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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만 구하자"…구제역 대재앙에 기름 붓는 저들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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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만 구하자"…구제역 대재앙에 기름 붓는 저들을 보라!

[안종주의 '위험사회'] 구제역 대재앙, 人災가 아닌 官災

위험 사회에서 가장 신경을 써야 할 두 단어는 신뢰와 분노다. 이 두 단어는 서로 연계돼 있다.

분노는 신뢰하지 않는 사람이나 기관, 조직에게 드러낸다. 신뢰하는 사람에게 분노를 느끼지는 않는다. 이 때문에 위험이나 위기를 관리하는 사람이나 기관, 그리고 위험 발생과 증폭으로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기업이나 정부, 조직은 이해관계자나 공중(국민)이 분노하지 않도록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 위험 소통에서 공중의 분노 요인을 강조한 미국의 피터 샌드만. ⓒpsandman.com
피터 샌드만(Peter Sandman)이라는 위험전문가가 있다. 그의 별명은 위험 전도사이다. 그가 전도하는 것은 위험은 위험 요소에 분노가 더해진 것(Risk=Hazard+Outrage)이라는 위험 공식이다. 그의 홈페이지(☞바로 가기)에 들어가 보면 초기 화면 맨 위에 'Risk=Hazard+Outrage' 공식이 눈에 띄게 자리 잡고 있다. 이제 그의 주장은 하나의 이론이 되어 위험소통학 교과서에도 나온다.

이화여대 김영욱 교수는 그의 책 <위험, 위기,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펴냄)에서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위험 커뮤니케이션의 다양한 이론 접근을 소개하고 있다.

샌드만의 '위해와 분노를 통한 접근' 이론은 12가지 위험 소통 이론 가운데 8번째로 나온다. 김 교수는 "위해는 어떤 행위의 위험성을 의미하고, 분노는 어떤 위험 행위가 가져오는 감정적인 대응을 의미한다. 전문가의 과학적인 (위험 인식) 선호 경향은 위해의 정도를 의미하지만, 비전문가들이 표현하는 선호 경향은 분노의 정도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고 이 이론을 설명한다.

공중은 위험(구제역 대재앙)과 관련해-그것이 위험 자체이든, 위험 대응 방식이든-일단 분노하면 위험을 관리하거나 위험 소통을 하려는 사람(기관)이 아무리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주장을 해도 귀를 굳게 닫는다. 상대방이 하는 말은 소귀에 경 읽기에 지나지 않는다.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않는다. 미국 쇠고기를 먹고 인간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10억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고 아무리 외쳐보아야 아무 소용없다.

샌드만의 이론이 가장 잘 들어맞은 것이 2008년 미국 쇠고기 수입 개방 반대 촛불 집회가 아닌가 싶다. 서울대 조병희·장덕진 교수는 '새로운 질병 정치' 또는 '위험의 정치화' 등 새로운 의미를 이 촛불 집회에 부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고 지적한다. 필자는 이들의 견해에 덧붙여 자신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주지 않고 깔아뭉개는 것에 대해 분노했기 때문에 연인원 1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광화문에서, 청계천에서, 서울광장에서 목 놓아 외쳤다고 생각한다.

이런 뼈아픈 위기 경험을 한 정부라면 당연히 구제역 대재앙과 같은 위험에 대해서는 책임 있는 위치의 사람들이 <워낭소리>의 노인처럼 '소와도 통할 정도'로 소통에 모든 것을 걸 줄 알았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은 지금 어떤 말과 행동을 하고 있는가. 소통은커녕 불통(不通)을 향해 전속력으로 내달리고 있다. 그 불통은 불통(火筒)이 되어 국민의 분노에 불길이 활활 타오르게끔 부채질하고 있다.

"대통령이 구제역 발생 초기에 백신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했는데 (담당 부처에서 백신 부작용을) 크게 보고해서 결단을 못 내렸다고 청와대 수석이 말하더라" (2011년 1월 24일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 대통령과의 저녁식사를 하고 하루 뒤 기자 회견에서)

"그러니까 (대통령은 구제역 초기에) 원론적으로 방역 정책이 무엇이 있느냐, 검토 보고를 받는 그런 것이죠. 대통령은 '어떤 방안이 좋겠나'라는 이런저런 원론적인 수준에서 '백신은 어떤가', 이런 거지. 이런 정도였어요. 초기에 대통령이 백신으로 하라고 했으면 당연히 그렇게 했을 겁니다"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장관이 2월 18일 발행된 월간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첫 단추를 잘못 꿰다보니 결국 일이 터지고 만 것이다. 청와대 고위 참모는 대통령에게 구제역 대재앙이 일으킨 분노의 화살이 날아오는 것을 막아보려고 책임 떠넘기기에 골몰했다. 장관은 자신이 모든 똥바가지 세례를 받는 것이 억울했던지 뒤늦게 '그런 이야기 없었어'를 이렇게 외친 것이 아닐까.

불난 집에 부채질을 열심히 하는 사람도 있다. 이명박 정부 초대 농림수산부 장관을 지내다 미국 쇠고기 수입 개방 반대 촛불 집회 확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가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되어 최근 구제역대책특위위원장을 맡은 정운천 씨다. 그는 18일 SBS 라디오 '서두원의 SBS 전망대'와 한 인터뷰에서 "원래 폐가축 침출수가 사실 화학적인 무기물이 아니라 생물학적 유기물이다. 내가 농사를 지어봐서 알지만 축산 분뇨가 그대로 하천으로 흐르면 크게 환경오염을 일으키지만 퇴비로 만들어서 논밭으로 가면 큰 자원이 된다"고 말했다.

폐가축 침출수로 퇴비를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인가. 시커먼 똥물로 상수원이 오염됐다고 하자. 이 오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고민해야지, 고도의 첨단 수처리 기술을 활용하면 먹는 물(수돗물)로 만들어 마실 수 있다고 외쳐야만 하는가. 마찬가지로 구제역 돼지·소의 침출수로 만든 퇴비로 기른 채소를 소비자들에게 사 먹으라고 한다면 과연 이를 알고서도 즐겨 먹을까?

축산 농민이 울화병에 걸리게 만드는 이는 또 있다.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이다. 그는 우리 축산업이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주범이라고 한다. 축산폐수에서 나오는 인 성분 때문에 수돗물에 녹색 이끼가 낀다고 한다. 수입산 쇠고기도 국산보다 질 좋은 것이 있다고 한다. 수출도 쥐꼬리만큼 하는 축산업에 구제역까지 덮쳐 한나라당 정권이 홍역을 치르다보니 이성을 잃은 모양이다. 축산농을 육성하지 말자고 한다. 다시 말해 축산업을 포기하자는 것이다.

시작 부분은 맞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결론은 엉뚱한 데로 흘렀다. 축산농이 분노를 터뜨릴 만하다. 옛날 같았으면 수천 명의 축산 농민이 전국 각지에서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모여 그의 망언 규탄 대회와 허수아비 화형식을 가졌을 만도 하다.

김무성 대표의 논리대로라면 우리는 쌀농사도 포기해야 한다. 2모작, 3모작을 하는 동남아시아 지역 국가와 달리 우리는 1모작을 한다. 그래서 국산 쌀 가격은 이들 나라에 견줘 너무나 비싸다. 우리나라 쌀보다 품질이 좋은 쌀도 외국에서 나온다. 수출도 하지 못하는 벼농사를 육성할 아무런 이유가 없지 않은가. 자신의 말이 옳다고 여긴다면 김 대표는 벼농사 육성도 포기해야 한다고 외쳐야 한다.

그가 제대로 된 정치인이라면 이렇게 말했어야 한다. "지금의 기업식 축산농은 전염병을 순식간에 확산하고 환경오염을 극대화하는 방식이므로 지역별 순환 농법으로 바꾸어야 한다. 축산 농장에서 나온 축산폐수나 분뇨를 먼 곳으로 가져가 처리하지 않고 발생 지역에서 정화하거나 퇴비화해 자연으로 순환시켜야 한다."

물론 우리나라는 호주나 미국처럼 땅덩어리가 넓지 못하고 산지(山地)가 많은데다 축산농의 규모가 작아 지역 순환 축산 농업을 하기가 상대적으로 매우 어렵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다. 따라서 정부가 얼마든지 기술과 비용을 지원하면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해도 머지않은 장래에 좋은 열매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라이언 일병 한 명을 구하기 위해 많은 병사가 허무하게 목숨을 잃듯이 대통령을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너무나 많은, 불필요한 희생들이 벌어지고 있다. 폐가축 침출수 퇴비 발언이나 구제역의 책임을 축산농에게 떠넘기고 축산농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집권여당 원내대표의 언행도 따지고 보면 '대통령 구하기'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아닐까? 이들이 벌이는 저질 허무 개그에 분노를 느끼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다.

▲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의 구제역 매몰지. 젖소, 한우 106마리가 매몰된 곳이다. ⓒ김흥구

온 국민이 힘을 모아 제2의 구제역 발생을 막고 가축 매몰지 침출수 피해를 막아야 할 때 국민 힘 빼는 언행을 일삼는 이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들인가? '대통령의 지시를 장관이 따르지 않았네', '그런 지시를 받은 적이 없었네'로 날을 새어서야 되겠는가. 구제역 바이러스와 소독약 범벅이 돼 죽은 가축이 썩어 나온 물을 비료로 만들어 농사에 활용하자고 주장하는 사람의 뇌 구조를 매우 궁금하게 여길 사람이 많을 것 같다.

구제역 대재앙은 인재가 아니라 관재(官災)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정부의 잘못으로 이처럼 대재앙으로까지 번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험은 정부 차원이 아닌 국가 차원에서 다루어야 한다. 살처분을 한 돼지·소 보상금과 매립지 조사·관리 비용이 어디서 나오는가. 대통령이나 장관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세금에서 나오는 것이다. 위험을 둘러싸고 생긴 불필요한 갈등이나 위험 증폭은 이를 해결하는데 드는 사회적 비용을 더 높일 뿐이다. 이는 결국 국민의 더 큰 부담으로 이어진다.

이명박 정부에서 핵심 참모나 인사들은 입만 열었다하면 국민을 분노케 만드는 놀라운 재주를 다들 가졌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주군(主君)에게는 백성의 화가 미치지 않도록 하거나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다 보니 술수가 나오고, 거짓말이 나오고, 황당한 발상이 나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진짜 '재봉틀로 입을 꿰매야' 국민의 귀가 시원해질 사람들을 계속 그 자리에 두니까 너도나도 '국민 귀 더럽히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싶다.

구제역 대재앙은 이제 정부나 전문가의 노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지경으로 가고 있다. 시민단체나 지역 공동체 구성원, 언론인 모두 나서서 힘을 보태야 한다. 살처분 매립지 관리나 감시 등에도 시민단체나 지역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전문가도 아닌 사람이 전문가인 것처럼 언론에 나와 떠드는 것은 국민을 분노케 만들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제2의 촛불 집회를 막고자 한다면 모든 정보를 공개하고 열린 마음으로 공중과 소통하며 위기관리에 공중을 참여시켜야 한다.

구제역 대재앙의 위기 관리를 제대로 해보고자 한다면 지금 당장 샌드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공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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