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MBC 서울시장 후보 토론회에서 진보신당 노회찬 후보는 서울시 2009년 중기재정계획에 도로교통예산은 4년간 88% 늘어나는 반면, 복지예산은 14% 늘어나는데 그친다고 지적하고, "(오 후보가) 복지에 미쳤다고 말한 것 같은데 이 자료를 보면 복지에 미친 게 아니라 도로에 미쳤거나 건설에 미쳤다"고 질타했다.
오 후보는 이에 대해 "복지정책은 돈이 아니라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하는 것"이라며 유엔공공행정상 수상소식을 들고 나왔다. 토론회 일주일 전 유엔으로부터 서울시 복지정책 2개에 대상과 우수상이 주어진다는 통보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또 이 토론회에서 "건설비를 쓰는 것은 한시적이나 보육이나 복지 예산은 한번 쓰기 시작하면 낮출 수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글은 세 가지 쟁점을 다룬다. 첫째, 서울시 2009년 중기재정계획에 4년간 도로교통 예산은 88% 늘어나는 반면, 복지예산은 14% 늘어난다는 노 후보의 주장이 사실인가 하는 점. 둘째, 유엔의 공공행정상 시상이 서울시 복지정책 전반에 대한 평가와 관련있는가 하는 점. 셋째, 건설사업은 한시적이요, 복지사업은 영구적이기 때문에 후자가 더 문제라는 주장이 타당한가 하는 점.
▲오세훈 후보의 서울시정 정책은 이명박 전 서울시장보다 더 개말친화적이다. 지난 30일 저녁 서울 강동구 현대백화점 앞에서 유세 중인 오 후보. ⓒ뉴시스 |
2009~2013년 서울시 중기재정계획에 대해
첫째, 2009년 서울시 중기재정계획에 4년간 도로교통 예산은 88%, 복지예산은 14% 늘어난다는 노 후보의 주장이 사실인가 하는 점.
필자의 확인 결과 노 후보의 이 주장은 사실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계획에 따르면 서울시 도로교통 예산은 2010년 1조8634억 원에서 2013년 3조4361억 원으로 84% 늘어난다. 반면 같은 기간 사회복지 예산은 4조623억 원에서 4조7498억 원으로 17% 증가하는데 그친다. 노 후보 주장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유사하다.
그런데 서울시 2009년 중기재정계획을 살피다 보니 아주 놀라운 사실이 발견되었다. 이 계획에서 5년간 사회복지예산 증가율은 고작 2.5%에 불과했다.
4년간 사회복지예산 증가율이 17%인데 5년간 증가율이 2.5%라니, 뭔가 계산상 착오가 있는 게 아닐까. 다시 살펴보아도 착오는 아니다. 이런 수치가 나타난 원인은 서울시가 사회복지 예산을 2009년 4조6312억 원에서 2010년 4조623억 원으로 5689억 원 줄였기 때문이다. 지난해와 올해 이 예산이 12.3%나 줄어들다 보니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
5년간 사회복지예산 증가율 2.5%는 어느 정도 수준의 것일까. 중앙정부와 비교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재정부에 따르면 2005년 중기재정계획에 나타난 5년간 사회복지예산 증가율은 42.1%였고, 2006년 계획에서는 41.8%였으며, 2007년 계획에서는 44.8%였다. 이명박 정부가 수립한 2008년, 2009년 계획에서도 각각 39.4%, 29.9%로 나타났다. 서울시 중기재정계획에 나타난 사회복지예산 증가율이 중앙정부의 1/10 수준에도 못 미친 것이다.
혹시 중앙정부 계획과 실천 사이에는 괴리가 많아서 이런 차이가 생긴 것은 아닐까. 그러나 확인결과 그 차이는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소한 참여정부 때까지는 그러했다.
카메룬, 잠비아, 서울이 받은 UN대상의 실체는?
둘째, 유엔의 공공행정상 시상이 서울시 복지정책 전반에 대한 평가와 관련있는가 하는 점.
오 후보는 UN공공행정상 수상 소식을 전하며 본인의 복지정책이 UN으로부터 인정받고 있는 것처럼 과시하려 했다. 그러나 UN공공행정상 시상 분야와 시상 기준 어디에도 복지정책 전반에 대한 평가항목은 들어있지 않다.
UN에 따르면 공공행정상 시상분야는 △행정의 투명성, 책임성, 대응성 개선분야 △서비스전달체계 개선분야 △정책결정과정에의 참여 확대분 △정부부문 지식관리 확대분야에 국한된다. 따라서 UN이 소소한 예산이 투입되는 복지사업 한두 개에 상을 주었다 하여 이를 근거로 서울시 복지정책 전반에 높은 평가가 이루어진 것처럼 우겨서는 곤란하다.
2003년부터 UN이 발표하고 있는 역대 수상자들 면면을 보면 이 상의 성격이 어떤 것인지 보다 더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발표한 역대 수상국의 지니계수(소득불평등지수의 일종)를 비교해 보면, 세 차례나 UN대상을 받은 남아공은 134개국 중에서 두 번째로 빈부차가 컸고, 대상을 네 번 받은 브라질은 10번째로 컸으며, 세 번 수상한 잠비아도 21번째로 컸다.
▲ ⓒ프레시안 |
134개국을 지니계수 순서대로 배열해 보면 UN대상을 받은 나라들 중 빈부차가 평균보다 큰 나라와 작은 나라는 각각 절반씩이다. 이것은 UN공공행정상이 복지정책 전반에 대한 평가와 별다른 상관이 없다는 것을 나타낸다.
또 매년 평균 10개씩, 그것도 대륙별로 적절하게 배분하도록 규정하고 이 규정에 따라 주어지는 상을 대상이라 부르는 것이 적절한지도 의문이다. 우리나라 언어습관상 대상은 1인이나 1단체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도 중앙부처가 3차례나 이 상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언어습관을 고려하여 공공행정상으로 번역했을뿐 대상으로 번역하지 않았다. (물론 서울시는 UN이 'Winners'라 표기했으므로 '대상'으로 번역했다고 해명하겠지만 어쨌든 낯 간지러운 것은 사실이다.)
복지보다 토목건설?
셋째, 건설사업은 한시적이요, 복지사업은 영구적이기 때문에 후자가 더 문제라는 오 후보의 주장이 타당한가 하는 점.
이런 주장의 이면에는 건설과 복지가 모두 다 낭비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모든 정부사업이 다 그렇듯이 건설사업과 복지사업 중에도 낭비적인 것과 낭비적이지 않은 것이 있다.
SOC 건설사업의 생산성도 경제발전 단계에 따라 다르다. 신흥개발도상국의 경우 기름값은 선진국들과 큰 차이가 없는 반면, 1인당 GDP가 매우 작기 때문에 GDP 대비 물류비 비율이 매우 높게 나타난다. 따라서 경제성장에 따라 물류비가 급증하는 이들의 경우 SOC 건설이 매우 중요한 국가적 과제가 된다.
그러나 경제가 일정한 궤도에 오른 나라에서는 무분별한 SOC 건설사업이 약(藥)이 아니라 독(毒)이 될 수 있다. 물류비를 대폭 줄여주지 못하는 SOC 사업은 생산성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2008년 기준 우리나라 전산업과 건설업의 최종수요(소비+투자+수출)액 대비 부가가치액 비율을 비교해 보면 전자는 58.1%, 후자는 35.1%로 나타난다. 물류비를 대폭 줄여주지 못하는 SOC 사업의 생산성이 매우 낮다는 증거다.
반면 복지사업은 전산업의 소비를 유발하기 때문에 물류비를 대폭 줄여주지 못하는 SOC 사업보다는 생산성이 더 높다. 특히 교육복지사업은 인재양성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그 생산성은 훨씬 더 높게 나타난다.
한국조세연구원도 2005년 <지역별 SOC스톡의 적정규모에 관한 연구>라는 보고서 를 내고 "실증분석 결과 사회간접자본의 한계생산성이 민간자본의 한계생산성보다 작다는 것"이 확인되었다고 발표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2004년 <재정지출의 생산성 제고를 위한 연구>라는 보고서에서 " 도로부문 투자예산이 지금과 같이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경우, 우리나라 도로SOC 충족률은 국제추세선을 크게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도로부문 투자 자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복지정책과 경제성장과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김광수경제연구소가 2003년 <현실과 이론의 한국경제>라는 책에서 인용한 바에 따르면 세계은행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중남미 국가들과 달리 고도성장한 요인 중 하나로 상대적으로 '낮은 빈부격차'를 지목했다.
실제로 세계은행의 90년대 보고서들에 따르면 중하위 60%계층의 소득점유율이 아시아에서는 33.1%, 중남미에서는 22.8%로 나타났다. 아시아가 중남미보다 10.3%포인트 더 높은 셈이다. 물론 빈부격차만으로 동아시아와 중남미 국가들의 성장률 차이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과도한 빈부격차가 경제성장을 저해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유종일 교수 등은 2003년 <복지와 경제의 선순환관계 연구>라는 보고서를 내고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에 관한 여러 연구결과들을 소개했는데 그 중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과소소비론 : 이 이론은 이윤 몫의 증가, 즉 분배의 악화가 저축률의 증가를 가져오지만 그것은 소비수요의 하락을 의미하기 때문에 유효수요의 부족과 공급과잉으로 나타나고, 이는 곧 투자를 저하시켜 성장률을 떨어뜨린다는 이론이다.
● 포디즘이론 : 이 이론은 공업화 과정에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내수시장 확대가 긴요하기 때문에 공산품의 대중적 수요가 가능한 소득분배가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이론이다.
● 인적자본 형성론 : 이 이론은 기본적인 교육 등 인적자본 투자는 매우 효율적인 투자임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이런 투자를 받을 수 없게 됨으로써 경제의 효율성과 성장을 저해한다는 이론이다.
● 유연성론 : 이 이론은 복지가 잘 되어 있어야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확보되어 구조조정이 신속하게 이루어질 수 있고, 따라서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이론이다.
90년대 북유럽 국가들과 일본의 성공·실패 사례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90년대 두 지역은 유사한 부동산거품 붕괴위기에 직면했었다. 80년대 무분별한 금융규제완화로 부동산 거품을 키운 결과다. 그러나 거품붕괴 위기에 대처하는 두 지역의 전략은 사뭇 달랐다.
일본이 토목건설형·관광개발형 경기부양에 집중한 반면, 북유럽 국가들은 교육개혁과 복지확충에 집중했다. 당시 북유럽 국가들은 △실사구시형 대학개혁 △양질의 직업교육·직업훈련 △국민들의 미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충실한 사회안전망 구축 등을 통해 위기를 고성장의 기회로 만들었다. 그 결과 1994년과 2006년 사이 일본의 일자리가 0.6% 줄어들 때 이들 국가들의 일자리는 평균 20% 가까이 늘어났다.
이렇게 뚜렷하게 구별되는 해외의 성공·실패사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세훈 후보가 교육개혁·사회안전망보다 토목건설·관광개발에 더 집착한다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다. 특히 "건설비를 쓰는 것은 한시적이나 복지 예산은 한번 쓰기 시작하면 낮출 수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복지에 대한 그의 근본적인 인식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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