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음악이 위로를 준다거나 음악에 치유의 힘이 있다는 식의 발상에 발끈한다. 그것은 음악 한담에 등장하는 클리셰이자 교향곡에 돈을 대거나 오페라하우스 별에 이름을 새겨놓는 사람들이나 하는 말이다.....우리가 음악의 힘을 위로와 혼동한다면 그것은 엉성한 사고 때문이다. 위로는 세상 또는 삶에 관하여 마음 놓이게 해주는 진술, 음악이 어떤 방식으로도 할 수 없는 철학적 진술을 요구한다. 위로는 삶이 덜 고통스러워지도록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필립 케니콧은 고전음악 평론가. 지금은 예술 및 건축 평론가로 일하고 있고 이 분야의 공로로 2013년에는 퓰리처 평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인생 초반부 바이올린과 함께 했고 바이올린은 끝까지 어머니 곁에 머물렀다.
그래서 바이올린은 "어머니 세계의 영원한 붙박이"였고 저자에게는 피아노가 그랬다. 어머니는 아들을 음악가로 키우기 위해 열정과 신경질을 퍼부었다. 아들은 늘 탈출을 꿈꿨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우리 제목은 <피아노로 돌아가다>. 위로를 희망하며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도전한다. 원제는 <Counterpoint 대위법>. 여기에서 대위는 '음악과 애도'다. 5월은 감사의 달이고 기억의 달이다. 공자는 말년에 '꿈에 주공이 보이지 않는다'며 탄식했다. 지금도 꿈에라도 돌아가신 아버지를 만날 수 있기를 꿈꾼다.
하지만 갈수록 뜸해진다. 지금은 다 자란 두 딸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쳤다. 어쩌다 주말 집에 머무를 때면, 아이들을 혼내는 바이올린 레슨 선생님의 목소리가 너무 날카로워 불편하곤 했다. 당장이라도 때려치우라고 소리치고 싶을만큼.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배우는 것이 저자가 어머니의 죽음 뒤에 들어가 있던 구멍에서 기어 나오는 데 도움을 주었을까.
"전혀, 그 생각은 터무니없었다.....음악에 관해 말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그것이 강력한 대체물로서 정신적 에너지를 죽음이나 상실에 관한 생각에서 다른 방향으로 돌린다는 것이지만, 음악은 또 우리가 하찮고, 연약하고, 고난에 민감하다는 것도 의식하게 한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하면서 실존적 불안을 떨쳐버릴 수 있었던 순간마다 이 음악이 다른 많은 것과 마찬가지로 미완의 기획이 될 것이라는 슬픈 사실도 똑같이 예리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음악은 음표로 표기된다. 저술은 문자로 표현된다. 음악을 오선지의 음표가 아닌 평면에 문자로 적어 나간다는것은 저나 독자에게 참으로 어려운 일. 음악과 어머니에 대한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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