악취가 나고, 심지어 이 지하수로 재배한 상추에서도 역한 냄새가 난다며 이천시에 조사를 요청했다.

날씨가 풀리면서 땅이 녹고 가축의 부패가 빨라지면, 매몰된 가축 사체에서 나온 침출수가 지하수로 흘러들어가는 것은 시간 문제다. 그러나 침출수를 뽑아내기 위한 '유공관'은 상당수 매몰지에 설치되지 않았거나 교체해야할 만큼 부실하게 설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 파주시 탄현면의 구제역 매몰지. 젖소와 한우 106마리가 매몰된 곳이다. ⓒ김흥구

구제역 매몰지, 샛길 하나 끼고 하천과 인접…'휴지조각' 된 매몰 규정

차로 한 시간가량을 더 달려 도착한 파주시 탄현면의 한 매몰지는 '차라리 축사 안이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지난해 12월 젖소 51마리와 한우 55마리 등 총 106마리의 가축을 매몰한 이곳은 이 마을 하천인 만우천과 불과 3m 거리였다. 매몰지는 하천과 30m 이상 떨어져야 한다는 규정을 어긴 것이다.

비가 오거나 날씨마저 따뜻해지면, 하천보다 2m가량 높은 지대에 조성된 매몰지에서 침출수가 흘러나와 각종 병원성 세균이 고스란히 하천으로 유입될 위험이 있다. 오염된 하천이 임진강으로 흘러든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시민환경연구소 박창근 소장(관동대학교 교수)는 14일 열린 '구제역·AI 시민조사단 발족식'에서 "지금이야 땅이 얼어서 지하수의 흐름이 느리지만, 봄에 해동이 되면 산 채로 매장된 가축의 수분이 오염 물질로 흘러나와 환경 오염이 심각해질 것"이라며 "우리나라는 봄이 갈수기이기 때문에 오염 물질이 조금만 유입돼도 그 피해는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 소 106마리를 묻은 매몰지가 3m 너비의 샛길 하나를 끼고 하천과 바로 인접해 있다. 매몰지는 하천으로부터 최소 30m 떨어진 곳에 조성해야 한다는 규정을 어긴 것이다. 비가 오거나 날씨가 풀려 침출수가 새어나올 경우, '바이러스 덩어리'인 침출수가 하천에 유입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김흥구

매몰지 곳곳이 부실 조성…'공포의 봄' 오나

<프레시안> 취재진이 19일 하루 동안 경기도 일대 매몰지를 둘러본 결과, 부실하게 조성된 매몰지는 곳곳에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가스 배출관이 지팡이 형이 아니라 일자형으로 솟아 빗물이 들어갈 우려가 있는 곳도 부지기수였고, 상당수는 도로나 하천에 인접해 있었다.

연천군의 한 매몰지는 마무리가 덜 된 공사장처럼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매몰 안내판이 쓰러져 있는 것은 물론, 침출수를 덮기 위해 쓰인 생석회 포대와 매몰에 참여한 관계자가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방역복, 방역 장갑 등이 곳곳에 그대로 널브러져 있었다. 규정대로라면 모두 소각 처리해야 하는 물품이다.

유공관 옆 침출수를 모아놓기 위해 조성된 저류지는 땅만 움푹 파놨을 뿐, 외부에 그대로 노출돼 있었다. 행여 야생동물들이 이곳에 접근한다면, 구제역 바이러스가 다른 곳으로 퍼질 우려도 있다. 위태롭게 조성된 매몰지 상공으로, 월동을 위해 남하한 독수리 떼만 하늘을 빙빙 맴돌고 있었다.

▲ 마무리가 덜 된 공사장처럼 방치된 구제역 매몰지. 매몰지임을 알리는 안내판은 쓰러져 있었고, 방역에 사용했던 장갑과 석회 자루는 아무렇게나 굴러다니고 있었다. ⓒ김흥구

[인터뷰] "72시간 밤샘은 기본, 이제 한숨 돌리나 했는데…"

'재앙' 수준의 구제역 사태로 가축의 95% 이상을 살처분 한 연천군 백학면 노곡리의 한 마을. 길을 따라 쭉 이어진 축사엔 정적만 가득했다. 축사 옆으로는 소규모 가축 매몰지가 곳곳에 조성돼 있었다. 마을 입구에 위치한 농가 1곳을 제외하고 25곳의 축산 농가가 이번 구제역 사태로 키우던 가축을 모두 매몰한 것.

▲ 구제역 사태로 텅 비어버린 연천군 백학면의 한 축사. ⓒ김흥구

▲ 텅 빈 축사는 강아지 한 마리가 지키고 있었다. 뒷편 상공으로 월동을 위해 남하한 독수리가 보인다. 파주시 관계자는 "가축 냄새를 맡고 독수리 떼가 날아들고 있긴 하지만, 매몰지의 경우 비닐과 흙으로 덮혀 있어 독수리가 가축 사체를 파먹을 우려는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독수리 떼가 구제역 감염 농가의 분뇨 더미 등에 날아들 때다. ⓒ김흥구

마을 곳곳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주민이 아니라 방역 관계자들이었다. 주말이었지만 매몰지 보강 공사를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군청 관계자의 허가를 얻어 방역복을 착용하고 현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인근 두 농가의 돼지 1500마리를 매몰한 곳이었다.

굴삭기를 동원해 복토 작업에 한창이던 연천군청 소속 수의사 조한욱 씨가 "어제 잠을 못자서…혹시 저한테 입 냄새가 나나요?"라고 물으며 멋쩍게 말을 건넸다.

"한창 구제역이 확산될 땐 72시간을 쉬지 않고 일한 적도 있어요. 2달 내내 그렇게 생활했죠. 이 동네 구제역도 한 풀 꺾여서 이제 한 숨 돌리나 했는데…이제 매몰지 정비로 정신이 없습니다."

▲ 마을 곳곳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주민이 아니라 방역 관계자들이었다. 주말이었지만 매몰지 보강 공사를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연천군 백학면 노곡리의 한 매몰지에서 군 관계자가 매몰지 보강 공사를 벌이고 있다. ⓒ김흥구

10년 째 수의사 생활을 해왔다는 그는 이 일대에서 발생한 구제역 가축의 살처분을 대부분 담당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 선택한 직업이지만, 직접 안락사 주사를 놓아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그에게 당시의 기분을 물었다.

"사실 저 같은 경우는 수의사 생활도 오래했고, 죽고 사는 모습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타성에 젖어서 그런지, 그렇게 힘들진 않았어요. 젊은 수의사들은 더 많이 힘들어하죠. 죽이려고 이 직업을 택한 게 아닌데…너무 힘들어 사표를 내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실 수의대학을 다닐 때부터 많은 학생들이 구제역을 접하고 나면 충격을 받아요. 이런저런 가축 질병에 대한 치료법을 배우다가, 구제역 페이지로 넘어가면 치료법 대신 '살처분'이 나오니까…. 그게 눈 앞의 현실로 벌어지면, 더 큰 충격이 될 수밖에 없죠."

그에게 구제역이 휩쓸고 간 지역 분위기를 물었다. 복토 작업이 진행 중인 매몰지 아래편에선, 한 때 땅에 묻힌 돼지의 주인이었던 한 농민이 담배를 태우며 말없이 작업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실 가장 힘든 건 농민들입니다. 언론에선 농민들 보상금이 너무 많다, 농민들이 오히려 좋아한다, 이런 이야길 하는데 현실과 전혀 달라요. 키우던 가축도 죽이고 수입도 안 나는데 오죽하겠어요."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복토 작업이 거의 마무리되고 인부들이 분뇨 차량으로 침출수를 뽑아내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뿌려진 소독약이 시야를 가로막았다. 막간을 이용해 이야기를 나누던 조 씨 역시 "방역복은 한 쪽에 잘 벗어놓고 가라"는 인사를 남긴 채 다시 현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 침출수를 제거하기 위해 분뇨 차량의 호스를 유공관에 꽂았다. 한 쪽에선 방역을 위해 소독약과 생석회 가루를 연신 뿌려대고 있었다. ⓒ김흥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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